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와 '예술' 사이의 에로티시즘
'변태'와 '예술' 사이의 에로티시즘
  • 정수미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10.03.1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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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서울, 시내의 어떤 미술관에서는 미술사책에서 볼 수 있는 ‘대가’나 ‘걸작’대신, <Helmut Newton의 패션 누드 사진>이라는 전시를 개최한다. 사진은 최근에 와서 하나의 예술로 인식되었지만, 그때의 사진은 처음부터 전시를 목적으로 한 사진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것은 꽤 파격적인 전시였다. 더구나 패션 사진은 특정 상품의 판매를 위해 제작되는 것이니 더욱 그럴 수 밖에!
 순수 미술만을 고집하던 미술관은 이제 시각문화 전반으로 그 영역을 확대하여, 그간 소외되었던 포스터나 잡지 커버, 광고 사진, 패션 등을 빠르게 흡수하기 시작했다. <Helmut Newton의 패션 누드 사진>전도 그런 맥락에서 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헬무트 뉴튼은 1960년대 <보그>와 <엘르>등의 유명 잡지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세계적인 패션 사진 작가로 부상한다. 그는 모델의 포즈와 메이크업ㆍ헤어스타일링을 완벽하게 세팅한 뒤, 정확한 구도를 계산하여 한치의 오차도 없는 사진을 완성한다. 그리고 그의 사진 대부분에서는 풍성하게 웨이브 진 헤어스타일을 한 섹시한 여성이나 여성을 암시하는 스타킹과 하이힐이 등장한다. 헬무트 뉴튼에게는 항상 ‘에로티시즘’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니는데, 그는 1960년대 리차드 아베돈이 섹슈얼리티를 평범하게 표현한 것에 비해 누드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동성애나 살인, 관음증이 연상되는 이미지로 사진을 구성하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쇼킹한 느낌을 전해주는 그의 사진으로 인해 ‘현대의 패션 사진은 포르노그라피의 아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헬무트 뉴튼 자신은  ‘변태의 제왕’이라는 악평을 듣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는 ‘패션 사진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 놓은 천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뉴튼은 1975년 미국판<보그>에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한 수트를 입은 채 마초 스타일로 무장한 여성과 그 옆에서 중절모와 하이힐 외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다른 여성 모델을 함께 등장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사진 속 여성은 누드이긴 하나 꼿꼿이 서 있는 모습으로 인해 냉담하고 무표정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1970년대에 등장한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과거의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여성이 아니라 차갑지만 도발적인 섹시함을 가진 여성의 등장은 이 시기에 일어난 여성상에 대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뉴튼이 1977년에 찍은 ‘도리안 팬션에서 찍은 제니’에서는 호화로운 실내에서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경직된 자세로 서있는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자세로 인해 인체의 아름다움은 강조되지만 화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시선으로 인해 오히려 화면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뉴튼은 코르셋이나 의료용 기구처럼 딱딱한 느낌의 도구가 부드러운 살집의 육체를 조이는 모습을 자주 사용했는데, 이를 통해 페티시즘과 에로티시즘을 더욱 강조했다. 긴장감이 흐르면서도 에로틱하고 또한 몽환적인 이런 사진 연출은 최근 패션 잡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방식인데, 그만큼 패션 사진에서 헬무트 뉴튼의 영향력이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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