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학술문예상 논문 가작 당선작> 판소리의 개괄적 이해와 현대적 변용
<제36회 학술문예상 논문 가작 당선작> 판소리의 개괄적 이해와 현대적 변용
  • 문아름(국어국문 06)
  • 승인 2010.11.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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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판소리의 구성

   1.1. 사설

   1.2. 광대

   1.3. 고수

   1.4. 청중

  2. 판소리의 장르적 귀속 문제

  3. 판소리의 성립과 담당층

   3.1. 형성과 전개

   3.2. 담당층

  4. 판소리의 특성

   4.1. 형식적 특성

    4.1.1. 아니리

    4.1.2. 창

    4.1.3. 너름새

   4.2. 미학적 특성

    4.2.1. 비장과 골계

    4.2.2. 부분의 독자성

    4.2.3. 말놀이

    4.2.4. 작품의 자기화

    4.2.5. 일탈성

   4.3. 내용적 특성: 판소리의 사회의식과 이면적 주제

  5. 판소리의 전승양상과 역사적 변이

   5.1. 적층문학으로서의 판소리

    5.1.1. 구전심수(口傳心授)와 판소리 유파의 형성

    5.1.2 구술성에 의한 전승원리와 더늠

   5.2.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개작

    5.2.1. 신재효 개작 사설에 나타난 두 지향

    5.2.2. 신재효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6. 현대사회의 판소리와 그 지평

   6.1. 20세기 이후 판소리의 전환

     6.1.1. 창작판소리의 등장

     6.1.2. 창극화 경향

     6.1.3. 21세기 판소리의 위기

   6.2. 판소리의 현대적 변용 방안

Ⅲ 결론을 대신하여: 판소리의 문학사적 의의와 나아갈 방향

Ⅰ 서론

 판소리는 무엇인가?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 명칭의 어의를 알아야 한다. ‘판소리’란 말은 ‘판+소리’의 복합명사라 할 수 있다.

 판소리의 ‘소리’는 성악을 일컬을 때 쓴 ‘노래’라는 말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 전통 음악에 있어서도 가곡, 가사, 시조 등 대부분 시가장르들은 ‘노래’라고 일컫는 반면, ‘판소리’만큼은 ‘소리’라고 한정해 부르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사고의 반영이라 본다면 이것은 판소리의 ‘노래’부분이 지향하는 바, 판소리의 ‘노래’에 요구되는 바가 문학사의 다른 장르들과는 구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이는 서사와 제시형식의 결합이라고 하는 판소리의 장르적 특수성으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인 노래 장르들이 정서적인 부분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노래의 기능을 집중시킨다면, 판소리는 노래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라는 것은 서정적인 작품이기보다는 서사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노래를 통해 추상적인 감정이 아닌, 구체적인 서사 구조를 전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판소리의 ‘소리’는 다른 노래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실현된다.

 ‘판’이라는 것은 ‘씨름판’, ‘놀이판’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통의 특수한 행위를 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씨름판’과 같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판’에서는 판의 주체이던, 판을 구경하거나 제공받는 객체이던 ‘판’의 참여자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판에 참여한다. 또한 ‘판’은 ‘한 판’ ‘두 판’이라 할 때, 어떤 행위 처음부터 끝까지의 완결된 과정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종합해보면 판소리의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줄거리를 갖춘 서사를 연행을 위한 공동의 공간에서 즐기는 것이라 하겠다.

 그 어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판소리는 판과 노래를 필수 조건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즐기는 놀이이자 예술이다. 17세기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판소리는 18 · 19세기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조선 후기의 여러 민간 공연예술 중 예술로서의 성취는 물론 흥행에서도 가장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판소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전승되어 온 판소리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문제와 함께 지금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판소리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판소리에 대해 어떠한 큰 테마를 연구하기 보다는 그 전체적인 틀을 조망하는 것을 목표로 판소리의 성격과, 현대적 변용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판소리의 구성

1.1. 사설

 판소리의 주요 인물은 고귀한 신분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데 이들이 접촉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있는 평범한 필부필부이다. 그들은 현실에 부딪쳐 그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다만 그것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판소리 사설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서민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할 수 있다.

 그리고 판소리는 한 연창자에 의하여 실현되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청중들은 다른 연창자의 사설과 똑같은 것을 들었을 때는 그 흥미를 잃게 된다. 다른 요소의 삽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청중의 요구는 연창자인 광대에게도 대게 승인이 되었다. 청중이 판소리를 완성시키는 요소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청중과 연창자의 판소리에 대한 시각을 통해 우리는 사설에 나타나는 사건이다 그 부분이 얼마든지 굴절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많은 이본이 나타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1)

 판소리 사설의 이러한 청중들의 요구에 따른 융통성과 유동성은 이본들 간 뿐 아니라 동일 사설 내에서도 일어난다. 양반이 선호할만한 유식한 문자와 하층민의 상스러운 말이 어느 판소리에서든지 전편에 걸쳐서 대조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는 양반 좌상객과 하층민들이 함께 즐겼다고 할 만하다.

 판소리 사설에는 한문으로 된 유식한 문자가 적지 않게 들어 있다. 문장체 소설보다도 일반적으로 더 유식하다. 이것은 광대가 양반 좌상객의 기호에 맞도록 사설을 수식한 결과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재효 같은 사람은 판소리를 이러한 방향으로 개작시키기도 했

다.

 그러나 유식한 문자와 상스러운 말의 대조에 있어, 더욱 강하게 인상을 주는 것은 상스러운 말이다. 유식한 문자를 상스럽게 희롱해서 뒤집어엎는 것이 계속 보이는 수법이다. 유식한 문자는 설명에서나 온전한 뜻을 가지고, 설명이 아닌 장면의 묘사나 등장인물의 말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유식한 문자인 것도 자세히 들으면 아주 딴 뜻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예사이다. 따라서 양반 좌상객을 의식했다고는 하나, 판소리가 지닌 본질적 의미의 서민성은 훼손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2)

 또한 판소리 사설의 사건은 첨예화되고, 과장된 것이 대부분이다. 비극적 상황이 있을 때는 그 전개와 관계없이 비극적인 요소를 모두 끌어들이지만 행복에 이르러서는 그 행복감을 저해할 수 있는 요소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이를 판소리 사설에 나타난 장면의 극대화 현상이라 하는데, 심봉사의 부인이 죽은 뒤에 움직이지 않았던 상여가 심봉사의 위로를 받자마자 움직이는 장면이나 흥보의 아들이 많아지고 적어지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이것을 판소리 사설의 비논리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평면적인 인식에 머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판소리 사설은 심리 현상에까지를 포함하는 인간 환경이 평면 속에 점철된 것이다. 입체적 현상을 평면에 고정시킨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평면의 이론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가. 만약 평면적인 이론에 부합하는 사설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이론적인 것이다.3)


1.2. 광대

 판소리는 연창자를 통하여 그가 구성하는 허구의 세계를 청중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다. 청중의 요구를 파악하여 작품에 반영하거나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작품을 개작하는 주체는 따라서 연창자, 즉 광대라고 할 수 있다. 고수나 대본, 청중, 무대는 판소리의 구성요소이기는 해도 판소리의 주체로서의 자격을 갖지는 못한다. 연창자는 같은 구성의 요소이면서 다른 요소들의 상위에 놓여, 그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소리판의 세계에 존재하는 행위자로서의 광대는 행위를 담당하는 배우, 사건의 서술 담당자, 그리고 소리판을 이끌어가는 연출가의 역할을 동시에 갖는 존재이기 때문이다.4) 

 판소리 광대는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어법’으로써 작품의 전개, 판의 분위기와 흐름을 조정해 나간다는 점에서 설화나 강담의 구연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公演力을 확보한다. 판소리 광대는 세계에 대해 주관적으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인식을 자신의 관점을 통해 형상화 할 수 있고, 그것을 청자와의 관계 속에 풀어낼 수 있는 계기와 장치들을 마련해 두었다. 이는 바로 판소리의 ‘獨演性’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독연성’은 판소리 자체의 독특한 語法을 생성한다고 할 수 있다.5)


【진양】㉠박석치 올라서서 좌우 산천을 ⓐ둘러보니, 산도 옛보든 산이요, 물도 옛보든 녹수로구나. 대방국으 놀든 데가 물향물색이 더욱 좋다. ㉡전도 유랑금우래 현도관이 여기련만, 하향도리 좋은 구경, 반악이 두 번 왔네. ⓑ광한루야 잘 있으며 오작교도 무사트냐? 광한루 높은 난간 풍월 짓든 곳이로구나. 화림으 저 건네는 추천 미색이 어데를 갔느냐? 나삼을 부여잡고 누수 작별이 몇 해나 되며, 영주각으 섰난 데는 불개청음허여 있고, 춤추는 호접들은 가는 봄빛을 애끼난 듯, 벗 부르는 저 꾀꼬리는 객으로 수심을 자어낸다. ㉢황혼을 승시허여 춘향 문전을 당도허니, 행랑은 찌그러지고 몸채만 남었는듸, 대문은 ⓒ내 손으로 써붙인 부역서, 충성 충자를 붙였더니 가운데 중자는 바람에 떨어지고 마음 심자만 뚜렷이 남었구나.

【아니리】㉣어사또 문전에 은신하야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니.  (조상현 창 <춘향가>6))


 인용한 부분은 이몽룡이 어사가 되어 박석티를 넘어 춘향의 집으로 향하는 대목이다. ㉠은 서술자에 의해 진술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에 이르러서 보면 ⓑ 때문에 언술 주체를 어사또로 인정해도 될 듯하다. 그렇다면 ㉠의 밑줄 친 ⓐ의 주체 역시 어사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서술자가 인물의 입장에서 진술한 것으로 본다면 전체 진술의 주체를 서술자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7)

 문제는 ㉢에 이르러 ⓒ에서 ‘내’라는 소유격이 사용되면서 진술 주체의 목소리가 어사또의 목소리로 분명하게 감지되는 데 있다. 그렇다면 ㉠에서 ㉢까지를 모두 따옴표로 묶어 인물의 목소리로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의 바로 앞부분은 “니 운봉 영장 전 올리고 다녀오너라. 방자를 보낸 후에”는 서술자의 목소리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서술의 주체가 불분명하게 되면서 인물과 서술자의 시점과 목소리가 상호 침투되는 현상은 판소리 어법의 고유한 특성으로 지목될 수 있다.8)

 이렇게 서술 주체가 불명확한 것으로 느껴지는 것, 즉 ‘중개 서술자 발화’와 ‘인물 발화’의 층위를 가리지 않고 화법의 상호 침투가 가능하다는 것은 판소리만의 독특한 진술 방식에 의한 것이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自己化’된 언어로 발화하는 판소리 광대의 특이한 연행 조건 때문에 가능한데, 인물을 내세워 인물의 자격으로 발화하는 상황에서도 중개 서술자의 목소리를 침투시켜 마치 서술자처럼 서술을 진행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사 양식에서 서술자가 길게 서술하거나 인물이 길게 발화하면 지루함을 주기 쉽다. 판소리는 이러한 점을 ‘대용 서술’로 극복한다고 생각된다.9)

 이와 같이 광대 한 사람이 모든 등장인물의 역할은 물론, 장면 전환과 배경 설명 등 서술자의 역할까지 맡아야 하는 판소리 연행의 독연성으로 인해 소리판에서의 광대의 능력은 소리판 전체의 질적 사활을 좌우한다 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는 연창자에게 요구되는 사항을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광대라 하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 지차 득음이요 그 지차 너름새

 여기에서 인물은 연창자가 되기 전부터 구비되어야 하는 천부적, 기본적 여건으로 이는 오늘날의 외모 판단 기준과 같은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의 교훈적 주제에 걸맞는 엄정한 용모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판소리가 놀이의 자기 망각적 차원에서 예술적 자기 성취의 차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요구된 유교적 덕목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10)

 한편, 기존의 소리 대본을 바디로 삼아 판을 짜는 광대의 역할을 고려해볼 때 나머지 요소, 즉 사설치레, 득음, 너름새는 모두 기존의 사설을 그 내용에 맞게 구현해내려는 광대의 능력과 관련이 있다 할 수 있겠다. 이는 판소리의 형식 부분을 이루는 요소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판소리의 형식적 특성을 다루는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1.3. 고수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광대 한 사람의 독연 무대이기는 하나 보조적 역할을 하는 요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보조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고수이다. 하지만 보조적이라 해서 고수의 역할이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고수 이명창’이라는 말이 생겼을 정도로 고수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수의 역할이 광대에 비해 보조적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은, 고수의 역할은 광대의 그것과 중첩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수 역시 광대와 함께 판소리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는 하나, 그 성격은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고수는 ① 반주자로서의 구실 ② 지휘자로서의 구실③ 상대역의 구실 ④ 효과나 조명을 대신하는 구실 ⑤ 청중을 대변하는 구실 등의 역할11) 을 도맡아 해야 한다. 고수는 소리판에서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되고 시선은 꼭 창자의 입이나 눈을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 이는 고수가 창자가 요구하는 여러 역할들을 순발력 있게 해내야 하며, 고수와 창자의 호흡이 반드시 맞아야함을 의미한다.

