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우리를 구원해주오
사랑, 우리를 구원해주오
  • 유재원(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과 교수)
  • 승인 2010.09.18 18: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첨밀밀>, 1986년 3월 1일,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시작해 1995년 5월 8일 뉴욕의 차이나 타운에서 끝난다. 소군(여명 분)과 이요(장만옥 분)는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온 중국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다. 시골 젊은이들이 돈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도시 홍콩에 와서 겪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꽤 익숙하다. 한 세대 전 우리들 어머니, 아버지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시골은 데메테르와 아르테미스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 순박하고 평화로운 땅의 젊은이들은 가난이 싫고 또 자신의 큰 야망을 이루기 위해 대도시로 나가고 싶어한다. 대도시에는 무한한 부(富)가 있고, 기회도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부와 재화를 다스리는 신은 죽음의 신 하데스다. 하데스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부’를 뜻하는 플루토스다. 금, 은을 비롯한 모든 광물은 물론 곡물의 씨앗을 싹 틔우는 생명의 비밀도 모두 땅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과연 온갖 추한 욕망이 넘쳐나고,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대도시는 죽음의 영역이기도 하다.
   또 온갖 속임수와 거짓이 판치는 대도시는 상업과 사기, 도둑의 신 헤르메스의 영역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는 사악함과 약삭빠름이 오히려 미덕으로 여겨진다. 헤르메스는 죽은 망령들을 지하로 인도하는 저승 사자이기도 하다. 천상과 지상의 연결자인 전령의 신인 그가 지하 세계의 연결자이기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헤르메스가 하데스와 함께 죽어가는 도시 홍콩을 지배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억척스럽고 영악한 이요와 착하고 소극적인 소군은 열심히 일하지만 상황은 별로 좋아지지 않는다. 피곤한 삶 속에 놓인 두 젊은이들을 구원해 준 것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외롭고 의지할 데 없던 두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지고 끝내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에 장사에 실패하고 주가까지 폭락하여 빚을 지게 된 이요는 부담을 느끼고 소군과 헤어진다.
   3년 뒤, 둘이 다시 만나 사랑을 확인하고 재결합하기로 결심한 날, 새 애인인 암흑가 두목에게 이별을 고하려던 이요는 그가 궁지에 몰린 것을 보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하고 함께 홍콩을 떠난다. 소군 역시 부인과 사이를 정리한 뒤 불안한 홍콩을 떠나 뉴욕으로 간다. 그리고 중국의 전설적인 인기 가수 등려군이 죽은 날 극적으로 전파상 앞에서 해후한다. 그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진다. 한 번의 가슴 아픈 이별을 통해 이들은 사랑만이 이 험하고 삭막한 현대의 삶에서 유일한 위안이자 구원임을 잘 알고 있었다. 삭막한 세상에서 달콤한(‘첨밀밀’의 뜻) 사랑만이 우리의 구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