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화 아직은 살아있다.
대학문화 아직은 살아있다.
  • 문화 평론가 권경우
  • 승인 2003.11.2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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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

 1990년대 중반 '대학문화는 죽었는가?'라는 논의가 한창이었다. 어떤 이는 '이미' 죽었다고 사망 선고를 내리는가 하면, 어떤 이는 특정한 의미의 대학문화가 죽었을 뿐이고 대학문화는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참고로 필자는 후자의 입장에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대학문화는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대학문화를 말할 때 많은 이들은 '대학문화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뒤를 따르는 질문은, '그렇다면 대학문화는 무엇인가'이다. 결국 논의의 끝은 대학문화가 침체되는 원인을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리면서 자조 섞인 비관주의로 빠지게 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이것이 대학문화이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다시 말해 대학문화는 끊임없이 구성되고 생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소위 '선배들'이 규정하는 대학문화는 모두 틀렸다. 그것은 그들의 대학문화일 뿐이고, 지금은 우리들의 대학문화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문화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 대학문화를 고민하는 출발점이다.
 대학문화는 더 이상 대학(생)의 문화가 아니다. 이미 대학문화는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섰고, 대중문화와 고급·하위문화 등과 뒤섞여 있다. 대학문화의 큰 영역을 담당했던 학생운동 진영은 이미 수적으로 보면 소수집단으로 전락했다. 많은 대학에서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학생회가 등장하고 있으며, '대학문화'라고 할 수 있는 특정한 흐름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뒤섞임은 새로운 감각으로 새로운 생산물을 낳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학문화의 고정된 정체성과는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학문화와 대중문화, 고급문화와 하위문화, 주류문화와 비주류문화, 운동권과 비운동권 등등의 이분법적인 구분은 이제 더 이상 의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항대립은 항상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대상에 의해 반영되기 때문이다. 그 대립항을 깨부수고, 넘나들고, 걸치는 그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을 듣고 뮤지컬을 보는 것이 문제인가. 그것을 문제로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문제인 이유는 그 문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가 갖는 계급성에서 비롯된다. 많은 대중들이 향유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취향에 따라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지 않겠는가.
 이제 중요한 것은 대학문화의 구성과 배치의 문제이다. 문화를 삶의 총체적 양식으로 바라볼 때, 대학문화 역시 그 형태, 즉 생김새(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행사를 몇 번 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사들이 대학문화에 어떤 효과를 미치고 대학사회, 대학생들에게 어떤 자극을 주었는가를 생각할 때 뒤늦게 나타나는 진동과 같은 것이다. 더 이상 대학문화는 중심을 상정해서는 안 된다. 과거 총학생회 문화국이나 동아리연합회 등이 그 중심을 맡아 대학문화를 이끌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각각의 동아리들과 소모임, 온라인상의 커뮤니티들이 실질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총학생회 문화위원회(문화국)과 동아리연합회 등은 그것을 위한 연결고리의 역할만 하면 된다. 그 속에서 개인과 집단은 다른 방식으로 조직화될 것이고, 새로운 논의와 소통의 장을 거쳐 대안적인 프로그램들이 창출될 것이다. 그때의 모습은 과거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형태가 아니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네트워크의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이다. 일종의 '느슨한 연대'라고나 할까.
 대학문화는 항상 비판적이고 저항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 그 말은 잊자. 그런 생각 때문에 얼마나 자주 다양성과 차이는 무시되고, 개인의 욕망과 감수성이 거세당해 왔던가. 대학문화의 위기나 죽음을 말하곤 한다. 그런 말은 하나마나다. 이제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삶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커리큘럼 등 학습권의 문제, 주차장으로 변해버린 대학공간의 문제, 다양한 문화활동의 보장과 지원의 문제 등등. 이때 문화정치적 관점은 포기할 수 없는, 어쩌면 점점 중요할 수 있는 유효한 입장이다. 이제 대학이 갖고 있는 공간적·세대적 네트워크라는 나름의 장점을 살려서 대학사회를 자율적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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