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한 방울
마음을 움직이는 눈물 한 방울
  • 정석희 TV칼럼니스트
  • 승인 2009.09.1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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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선덕여왕>에서 미실(고현정)의 눈물을 본다는 건 참으로 드문 일이다. 일찍이 강보에 싸인 핏덩이 아들을 버리고 돌아서면서도 서늘한 미소를 흘렸던 미실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런 ‘얼음 마녀’ 미실이 울었다. 호위무사 칠숙(안길강)이 서라벌에 돌아온 것을 보고 거짓말처럼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 것이다. 칠숙이 진평왕의 쌍둥이 딸을 데려오라는 미실의 명을 받고 궁을 떠난 지 무려 20여 년이 흘렀으니, 그리고 실명을 했음에도 쌍둥이 한쪽이 죽었다는 보고를 올리러 돌아왔으니 아무리 냉혹한 미실일지언정 어찌 감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나는 어째 미실의 눈물이 의심스럽기만 했다. 아마 언젠가 미실이 했던 “사람을 얻으려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거나, 무서워하는 걸로 협박을 해야 한다.” 라는 말이 기억나서이지 싶다. 충복 칠숙의 죽음을 불사한 임무 완수에 감복해 흘린 눈물이기보다는 칠숙의 마음을 묶어두고자 흘린 악어새의 눈물이라 여겨지니 이를 어쩌누. 더구나 소화(서영희)를 데리고 종적을 감출 마음이었던 칠숙이 미실의 눈물 한 방울에 그처럼 맥없이 무너져 궁으로 돌아온 걸 보면 어쩌면 그 역시 미실 주위의 뭇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미실을 흠모해왔던 게 아닐는지. 미실도 칠숙의 속내를 짐작했을 테고 말이다. 전설의 진흥대제(이순재)가 소싯적의 미실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하지 않나.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라고. 따라서 미실의 눈물은 단지 칠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하를 얻기 위한 포석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감격에 겨워 다시 미실의 수하가 되길 자처한 칠숙을 보면 사람은 과연 팔자 도망은 못하는 모양이다. 어렵사리 목숨을 건졌으면, 그리고 소화에게 연민을 느껴 그녀를 구해냈으면 둘이 오롯이 여생을 보낼 것이지, 왜 굳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서라벌로 돌아오느냔 말이다. 이게 인류를 구한다거나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도 된다면 또 모르겠다. 단지 힘 있는 자들의 권력 싸움에 두 사람이 이용당했을 뿐이지 않나. 칠숙은 미실의 명을 쫒아 평생을 허비하며 시력까지 잃었고, 소화는 진평왕의 명을 쫓아 죽음을 불사해야 했으니 말이다. 호위무사인 칠숙이야 그렇다 쳐도 한낱 어리바리한 시녀인 소화가 왜 그런 중한 짐을 떠맡아야 했는지 원. 의리니 대의니 하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네들처럼 왕권 수호를 위해 희생되었을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는다니, 얼핏 들으면 참으로 그럴듯한 소리다. ‘크게 되려면 역시 사람을 얻어야 해. 인맥을 쌓아야 해!’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이가 있을 수도 있다. 허나, 말은 번지르르 하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권력을 얻는 ‘도구’로 쓰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어이없기로는 진평왕의 행보도 미실 못지않다. ‘어출쌍생 성골남진’이라는, 왕가에 쌍둥이가 태어나면 성골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예언 때문에 자신의 딸을 사지로 내몬 진평왕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나. 대체 무엇을 위해 칠숙과 소화는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던졌던 것인가.


사실 칠숙이 문제의 쌍둥이 중 한쪽인 어린 덕만(남지현)을 쫒다가 모래폭풍에 휘말려 자취를 감추었을 적엔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미워하던 끝에 정이라도 든 걸까? 막상 소화까지 살려 내 함께 돌아온 걸 보니 반갑다 못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지금이라도 부디 칠숙이 잃었던 자신의 삶을 되찾길 바라지만, 그러나 아무리 내가 이리 읍소한들 신라 최고의 화랑이라는 칠숙이 그 놈의 ‘대의’라는 걸 저버릴 리 있겠나. 사막의 모래 늪에서 용케 살아 돌아온 칠숙이 또 다른, 아니 더 잔인한 미실이라는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걸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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