 고수가 청중을 대변하는 구실을 한다는 것은 고수 자신도 청중의 일인임을 의미한다. 고수는 창자의 극 내용에 대한 반응으로 추임새로 한다. 즉 고수는 청중의 추임새를 받아서 대변해 주기도 하고, 청중의 추임새를 유도하기도 하기도 하여 창자와 청중 사이에서 이들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추임새를 하는 것이다.12) 청중 역시 창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고수를 매개하지 않고 직접 능동적으로 추임새를 하나, 청중과 창자 사이에서의 고수의 역할 역시 간과되어서는 안 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추임새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어서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추임새는 ‘추다’, ‘추어주다’는 말의 매김꼴과 ‘새’라는 불완전 명사의 합성어13)로 “으이 · 얼씨구 · 좋다 · 좋지 · 잘 한다 · 허이 · 그렇지 · 아먼 · 얼수 · 어디”등과 같은 말들을 적절한 순간에 소리 질러 광대의 흥을 돋구고 청중의 분위기나 감흥을 작극하여 소리판을 어울리게 하는 구실을 한다. 광대의 소리가 음악적인 특성이나 극적인 내용에 따라서 강약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이 강약의 변화에 따라 추임새도 자연히 강약과 고저의 변화가 있어야한다. 그밖에 광대의 소리에 휴지가 있을 때에는 추임새로써 그 공간을 메꾸어 주어야 하고, 때로는 소리의 심각성을 살리기 위하여 북 장단을 생략하고 추임새로써 타고(打鼓)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광대가 소리를 맛있게 만들기 위하여 한참 동안을 지수고 있을 때에는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유도하는 추임새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구실을 할지라도 추임새를 할 수 있는 자리는 대체로 ‘맺는’ 마디에서 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고 하겠다.14)

 한편, 추임새는 본래 연창자의 흥을 돋구어 준다는 의미에서 ‘보비유’라고 하였는데, 연창 행위에 대한 반응으로 이를 확대할 때, 그것은 감탄사나 흥겨움 뿐만 아니라 비판의 소리까지도 이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연창 행위에 대한 불만으로 북머리를 침으로써 주위를 환기시키는 고수의 행위가 이에 속할 것이다. 연창자의 소리에 대한 이해와 함께 비판까지도 이에 포함된다고 할 때, 추임새는 깊은 인식과 성실한 위에서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예술화를 위한 노력의 결과가 아닌 눈요기나 귀가림 정도의 행위에 비위를 맞추는 식의 것은 추임새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것이다.15)

 

1.4. 청중

 청중은 무대를 구성하며, 광대와 고수가 이루어 내는 예술 행위를 감상한다. 광대는 자신의 예술을 감상하려는 의도적 집압체 앞에서 자신의 예술을 실현한다. 청중이 일정한 의도를 지니고 공연장에 집결된다는 점에서 이는 무의도적인 군중과 구별된다. 그들은 바로 공연의 주체와 객체라는 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는 연창자의 연창 능력과 함께 청중의 판소리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하다. 청중은 판소리의 예술화에 대한 인식의 준비를 갖추었거나, 최소한 그 행위에 대한 심정적 동의의 상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16) 

 판소리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청중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판소리 텍스트가 지닌 심미성은 그 자체만으로 발현되지 않는다. 그 심미성은 텍스트의 구조와 수용의 구조가 얽혀 짜이는 수용 과정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그 수용 과정이 판소리에서는 청중이 있는 연행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청중은 이와 같이 판소리가 연행되는 소리판에서 광대와 고수와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 그 위치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하지만, 추임새라는 소리판의 현상에 의하여 그 역할이 더욱 중요시된다. 청중의 추임새는 광대의 소리와 고수의 북장단과 함께 퍼포먼스 되는 판소리 그 자체의 ‘실제적 부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구비전승예술이자 연행예술인 판소리가 계승 · 발전되어 나갈 수 있는 창조적 원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17)

 청중은 추임새를 사용하여 창자에게 대응하여 창자의 창이나 고수의 북장단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어 재현 현상감을 생생하게 드높인다. 또한 창자와 고수만으로 유지된다고 생각된 재현마당은 감상자의 후원 없이는 재현작업, 즉 연창을 계속할 수 없다. 청중은 소리판에서 감상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소리판과 소리판 사이에서 창자와 고수에게 비평가의 구실을 해내려 함으로써 판소리의 개방성의 한 요인이 된다. 판소리는 재현될 때마다 달라질 수 있으며, 이러한 가변성은 창자와 감상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18)

 판소리는 하나의 공연예술로서 전승되어 온 것이므로, 그 올바른 존재양식은 오직 현장에서 행하는 공연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으며 전승의 현장적인 행위가 있을 뿐이다. 판소리의 현장에서는 현대의 예술에서 매우 중시되는 수용자, 즉 청중이 참여해서 상호작용함으로서 그 의미가 발생한다. 이것을 기준으로 해야 비로소 올바른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19) 판소리는 ‘판의 예술’로서 ‘판, 소리판’에서 ‘연행’될 때, 그 참된 예술성이 드러날 수 있고 그것은 곧 광대와 고수, 청중의 상호작용에 의한 ‘소통’의 과정을 통하여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추임새를 소리판의 예술적 현상으로 볼 때, 현상이라고 하는 것 자체의 본질적 고찰을 통하여 그 예술성을 파악해야 한다.20) 판소리를 해석하는 데 있어 청중과 청중의 추임새라고 하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이는 ‘연행되지 않은 사설 텍스트’라고 하는 판소리의 외피만을 읽은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 예술적 심미성과 본질의 규명과는 멀어지게 된다. 

 이러한 청중의 추임새는 판의 실현에 있어, 상이한 듯 보이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것이 바로 ① 소리의 개인화 현상 과 ② 공동체의 집단즉흥의 현상 이라고 하는 두 가지 본질21)이다.

 소리는 광대에 의해 연행되고 이것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청중에게 주어진 언어는 청중 개개인의 의식과 상호작용하여 수용되게 된다. 이 수용과정에서 청중이 판소리의 감각적이고 오락적인 측면의 외피적인 부분이 아니라 이면적인 것, 진지한 의미, 심연에 놓여있는 것을 지향하고 그것에 도달할 때 추임새는 나타난다. 즉 청중 개인의 진정한 자기이해의 결과로 추임새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렇게 광대의 소리에 대한 청중의 이해행위는 청중 개개인의 내면 안에서 개인적으로 수행되는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이라는 의미에서 집단성을 띠기도 한다. 이는 판소리가 우리 민족의 기본적인 태도나 정서, 가치관, 세계관 등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민족예술이라는 점과, 개인은 결국 사회를 떠날 수 없는 현실적 존재라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청중은 자신의 터전이 되는 사회적 · 문화적 배경과 어쩔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이 현실을 뛰어넘어 존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은 <심청가> 중에서 진의 <심봉사 통곡>22) 대목이다.

 심봉사 기절허여 떴다 절컥 주저않으며, 들었던 약 그릇을 방바닥에다 미다치며, 허허 약지으러 갔다 오니 그새에 죽었네. 약능활인(藥能活人)이요 병불능살인(病不能殺人)이라더니 약이 도리어 원수로다. 죽은 줄 알았으면 약 지러도 가지 말고 염불이나 하여 줄 걸. 절통하고 분하여라. 가삼 쾅쾅 두다리며 목제비질을 덜컥, 내리딩굴 칭둥글며 아이고 마누라, 꽃도 졌다 다시 피고 해도 졌다 돋건마는, 마누라는 한번 가면 어느 년 어느 때 어느 시절에 다시 오려나. 마누라 목을 덜컥 안고 낯을 대고 문지르며, 재담으로 이러나, 농담으로 이러나. 내 신세를 어쩌라고 이 죽음이 웬 일이여.


 죽은 아내의 주검을 붙들고 애통하는 심봉사의 아픔은 청중 개개인의 의식작용을 통해 각자 다른 전혀 새로운 체험으로 수용된다. 그리고 그러면서 동시에 청중이라고 하는 수용자 집단에게 ‘한국 사회 내의 사별’이라고 하는 공통적인 정서를 불러일으켜 연행현장의 일체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분명히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정사작용의 결과로 빚어진 사실임에도, 추임새의 물결은 모든 청중들을 어느 한 순간 집합된 공동의식 속에 얽혀들게 하면서 하나의 행위, 하나의 양식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면, 한국적 정서상황이 아니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순간의 관련 속에 묶이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청중은 ‘이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개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23) 

  

2. 판소리의 장르적 귀속 문제

 판소리는 다른 문학장르와는 판이한 문학적, 음악적, 연극적 요소의 혼합이라는 양식상의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 장르도 분명하지 않아 국문학의 전 체계에서 그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는 판소리가 그 장르실현에 있어서 언어가 아닌 다른 방식, 즉 ‘연창’이라고 하는 ‘제시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제시형식은 ‘순수한 언어 이외의 장르의 실현화 방식’으로 판소리는 제시형식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서사 장르이다. 판소리의 경우 광대의 연창이라는 제시형식이 없다면 절대로 실현화될 수 없다. 따라서 판소리의 장르 및 특징을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시형식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24)

 이렇게 제시형식을 갖는 연행 예술로서 판소리를 조망하는 접근이 이루어지면서, 판소리 연구는 문학적 측면 뿐 아니라 음악적 ․ 연극적 측면에서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접근 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판소리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으나, 한편으로는 그 본질에 대한 논란이 가중되기에 이르기도 하였다. 판소리의 본질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다.25)

 ① 판소리는 구비서사시이다.

 ② 판소리는 서사이다.

 ③ 판소리는 희곡이다.

 ④ 판소리는 음악이다.

 ⑤ 판소리는 판소리이다.

 

 이와같은 다양한 장르론이 제기된 것은 판소리가 지닌 장르적 성격의 다층성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판소리의 장르에 대한 규정은 조동일의 논의 이후 장르류는 ‘서사’로, 장르종은 ‘판소리’로 인정하는 것에 대체적 합의를 보게 되었다고 여겨진다.26)

 조동일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이라는 기준과 더불어 판소리가 바탕글 ․ 등장인물 ․ 장소 ․ 시제 등에서 ‘사실들의 총체’를 나타내고 있기에 희곡이나 독자적 장르류가 아니고 서사장르류에 속한다고 보았다. 희곡의 경우 본질적으로 동작의 예술이기 때문에 동작과 관계없는 바탕글과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으나, 서사는 동작보다는 사실이 중요하며, 사실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명하기 때문에 바탕글이 불가결한 것이다. 이러한 설명을 모두 생략해버리면 서사일 수 없거나 작품으로 성립될 수 없다. 등장인물 ․ 장소 ․ 시제에 있어서도 희곡과 다르게 군중 혹은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장소와 시제의 빈번한 교체가 일어나는 것 또한 ‘사실들의 총체’를 구현하기 위한 서사적 장치인 것이다.27)

 한편 최근 가사 장르의 속성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양식론적 특을 세우고, 국문학의 장르를 새롭게 조망한 성무경의 논의가 주목된다. 그에 의하면 서사의 서술 수준은 사건의 줄거리라는 외연적 의미를 인식하는 층위의 ‘표면 서사구조’와 행동동기들의 통합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파악하는 층위의 ‘심층 서사구조’로 인식되는데, ‘표면 서사구조’에 바탕을 둔 ‘심층 서사구조’에서 발견되는 ‘서술의 입체성’을 서사성이라 규정하고 있다. 한편 그는 ‘노래하기’와 ‘행동하기’라는 환기 방식과 언어적 진술 방식의 상관 관계를 통해 서사 장르를 규정하고 있다. 즉, ‘행동하기라는 환기 방식이 서술의 평면화를 방해하여 서술의 입체적 확장’을 이루기 때문에, ‘서술 언어의 통사적 의미를 구조적으로 응집’하는 특성이 나타나게 되고, 그 응집에서 통합되는 의미를 ‘양식으로서의 서사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28)

【중모리】춘향이 거울을 간수허고, 저 쪘던 옥지환을 바드드드득 벗겨 내겨 도련님전 올리면서, “엿소, 도련님, 지환 받으오.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빛과 같은지라.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여 보오.”  (조상현 창 <춘향가>)29)

【아니리】행수 기생이 받어들고 내려가 춘향주며, “이 지환을 자세히 보고 얼골을 들어 대상을 살피라 허시네.” 춘향이 지환을 받어들고 보니 이별시에 정표 주었던 지환이 분명허구나. (조상현 창 <춘향가>)30)

 인용한 부분은 이별시 주고 받았던 옥지환을 통해 서로를 확인함으로써 어사또와 춘향이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별할 때의 信物 교환이 일회적 사건으로 그치지 않고, 작품 말미에서 서로를 확인하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창본에도 이러한 치밀한 서술 전략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서사 구성력’에 의해 작품 전반이 統御되고 있기 때문이고, 이로 인해 판소리는 ‘서사성’을 본질로 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결국 독서물화된 완판본과 비교해 볼 때 분량의 많고 적음이나 표현의 세련된 정도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 외에는 ‘서사 구성력’에 의해 치밀하고 입체적인 구성을 보이게 되는 것은 동일하다 하겠다. 이처럼  ‘敍事性’은 판소리의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며 실질적 구속력을 행사하는 본질적 요소라 할 수 있다.31)

 조동일과 성무경의 시각은 판소리의 서사를 파악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판소리가 서사장르류에 속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다.

