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의식이 만들어내는 세계 - 신화로 본 <인셉션>
잠재의식이 만들어내는 세계 - 신화로 본 <인셉션>
  • 유재원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저자
  • 승인 2010.08.28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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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방의 꿈 속에 들어가 그를 조정하고 그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 생각을 심어 놓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의 꿈’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오히려 상대를 ‘나의 꿈’에 끌어들여야 한다. 또 예측할 수 없는 꿈속의 상황에 따라 적당히 대처하기 위해 내가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이며 나의 꿈속 세계의 공간이 어떻게 이뤄져 있는가를 미리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유능한 ‘꿈 설계자’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그 세계가 꿈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신은 그 꿈의 세계를 잘 알 수 있도록 치밀하고도 교묘하게 설계해야 한다. 게다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꾸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꿈이 한 단계 깊어질수록 작업 시간은 열 배 이상씩 길어지기 때문이다. 열 시간 정도의 비행 시간 안에 상대방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으려면 적어도 삼 단계의 꿈을 꾸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10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상대방을 꿈속으로 ‘납치’했지만 한 가지 예측하지 못한 것이 상대방 역시 이런 일을 대비하여 방어 체제를 구축해 놓은 것이다. 꿈 속에서 서로가 자신의 꿈으로 상대방을 끌어들이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이 바람에 모든 일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심각한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꿈의 단계를 하나 더 높이는 것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5단계의 꿈까지 이르게 된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는 크레타 미노스 왕의 궁전에 있는 라비린토스라는 깊은 미로에 들어가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을 죽인다. 이때 미궁을 벗어날 수 있도록 실타래를 주어 테세우스를 도와 준 것은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다.
  꿈은 우리의 잠재의식이 만들어내는 세계다. 그리고 이 세계는 라비린토스보다 더 깊고도 난해한 미로다. 그리고 그 미로 속에는 미노타우로스에 맞먹는 무서운 괴물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의 꿈속에는 자신의 실수로 죽게 된 아내 ‘멜’이 도사리고 있어 고비 때마다 코브를 방해한다. ‘멜(Mel)’은 아마도 ‘검은색’을 뜻하는 그리스어 ‘멜라니(melane)’의 줄인 말인 것 같다. 그녀는 코브 꿈속의 미노타우로스다. 코브를 구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리아드네’다. 그녀는 코브로 하여금 ‘멜’에 대한 죄책감을 벗어나게 도와 주고 끝내 ‘인셉션’을 성공하도록 해 주는 실타래를 건넨다. 신화를 이토록 변형시킨 재주와 상상력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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