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는 짝퉁이다
<트로이>는 짝퉁이다
  • 유재원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저자
  • 승인 2010.10.09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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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역사는 트로이 전쟁에서 시작된다. 서양의 모든 나라는 자신들의 역사 첫머리에 그리스 역사를 놓는다. 같은 동아시아에 속하는 우리나라와 중국이 역사의 첫머리를 각각 고조선과 하상주로 장식한 것과는 사뭇 다른 역사관이다. 사실 유럽 각국은 서기 9세기까지 자신들의 역사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로마 역사를 자신들의 고대사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역사가 트로이아 전쟁에서 시작한다고 믿었다. 따라서 서양 모든 나라의 역사는 트로이아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역사관은 유럽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유럽인들이 이민하여 세운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트로이아 전쟁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 서양 사람들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 트로이아 전쟁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서양 문학의 효시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다. 제목이 ‘트로이’인 이상 관객들은 당연히 이 영화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상당히 충실한 내용을 반영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영화는 원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우선 테살리아 지방에서 그리스의 두 왕국이 국운을 걸고 대규모 전쟁을 벌인다는 전제부터가 억지다. 게다가 아킬레우스가 상대방 거인 전사를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죽이는 장면은 다윗이 골리아스를 죽이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건 그리스 신화가 아니라 유대 신화다.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아폴론 신전을 점령하는 장면에서는 1950년대의 미국 영화 <지옥의 전선>의 명장면의 복사판이다.
트로이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천수를 누린 유일한 영웅 메넬라오스가 신들이 주관하기에 신성하기 그지없는 파리스와의 결투에 무례하게 끼어든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하는가 하면, 그의 형인 아가멤논은 폴리크세네를 겁탈하려다가 오히려 그녀의 칼을 맞고 죽는다. 신화에서는 그가 자신의 궁전 목욕탕에서 자신의 부인의 손에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파리스가 헬레네의 손을 잡고 궁전의 비밀 통로로 탈출하는 장면에 이르러 할리우드의 ‘신화 비틀기’는 절정에 이른다. 신화에 의하면 파리스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화살에 맞아 죽고 헬레네는 원래의 남편 메넬라오스와 다시 합쳐서 행복한(?) 여생을 보낸다. 그런 두 남녀가 1970년대의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처럼 사이좋게 손에 손을 잡고 탈출하는 장면을 낯 두껍게 버젓이 보여 주는 제작자의 속내는 무엇일까? 또 구태여 <트로이>란 이름을 써 가며 ‘짝퉁’ 신화를 만드는 의도는 무엇일까? 미국은 더 이상 신화를 존중하지 않음을 만천하에 공표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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