 한편, 장르종에 있어서는 서사 장르류에는 고전소설 외에도 설화 ․ 서사무가 ․ 서사가사 등의 장르종이 있다 할 수 있는데, 판소리는 이 가운데 어느 것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 서사무가는 판소리와 같은 구비율문이고, 위에서 든 소설과 구분되는 판소리의 특징이 대체로 서사무가에서도 발견된다 할 수 있으나, 판소리와는 다르게 신격이나 영웅적 인물을 등장시켜 초자연적 질서에 대해 노래한다는 차이로 판소리와는 쉽게 구별된다. 서사무가에도 판소리와 유사하게 일상적이고 평민적인 면도 있지만 구전과정에서 생긴 변이에 지나지 않고, 판소리에서는 그런 측면이 크게 확대되고 초자연적인 요소는 아주 축소되어 있다.32)

 위의 논의들을 종합해보면, 우리는 판소리가 서사장르류에서 독자적 위치를 가진 독립된 장르종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판소리는 서사장르류에서 판소리라는 장르종으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⑤의 ‘판소리는 판소리다’라는 주장은 판소리의 장르종을 규정함에 있어 타당하다.

3. 판소리의 성립과 담당층

3.1. 형성과 전개

 판소리에 기원에 관해서는 서사민요 기원설, 판놀음 기원설 등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본고에서는 현재까지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서사무가 기원설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호남 지방의 단골무들이 부르는 서사무가 또는 그 굿에서 유래하였으리라는 추정이다. 판소리의 음악적 장단․선율구조는 무가의 그것과 많이 닮아 있으며, 판소리 광대 대다수가 이 지방의 무가(巫家) 출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판소리의 서사 형식에서도 굿에서의 장편 무속 신화를 닮아 장편 구비서사시적 형식을 갖추고 있어 서사무가에서 판소리로의 전환은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었다. 구연 방법에 있어서는 말과 창을 교차하면서 반주자의 장단에 맞추어 서서 몸짓을 곁들여 공연한다. 이러한 공연방식은 원래 연희창의 형태였던 서사무가의 것이 청중 규모가 커지면서 제의에서의 신화적 성격에서 이탈하여 공연예술의 성격을 띄우면서 변모한 것으로 보이며, 본래는 구연자가 관중을 등지고 신위를 향하여 앉아서 자기가 치는 북장단에 맞추어 단조로운 구송조로 구연하는 구송창의 형태였을 것이라 생각된다.33) 

 그러나 서사무가와 판소리를 동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서사무가는 고대 영웅서사시의 뒤를 이은 것으로서, 무속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전승되고 창작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런데 판소리를 이러한 한계를 벗어난 일상적 서사시이며, 범속한 사람의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룬다. 무속의 세계관을 거부하고, 관념적인 전제 때문에 가리어져있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새로운 서사시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민중의식이 각성되고, 상업이 발달되면서 부유한 시민층이 성립되어 종교적이고 주술적인 예술보다는 흥미롭고 현실주의적인 예술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이유로 서사무가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낡은 예술로 지속될 때, 굿의 테두리를 벗어나 해학과 풍자를 풍부하게 지닌 판소리는 민중예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34)

 이러한 기원적 연관 위에서 성립한 판소리가 서사무가와 전혀 달리 일상적 삶의 문제를 다루는 예술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영․정조 때의 일로 추정된다.35) 이에 관하여 명확한 도움을 주는 기록은 없으나, 연대를 판가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로 1754년 충청도 목천에 살았던 선비 유진한이 장편 한시로 쓴 만화본 <춘향가>를 들 수 있다. 이는 충청도 사람인 유진한이 전라도 지역을 여행하다가 광대의 판소리를 구경하고 지은 것으로, 단순히 <춘향가>의 사설이나 노래를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그 개산(改刪)을 도모한 흔적까지 보여주고 있다. 18세기 중엽인 이 시기 판소리의 수준은 발생기의 조잡한 이야기 묶음에서 벗어나 상당히 정리된 상태에 이르고 있었으며 시정에서 널리 불리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춘향가>가 본고장을 떠나 그곳까지 알려지고 한문을 하는 선비의 관심을 끌기까지 몇 십 년은 소요되었으리라고 보면, 처음 나타난 시기는 앞서 말한 영․정조 시기, 17세기 말엽 혹은 18세기 초가 아니었을까 추정할 수 있다.36)

 19세기 초의 문헌인 송만재의 <관우희>에서 공연의 실상을 많이 파악할 수 있다. 조선건국과 함께 사대부들이 정사를 맡게 되면서 무속은 탄압당했고, 마을의 정기적인 굿을 맡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무속인들은 상업의 발달과 예능의 상품화란 분위기를 타고 무속이라는 제전적 속박을 떨쳐버리고 가곡․가사 등의 노래, 줄타기, 땅재주 따위의 곡예와 함께 소리판을 벌이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소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자 점차 직업 전문인으로서 하은담 ․ 최선달 ․ 우춘대 등과 같은 명창이 등장하게 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37)

 <관우희>에는 판소리의 열두 마당으로 다음의 작품을 들고 있다.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배비장타령>, <강릉매화타령>, <옹고집타령>, <장끼타령>, <왈자타령>, <가짜신선타령>

 이 중 <가짜신선타령>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어 『조선창극사』에서는 <숙영낭자전>으로 바꾸어 말하기도 하나, 판소리 열두 마당의 성립은 판소리 형성 초기에 이루어진 것이라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판소리가 호남의 무속음악과 결합되어 그곳에 정착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서도의 <배뱅이굿>과 같이 호남의 무속음악과 결합되지 못한 것은 스스로의 발전 변화를 거쳤기 때문에 열두 마당에 속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38)

 순조에서 고종 초엽까지인 19세기는 신재효가 <광대가>에서 전한 송흥록 ․ 모흥갑 ․ 권사인 등이 활약했고 열두 마당이 그대로 전승되다가, 그 중에 우수한 작품인 <춘향가>, <신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마당이 선택되었다. 신재효의 이 여섯 마당의 사설 정리는 잘못 쓰인 문자를 바로잡고 비합리적인 부분과 비속한 표현을 합리적이고 전아한 표현으로 고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이념을 중시하는 계층의 요구를 받아들여 아정과 비속, 비장과 골계의 교차에 의하여 국민적인 예술로 승화될 수 있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그 양면의 대응이 제시될 수 없는 작품이 다시 도태되었는데, 호남에 정착한 열두 마당의 판소리가 여섯 마당으로 다시 개편된 것이다.39) 개별 작품에 대해서는 본론 후반부에서 전승오가를 중심으로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겠다.

 19세기에는 중세적 신분질서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는 천민이었던 판소리 광대는 형성기에는 주로 평민층이었던 청중이 양반층으로 확대되면서 양반층의 판소리 애호에 힘입어 지위가 상승될 뿐 아니라, 판소리를 애호하는 대원군에게서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철마다 어촌, 농촌, 시장바닥을 누비며 판소리를 자랑하던 광대들이 차츰 부잣집에 초청되는 기회가 늘어 사대부의 애호를 받게 되고, 나중에는 궁중에 들어가 임금 앞에 서는 영광을 누리는 일도 있게 된 것이다. 하여 앞서 언급했던 이 시기의 명창들인 송흥록 ․ 모흥갑 ․ 권사인은 송선달 ․ 모동지 ․ 권생원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렇게 양반층 청중의 영향력이 개입하면서 이에 따라서 판소리의 내용도 양반의 기호에 맞게 다듬어졌다.40)

 처음 나타났을 때의 판소리는 <배뱅이굿>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혼자서 창을 하며 장단도 치고 장단변화가 뚜렷하지 않으며 사설도 조잡했을 것이다. 그런데 판소리 광대는 그들 자신의 음악적․문학적 능력을 키우고 청중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계속 노력한 결과 광대와 고수가 기능을 나누고, 장단을 다양하게 하고, 소재를 확대하고 사설을 가다듬어 그 내용과 표현을 더욱 풍부하고 발랄하게 했다. 그 이유는 전라도는 음악의 악조가 판소리를 키우기에 적합하고, 판소리의 내용을 다채롭게 하는 데 이용할 만한 구비전승이나 민속예술의 소재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41) 특히, 창을 엮어냄에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기보다는 전래하여 오던 설화를 근간으로 하여 그것을 다채롭게 윤색 ․ 개작하는 방향을 택하여 <수궁가>나 <흥부가>와 같이 조선 후기 사회상을 실감있게 반영하는 작품으로 성장시키기도 하였다. 한편 <적벽가>는 소설의 일부를 판소리로 개작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양반좌상객의 기호에 맞도록 점잖은 표현도 갖추고, 한시도 삽입하며, 문장체 소설도 흉내내는 등 양반문학과 상통하는 성격도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성립된 작품들은 다음 세대로 전승되면서 더늠의 형성에 의해 보다 다채로운 내용과 음악적 표현을 축적하게 되었다.42)

 또 하나의 변화는 신재효에 의해 남창의 독무대였던 판소리에 여창이 등장한 것인데, 이로 인해 남성의 성대에 적합하도록 되어 있는 판소리 음악이 여성에게도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되었으며, 사설서도 음란하거나 비속한 부분은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양반의 참여로 감소되었던 서민적 발랄성은 더욱 위축되고 이와 함께 음악적 세련화와 기교의 중시, 실내악적 분위기로의 변화가 여창의 참여에 의해 더욱 가속화되어 판소리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것이다.43) 신재효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논의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서는 판소리의 전승양상과 변이 부부분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또한 전성기에는 판소리가 음악적으로 세련되고 다채로워져 창법에서 동편과 서편이 나누어졌는데, 동편은 송흥록의 법제를 표준삼아 섬진강 동쪽에서 부른 것이고, 서편은 박유전의 법제를 표준삼아 섬진강 서쪽에서 부른 것이다. 동편제는 우람한 기풍을 자랑하는 우조로 이루어진 소리를 하고, 서편제는 비탄의 소리로 심금을 울리는 계면조로 이루어진 소리를 한다. 한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은 염계달․김성옥의 법제를 계승한 것으로 중고제라 하며, 경기도 ․ 충청도 쪽에서 많이 불렀다.

 전성기에 이루어진 일로 우리는 예술적 세련화와 이에 따르는 유파의 성립, 그리고 사설의 정리 등을 들 수 있었다.

 개화기 이후는 판소리의 쇠퇴기라 할 수 있는 시기로 송만갑 ․ 정정렬 ․ 임방울 등이 활약하던 시기이다. 이 시기, 판소리는 위축되어 확대해가던 작품의 종류가 줄어들고 연행 기회도 적어지게 된다. 서울의 극장 등에서 창극화되어 연극으로 공연되는 등 구연형태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전통적 판소리는 신파극, 연극, 영화 등의 현대 공연물에 밀려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악곡과 사설이 완전하게 전승되는 자료는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등 다섯 마당이다.44)

 판소리는 민간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상황을 복잡하게 하고 인물들 사이의 대립을 심각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작을 해서 질적 비약을 이룩했다. 또, 연습이나 개작을 위해 글로 적은 대본은 읽으면 소설과 같아, 쉽게 독서물로 정착 ․ 유통되면서 판소리계 소설이라는 독자적 유형을 형성할 수 있었다.45)

3.2. 담당층

 

 판소리는 당대 하층의 삶을 토대로 한 깊이 있는 현실 인식을 담아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향유층을 넓혀 감으로써 대중적 예술물로 자리잡아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민속 예술물이 될 수 있었다. 판소리는 애초에는 하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점차 중상층이 높은 관심을 보이게 되면서 전계층을 향유층으로 포괄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판소리는 상업적 · 유흥적 예술물로 다소 변질되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그 예술적 잠재력을 마음껏 드러냈으며 당시 시정의 문화 예술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판소리는 이미 19세기에 상 · 하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이 되었다. 특히 상 · 하층이 동일한 공간에서 같이 판소리를 향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양반집에서 판소리 연행을 하면 서민들이 몰려와 함께 그 연행을 즐기는 등의 방식으로 문화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송만재는 상 · 하층이 함께 판소리를 즐기는 감흥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기도 했다.

 시원한 정자에 높이 횃불 타오르고

소리꾼은 고수 동쪽에 마주 섰네.

소리 듣기로는 당상(堂上)보다 당하(堂下)가 더 좋으니

즐거움이야 뭇사람과 함께 한들 어떠리.46)

 시에 나오는 당상(堂上)이란 대청과 같이 건물 안을 말하는데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앉아서 판소리를 듣는 곳이고 당하(堂下)란 건물 밖 마당으로 일반 평민들이 앉아서 듣는 곳이다. 그런데 당상보다 평민들이 모여 있는 당하에 가서 그들과 함께 소리를 듣는 것이 훨씬 즐거운 예술 체험이 된다고 했으니 판소리 감상에는 신분의식을 넘어섰던 것이다.47)

 그런데 이에 중요한 역할 한 계층이 바로 중인층이었다. 그들은 비교적 풍부한 물적 기반을 토대로 하여 예술물의 향유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으며, 이 과정을 통해 문학 예술의 담당층으로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조선 후기의 문학 예술에 대해 중인층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는 그 실상을 온전히 파악해 낼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판소리의 담당층을 규명하는 일은 곧 조선 후기 중인층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대해서 규명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중인층은 판소리의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또한 적극적 향유자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하층 광대와 상층 향유자를 이어주는 중개자의 역할까지 담당하였는데, 전주 대사습 경연대회의 존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통인청 대사습, 바꾸어 말하면 출중한 명창을 선출하는 전국 판소리 경창대회 때가 되면, 각고을에서 이름난 창악인들이 몰려들었고 관아에서는 이들을 통인청에 기숙시켜 며칠 전부터 보신보양 시킨다음 대사습에 임하게 하였다.

