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걸그룹, 진화하는 성적 판타지
대한민국 걸그룹, 진화하는 성적 판타지
  • 강경윤 ( 서울신문 나우뉴스 부) 기자
  • 승인 2010.03.27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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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인영화를 보고 섹시한 표정을 연구했어요.”
얼마 전 모 프로그램에서 한 걸그룹의 멤버가 이 같은 말을 했다. 재미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아직 소녀티를 벗지 않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말은 방송에서 미성년 연예인에게 섹시한 댄스를 요구하고 언론에서 조차 ‘꿀벅지’, ‘청순글래머’ 등 여성에 대한 성적표현을 해온 우리 사회의 행태를 정확히 관통하고 있었다.

   방송에서 허용되는 노출 수위에서 시각적인 흥분을 시키기 위해 스무 살 갓 넘은 걸그룹 멤버가 무대에서 ‘섹시 컨셉트’라는 아슬아슬한 옷을 입고 성인영화를 재연하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 가요계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10년 넘게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진 대한민국 음반시장이 낳은 비극, 노골적인 패티시즘과 상업성이 교묘히 맞아 떨어진 결과다.

 

   성적 판타지로 무장한 2세대 걸그룹 
   SES, 핑클로 대표되는 1세대 걸그룹의 등장은 1990년 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형 기획사에 뽑힌 소위 ‘얼짱’ 여고생들이 트레이닝을 거쳐 데뷔, 대중적인 그룹으로 거듭났다.

   1세대 걸그룹은 ‘신비전략’으로 10대 소년팬을 공략했다. 그들은 극도로 사생활을 숨긴 채 요정 이미지로 포장했으나 성적 자극은 지금만큼 노골적이진 않았다. 가요계에 불어 닥친 음반시장 불황은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좀체 음반을 사려고 지갑을 열지 소비자들을 충족시킬 다른 창구를 찾으려던 기획사들은 일본가요계에서 그 ‘해법’을 얻었다. 소아에게 성적 자극을 느끼는 롤리타나 특정 복장에 열광하는 의복 패티시즘, 특정 신체에 성적환상을 느끼는 등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꿰뚫는 2세대 걸그룹은 그렇게 탄생했다.

 

   소녀시대, 2세대 걸그룹의 대표주자
   대표적인 2세대 걸그룹은 바로 소녀시대다. 지난해 군복에 허벅지가 훤히 들어난 짧은 바지를 입고 무대에 섰던 그녀들은 소원을 말해보라고 카메라를 응시했다.

   지난 2월 발표한 ‘오!(Oh)’에서는 더욱 자극적이었다. 발랄함과 섹시함을 겸비한 치어리더 복장을 한 채 “오빠, 오빠, 오빠, 아이 윌 비 다운”(I will be down)을 외쳤다. 소녀의 순수한 이미지와 성적 판타지를 차용한 소녀시대의 전략을 성공적이었다. 소비능력을 갖춘 든든한 소비자 ‘삼촌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 것.

   소녀시대는 발표하는 앨범마다 주간 음원차트 1위, 음반 판매량 1위를 거머쥐며 기록행진을 이어갔다. 치킨, 화장품, 라면, 휴대전화기 등 20여 편의 CF 모델로 활약하고 있다. 소녀시대가 포문을 연 2세대 걸그룹 전성시대가 바로 요즘이다. 휴일 TV를 틀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뉴스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에서 여자 아이돌 그룹의 가수들이 활약한다.

   인기 개그맨의 유행어에 빗대 “걸그룹 멤버 한 명이라도 출연하지 않으면 그건 방송 아니잖아요. 그냥 CCTV지”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들의 활동영역은 광범위 하다.

 

   ‘섹시하지만 천박하지 않게’ 걸그룹을 향한 이중 잣대 
   예쁜 외모와 기획사의 하드 트레이닝으로 실력까지 보유한 걸그룹은 시청률 지상주의에 빠져 새얼굴 찾기에 골몰하는 방송계의 이해관계와 딱 맞아 떨어졌다.

   스타성을 가진 걸그룹 멤버는 가요계를 넘어 방송, 영화계로 활동 영역을 확대시켰다. 일부는 이를 두고 남성 연예인 중심이었던 한국 연예계에서 여성 연예인들의 활동 영역이 확대된 것이 아니냐고 풀이하기도 한다. 그러나 걸그룹은 소비하는 성인 남성들의 기대치에 맞춰 대형기획사의 현란한 마케팅과 엄격한 트레이닝으로 탄생한 존재인 만큼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들을 향한 대중의 시선은 불균형이 뚜렷하다. 방송에서 보이는 순수함, 섹시함, 청순함 등 특정 이미지만 부각, 남성의 기대치를 충족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남성들은 점점 더 적극적으로 걸그룹의 환상에 대한 욕망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해 방송계 화두였던 ‘청순 글래머’란 신조어는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낸 셈이다.

 

   걸그룹 성 상품화, 과연 윈-윈 전략일까
   TV에 나오는 걸그룹을 보고 미래의 가수를 꿈꾸는 중, 고등학생이 많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지망생들이 기획사 연습실에서 노래와 춤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다. 수십만 명의 팬들을 열광케 하고 가요무대 뿐 아니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드라마, 영화에까지 진출해 종합 엔터테이너가 되는 걸그룹 가수들의 모습은 부러움에 대상일 터.

   대중의 사랑을 받는 걸그룹과 이들에게 투자하는 연예 권력, 그리고 이들을 비판 없이 카메라 앞에 세우는 방송계까지. ‘걸그룹’의 성적판타지 공략은 모두에게 승리 방정식일까. 다양한 의견이 엇갈리겠지만 적어도 상품으로 전락해 남성들이 환호하는 일부 이미지만 빠르게 소비되는 ‘걸그룹’에게는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리라 본다.

 

   브레이크 없는 걸그룹의 선정성
   노골적인 섹시 컨셉트를 내세운 중학생 걸그룹 멤버가 탄생하고 성인영화를 연상케 하는 퍼포먼스를 눈요기꺼리로 가요 무대에 올리는 대중가요계는 이미 자정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오히려 가요계는 남성 팬에게 시쳇말로 '먹히는' 컨셉트를 차용하기 위해서 혈안이 돼 있다. 엉덩이 춤, 학다리 춤 등 퍼포먼스과 치어리더, 여고생 등 컨셉트는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상업가수의 전략은 자칫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걸그룹의 '현란한' 몸짓에 대중의 눈과 귀가 쏠려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은 훼손되고 사회 전반에 여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이 좀 먹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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