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에 스며든 디지털, 디지털에 녹아든 아날로그
아날로그에 스며든 디지털, 디지털에 녹아든 아날로그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0.05.08 1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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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록을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친구의 번호쯤은 외울 수 있도록. 카메라를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을 두 눈에 담도록. 문자기능을 없애주세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긴 연애편지를 쓰도록.”
위 문구는 2006년 한 통신사에서 내놓은 광고카피다. 이 광고는 기술은 언제나 사람에게 지게 되며, 사람을 향한다는 내용을 담아 통신사 광고임에도 불구하고 휴대폰의 기능을 없애달라는 역설적인 의미를 전했다.
우리는 디지털의 홍수 속에 살고 있고 위 광고 카피문구처럼 친구의 휴대폰 번호를 외우거나 손으로 긴 편지를 쓰는 일이 줄었다. 그와 함께 디지털카메라 대신 필름카메라를, MP3 파일 대신 레코드판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손으로 조심스레 주파수를 맞추던 라디오, 동전 몇 개의 행복이 있는 공중전화, 은근한 기다림이 있는 빨간 우체통까지. 십 년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것들이 이제는 추억의 산물이 되었다. 수요가 줄어 점점 자취를 감추는 이들. 하지만 저마다 디지털이라는 탈을 쓰고 아직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으니 아쉬워하지 마시라.

귀를 여는 행복 바이러스, 라디오
휠을 돌려가며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던 그 시절, 지직거리는 잡음에 귀를 쫑긋하던 때를 지나 요즘 대부분의 청취자들은 자동으로 주파수가 맞춰지는 MP3플레이어로 라디오를 듣는다. 영상매체의 발달로 그 위상을 잃고 있는 라디오를 다시 부활시킨 것은 ‘디지털 기술’이었다. 그 무기는 바로 인터넷 라디오다. 콩(KBS), 미니(MBC), 고릴라(SBS) 등 인터넷 라디오는 저마다 독특한 이름으로 청취자들에게 다가왔다. 깨끗한 음질과 스튜디오 내부를 화면으로 제공하는 ‘보이는 라디오 서비스’를 실행하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사연과 신청곡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청취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로 인해 하루 평균 청취자가 46만 명이 넘을 만큼 활성화되었고, 이는 쌍방향 라디오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Windows Vista 버전의 노트북을 사용하는 김소영(21) 씨는 “노트북을 구매하기 전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홈페이지의 인터넷 라디오를 통해 청취했다. 하지만 지금은 바탕화면에 무료로 설치할 수 있는 가젯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어 홈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아도 노트북 전원만 켜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각 방송사에서 내놓은 라디오 어플리케이션은 새롭게 열린 스마트폰 시대의 스마트폰 유저들을 타깃으로 청취율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인터넷 라디오는 이처럼 라디오 특유의 따뜻한 감성에 인터넷의 양방향성 소통기능을 강화해 변화하는 미디어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너와 나만의 작은 공간, 공중전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긴 줄이 과거 공중전화 부스 앞의 흔한 풍경이었다면, 요즘은 공중전화 수화기를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눈길이 갈만큼 공중전화 이용률은 급감하고 있다. 심지어는 공중전화 유지비용이 월 수익을 훨씬 초과하는 등 애물단지로 전락해 ‘공중전화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지난 1998년 이후 휴대전화 사용고객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00년부터는 이동통신사로부터 보편적 서비스 손실분담금을 받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KT링커스는 현재 수 년째 신입사원을 선발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이용률 저하에 따라 공중전화부스 또한 약 9만대로 급감했다.