 이방은 전라도 각지방 수령에게 초청공문을 보내고, 전주성 내의 소위 돈냥이나 가진 유지와 양민에게 통문을 돌리며, 대방을 불러서 놀이터네 가설무대를 설비케 하는 등 대사습 장소의 만반준비를 당부한다. 그날 참석하는 각고를 수령은 물론이고 성내 유지와 양민도 몇 백냥 또는 몇 십냥의 헌납금을 내놓게 되므로 이 돈으로 대사습의 일체비용에 충당하였다.48)

 전주 대사습 대회는 전주의 본부와 영문 통인 간의 대결 양상을 띠었다고 한다. 제각기 자기네 통인청에서 대사습을 벌이는데, 출현하는 광대의 기량에 따라 청중이 몰리게 되고 청중 수의 비교에 의해 승수바 판가름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부와 영문 양편에서는 서로 실력 있는 명창을 초청하려고 심한 경쟁을 벌였으며 이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통문을 돌리고 무대 설비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판소리 창자들은 여기서 인정을 받으면 판소리 명창으로서의 출세길도 보장받았다 한다. 전주 대사습 대회의 이러한 면모는 판소리 공연 및 그 예술적 유통에 이서층, 즉 중인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음을 입증해 준다.49)

 한편, 판소리에 기여한 대표적인 중인으로는 신재효를 꼽을 수 있다. 신재효는 판소리의 후원자이자 중개자였으면서 여타 향리들 이상으로 판소리에 전 생애를 걸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발견하고자 한 인물이었다. 그것은 그만큼 판소리의 예술적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었기도 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신재효가 다름 아닌 중인 신분이었다는 점에 있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신재효의 이러한 신분상의 중간자적 위치는 그의 사설 개작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와 같이 중인층의 조선 후기 민족 예술물의 소통 구조를 전반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처럼 흥행성을 갖춘 예술물의 소통 과정 전반을 장악하고자 한 것은 당시의 문화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계층적 의지의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어중간한 위치에 놓여 있었던 만큼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였고 그것을 하층의 민속 예술물에서 찾았던 것이다. 따라서 중인층의 민속 예술물에 대한 높은 관심은 상층 못지 않은 문화적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고 생각된다.50)

4. 판소리의 특성

 

4.1. 형식적 특성

 위에서도 살펴보았듯,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를 광대가 갖추어야 할 4대 법례로 거론하였다. 용모가 단정한 외모를 제외하면 이는 곧 광대가 소화해야 할 판소리의 형식적 요건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신재효가 <광대가>를 통해 역설한 사요소가 판소리에서 어떻게 특수하게 나타나는 지 그 수행하는 바를 논하고자 한다.

 4.1.1. 아니리51)

 <광대가>에 명시된 다음의 문장을 통해 신재효가 중시한 사설치레는 청중을 웃기는 골계적 성격의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사설이라 하는 것은 정금미옥 좋은 말로 분명하고 완연하게 ①색색이 금상첨화 칠보단장 미부인이 병풍 뒤에 나서는 듯 ② 삼오야 밝은 달이 구름 밖에 나오는 듯 새눈 뜨게 웃게 하기 대단히 어렵구나

 대체로 판소리는 각 마당의 사설이 가지는 사건 전개가 비장한 것이다. 춘향의 이별이나 심청의 인당수 투신 등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恨을 가진 존재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판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소리의 언어가 해학을 지향하는 까닭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 등장인물들의 언동에 의해 웃음이 끼어들어가면서 극적 분위기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재효가 말한 사설치레는 아니리로 한정하여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그가 ‘아니리광대’라고 하여 아니리를 위주로 판을 짜는 경우를 비판한 것 또한 연창 능력의 호도를 비판하는 것이지 아니리 존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판의 소리는 창과 아니리의 교체, 긴장과 이완의 교체, 비장과 골계의 교체를 통하여 인생의 총체적인 실상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아니리를 제거하고 창만으로 소리를 엮는 것은 판소리의 음악성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설치레가 아니리로 한정될 수 있는 것은 득음이라는 항목이 사설치레와 동렬에 놓인 것에서도 확인된다. 득음은 판소리의 음악적 측면, 구체적으로는 창의 측면을 지시하기 때문이다.52)

① 결합과 완충 작용

 

 서사 장르와 제시형식의 결합으로서 판소리를 본다면, 결국 그 결합은 ‘서사물’+‘演唱’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서사물’은 곧 ‘사설’에 해당하는 것이니, 이는 ‘판소리 사설의 演唱’ 또는 연창된 판소리 사설‘과 같은 의미이며, 문학의 존재 요건인 언어 층위에 놓인다. ’演唱‘은 다시 ’演‘과 ’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演唱’에서 ‘演’은 극적인 요소를 의미하고, ‘唱’은 음악적인 요소를 뜻한다고 했을 때, 서사 장르가 이러한 극적 요소(행동)나 음악적 요소(창) 등과 아무런 문제 없이 결합하기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광대가>에는 이른바 四法例(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와 더불어 목성음, 장단조, 아니리, 명창에 대한 평어 등이 서술되어 있다. 이를 앞서 말한 ‘서사물+연창’의 결합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서사물에 해당하는 것이 ‘사설’이고, 演에 해당하는 것이 ‘이물’과 ‘너름새’이며, 唱에 해당하는 것이 ‘득음’을 비롯한 음악적 요소들이라고 보면, 결국 남는 것은 ‘아니리’가 된다. 그렇다면 이 때 ‘아니리’는 나머지 요소들 사이에서 ‘매개’의 역할을 하며, 구체적으로는 연행의 전반에 걸쳐 ‘조정’의 역할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아니리가 기본적으로는 서사의 전개에 중대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인정되나, 실제 연행시의 현장성을 고려한다면 연행과 관련된 기능적 측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53)

 판소리 사설이 연창이라는 제시형식을 입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이질성을 아니리는 자연스러운 결합에 의한 다채로움으로 탈바꿈하게 한다. 연창일지라도 기본적으로 판소리는 언어를 통해 구성되고 성립되는 것이다. 산문체로 율문체로 전환되는 지점에 ‘아니리’라고 하는 언어적 완충 고리가 있는 것이다. 아니리의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판소리는 판소리를 즐기는 청중들에게, 또 우리 민족문화사에서 연행물이면서도 놀이, 놀이면서도 생활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② 실존성의 소통 공간

 

 아니리의 연행적 기능의 다른 한편에는 판소리의 서술자, 혹은 실제 광대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기능도 존재한다.

【아니리】저 제비 거동을 보아라. ㉠흥보 은혜를 갚을 제비어든 죽을 리가 있게느냐? 수일이 되야 다리가 낫어서 그 제비 날기 공부를 허는듸.  (박봉술 창 <흥보가>)54)

 밑줄 친 ㉠은 흔히 서술자의 개입, 혹은 서술자의 편집자적 논평이라고 설명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류의 개입은 판소리가 아닌 일반 문장체 소설에서도 흔히 드러나는 요소이다. 그런데, 문장체 소설의 서술자와는 달리 아니리에 드러난 서술자의 면모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인 서술자의 목소리가 아닌 실제 연창자인 광대로서의 목소리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55)

 위에서 논의했듯 광대는 선대 광대로부터 물려받아 훈련한 사설을 똑같이 그대로 암송하여 소리판에서 연행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동정해야 할 판소리 바디, 즉 타입의 제약56) 아래에서 자기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이면을 그리는 것이다. 그만큼 판소리는 그 사설의 실현에 있어 광대 즉 연창자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창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따라서 그 서술자의 개입 역시 광대를 완전히 떠나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리】…(중략)… 하로는 그물을 썩 맺아들어, 간짓대에다가 꿰갖고 들어메고는 제비를 후리러 나가는듸, ㉡이전 팔명창 선생님 중에 권삼득 씨 호걸제로 나가던가 보더라. (박봉술 창 <흥보가>)57)

【아니리】앞발을 묫 ‘산’자 뽄으로 번쩍 치켜들고 놀아 보는듸, ㉢팔 명창 선생님 중의 경기도 여주 사시던 염계달씨 추천목으로 한번 노던가 보더라.  (박봉술 창 <수궁가>)58)

 밑줄 친 ㉡과 ㉢에는 중개 화자로서의 목소리와 함께 실존하는 광대로서의 목소리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은 놀부가 제비 후리는 대목으로, 더늠 개발자인 권삼득과 실제 연창자인 박봉술의 목소리가 다시 겹쳐있다. ㉢의 경우, 내용상으로 ‘토끼’가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며, 실제 연창자 박봉수가 염계달의 추천목을 부르고 있어 세 개의 목소리가 중첩된다.59) 

③ 골계의 실현 공간

 판소리에서의 골계는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상황의 반전’에 의한 경우와 ‘재담’에 의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역전, 터무니없는 일탈, 절묘한 통사적 차단 등을 통한 골계가 상황의 반전에 해당할 것이다. 인물 간의 대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語戱, 전도된 역할 발화, 상황적 의미의 일탈적 확장 등은 ‘재담’으로 묶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들은 일차적으로 독백 발화로는 실현되기 어렵다. 상대역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목소리의 변조를 통해 인물 전환의 징표를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아니리가 조건에 알맞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일상적인 대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특히 재담의 경우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의미의 전달’이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唱化를 통해서는 이러한 효과를 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웃음을 유발하는 문맥과 상황에서 발화 당사자는 웃음을 배제한 채 내용의 정확한 전달에 충실해야만 완벽한 웃음이 터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시치미를 뚝 떼고 웃길 때 웃음의 효과가 배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서적 감응을 유도하는 唱보다는 일상적 대화에 가까운 아니리가 훨씬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60)

【 잦은몰이】…(중략)… 멸치, 준지, 갈치, 삼치, 미끈 배암장어, 좌수 자개사리, 가재, 깨고리까지 영을 듣고 어전에 입시하야 대왕에게 절을 꾸벅꾸벅 허니

【아니리】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마는 “어 내가 이런 때는 용왕이 아니라, 팔월 대목 장날 생선전의 도물주가 되얐구나. 경들 중에 어느 신하가 세상에를 나가 토끼를 잡어다가 짐의 병을 구하리요?” 좌우 제신들이 어두귀면지졸 되야 면면상고에 묵묵부답이었다.  (박봉술 창 <수궁가>)61)

 4.1.2. 창

 서양의 음악이 성경 낭독에 그 흐름의 일부를 두고 있듯이, 판소리 역시 스토리 텔러의 이야기 전달의 수단으로 출발한 듯하다. 판소리의 음악적 현상, 즉 창에 있어서의 여러 양상들이 그것을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사설 전달의 부산물이었다는 이야기는, 권삼득이나 송홍록 이전의 소리가 단조로웠다는 것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우조 선율보다, 선율의 스펙트럼이 생기는 계면을 금기시하는 풍조는, 다선율의 음악이 스토리 전달에 혼동을 일으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62)

 판소리의 사설과 음악은 따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판소리의 의미 부분을 형상화하기 위한 동일 축 위에서 공고히 결합해 하나로 작동해야 한다. 그렇게 실현되어야 판소리가 완전한 의미를 지니도록 ‘이면에 맞는’ 소리가 가능하다. 김연수가 임방울에게 “이면에 맞지 않게 소리한다”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한 말일 것이다. 이는 사설의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사설이 스토리 부분을 따라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판소리의 7가지 唱調(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잦은모리, 휘모리, 엇모리, 엇중모리)는 서사적 내용과의 유기적 연관 관계 속에서 음악과 사설의 결합을 위한 일종의 변화구라 할 수 있다.

 슬픈 내용을 담은 <심청가>는 계면을 많이 사용하지만, 풍자와 해학의 우화인 <수궁가>는 거의 계면을 쓰지 않고, 영웅의 파란만장을 그린 <적벽가>는 웅장하고 힘찬 우조 선율과 창법을 또한 많이 사용하고 있다. 판소리의 음악형식은 사설형식을 따르고 사설의 형식이 곧 음악형식을 결정하는 것이다.63)

【진양】“가난이야, 가난이야, 원수년으 가난이야, 잘 살고 못 살기는 묘 쓰기으 매였는가? 북두칠성님이 집자리으 떨어칠 적에 명과 수복을 점지허는거나? 어떤 사람 팔자 좋아 고대 광실 높은 집에 호가사로 잘 사는듸, 이년의 신세는 어찌허여 밤낮으로 벌었어도 삼순구식을 헐 수가 없고, 가장은 부황이 나고, 자식들은 아사지경이 되니, 이것이 모두다 웬일이냐? 차라리 내가 죽을라네” 이렇닷이 울음을 우니 자식들도 모두 따라서 우는구나.

