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향취를 남기고
무소유의 향취를 남기고
  • 이민정 기자
  • 승인 2010.03.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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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 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님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 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지난 11일, 오후 1시 52분. 법정스님의 입적으로 우리나라는 또 하나의 현인을 잃었다. 위는 그 소식을 접한 뒤 이해인 수녀가 절절히 써내려간 추모글의 일부분으로, 서로의 종교를 뛰어넘은 두 사람의 내적 교류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마 천주교와 불교라는 극단의 종교에 각자 몸을 담고 있었음에도 이런 교류를 유지할 만큼 그에게 깃든 인간미가 깊었으리라.

  법정스님은 불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의 대표적인 저서, <무소유>로 잘 알려져 있는 불교계의 큰 별이다. ‘무엇을 갖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에 얽매이는 일, 그러므로 많이 가지면 그만큼 많이 얽매이는 것’이란 무소유 사상을 담은 그의 저서는 1976년 4월에 출간된 이후 3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손꼽히고 있다. 평생 자신이 주장한 무소유의 미학처럼, 사람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을 ‘삶’에의 욕구마저 굳이 소유하려하지 않고 미련 없이 흘려보낸 그의 뒤에는 이제 아련히 풍기는 ‘무소유의 향취’만이 남았다.

  ‘늘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두는 마음이 곧 결핍’이라 말하던 그에 비해 지금의 나는 어떤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도 뭐하나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매여 있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법정스님은 많이 소유하려 들 수록 되려 그것에 얽매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다지만, 속세의 때가 묻어 그런지 하나라도 버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 곧 무소유라는 그의 목소리는 입적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은 채, ‘무소유를 꿈꾸기만 하던’ 저마다의 삶을 다시금 잔잔히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물건들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쓸데없는 과욕만 부리며 살고 있는가 싶어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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