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TV 취향을 알아주세요.
엄마의 TV 취향을 알아주세요.
  • 정석희 TV칼럼리스트
  • 승인 2009.09.16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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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엄마들의 방학이 시작됐다. 아이들의 개학이야말로 엄마들의 방학이 아니겠나. 해가 중천에 뜨도록 베개를 끌어안고 뒹구는 꼴 안 봐도 되고, 시도 때도 없이 먹을 거 내놓으란 투정 안 들어도 되고, 요금 걱정을 하는지 안 하는지 문 닫고 들어앉아 몇 시간씩 속닥이는 딸아이 때문에 복장 터져할 일도 없고, 속 개운한 일이 어디 한 두 가지여야 말이지. 아침 일찍 깨워서 내보내는 일이 좀 버겁긴 해도 그 이후 도래할 평화로운 시간을 기대하며 엄마는 가슴에 참을 ‘忍’을 새기고 또 새긴다. 콩 튀듯 팥 튀듯 난리 법석이 벌어지고 난 뒤, 마지막 식구가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리고 나면 그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 고백하자면 ‘도대체 누가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 했던가. 홀로 있는 시간이 이리도 좋은 것을!’ 뭐 이런 생각에 흠칫 놀란 적도 있다. 물론 그럴 때면 엄마라는 사람이, 주부라는 사람이 이래도 되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긴 한다. 아주, 아주 잠깐.
 평화가 찾아왔다한들 사실 수습해야 할 허드렛일은 한 광주리다. 그러나 일단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해볼 요량으로 커피 한 잔 뽑아들고 TV 앞에 앉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지만 볼만한 게 어디 있어야지. 아침 드라마들이야 허구한 날 빤한 스토리니 굳이 턱 받치고 있을 까닭이 없고, 토크쇼라 해봤자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니 말이다. 때론 지난 주 내내 연예정보프로에서 질리도록 내보낸 시시콜콜한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들을 재탕 삼탕 반복 학습 시켜줄 적도 있으니 이걸 건망증 초기 증세로 고민하는 주부들을 위한 방송국의 배려라고 받아들여야 할는지 원. 설거지를 하며 뜨문뜨문 소리만 들어도 충분하고 걸레질을 하다가 극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싶으면 잠시 멈추고 보면 그것으로 족하다. 대체 누가 결혼했는지, 누구와 누구의 연애가 시작되었고 누가 아이를 가졌는지의 복습 따위가 왜 필요하냔 말이다. 결혼 기사가 뜸할 적엔 아예 연예인 아이 돌잔치나 부모 회갑잔치까지 보여주니 두말 하면 무엇 하리. 제일 기막힌 건 아침 토크쇼에서 결혼 소식을 전하며 온갖 닭살 행각을 떨었던 연예인들 중 꽤 많은 수가 얼마 후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혼 소식을 전하게 되더란 것. 아마 사랑의 결실 운운하며 온갖 질문 공세를 해댄 MC들로서는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일 게다.
 이처럼 아침 방송의 면면을 살펴보면 TV가 주부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드라마만 봐도 그렇다. 착해빠진 여주인공이 남편의 어이없는 배신으로 좌절한다거나 필요이상으로 못돼 먹은 악녀와 지지고 볶는 내용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지 않나. 이게 다 TV가 지들 맘대로 대다수의 주부들이 복수극에 열광하리라 철석 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 그럼 실제로 주부들은 뭘 보고 싶어 하냐고? 주부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건 아마 다양한 정보일 게다. 전시회나 영화나, 여행지나 신간 정보, 그리고 뭔가 배울만한 문화센터 정보 등등 말이다. 이 얘기에 아들 딸들은 아마 이 같은 질문을 던지지 싶다. “검색하면 다 나오지 않아요?” 그러게, 검색하면 다 나오는 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이 자유로운 어머니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젊은 층들은 클릭 몇 번으로 자기가 보고 싶어 하는 전시회의 일정은 물론 지도까지 죄다 알아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두렵기 만한 오륙십 대의 어머니들에게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 않나. 따라서 주부들의 세상을 보는 창으로 TV만한 안성맞춤의 매개체도 없거늘 어째서인지 TV는 주부들의 진정한 관심사에는 아랑곳 않는다. 젊은 층들이라면 인터넷 여론이라도 일으킬 법 하련만 어머니들은 그럴 수도 없고. 그럼 젊은 층들은 또 물을 게다. “대신 신문이나 책을 보시면 되잖아요?” 에고, 에고. 그대들도 돋보기 쓰고 한번 보시게나. 깨알만한 글자들을 얼마나 오래 들여다 볼 수 있는지.

△엄마가 늘 이런걸 보고싶어하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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