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춘추전국시대
막장드라마 춘추전국시대
  • 정석희 TV칼럼리스트
  • 승인 2010.01.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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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N ‘막장극장’은 SBS <아내의 유혹>이나 MBC <밥 줘> 등의 세칭 막장드라마들 속 명(?)장면을 집대성해놓은 패러디 물이다. 이를테면 TV가 TV를 비아냥거리는 느낌이랄까? 따라서 시청자 입장에선 통쾌하기 그지없는 코너이긴 하나 마냥 웃고 있기엔 어째 좀 찝찝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하기는 근간의 막장드라마의 창궐에 시청자들의 방조도 한몫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지 싶다.
 얼마 전 방송된 ‘막장극장 - 두 아내와 두 남편’ 편을 살펴보면, 바람기 충만한 한 유부녀가 치킨 집 연하남과 눈이 맞아 거침없는 애정 행각에 돌입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다 ‘우연’이 필수인 막장드라마답게 불륜남의 가게 앞을 지나던 남편에게 발각되어 이혼에 이르고, 또 너무 쉽게 결혼해버린다. 사실 이런 신속한 이혼과 재혼도 막장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규칙이다. 그리고 배신을 당한 남자는 언제나 그렇듯 전 아내의 결혼식을 남몰래 지켜보며 눈물짓는다. 허나 배신을 당한 남자에겐 늘 참하고 아리따운 여자가 나타난다는 공식이 기다리고 있으니 낙심은 금물. 갈등이 일단락됐다 싶으면 기다렸다는 듯 발생하는 기상천외한 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거나 해운대에 쓰나미가 밀려왔다는 식의 판타지에 가까운 사고가 일어나고, 또한 사고의 결말은 늘 희귀하기 짝이 없는 부분 기억상실증. 자신이 불륜을 저질러 이혼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전 아내가 다시 아내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고, 그리하여 네 남녀가 함께 동거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진다. 거기에 빼놓지 않고 끼어드는 출생의 비밀과 실타래처럼 엉킨 혈연관계는 만수산 드렁 칡 모양 꼬이고 또 꼬여만 간다. 시청자들은 실소를 금치 못하지만 가장 기막힌 건 이 모두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라는 사실이 아닐는지.
 그러나 우리가 진작 깨달아야 하는 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케이블 TV의 코미디를 보며 웃고 즐기는 사이 공중파가 막장드라마 천지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SBS <아내의 유혹>의 김순옥 작가는 신애리(김서형)에 버금갈 악녀 주아란(이소연)을 앞세운 <천사의 유혹>으로 돌아왔고, 막장드라마의 효시라 할 MBC <인어아가씨>의 임성한 작가는 아리송한 제목인 <보석비빔밥>으로, 문영남 작가는 SBS <조강지처 클럽> 이후 약 1년 만에 KBS <수상한 삼형제>로 돌아왔으니 이보다 더 기막힐 데가 있나. <천사의 유혹>은 아예 페이스오프 수준으로 다른 연기자를 등장시켜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보석비빔밥>은 등장인물 네 남매의 이름이 비취, 루비, 산호, 호박이어서 보석비빔밥이라나?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수상한 삼형제>다. 김건강(안내상), 김현찰(오대규), 도우미(김희정) 등 등장인물의 극중 이름이나 연기자들의 면면만 살펴봐도 <조강지처 클럽>의 작가 작품임을 대번에 눈치 챌 수 있으니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전처와 불륜녀의 동거라는 해괴한 상황을 연출했던 서영명 작가의 <밥 줘>의 퇴장이라 하겠다. <밥 줘>까지 버티고 있었다면 그야말로 막장드라마의 춘추전국시대가 될 뻔 했지 뭔가.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떠들어봤자 막장드라마 열풍이 어디 쉽사리 잦아들겠는가. 막장 운운 하며 열을 올리지만 보는 사람이 있으니 만드는 사람도 있는 게니까. 다만 그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또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등장인물들의 비뚤어진 사고가 안타깝고 또 두렵다. 그래서 ‘막장극장’의 선전이 반가운 거다. 복수를 하겠다고 아무와 결혼을 하고, 심지어 어느 누군가를 죽이기까지 하는 황당무계한 설정을 마음껏 비웃어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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