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그리고 90주년
지금, 여기 그리고 90주년
  • 정혜옥(영문) 교수 (영문 74)
  • 승인 2010.04.10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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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3월 신입생들을 만나면 나는 운니동 캠퍼스에 입학하던 그 때를 생각한다. 아직 춘삼월 잔설이 남아있던 운니동 캠퍼스 정원을 지방도시에서 갓 올라온 내가 서툴고 어리둥절하며 그리고 약간은 침울한 기분으로 걸었던 모습. 아득하게 먼, 그러면서 동시에 바로 엊그제 같기도 한 그 그리운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학생에서 조교로, 외래 강사에서 전임 교수로 신분이 변화되는 동안 입학 이래 잠깐 미국에서 지낸 2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덕성의 울타리를 떠난 적이 없다. 때문에 나는 우리 학교를 바깥에서 객관적으로 볼 시각이 없는, 덕성을 한없이 사랑하는 마음밖에 없는 대단히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점을 지닌 편향된 사람이기도 하다.

  가끔씩 혼자 생각에 잠겨본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수많은 친구와 선후배들, 나의 강의를 들었던 수많은 학생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는 어떤 친구였을까, 그리고 어떤 선생이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그 학생들에게 어떤 선배였을까? 이런 상념에 덧붙여 내가 학생 신분으로 강의를 들었던, 교수가 된 뒤에도 둘이만 있을 때는 “혜옥아”하고 이름을 불러주시던 은사님들이 떠난 빈자리가 쓸쓸하다. 한해 한해를 더해 가면서 이 캠퍼스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연이 얼마나 깊고 소중한 것인가를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지금의 쌍문동 캠퍼스는 당시 일주일에 한 번 운니동에서 8번 시내버스를 타고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수유리 장미원을 지나 우이동 솔밭 정류장에 내려 체육 과목이었던 테니스를 치기 위해 걸어왔던 곳이다. 내가 강사 생활을 시작한 1980년에 자연대가 옮겨왔고 그 다음에 예대가, 그리고 인문사회대가 완전히 이곳으로 이사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곳에서 우리 모두는 여러 가지 굵직한 변화를 거치면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받기도 했고, 서로 간의 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창학 90주년’ 이라는 표현에 대해 일각에서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지금의 덕성학원 모태가 시작된 지 90년이 지났다는 사실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차게 긴 세월이다. 지금의 우리는 90년 동안 덕성과 인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의 노고와 사랑과 희생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쓴 프랑스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우리 모두는 기억의 집합체이고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합산이다”라는 말을 했다. 90년이라는 긴 세월 역시 ‘지금 그리고 여기’라는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의 집적일 것이다. 우리가 함께 겪었던 좋은 일과 궂은 일이 모두 덕성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되었을 것으로 나는 굳게 믿는다. 지금 여기를 지나는 우리들이 매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우리 덕성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본다. 창학 90주년을 맞이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90년의 몇 배가 될 덕성의 찬란한 미래를 위해 지금 이 순간을 보람 있고 충만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선 나 자신부터 겸허하게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유난히 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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