                                                  (박봉술 창 <흥보가>64)

 진양은 탄식, 호소를 비롯하여 비참한 정경을 묘사하거나, 영웅적 인물의 호탕항 거동, 유유한 정경 묘사에 사용되므로, 이 창조는 ‘진지함’을 주조로 하고 청자에게 ‘정서적 울림’을 가능케 한다고 정리할 수 있다. 진양과 결합된 텍스트를 언어 지향으로 말하자면 ‘독백 어법의 우세’라고 해도 될 것이다.65)

【잦은몰이】문빙 보고 반색타가 살 맞어 떨어지고, 황개 화선 이십 척에 거화포 승기전과 떼뎃떼 나발 소리 두리둥둥 뇌고 치며 번개같이 달려들어, 고함이 진동하여 한번 물러 벗석 천지가 뜨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 두 번을 불러 벗석하니 우주가 바뀌난 듯, 세 번을 불러 벗석 화염이 충천, 풍세 우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루, 물결은 출렁 전선은 뒤뚱, 돛배와직근 용총활대 노사앗대 우번산파다리 l행장방어 각 부대가 물에 풍, 기치 펄펄, 장막 쪽쪽, 화전 궁전 방패 창과 깨어진 통노구 거말장말밤 쇠 나발에 쟁 북 징 꽹지왱지렁징 와르르철철 철산 산이 깨여져서 풍파강상에 화광이 훨훨 수만의 전선이 간 곳 업소, 적벽강이 뒤끓어 불의 난리 아니냐.66)

 휘모리나 잦은모리는 거의 말로 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기 때문에 상황의 긴박함을 묘사하는 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는 결정적 사건․획기적 전기가 존재하는 상황, 즉 서사적 굴곡이 일어날 때 대폭 증가된 서사적 정보의 양을 감당하기 위해서 창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압축적의 서사적 변화를 보여준다. 판소리에서 가장 빠른 장단은 휘모리이며, 잦은모리가 그 다음이므로 서사적 굴곡에 해당하는 부분에서는 이들이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빠르기가 빨라질수록 그 唱調는 단순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음악적 표현의 면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다른 창조와 연계하여 변화를 주기도 하고, 창조 내에서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변화를 주기도 한다.67)

 이처럼 판소리는 문학적 사설을 음악과 연행을 빌어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그 각각의 구성 요소는 판소리를 구성하는 극적 장면을 가장 설득력 있기 표현해 내는, 다시 말해서 ‘이면’ 표현의 극대화를 꾀하는 예술 장르라 할 수 있다.

 4.1.3. 너름새

너름새는 발림이라고도 하는데 대체로 창에 부수되는 연기 능력이라고 말하여진다. 즉 사설의 내용에 부합되는 연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다. 이는 창극으로의 전환기에 그 극적 성격 때문에 더욱 강조되게 되는데, 창극에서 요구하는 극적인 동작과 너름새는 사실은 다른 것이다. <광대가>에서 신재효는 너름새를 이렇게 표현한다.

 너름새라 하는 것은 귀성끼고 맵씨있고 경각에 천태만상 위선 위귀 천변만화 좌상에 풍류호걸 구경하는 노소남녀 웃게 하고 울게 하니

 너름새는 일반적인 다른 여타 극장르의 ‘연기’와 같이 관객들을 극적 환상으로 빠지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청중이 광대를 등장인물 그 자체로 착각할 정도로 리얼리티를 살린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웃게 하고 울게 할’ 수 있을 정도의 상징화된 연기인 것이다.

 김소희: 무용을 기초로 할 줄 알아야 판소리 하는 사람의 발림이 더 능숙하고 멋있습니다.          …(중략)… 제 선생님인 정정렬씨는요, 지금 최고 연기자들도 그 앞에서                   입도 못벌릴 정도로 기가 막힌 연기자였어요. 가령 춘향이가 그네뛰는 장면은 그네          가 저기 탁 갔다가 이리로 오는 것 같이, 발을 툭 굴러 “휘” 이러면서 ㉠갔다오는          시늉을 해요. 또 장님이 옥중에서 춘향이한테 점쳐주는 거 있잖아요. “물비소시 물          비소시” 해 가지구 대 막대를 뽑아서 맘에 들면은 “응” 하며 놀래서 ㉡눈을 이렇게          떴다가 이리 돌아가는 태도는 아주 장님이 왔어요. 가볍게 하는 것도 아니에요. 무          겁게 하는 데도 ㉢장님의 걸음걸이 하며, 기가 막혀요.

                                    (「판소리 인간문화재 증언자료」-명창 김소희)68)

  ㉠은 상황 연기, ㉡은 표정 연기, ㉢은 동작 연기라 할 수 있는데, 모두 ‘약정된 인물화’의 원리에 의해서만 사실감을 느낄 수 있는 연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너름새는 실제적 연기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도록 동작을 ‘표시’하거나 ‘형용’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배우로서 ‘모방적 인물 전환’의 연기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唱子로서 ‘약정된 인물 전환(상상적 인물 전환)’의 연기를 강조한 것이다. 너름새의 구체적 표현 방법은 동작 형용, 부채의 활용, 표정 연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광대의 행위는 세밀한 묘사가 아닌 ‘기호화’의 방식으로 나타나고 이것이 청중들에게 ‘약정된 인물’의 ‘신호’로서 전달된다.69)

 한편, 부채는 판소리 광대가 활용하는 유일한 소품으로 부채는 唱化의 상황과 연관하여서 정서적 고양의 정도, 감정의 기복에 따라 접기도 하고 펴기도 하는데, 주로 ‘창’과의 연관 속에서 활용된다. 또한 ‘광대의 행위를 기호화’하는 소품으로 활용되는데, 이 때는 주로 ‘演’과의 연관 속에서 활용된다. 결국 부채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약정된 인물 전환’을 알리는 ‘신호’이자 ‘광대의 행위를 기호화’하는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 소품이라 할 수 있다.70)

4.2. 미학적 특성71)

 4.2.1 비장과 골계

 판소리는 한편으로는 비참한 느낌을 주지만 또 한편으로는 웃음을 자아낸다. 삶이 비참한 것은 사실이지만, 비참한 데 그대로 말려들어 주저앉지 않고 세상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면서 비참한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 주는 것이 웃음이다. 비장과 골계의 대조는 <심청가>에서 특히 선명하게 나타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는 심청의 결단은 비장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그것은 따지고 보면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 어리석은 짓이기도 하다는 것은 뺑덕 어미와 놀아나는 심봉사의 어줍잖은 꼴을 풍자하면서 암시된다.72)

 4.2.2. 부분의 독자성

 

 판소리는 <부분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흥보가를 보면 놀보가 탄 첫 번째 박에서 나온 <양반>은 놀보의 근본이 하인이었음을 폭로하여, <이놈 놀보야, 네 아비 개불이와 네 어미 괴똥녀가 댁죵으로 드난하다가 모야무지 도망한지 슈십년에 인졔야 차잣구나>라 한다. 그런데 흥보가 환곡을 얻으러 관가에 간 앞부분에서는 <이방이 상좌에 안졋거날, 흥보가 마루 우의 간신히 올라서며, 죽어도 반말노리, 방찬 매가 왔지>하는 것으로 보아 흥보는 양반임을 알 수 있다.73) 놀보와 흥보는 형제인데 형인 놀보는 도망친 노비의 자식이라 나오고, 동생인 흥보는 구차한 상황에서도 양반의 허세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같은 배에서 난 친형제로 등장하는 데도 두 사람의 신분이 다르게 나와 판소리의 부분의 독자성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하겠다. 판소리는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서사물이지만 문자로 정착된 것이 아닌 입으로 연행하는 장르로 부를 때 부분적으로 부르고, 개작 또한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탓에 부분이 서로 어긋나는 당착이 생기기도 하고 표현의 불균형도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부분의 독자성은 그것대로 중요한 구실을 하기도 한다. 작품의 전체적인 전개를 지탱하는 고면에서는 전래적인 도덕률이 그대로 역설되고 굳어진 감정이 제시되어도, 이에 구애되지 않는 비고면에서는 관습에 구애되지 않은 삶의 발랄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충격적인 표현을 한다. 이런 부분의 독자성 때문에 판소리는 문장체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생동하는 느낌을 주고, 경험을 통해서 느낀 갈등을 관념적인 설명으로 왜곡하지 않고 나타낼 수 있다.74)

 또한 판소리는 부분의 독자성과 더불어 부분정서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각 대목 각 장면의 부분정서는 특정한 상황에 한정되는 것이므로 그 정서표현은 일면적인 정서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각 장면의 부분 정서를 표현할 때도 정리적 합법칙성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일면적 정서에 집중하되 그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75)

 동양의 역사관은 ‘순환적 역사관’이라 하여 자연과 문명의 이치가 서로 상반되는 것의 순환적 교체 반복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76) 이처럼 웃음과 울음의 정서는 서로 교체 ․반복하면서 순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각 부분의 장면들은 일면적 정서가 우세하게 나타난다하더라도 각 부분의 장면들이 그 일면적 감정에만 얽매여 있는 것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각 장면의 웃음 속에도 울음의 씨앗을 남겨두고, 각 장면의 울음 속에도 웃음의 씨앗을 남겨둬야 하는 것이 정리라고 본다. 그래야만 상반된 정서가 지속적으로 교체·반복될 수 있기도 하려니와, 일상 속 장면들의 정서적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77)

 이러한 방식으로 판소리의 각 장면에서는 일반적으로 그 장면의 중심적 감정과 여타 주변적 공생하고 있으며 새로운 감정 생성의 계기를 늘 열어두고 있다. 이러한 점이 연상되는 장면이 극대화되고 부분이 독자성을 이루는 원인이 되며, 정서적 정서 변이에 적응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므로 각 부분의 정서는 독자적인 듯 하면서도 실은 전반적 정서변화의 큰 흐름에 스스로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78)

 4.2.3. 말놀이

 판소리 사설에는 한문으로 된 유식한 문자가 적지 않게 들어 있다. 광대가 양반 좌상객의 기호에 맞도록 사설을 수식한 결과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유식한 문자가 본래의 뜻을 그대로 지니는 것만은 아니다.79)

 하도낙서(河圖洛書) 잠간 보니, 일월성신 별 진(辰), 원앙금침 펼쳐 놓고 훨훨 벗고 잘 숙(宿), 양각(兩脚) 번뜻 추켜드니 사양 말고 열(列), 둥뚱덩 잎 맞추니 온갖 정담 베풀 장(張)

유식한 문자와 상스러운 말은 어느 판소리에서든지 전편에 걸쳐서 계속 대조되어 있다. 유식한 문자를 상스럽게 희롱해서 뒤집어 엎는 수업이 계속 보인다. 유익한 문자는 설명에서나 온전한 뜻을 가지고, 설명이 아닌 장면의 묘사나 등장인물의 말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유식한 문자인 것도 자세히 들으면 아주 딴 뜻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예사이다.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사설이 판소리의 가치이다.80)

 4.2.4. 일탈성

 고정된 사설 내용에 기반하여 사건이 전개되다가, 갑자기 이와 상관없는 발화가 돌발적으로 등장하는 특징적인 모습에서 흥미 발생의 한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창자는 의도적으로 자신과 고수, 청관중을 포함한 연행 현장의 상황을 사건의 내용으로 삽입․구성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해진 서사구조의 진행에서 벗어나는 즉흥적인 변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판소리의 연행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장면으로서, 사설의 고정성에 연유하는 확인의 흥미와는 구별되는 또 다른 양상의 흥미를 낳는다.81) 다음의 예시들을 보며 이를 더욱 쉽게 이해하고자 한다.

자네들 내 나이를 들어보소. 내 나이를 들어봐. 한광무 시절에 간의대부를 마다하고, 풍운으로 차일 삼고 동강의 칠리탄 낚시줄을 담가놓고 고기 낚기를 힘씨 허든, 엄자릉이 시조허든 날과 둘이 동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하겠나.

겁나게 따분하죠? 후편에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지요.

 뫼뫁이란 놈이 나의 연세를 들어보소. 한 나라 사람으로 휸노국에 사신갔다 충의충절 십구 년을, 수발이 진백하야 고국산천 험한 길로 허유허유 돌아오던, 소중랑의 연갑이니, 내가 상좌를 못허겠나.    남해성 창, <수궁가>, 국립극장

 이처럼 청중에 대한 직접적인 말건넴이나 현장 상황의 내용화로 대표되는 이러한 일탈적 담화가 구사되는 것은, 청관중에게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요청되었기 때문이다. 이전 경험으로 인해 이미 사건의 내용과 결말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소유하고서 예측 기대를 갖고 있는 수용자에게 사설로부터의 일탈은 변화와 충격을 가져다주면서 긴장감을 발생시키는 효과를 갖는다.82)

호랑이 중요한 데를 꽉 물고 뺑 돌아놓으니, 어씨 호랑이가 아팠던지 거기서 함경도 돌아가서 장충동 국립극장까지 돌아왔다   남해성 창, <수궁가>, 국립극장

 고관수가 대구 감사의 잔치에서 <춘향가>를 연행할 때, 기존의 기생이름 대신 그 자리에 참석한 기생의 이름으로 바꾸어 부름으로써 소리판을 장악했다는 기록은 판소리의 즉흥성, 현장성, 개방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83)

 박동진의 경우에도 연행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사설을 구성하고 이를 청중이나 고수를 향해 발화하는 경우를 여러 군데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아냐 모르냐 이 쌔려 죽일 놈아”, “소리는 드럽게 한다마는 북은 잘친다”, “북을 잘치란 말이다. 이 때려죽일 놈아”와 같이 고수를 향해 욕설과 같은 비속어를 즉흥적으로 던짐으로써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모습 역시 연행의 일탈과 변개를 보여준다. 이들은 청관중에게 충격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청관중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의도적인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판소리는 청관중의 흥행에 영향을 받는 상업적, 대중문화적 성격을 지니며, 유동성과 개방성은 이 같은 성격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84)

4.3. 내용적 특성: 판소리의 사회의식과 이면적 주제

 판소리는 조선 후기에 새로운 사회에서 자라난 문학이며, 새로운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반영했다. 조선 후기에 민중의식의 성장을 정확하게 대변한 예가 민속극이었다면 판소리는 사회변화를 다각도로 보여주면서 새로운 진실을 모색했다. 이는 판소리가 사회 각 계급의 상호관계에 밀착되어 자라난 흥행예술이라는 점에서 생긴 현상으로 생각된다.85)

 판소리를 구비전승을 통해 공동창작 하는 것은 판소리 광대이다. 그러나 흥행 예술이기에 관객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관객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바로 양반 좌상객이었다. 이 목소리 큰 손님의 호감을 사기위해 광대들은 그들의 기호를 맞추는 방향으로 작품을 개작해 나갔다.