이렇게 수익창출은 커녕 빚을 내고 있는 공중전화에도 빛이 들 시기가 찾아오고 있으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 공중전화’ 덕택이다.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역 내의 ‘디지털 뷰(Digital View)’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2월 16일부터 사용된 것으로, 서울 지하철 역 주변정보, 실시간 뉴스, 인터넷 전화 등 시민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치된 ‘디지털 영상 시스템’이다. 현재 1~4호선 내에 900만 대 정도가 설치돼 있는 디지털 뷰는 주요 기능인 지도기능 외에도 동전과 전화카드 대신 교통카드(T-money)로 결제하는 인터넷 전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크린 하단에 있는 수화기를 들고, 지역번호를 포함한 번호를 누른 후 통화버튼을 누르는 간단한 방식에 통화하면서 메모장을 꺼내지 않아도 스크린에 메모를 할 수 있으니 더욱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하다.

기다림 속에 피어나는 기대, 우체통
휴대폰도 상용화되지 않던 어렸을 적 전학간 친구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손편지 뿐이었다. 편지를 써서 집 앞에 있는 빨간 우체통에 넣고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은 기분 좋은 설렘과 기대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넣었던 그 빨간 우체통은 찾아보기 어렵다. 100여 년이 넘게 소식을 전해주던 빨간 우체통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E-mail과 메신저에 밀려 나고 있다.
이렇게 한 장의 기억이 돼버린 빨간 우체통은 유지, 보수비에 대비하여 이용률이 낮다는 이유로 2005년 이래로 매년 3천여 개씩 사라져 현재는 2만 여 개의 우체통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거리마다 있던 우체통들이 몇 남지 않고 사라지자 우정사업본부는 우체통 위치를 찾기 어렵다는 고객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작년 6월 위치정보 알리미 서비스를 구축했다. 이로인해 집이나 학교, 직장에서 인터넷을 통해 전국 2만 5천여 개의 우체통 위치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이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우정사업본부(www.koreapost.go.kr)와 각 체신처, 우체국 웹사이트에 접속해야 한다. 그 다음 ‘우체통 찾기’ 창을 클릭하면 지도검색 서비스로 바로 연결돼 우체통의 위치가 표시된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우체통이나 지역별 우체통도 검색할 수 있으며 지도 위 우체통에 마우스를 옮기면 우체통의 주소와 자세한 위치, 담당 우체국, 우편물 수집시간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리고 또 하나 유용한 서비스는 ‘무인우편창구’이다. 지하철역이나 대형빌딩에 설치돼 있는 무인우편창구는 우체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우편물을 보낼 수 있는 우편자동화 기기이다. 우편을 접수하고 전달하는 과정이 자동으로 처리되며, 일반편지 뿐만 아니라 등기, 소형소포 및 국제 우편물까지 보낼 수 있고 동전, 신용카드 등 모든 화폐수단으로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용률이 매년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증가하고 있다. 충무로역에 설치된 무인우편창구를 이용해본 박성미(47) 씨는 “요즘엔 우체통도 많이 없고 우체국에 가면 대기 시간이 오래 걸려 불편했는데 얼마 전 무인우편창구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군대 간 아들에게 꼬박꼬박 편지를 보낸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우리 기억의 단편으로만 남을 뻔 했던 아날로그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춰 다시 디지털이라는 새 옷을 입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디지털이라는 말에 왠지 모르게 차가운 기운이 배어 있기 때문일까? 물론 여전히 누군가는 디지털 시대를 “세상이 편리해진 것이지 결코 좋아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며 아날로그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마냥 차가울 것 같았던 디지털은 사실 아날로그를 잊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라디오, 디지털 공중전화, 무인우편창구같은 더욱 친근하고 편리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갑자기 아날로그가 그리울 때는 이미 바뀐 디지털 세상을 돌아보며 아쉬워하지 말자. 대신 하루쯤은 문자 메시지, 메신저 대신 손으로 편지를 쓰거나, 나른한 주말 오후에는 비틀즈의 오래된 로큰롤을 듣거나, 가벼운 나들이에 손쉬운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소중한 순간들을 담아 두면 어떨까? 그것만으로도 아날로그적 감성이 충만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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