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의 빛나는(?) 반세기 역사
아이돌의 빛나는(?) 반세기 역사
  • 김홍기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0.03.13 1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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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돌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 아이돌이란 결코 즐거운 존재만은 아니다. 지난해, 노예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걸은 동방신기. 당시 12만 명의 팬들이 SM측에 분노하여 탄원서를 2차례 걸쳐 제출하기도 하고, 돈을 모아 일간지에 SM엔터테인먼트의 불공정계약을 알리는 광고를 게재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2PM의 팬들도 그들의 ‘영원한 리드자’였던 재범이 말도 안 되는 사유로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됐다. 팬들은 통곡하며 ‘돌아와 재범’을 외쳤건만 올해로 넘어오면서 ‘재범의 영구 제명’이라는 극한의 상황까지 맞닿게 됐다. JYP엔터테인먼트와 2PM멤버들과 간담회까지 가진 팬들은 팬 사이트 집단 폐쇄, ‘닉쿤 왕따설’ 제기, 재범 시나리오를 만들며 거침없이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왜 우리의 아이돌들은 언제까지 기획사 앞에서 이토록 약한 존재여야 할까? 과연 팬들의 애틋한 정성들이 그들을 구원해줄 수 있을까?

 

  제작자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아이돌’
  우선 팬들에게는 미안한 사실이지만, ‘아이돌’이란 이미 탄생부터 ‘착취당하는 운명’이었다. 기획사의 목적으로 팀을 구성하여 데뷔부터 해산까지 모두 회사가 결정하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시스템이 음악 업계에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1960년대 미국이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서 날아온 비틀즈 열풍에 점령을 당한 상황이었다. 음악뿐 아니라 그들의 영화까지 성공하자 이에 자존심 상한 미국의 한 제작자는 제2의 미국판 비틀즈를 만드는 치밀한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100대 1의 경쟁 오디션을 통해 두 명의 미남 연기자와 두 명의 무명가수를 선발하여 비틀즈와 같은 4인조 밴드를 꾸렸다. 그리고 60년대 아메리칸 아이돌격인 NBC의 ‘The Monkees’라는 리얼리티 TV쇼에 출연시키고, 밴드 이름도 비틀즈가 딱정벌레(beetles)의 e를 변형했던 것처럼 원숭이(monkeys)에서 알파벳 하나만 바꿔 비슷한 이름을 만들어 냈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부터 전문 영화감독에게 바닥을 구르고, 동물을 흉내 내는 혹독한 스파르타식 연기 수업을 받아야 했으며, 스스로 음악을 할 수 없던 그들은 당시 잘 나가던 유명 작곡가들에게 곡을 받고 무대 위에서는 연주하는 시늉을 하면서 노래를 했다. 이렇게 치밀하게 기획된 몽키즈는 빌보드 차트에 1위를 기록하며 데뷔했고,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자생적인 뮤지션이었던 비틀즈와는 달리 만들어진 상품인 몽키즈의 운명은 그들의 것이 아니었다. TV시리즈의 방영이 끝나자 대중들의 관심은 급격히 떨어졌고, 그들의 유효기간도 끝나갔다. 하지만, 몽키스란 제작자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이었기에 멤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멤버들은 하나씩 탈퇴하기 시작했고, 결국 팀은 해체되고 말았다. 그렇게 흩어진 멤버들은 솔로 활동으로도 이어지지 못한 채 평생 어중간한 인생으로 방황해야 했다.

  그러나 ‘몽키즈’ 제작자의 비즈니스는 계속 되었다.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애니메이션 밴드인 ‘아치스’였다. 마치 몽키스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만들었듯이 ‘아치스’라는 TV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주인공 밴드들의 음악을 만들고 판매한 것이다. 이 가상의 밴드인 ‘아치스’의 음악은 10대들을 겨냥한 단순하고 달콤한 사운드라 하여 ‘버블검 사운드’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제작자는 수많은 돈을 긁어모았다.

 

  ‘아이돌’이라는 굴레
  국내에서 아이돌이 처음 등장했던 것은 80년대 일본 열도를 주름잡았던 소녀대와 소년대를 본떠 만든 소방차와 세또레가 시초였다. 이후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이 아이돌 시장을 급격하게 팽창시켰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열풍에 자극받았던 기획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제2의 서태지와 아이돌을 공장처럼 찍어내었던 것이다. 그러나 H.O.T, 젝스키스, g.o.d와 같은 대형 아이돌부터 태사자, 오룡비무방, 클릭비와 같이 군소 아이돌 중 기획사의 손을 떠나서 서태지처럼 자생력을 갖고 음악 인생을 지속하는 사례는 찾아 볼 수 없다. 개그맨들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연기자로 전향하면 성공한 사례로 꼽힐 뿐 대부분 소식조차 들을 수도 없다.

  몽키즈 이후 50년 동안 아이돌이라는 굴레에 인생을 맡긴 수만 명의 젊은이들의 운명이란 대부분 이런 것이었다.

  지금 동방신기와 2PM 팬들의 집단 분노와 실천들은 어쩌면 이 반세기 동안 계속되어온 아이돌의 숙명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부디 그들만이라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 주기를 바라는 간절히 응원일 것이다.

 

  아이돌, 그 굴레를 벗어버리고
  하지만, 희망도 있다. TAKE THAT의 인기 없는 막내였던 로비 윌리암스는 다재다능한 락커로 변신하여 수만 명의 관객들 앞에 홀로 노래하는 슈퍼스타가 되었으며, N Sync 출신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최고의 흑인 프로듀서들에게 마이클잭슨과 프린스의 피를 수혈 받아 아이돌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걸 그룹 Destiny's Child 출신의 비욘세 역시 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으로 지난 2010년 빌보드에서 6개 부분을 수상하며 최고의 여자가수 자리에 올라섰다. 이들을 최고의 솔로가수로 만든 것은 결코 아이돌의 후광이 아니었다. 오히려 겸손함으로 시작된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수련과 열정, 그리고 과감한 도전 정신이 지금의 영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에게도 아이돌이란 그 자체가 목표로 끝나는 종착점이 아닌, 제2의 저스틴 팀버레이크, 제2의 비욘세로 도약할 수 있는 특별한 수련 기간의 의미가 되는 날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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