 이렇게 판소리는 판소리 광대에 의해 주도적으로 작품의 형성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광대의 의식만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 판소리 광대가 지닌 하층민으로서의 의식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읺고 민중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며, 좌상객인 양반의 생각을 반영하기도 한다. 판소리 광대는 공동작에 만족하지 않고 개인적인 개작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되, 민중의 입장과 양반의 생각을 작품 속에서 대립시키고 융합시키는 창작을 자기대로 전개한다. 따라서 판소리는 평민문학이면서도 양반문학적인 측면도 지닌다.86)

 판소리의 중심 사상은 양반의 관념적 인과론을 거부하고 민중의 경험적 갈등론을 제시하며, 기존사회의 불평등과 허위를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위로는 국왕에서 아래로는 유랑 천민까지를 청중으로 삼았다. 이 점은 판소리의 사회적 기반이 대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판소리가 유동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말도 된다. 시민층이 판소리를 애호하고 판소리 광대를 지원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좌상객이 판소리에서 큰 세력을 누린 것이다.87)

 이러한 판소리 청중의 계층적 이원성, 혹은 향유층의 광범위성은 판소리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판소리 열두 마당이 여섯 마당으로, 또 다섯 마당으로 줄어들 게 된 것 역시 이로 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전된 일곱 마당이 평민적 해학과 풍자에 철저하였던 데 비하여 전승 5가가 평민적 현실주의와 중세적 가치의식이 공존하는 주제의 양면성을 보이는 점도 여기에 기인하는 현상이다.88)

 판소리에는 두 가지 주제가 있다. 하나는 표면적 주제이고, 또 하나는 이면적 주제이다. 표면적 주제는 설명을 통해 나타나고 유식한 문자로 수식되어 있다. 이면적 주제는 장면과 대화로 이루어지는 사건의 구체적인 전개에서 나타나고 상스러운 말로 구체화되어 있다. 표면적 주제만 살핀다면, 판소리는 전래적인 도덕률을 재확인한다고 할 수 있다.89)

 그러나 중국소설 《삼국지연의》를 각색한 <적벽가>가 원작과 어떻게 같고 다른가를 검토해보면 판소리에서 추구하는 주제의식이나 미학적 특징이 서민들의 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적벽가>에는 《삼국지연의》에는 없는 삽화와 삽입 가요가 들어 있다. 이 중 <자탄사설>은 조조의 병사들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술에 취해 자신들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는 설움을 내어 놓는 내용인데, 보통 영웅의 창업전쟁을 다룬 서사문학에서는 병사 개인의 서러운 사연은 서술할 틈이 없다. 그런데 <적벽가>에서는 병사의 존재를 개별적으로 부상시켜 조조와 대등한 비중을 주면서 그들의 사연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판소리가 조조와 같은 군주의 삶을 다룬 문학이 아니고 병졸과 같은 서민들의 삶을 다룬 문학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90)

 따라서 <춘향가>의 열(烈), <심청가>의 효(孝). <흥부가>의 우애(友愛), <수궁가>의 충(忠) 등의 표면적 주제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구실일 뿐 실은, 타락한 양반계급에 대한 비판과 계급을 초월한 자유연애,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 빈부의 격차와 유교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 권력자에 대한 약자의 저항과 같은 비판적 의식과 같은 이면적 주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판소리에 투영된 사회의식은 판소리사의 전개 과정에 따라 일정하지만은 않았으나, 그 창자들이 중세적 신분질서에서 가장 낮은 지위에 속하는 천민이며 18세기 말까지는 평민층 청중들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으므로 평민적 세계관과 미의식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판소리에서 중세적 관념과 가치는 대체로 희극적 조롱의 대상이며, 평민적 경험에 기반한 세속적 현실주의가 삶의 근본 전망을 이룬다. 다만, 이와 같은 성격은 그 자체가 진행 과정에 놓여 있던 것인 데다가, 19세기 초기 이래 양반 청중의 영향력이 개입하면서 일부 약화되기도 하였다. 판소리가 지닌 양면성 내지 이원성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하는 특질인 것이다.91)

  한편, 이와 같은 판소리의 양반과 평민을 아우르는 성격은 양반문학과 민중문학의 중간적 성격을 가지는 문장체소설에 큰 충격을 주어서 판소리계 소설의 출현을 가져왔으며, 18세기 이후 민중문학의 전반적인 성장 추세에 앞장 서서 국문학의 중심적인 위치로까지 부각되었다.92)

5. 판소리의 전승양상과 역사적 변이

5.1. 적층문학으로서의 판소리

 구전심수라는 형태로 그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일반적으로 적층문학으로 규정되어 왔다. 판소리 사설이 선배 광대에 대한 모방과 암기로 전승된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구술성(口述性)을 그 본질적 특성으로 갖는다. 판소리의 서사성이 서사양식으로서의 판소리의 중심 줄기, 즉 짜임새를 구성한다면 구술성은 이 유기적인 짜임새에 다원적 언어에 의한 변화를 가함으로써 판소리 텍스트가 유동성을 획득케 한다. 이는 판소리가 다른 서사 양식과 차별화되는 판소리만의 자유로운 미학을 구현하는 근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편, 정병욱은 판소리의 탁월한 음악성과, 광대들의 낮은 교육 수준 등을 근거로 판소리의 작자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고, 판소리를 적층문학으로 규정하여 그 고도의 예술성을 간과한 채 민속음악으로만 치부하려 하는 시각을 비판하였다. 허균이나 박지원과 비슷한 진취적인 사상을 지녔던 어느 문사 중에 특정 인물이 각 레퍼토리의 최초의 판소리 사설을 고정시켰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전승하는 과정에서 수정과 첨삭이 가해졌다는 것이다.93)

 이와 같은 의견은 그간 판소리의 기원 문제에 있어 통설로 여겨져 온 무가기원설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러나 판소리의 초기 형성문제의 타당한 규명을 떠나, 이 후 史的 전개과정을 볼 때 판소리의 적층문학적 성격은 충분하다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판소리의 그러한 적층문학적 성격을 중심으로 그 전승양상과 변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5.1.1. 구전심수(口傳心授)와 판소리 유파의 형성

 판소리의 초기 전수 형태가 어떠하였는가 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그 전수 형태가 기록된 후기 문헌을 통하여, 우리는 스승의 밑에서 한 구절, 한 구절 구전심수로 한 마당을 배우고, 그것을 실제의 현장에서 연습하여, 심산유곡에 북을 메고 들어가 수련하는 동공의 과정을 거쳐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방식이 초기의 방식과 유사한지는 확인 할 수 없지만, 그 수련 과정의 보수적 성향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94)

 이는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로 구분되는 판소리의 유파와도 관련되어 있다. 판소리의 유파 전승 지역 외에도 명창의 계통, 소리 자체의 미학적 기반 등 여러 요소에 따라 구분되게 되었다 볼 수 있는데, 결국 이 유파란 것은 누가 누구에게 구전심수하였는가, 어느 명창을 시발로 하여 그 계통이 형성되어 이어졌는가에 대한 구분이라 할 수 있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유파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자연스럽게 판소리 유파는 형성되었다.

 판소리의 유파는 대체로 19세기 초반인 전기 여덟 명창 시대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 들어와 임금, 양반, 대원군 등 상류층의 애호를 받으면서, 판소리는 부와 명예를 축적 할 수 있는 예술로 인식되었고, 광대들이 자기의 법통을 강조하는 경향도 생겨났다. 먼저 동편제와 서편제가 대립적으로 존재했고, 후에 중고제가 생겨난 듯하다.95)

 그 성격에 있어서 호남의 동북부 산악지대에서 전승된 동편제는 남성적이고 씩씩한 우조적 경향을 갖고, 호남 서북부 평야지대에서 전승된 서편제는 여성적이고 부드러운 계면조적 경향을 갖는다. 중고제는 그 명칭이 함의하고 있는 지역적 성격처럼 음악적으로도 ‘비동비서이지만 동편에 가까운 것’. 즉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중간적 특성을 갖는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세 유파의 전승계보를 개괄적으로 나타내면 다음96)과 같다. 이는 곧 판소리 구전심수의 계보라고도 할 수 있겠다.


① 동편제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

 

김정문

 

박녹주

 

박송희, 한농선, 신영희

 

 

 

 

 

 

 

 

 

 

 

 

 

 

 

김광순

 

강도근

 

 

 

 

 

 

 

 

 

 

 

 

 

장판개

 

배설향

 

 

 

 

 

 

 

 

 

 

 

 

 

박봉래

 

박봉술

 

송순섭

 

 

 

송흥록

 

 

 

 

 

 

 

 

김소희

 

 

 

 

 

 

 

 

 

 

 

유성준

 

정광수

 

박초월

 

 

 

 

 

 

 

 

 

 

 

 

 

 

임방울

 

 

 

 

 

 

 

 

 

 

 

 

 

 

김연수

 

 

 

 

 

 

 

 

 

 

 

 

전도성

 

김원술

 

 

 

 

 

 

 

 

 

박만순

 

 

 

 

 

 

 

 

 

 

 

 

 

 

 

 

 

 

 

 

 

 

 

 

 

 

 

 

 

 

 

장자백

 

 

 

 

 

 

 

신재효

 

 

김세종

 

김찬업

 

정응민

 

정권진, 조상헌, 성우향, 성창순

 

 

 

 

 

 

진채선, 허금파, 성민주

 

 

 

 

이동백

 

 

 

 

 

 

 

 


정춘풍

 

 

박기홍

 

조학진

 

박동진

 

 

 

 

 

조기홍

 

 

 

 

 

 


<춘향가>  김세종―김찬업―정응민―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성창순


② 서편제


 

 

 

정창업

 

김창환

 

김봉학, 김봉이

 

정광수

 

박초월

 

 

 

 

 

박유전

 

 

이날치

 

김채만

 

박동실

 

한승호, 김소희, 한애순, 김록주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 성우향, 조상현, 성창순, 안채봉

 

 

 

 


③ 중고제


김성옥

 

김정근

 

김창룡

 

 

염계달

 

 

 

 

이동백

 

 

 

 


 5.1.2 구술성에 의한 전승원리와 더늠


 위에서 논의했듯, 판소리의 전승원리는 구전심수를 기본으로 한다. 대체로 광대들은 다른 광대의 소리를 몇 년이고 듣고 따라 함으로써 배운다. 판소리의 사설과 음악적 요소들은 이런 식의 훈련을 통하여 전수된다.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친 수련만으로 그 긴 사설의 ‘암송’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긴 사설이 암기되기 위해서는 언어적 제약과 음악적 제약이 가해져야 한다. 어느 정도 공식구가 ‘이미 만들어진 어법’으로서 그 짜임에 중요한 핵심으로 있어야 하며 여기에 연행자, 즉 광대는 이미 상투적인 모티브와 테마를 지니고 있는 레파토리들을 끌어다 엮음으로써 작품을 짜 맞춘다.97)

 이는 사설의 정형구적 요소를 구술성에 기반한 기억장치를 통해 고정적이게 사용하기도, 융통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면서 긴 판소리 한마당을 완창 할 수 있도록 그 사설과 창을 광대가 ‘체화’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대표적인 전승양상으로 보이는 것이 반복과 열거의 기억장치라 할 수 있다. 반복의 양상이 일정한 정형구를 생성해내고, 그 정형구가 고정화되도록 강화시켜 광대가 사설을 축어적으로 기억하도록 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면, 열거의 양상은 구술된 담론이 지니는 부가적이고 집합적인 특성의 반영으로, 광대의 구연을 유창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대목이나 장면에서 정서척 표현을 강화하기도 한다.98)

 이와 같이 판소리는 선대 광대로부터 받은 사설과 음악을 수준 높게 표현하기 위해 정형구 생성을 위한 기억장치를 통해 암송 · 연행되기도 하지만, 이와는 정반대로 특정 광대만의 세련된 표현이 삽입되어 다른 광대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노출되기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더늠’이다.

 ‘더늠’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① ‘더 넣음’의 준말 이라는 설과 ② ‘겨루다’를 의미하는 ‘더느다’의 파생어라는 설이 있다. ①의 경우, 더늠의 삽입적 성격만을 설명하는데 그친다면, ②는 더늠의 생성 의미까지 포함할 수 있는 개념 풀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는 많은 더늠들을 얼개삼아 짜여진 예술이다. 판소리에서 더늠과 같은 삽입 장치가 가능한 것은 판소리가 언어적 유동성을 자유롭게 허용하는 구비 · 적층문학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구술문자를 통해 전승되기에 더늠의 삽입이 용이하고, 더늠의 삽입으로 인해 판소리는 적층문학의 성격을 구현한다.

 그런데 이 더늠은 그 생성적 원리는 척층문학적 속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정착되게 되면, 구전심수의 과정에 있어 이것 또한 수련을 통해 암송해야 할 일종의 ‘바디’가 된다. 유동적 속성에 의해 생성되었지만 고정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구비전승되던 텍스트가 고정성을 획득해가는 적층문학적 특성이 판소리에서 구현되는 예라 할 수 있겠다.


