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여성의 얼굴을 가려 지위를 가리다, 장옷
[페미니즘] 여성의 얼굴을 가려 지위를 가리다, 장옷
  • 이민정 기자
  • 승인 2010.09.0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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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후반기를 배경으로 삼은 사극을 보고 있으면 흔히 저잣거리를 총총 걸어가는 양반집 처녀가 몸종을 데리고 가는 장면이 눈에 보인다. ‘연’이나 ‘영채’같이 고운 이름을 가졌을 아씨들이 주변을 기웃거릴 때, 단아하다는 느낌 말고도 복장에서 눈에 띄는 점이 없었나? 요즘은 사극에서도 고증을 생략한 부분이 많으니 모르긴 해도, 십중팔구 처녀가 빗어 넘긴 머리채는 장옷에 꼭꼭 싸매어져 있을 것이다. 이마와 얼굴만 간신히 내놓은 장옷차림은 얼핏 움직이지 못하게 싸매놓은 것처럼, 억압된 이미지를 ‘단정하다’는 수식어 안에 감춰둔 듯이 보인다. 
장옷. ‘장의’라고도 하고, 우리말로 ‘쓰개치마’라고도 불리는 이 의복은 조선 중·후반기에 여성한복의 대표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옷가지 중 하나였다. 장옷의 기본적인 정의는 ‘조선시대에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내외용(內外用)으로 머리부터 내려쓴 옷’이다. 반상의 구분 없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부녀자들이라면 하나쯤은 지니고 있어야, 집안 교육 제대로 받은 정숙한 처녀로 대접받을 수 있는 소위 ‘필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내외용’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남녀가 유별하다는 기본적인 유교적 성차별적 사고에 그 기반을 둔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이 모양새의 옷이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성차별을 상징했던 것은 아니다. 본디 장옷의 원래 쓰임은 두루마기와 같이 단순한 겉옷으로, 남자복식임에도 사실상 남녀공용처럼 사용되던 것이다. 그러나 세조대 양성지가 올린 상소에 “대개 의복이란 남녀 귀천의 구별이 있는 법이어서 하민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란 요지의 글이 적혀왔다. 이후에 도포 등과 함께 단순히 남자들의 겉옷으로 사용되던 장옷이 언제부턴가 여성들의 쓰개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물론 이슬람 문화권에서 여성들에게 히잡(hijab)을 쓰게 하는 일을 타 문화권에서 성차별적 시각으로 본대도, 자국인들은 여성보호로 해석하는 것처럼 시대와 문화에 따라 해석의 여지는 넓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예사로 듣고 살았던 여성들의 지위가 조선사회에서 높았다고는 말하기 힘들지 않을까. 허난설헌, 황진이와 같은 걸출한 여인들이 갑갑한 장옷 속에 갇혀, 마땅히 누려야 할 사회적 명성을 찾지 못하고 시대 속으로 묻히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 여인들은 얼굴을 가리 듯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마저도 장옷에 가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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