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은 <논쟁>에서 나를 벗어던지기
발가벗은 <논쟁>에서 나를 벗어던지기
  • 장지원 기자
  • 승인 2010.03.2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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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한 장면
외설인가 예술인가. 연극 <논쟁>을 두고 그 둘의 경계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하지만 초연시 1만 관객 동원, 전석 매진 등 결과는 확실했다. 외설인지 예술인지도 알 수 없는데다 얼굴 아는 연예인이 나오는 공연도 아닌 연극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자 ‘자’와 여자 ‘애’는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먼저 배신을 하는가에 대해 논쟁을 한다. 논쟁이 격해지자 ‘자’는 ‘애’를 실험실에 데리고 간다. 실험실엔 2쌍의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다.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상태에서 갓 18세가 된 날 세상으로 처음 나온다. 알몸으로 등장하는 아이들. 순수의 상태에서 자연을 발견하고 시냇물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처음 접한다. 그리고 타인의 존재를 만난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서로 끌리게 된 이들에게는 영원한 사랑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또 다른 연인들을 만나게 되자 이들은 ‘사람’의 만남보다는 ‘남자’와 ‘여자’의 짝짓기에 눈을 뜨게 되고 분열이 생긴다. 변심, 소유욕, 거짓 등 인간의 원초적인 욕심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자’의 누가 먼저 변심하느냐에 대한 실험은 시원한 결과 없이 싸움으로 끝난다.
 <논쟁>을 보다보면 외설과 예술에 대한 논란은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어색하기만 하던 배우의 나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순수 상태의 인간을 표현하는 것일 뿐, 벗은 몸이 보여주는 외설은 극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논쟁>은 결과 없는 이성에 대한 논란이기 때문에 관객 개인이 자신만의 사랑 본질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해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야만 한다. 마치 점술가 앞에서 나의 점괘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점술가가 말하는 점괘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 점괘가 다 나에 대한 이야기이고 정답은 아니지 않는가. 삶을 살아가기에 따라 점괘의 결과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논쟁>은 인간의 감정을 벗은 상태 그대로 보여주지만 어떤 사람이건 사회에 따라 변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준다. 애초 무엇을 통해 우리네 본 모습의 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오류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따라서 극 자체에 화려한 의상, 유명 배우 등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오히려 <논쟁>은 의상과 유명배우로 인해 그 의미가 왜곡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은 아닐까?
 순수 자체의 연극 <논쟁(La Dispute)>은 4월 18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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