5.2.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개작

동리 신재효는 조선 후기 판소리 연구가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 출신이 향리였는데, 향리들이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조선 초 후기의 사회현실 속에서, 신재효는 축적해 두었던 재산을 판소리를 지원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단순한 감상자에 머물지 않고 판소리를 육성하고 이론적 탐색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신재효는 판소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이를 실천한 특별한 인물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의 수많은 업적을 이야기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판소리 개작’ 이다. 그는 기존에 전승되던 판소리 여섯 마당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으로 스스로 새롭게 개작하였다. 그의 사설 개작 작업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상충하는데, 그것은 그의 사설 개작이 판소리의 변이에 있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5.2.1. 신재효 개작 사설에 나타난 두 지향

 

  신재효는 판소리 사설 개작에 있어서, 하나의 명확한 목표를 지향했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판소리의 구조적개념에 해박했던 그는, 감상자와 공연자라는 판소리 사설의 두 주체의 공존과 통합을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양반 좌상객이었던 당대의 판소리 감상자와 소리꾼인 공연자의 상대적인 계층관계를 고려한다면 이는 ‘상층 감상자 지향’과 ‘하층 공연자 지향’이라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인계급이라는 그의 신분적 위치와 거기에서 비롯된 특유의 현실 인식은 양반 좌상객의 판소리 향유를 적극적으로 보조하고 배려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을 터이고, 동시에 판소리에 대한 수준 높은 안목과 깊은 애정은 판소리의 본질을 능동적으로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신재효의 사설에는 두 지향 중 어느 한쪽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지만 양립할 수도 있는 것이어서, 한 작품에서 서로 다른 두 지향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다.99)


① 감상자 지향

  감상자 지향은 신재효의 신분적 위치에 따른 그의 계급의식과 양반좌상객이라는 감상자에 대한 의식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감상자 지향은 ‘연창’이라는 판소리 제시형식과 관련된 문제이다. 연창 현장에서 서술자, 혹은 실제 소리꾼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다는 판소리의 기능을 살려, 서술자가 아니리를 통해 개입함으로써 자신의 목소리를 중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자의 개입은 개연성, 사실성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작품 부분부분에서 기존 사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 개작에 있어서 기존사설 자체를 변용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의 목소리를 개입시킴으로서 개작의 동기와 근거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⑴ 저 소경 하는 말이 “옥중 고생하는 터에 복채를 달란 말이 이면은 틀렸으나 점이라 하는 것은 신으로만 하는 터니 무물이면 불성이라 정성을 안 들이면 귀신 감동 못할 터니 복채를 내어 놓소.”

(<남창 춘향가>, 73쪽)100)


⑵ 향단이 나가더니 다담같이 차린단 말 이면이 당챦것다.

(<동창 춘향가>, 133쪽)


  위의 예문에서 ‘이면’은 곧 사실성을 의미한다. ⑴의 경우, 옥에 갇힌 춘향에게 복채를 내라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아 보이지만 점복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⑵의 경우에는 기존 사설의 향단이가 차려내는 술상에 대한 묘사가 적합하지 않으므로, 그 가지 수와 규모를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들 경우에서 ‘이면에 맞지 않는다.’라는 서술자의 개입을 통해 신재효의 기존 사설 개작의도가 사실성과 개연성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101) 이처럼 신재효가 행한 사설 개작 작업의 핵심적 근거는 ‘이데올로기적 개연성’, 좀 더 구체적으로는 ‘유가적 합리주의의 자장’에 놓여있는 ‘현실적 개연성’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102)

  한편, 기존 사설에 대한 이러한 개작은 위와같은 작품의 미시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주제의식, 결말과 같이 작품 전체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인 부분에도 나타났다. 작품의 거시적인 부분에 변용을 가했다는 점에서 신재효가 행한 서술자의 강한 개입이 판소리 감상자인 양반좌상객을 철저하게 의식하고 행한 ‘의도된’ 목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토별가>에서 토끼에게 속는 대상을 자라가 아니라 용왕으로 강조하면서 자라에게서 우매성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충’이라는 요소로 대체한 것103)이나, 비록 양반에 가까운 신분을 지니게 되었을지라도, 결국 춘향은 가녀라는 천인의 신분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며, ‘총첩’에 만족해야할 뿐 ‘정절부인’(장자백 창본)이나 ‘정열부인’(김세종제 성우향 창본)의 가자를 받는 것은 가당치 않다는 투철하고 뿌리깊은 신분의식104)을 개작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그 예라 할 수 있다.


⑶ 다른 가객 몽중가는 옥중에서 어사 보고 산물을 한다는데 이 사설을 짓는 이는 신행길을 차렸으니 좌상 처분 어떠한지

(<남창 춘향가>, 77쪽)


동방 군자국의 갑자 원년 성인 임금 등극을 해 계시니 잠깐 가서 다녀오자. 한양으로 가는 길에 모족 모임 한다기에 지면하자 한 길이니.

(<토별가>, 279쪽)


  위의 예들은 개작부분에 있어, 신재효와 좌상객과의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⑴에서 ‘좌상 처분’이 어떠한가를 묻는 부분에서 신재효가 좌상의 존재를 절대적으로 상정해 놓고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아가 ⑵와같이 임금에 대한 과도한 수식어를 삽입했다는 점과 신재효가 대원군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보면 당대의 좌상객의 범위 또한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② 공연자 지향


  공연자 지향은 공연의 주체인 광대들을 의식하고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⑸ 걸인들을 보낸후에 셋째통 또 타렬제 놀부 저도 무안하여 아니리를 연해 짜, “선흉후길이요, 고진감래요, 심령오신이라니 무한 좋은 보화 이 통 속엔 꼭 들었지”

(<박타령>, 423~425쪽)


⑹ 한놈은 시조청으로 울고, 한놈은 산타령으로 울고, 한놈은 방아타령으로 울고, 한놈은 하울어서 목이 조금 쉬었기로 목은 아예 아니쓰고 잦은모리 아니리로 남을일쑤 웃기것다.

(<박타령>, 437쪽)

 

  ⑸와 같이 아니리를 짠다는 표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을 통해 신재효의 사설 개작이 공연자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⑹의 경우는 시조청, 산타령, 방아타령, 잦은모리 아니리 등 다채로운 가창기술을 연마할 것을 공연자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연자 지향은 위와 같은 부분적인 예 외에도 <춘향가>를 그 가창의 주체와 그에 요구되는 가창 수준에 따라 <남창 춘향가>와 <동창춘향가> 두 가지 본으로 개작했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나는데 <춘향가>의 두 가지 개작본에 관해서는 뒤의 항목에서 자세히 논의하도록 하겠다. 

  이와같이 공연자 지향은 광대들에게 더 수준 높은 솜씨와 광대라면 갖추어야 할 점들을 제시․요구했다는 점에서 그 개작이 결과적으로 광대들에 대한 교육과 후원을 통해 더 질 높은 연창으로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연창이라는 판소리의 제시형식을 염두에 두고 사설 개작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신재효가 사설을 단지 ‘읽히기만 하는’ 독서물이 아니라  ‘보고 들을 수 있는’, 창을 전제로 하는 연행물로써 다루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연자에 대한 수준 높은 연창으로의 요구는 결국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를 위해 하층의 가창물로부터 상층의 고급 가창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가창물을 모두 감당할 수 있어야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계층이 즐기는 다양한 가창물에 대한 지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신재효가 기존 사설 개작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부분이 상층과 하층간의, 감상자와 공연자간의 공존과 통합이었다 할 수 있다.

 5.2.2. 신재효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신재효의 판소리 이론과 개작작업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세계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양반문화와 서민 문화를 결합시킬 수 있는 중간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가 그런 중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에는 세련되고 우아한 양반 문화를 지향하는 경향과 거칠고 골계적인 서민 문화의 뿌리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이는 신재효가 어느 한쪽으로 편중하여 수렴되지 않는 객관적이며 중간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결국 신재효가 두 가지 문화를 통합할 수 있을만큼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신재효의 사설개작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로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하는데, 두 대립되는 문화를 결합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양 문화를 통합시킬 문화 의식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설 속에 문화적인 대립상만 노출시켰다고 판단하는 것이다.105)

  또한 이러한 결코 성공적이지 못한 그의 의도로 인해 그가 개작한 판소리 사설은 판소리사의 전개과정에 전면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상 ․ 하층의 통합이라는 명확한 의도를 가진 사설의 개작은 결과적으로 창자들이 잘 불러내지 못하는 사설을 만들어 버렸다. 그의 판소리 사설은 독서물로써는 훌륭한 것이었지만, 소리책의 텍스트로는 ‘뜻이 너무 세고 문장이 너무 긴 사설’이기 때문에 적절치 못한 자료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기존의 양반문화에 심취되어서 본래 판소리가 지녔던 서민의 건강성을 해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신재효가 가지는 이와같은 한계는 그 개인의 한계라고 하기 보다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의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가 아무리 상 ․ 하층의 조화로운 통합을 이끌려고 했다지만, 그 역시 중인계급이라는 계층적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재효의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는 자신이 의도한대로 역사적 전환기 때 신재효는 주어진 관념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내놓아 합리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는 기존의 양반문화를 이끌고 가면서도 새롭게 대두되는 서민 문화를 끌어안아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사설 개작작업은 그 개작 의도의 성패 여부 이전에 판소리 사설을 구비문학에서 기록문학으로 전환시킨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한 가지 유형으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본으로 산발적으로 흩어져있던 구비문학텍스트를 한 가지 정형화된 틀로 정착시켜 독서물로 창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이는 판소리의 특유의 구비문학적 특성을 해치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신재효가 행한 기록된 통일 정본으로의 수립 작업106)이 없었다면 판소리 사설이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 전해졌을지 의문이다. 당대의 노랫말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사설의 형태로 남아 노랫말을 붙여 향유할 수 있는 정도까지 만이라도 가능한 것은 신재효의 체계적인 사설 정리 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소리꾼들을 지속적으로 교육 ․ 육성시키는 데 있어서도 정형화된 텍스트가 있다는 것은 긍정적인 점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영화 ․ 드라마 ․ 광고 등 현대 여러 매체에서 판소리 사설이 활용된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판소리가 우리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그 명맥을 이을 수 있기에 가능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 신재효의 사설 개작 작업은 판소리가 그 명맥을 잇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것이다.

  신재효는 이본을 하나의 통일된 정본으로 수립하는 작업과 함께 판소리 이론을 정립시켜 뛰어난 이론가적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가 개작하여 정착시킨 판소리 사설과 이론은 다층적인 판소리의 장르적 성격을 규명해내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6. 현대사회의 판소리와 그 지평

6.1. 20세기 이후 판소리의 전환

 6.1.1. 창작판소리의 등장

 

 일제시대에 이르러 판소리는 위기를 맞게 된다. 19세기 말까지 판소리를 지탱해 준 지지 기반인 양반이 20세기 들어 식민지 상황을 경험하면서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예들은 일본의 식민지 문화정책에 이끌려 일본의 통속예술에 경도되었다. 판소리는 일제시대가 진행되면서 급격하게 밀려오는 식민주의의 문화정책으로 말미암아 지지 기반을 상실해 갔다.

 그래서 판소리 광대들은 자기 예술의 유지를 위하려 다시 서민 대중에게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구가해 왔던 우아한 예술을 버리고 민중 취향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쉽고도 골계적인 사설의 회복과 계면조 전통으로의 회기였다. 20세기 전반기의 판소리가 계면조로 많이 흘러간 것은 이같은 판소리의 기반 변모와도 관련이 있다.107)

 이러한 판소리에 대한 새로운 기대와 바람으로 20세기 초반 무렵부터 ‘창작판소리’가 생겨났다. 과거에 판소리로서 전승되지 않았던 작품이 새로 만들어지면 그것을 ‘창작판소리’라 부르는데, ‘복원판소리’를 ‘창작판소리’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복원판소리’란 과거에 전승되다가 근대에 들어와 전승이 끊어진 작품의 텍스트를 되살려내는 것이므로 ‘창작’이라 칭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지 않나 싶다. 거기다 그러한 복원 작업에 사용되는 텍스트가 사설의 모습을 대부분 보존학 있는 판소리계소설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최초의 창작 판소리는 원각사에서 김창환이 1904년에 공였했다는 <최병두 타령>이라 할 수 있다. <최병두 타령>은 강원도 관찰사 정 아무개라는 사람이 그 고을의 양민 최병두를 잡아다가 곤장으로 때려죽이고 재산을 빼앗았다는 실화를 토대로 만든 판소리이지 창극 작품이다. 이인직은 이 작품을 신소설 <은세계>로 각색했다.108)

 창작판소리는 현재까지도 창작되어지고 있는데, 송영석의 ‘열사가’ <안중근전> <유관순전> <윤봉길전>, 박동진 명창의 ‘성서판소리’ <예수전>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열사가는 해방을 전후하여 창작되었는데, 반일의 정서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내용이 내용인 만큼 열사가는 판소리 특유의 해학적 · 골계적 미학은 떨어지지만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 지배에 대하여 강력한 항거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또한 그러한 민족적 감정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 열사들의 행적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을 담는다는 점에서 개인에 의한 창작이지만 고유의 ‘민족성’을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성서판소리’이다. 다음은 박동진 명창의 <예수전>의 일부이다.

【진양조】하나님 아버지시여,

우리 원수들 손아귀에서 우리들을 건져내시고

우리를 치려하는 포악한 자들로부터 높이 들어 주시옵고

사악한 무리에게 건져내어 주사이다.

