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미래산업의 성장동력
예술경영, 미래산업의 성장동력
  • 정달영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공연예술학과 교수
  • 승인 2010.09.04 16: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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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 그 시작점은?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면서 국내 뮤지컬 시장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다. 특히, 100억 원대의 제작비를 들여 대극장에서 6개월간 장기 상연하면서, ‘역대 최대’와 ‘국내 최초’라는 영예를 얻게 됐다. 연이어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가 국내 최초로 전용극장을 마련하여 공연하고, 미국 뉴욕의 맨하튼에서 18개월간 장기 상연함으로써 대중의 관심은 뮤지컬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공연 장르로 확장됐다. 이러한 관심은 취미로 공연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업의 대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대학의 예술경영 관련 전공과 학과에 대한 뜨거운 관심으로 이어지게 됐다.
예술경영 관련 학과는 세계 최초로 1966년에 미국의 예일대학교에서 개설되었고, 이듬해 영국의 시티대학교, 1969년 캐나다의 요크대학교에서 각기 설립됐다. 국내에서는 예일대학교보다 23년이 뒤진 1989년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에 예술경영전공이 개설된 것이 시초다. 이들 국가 외에도 러시아,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관련학과가 생겼으며 점차 확산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40여 개 이상의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학위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KAIST, 경희대, 동국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 홍익대 등을 포함한 약 30여 개의 대학에 관련학과가 있다.

엇갈린 모순 속에서의 탄생
예술경영이란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과 같이 예술과 경영이란 서로 모순된 단어들의 합성어이다. 예술이 생산자(예술가)의 심미안의 가치와 주관적 만족에 치우친다면, 경영은 생산자의 효율성의 가치와 구매자(관객)의 객관적 만족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된 단어들의 조합인 예술경영(학)이란 무슨 의미일까?「예술경영」의 저자 용호성은 “예술경영은 경영의 기본 원리를 예술창작과정이나 예술단체 운영에 도입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성공적인 목표 달성을 실현하도록 유도하는 학문이다”라고 정의했다. 최근 기업에서 ‘문화경영’을 화두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예술의 창의성이나 감수성을 받아들여 회사 운영에 적용시키려는 의도로써, 경영학에서 발전한 여러 이론체계와 기법들을 예술현장에 적용하는 예술경영과는 반대의 개념이다.

성공지름길로 향하는 예술경영
초기에 예술경영은 미술, 연극, 무용, 음악 등의 비영리 예술기관 운영에 국한되었지만 비영리 예술분야에서도 성공 사례가 나타나면서 영역이 영리 기관으로 확대되었다. 예를 들면, 일본 공연예술업체 쇼치쿠가 전통극인 가부키를 세계화시켜 광범위한 계층에서 열성 팬을 확보해 흥행 비즈니스로서 전성기를 구가시키고 있다. 또한 침체일로에 있던 기존 서커스에 동물 묘기를 없애고 라이브 음악과 현대무용식의 안무를 선보이는 등 예술성을 가미한 ‘아트 서커스’를 최초로 선보인 ‘태양의 서커스단(Cirque du Soleil)’의 CEO 랄리베르테는 포브스 선정 세계 500대 갑부에 꼽히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마당놀이>의 흥행과 100만 관객을 돌파한 뮤지컬 <명성황후>, 상설 공연 중인 연극 <라이어> 등 수많은 성공사례가 등장했다.
 매년 공연장·박물관·미술관 등의 문화예술공간이 전국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예술경영 전문 인력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영화, 애니메이션, 온라인 게임 등 문화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각 산업별 창작자(개발자 또는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관을 경영할 전문 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증대되면서 예술경영의 영역은 이들 영역으로까지 확대됐다. 2006년 기준 전 세계 문화콘텐츠산업(Global Entertainment & Media Industry) 시장은 총 1조 3천억 달러로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 2천 5백억 달러의 5배 이상의 규모다.

영국은 기술혁신 둔화, 실업률 상승 등의 악순환으로 1970년대 ‘IMF 구제금융’을 받았다. 이를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수상이 극복하였으나 성장에는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를 1990년대 중반 토니 블레어 수상이 창조산업(Creative industry) 분야를 집중 육성하여 성장을 이끌어냈다. 우리도 영국과 같이 19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2000년대 이를 극복하였으나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우리도 영국과 같이 창조산업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창조를 핵심축으로 하는 소프트화 경제가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으로 삼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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