우리 목숨을 해치려고 열강이 모여들어 엎드려 기다리고 있나이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주님께서 우리들을 버리시고 헛트시사 풍비박산이 되였으니

연도를 부시옵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아니리】이렇게 빌고 기도드린 까닭은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새로운 임금 고시칸과

지역을 초월하신 만왕의 왕이시오 영세의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믿음이라.

로마 박정 말발굽밑에서 짓밟히고 그 앞잽이 세금받이로 하여금 쥐어짜일대로 짜이면서도

그래도 끈기있게 살어가는것은 언제 메시아의 탄생이 있으실까 함이로구나

 성서판소리가 갖는 뚜렷한 한계점은 유대민족의 전승민담으로서의 성서 내용 및 분위기가 한국의 토착적 정서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판소리는 우리말의 특질과 떼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성서의 배경 및 내용은 우리의 토속적 정서 안에 무르녹기에는 아무래도 이질적인 면들을 갖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성서판소리는 다양한 장단의 적절한 활용과 능숙한 붙인새의 구사로 일단 소리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최근의 드문 신작이긴 하지만, 형식척 측면에서의 성과 이상의 민족적 · 종교적 공감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과제가 많이 있다고 보여진다.109)

 조동일 교수는 창작판소리가 판소리이기에는 판소리가 갖고 있는 심미성이 너무 저해되었기에 판소리답지 않다고 다음과 같이 혹독하게 비난했다.

 고정된 줄거리는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 고정되지 않는 내용에 오늘날의 관심사를 광범위하게 투영할 수 있는 서사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러기에 부분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고는 숭고와 골계, 긴장과 이완, 유식과 무식이 대립되어 겉다르고 속다른 주장을 펼 수 있게 하는 것이 판소리 재창작의 핵심과제이다. …… 무슨 내용, 어떤 문구라도 시조 형식에 맞추어 글자수를 배열하면 현대 시조가 된다고 하면서 시조를 글자수 형식으로만 이해해 시조 계승을 저해하듯이, 판소리를 악곡 형식으로만 생각하면서 무엇이든지 담으려 하면 판소리가 파괴된다.110)

 그러나 창작판소리 자체가 전승된 판소리와는 달리 집단이 아닌 개인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점에서부터 그 근본적인 태생이 다르기 때문에 그 성격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창작판소리에 대한 이해와 평가는 창작판소리가 자지는 특수성 안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오늘날 민족연행예술로서의 판소리의 위기를 생각해본다면, 창작판소리와 같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춘 판소리의 새로운 전환은 판소리의 생명력 연장에 있어 긍정적인 바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1.2. 창극화 경향

 일제의 지배가 강화되면서 판소리의 변모는 더욱 심각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판소리는 본래의 시대적 의의를 잃은 채 한낱 골동적인 것으로 남아 있다가, 창극(唱劇)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창극은 연극처럼 여러 명의 인물이 등장하여, 각기 배역에 따라 연기를 하면서 판소리를 부르는 음악극이다. 판소리의 창극화는 성급하게 진행되었으나, 어떤 의미에서는 필연적 추세기이기도 했다.

 판소리가 1인 입창의 형태를 취하게 되면 창자와 청중을 매개하는 자연스럽게 고수의 역할이 중시된다. 그런데 이 경우 연창자는 작중 인물과는 다른, 작품을 전달하는 예술인일 뿐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청중의 반응은 추상적 존재에 향하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배역을 정하여 분창함으로써 관객은 춘향, 변사또를 맡은 연창자를 작중 인물과 동일시하고 그들에 대한 지지, 공감과 분노, 저항의 대상도 구체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것은 연극에서 배우와 작중 인물의 동일시를 관객도 용인하는 것으로 연극이 가지고 있는 효과를 판소리가 수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111)

 이는 자본 축척이 가능해진 상일, 각성한 시민이 판소리에 참여함으로써 연창자의 예술화 못지 않게 청중의 참여도 요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시대적 변화와 요청에 따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창극이 판소리의 시대적 요청의 수용과 청중과의 타협을 통한 판소리의 존속을 도모하고자 하는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창극이 서민의 변모된 의식에 상응하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동백의 회고에 의하면 그 공연의 실재가 확인된 최병두타령에서 작품의 창작과 이에 대한 관객의 호응을 짐작할 수 있다.112)

 그때의 원각사에서는 무엇을 했는고 하면 춘향전이니 토끼타령이니 하는 판소리도 하였지마는 그 당시에는 특히 유명한 것은 최병두타령이란 것이었다. 지금은 최병두타령 하면 그것이 무엇인가 할 분이 많겠지마는 그 당시에는 어찌나 유명했던지 모르는 이가 없었는데, 그라면 그 유래는 무엇이냐 하면 정모라는 탐관오리가 있어 강원감사를 갔을 때 그 고을 백성 최병두의 재둘을 탐내어 최가는 장폐시키고 그 재물을 들어먹었으므로 그 자손이 하도 억울해서 돈 몇 만냥 갖다가 김옥균씨에게 주고 최병두의 신원을 해달라고 했으므로 김씨는 그 돈으로 원각사를 일으키고 최병두타령이란 것을 만들게 해서 정모의 간악한 것과 최병두의 억울한 것을 일반이 알게 한 것이라고 한다.113)

 원각사는 양민 한 사람이 정감사한테 억울하게 맞아 죽은 것을 원각사에서 상연했는데 정감사의 후손들이 상연 중기 운동을 하고 야단이었지요, 그때 피살된 양민을 김창환씨가 냈는데 무대에서 죽어 나올라치면 손님들 중에서 염전을 목에 걸어 주고 인기가 굉장했었지요.114)

 최초의 창극은 1902년 가을, 고종의 즉위 40주년을 경축하는 행사를 거행하기 위해, 신식 극장인 원각사(圓覺社)에서 김창환이 전국의 남녀 명창을 불러들여 공연하려 했던 <춘향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행사는 두 번 연기된 끝에 유야무야되었고, 1903년 가을 강용환에 의해 창극 <춘향전>이 공연되었다. 무대 천장에 전등을 밝히고 흰 포장을 둘러친 다음, 여러 창자들이 포장 앞에 둘러서서 각자 맡은 배역의 소리를 했다.115)

 이후 춘향전의 창극화는 계속 진행된다. 초기 창극은 입체창 정도의 것이었으며, 후대로 갈수록 외래극과 주변 국가의 전통적인 희극 양식의 영향을 받아 오늘날의 창극에 근접하는 발전을 가져온다. 춘향가의 창극으로서의 재창조에 있어 흥미있는 점은 일제강점기에 새롭게 등장한 매체들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성기음반에 창극이 취입되면서 우리는 반대로 그 흔적들을 통해 당시 창극 공연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한다.116)

 창극은 일본의 신극과 대립하여 민족문화의 말살이라는 위기 속에서 미약하게나마 판소리를 근본으로 하는 민족 문화의 흔적을 남겼다는 데에 있어서는 긍정적 평가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소리가 창극화 되어가면서 필연적으로 판소리가 가지는 특성과 기능은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감상자 지향의 개작을 행하면서도 그 궁극적인 지향점이 고도의 예술성 획득이었던 판소리에 비해 창극은 상업성을 추구하여 관객에 기호의 영합하여 무대를 장식하는 소도구나 의상 등 예술적 본질과는 먼 외피적인 부분을 더 의식했다. 따라서 창극 장르 자체내의 예술성의 저하는 물론이고 판소리의 근본정신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한명의 창자가 장시간 동안 창을 해야 하는 판소리에 비해 창극은 분창이 가능하기 때문에 창극화 이전의 창자보다 이후의 창자들의 수련 기간이 단축되고 이에 창자의 가창 능력 저하가 따르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6.1.3. 21세기 판소리의 위기

 오늘날 판소리와 같은 전통공연예술은 그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판소리는 그 문화적 자생성을 잃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판소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세기 중반, 또는 그 후 후기 5명창 시대와 비교하면 더욱 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소리판에서 양반이고 하층민이고 할 것 없이, 신분의 질서를 초월해 향유되었던 지난날의 영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판소리는 고급 중들에 의해 향유되는 고급 예술로 자리 잡았다. 판소리가 고급 예술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대중과는 그만큼 멀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대로 판소리가 계속 소수의 고급 청중들만이 향유하는 예술로 남는다면, 조만간 그 맥이 저절로 단절되거나, 더욱 왜소한 모습으로 퇴화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 부흥의 문제가 더욱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이는 예전의 판소리와 민속극의 미학을 복원하는 일과 새로운 세기의 문화 풍토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판소리, 민속극을 창조하는 문제로 나누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판소리와 민속극을 보존 ․ 전승하기 위한 방안과 그 현대적 활용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룰 것이다.

6.2. 판소리의 현대적 변용 방안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곧 현 시대가 어떠한 판소리를 요구하는가에 대한 고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앞으로 맥을 이어갈 판소리의 생명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우리 전통의 판소리를 규명하는 일 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그동안 이루어져 온 판소리의 현대적 활용 사례들에 대해 검토 · 평가해보고 바람직한 활용 방안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판소리는 그 활용에 있어 대부분 서사적 내용에 의한 활용 양상을 보인다. 판소리 자체는 서사와 제시형식의 결합으로 소리판에서 연행이 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지만 그 현대적 활용에 있어서는 다른 문학장르로의 전환, 드라마, 영화, 뮤지컬, 애니메이션등 서사부분의 활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는 그 제시형식의 생명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점에서 아쉽지만, 그만큼 판소리의 서사가 현대인들의 감수성을 충족시킬 정도의 서사적 구성력과 생명력을 담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춘향가>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춘향가는 가장 먼저 창극으로 만들어져, 뮤지컬, 연극과 같은 서양의 대표적인 예술 양식으로 일찌감치 재창조되었는데, 이외에도 80년대 불기 시작한 해학과 웃음을 준다는 새로운 형식의 마당놀이극 형태로도 춘향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와 함께 내용은 살리면서 문학적인 구조를 잃어버린 무용극 형식의 춘향전이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춘향전은 20세기 들어서 발달한 영화산업과도 융합되어 여러 편의 춘향전이 제작되기도 하였다. 또한 영화와 함께 방송극으로서도 춘향전은 제작되었는데, 영상예술로서 거듭 태어난 춘향전은 꾸준히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제작되는 등 춘향전 재해석에 중요한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 간 현대적으로 재해석되어왔던 <춘향가>를 중심으로 판소리의 현대적 변용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을 위해 문학 장르와 TV나 영화를 통해 나타난 것과 같은 영상예술 분야의 순으로 그 재창조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우선 문학 장르 중 현대시에서의 재창조 현황은 다음117)과 같다.

발표

연도

작가

제목

출전

특징

1925

김소월

춘향과 이도령

『진달래꽃』

춘향전의 보편적 주제 부각

1940

김영랑

춘향

『문장』

민족에 대한 사랑․지조․희생

1949

노천명

춘향

 

춘향의 열녀성 강조

1956

서정주

춘향유문

『서정주시선』

춘향의 사랑을 부각

1956

서정주

다시 밝은 날에

『서정주시선』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 강조

1956

전봉건

춘향연가

『춘향연가』

춘향의 사랑을 부각

1956

서정주

추천사

『서정주시선』

인간해장의 주제로 확장

인간의 상승에의 의지 제시

1962

박재삼

춘향의 마음 외

『춘향이 마음』

춘향의 원망 없는 사랑 강조 및 춘향이의 한을 통한 당대의 민족의 한 대변

1974

유성규

춘향사

『한국문학』

춘향의 사랑을 묘사

1974

최하림

춘향비가

『문학사상』

춘향전 소재를 통하여 자유를 억압하는 세력에 항거하고, 자유 속박에 비판을 가함.

1975

송수건

춘향이 생각

『문학사상』

춘향과 이도령의 정열적인 사랑

1983

송수건

남원유문

『꿈꾸는 섬』

춘향과 이도령의 정열적인 사랑

1983

이시연

춘향의 마음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 강조

1983

김정환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답함

『황색예수전』

춘향의 혁명성 강조

1984

유성규

춘향사

 

춘향의 열녀성 강조

1988

오봉악

전과2범 춘향이

 

80년대 폭력적 정치세력과 민중적 자유 의지의 대립

1990

신경림

춘향전

 

민중의 고통스런 삶과 기대를 초월한 한

1990

권천학

춘향3. 아니라 춘향가

 

춘향의 고백을 통한 물질만능적, 세속적, 출세지향적 현대사회 비판 및 그에 영입되는 현대인의 속물성 비판

1990

권천학

춘향2. 춘향의 입덧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 강조

1990

권천학

춘향1. 그대오시려나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그리움 강조

 앞서 살펴보았듯이, 판소리인 <춘향가>가 고대소설로 정착된 것을 우리는 판소리계 소설 <춘향전>이라 한다. 이러한 판소리계 소설은 문장체 소설이나 한문본으로 바뀌기도 하였을뿐더러 그 제목까지도 변화되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소설 분야에서 현대적인 재창조의 하나로 등장한 <춘향전>에 대한 예시로 다음의 표118)를 제시한다.


발표

연도

작가

제목

특징

1912

이해조

『옥중화』

원전과 유사성이 많은 개작. 기생아닌 춘향을 강조 전통윤리인 열에 의한 풍속교화를 주제로 함.

1924

-5

이광수

『일설춘향전』

기생 춘향의 모습을 통해 전통윤리 부정으로서의 자유연애를 주제로 함.

1967

최인훈

『춘향뎐』

원전배경 생략․확장 비평적 의도로 창조된 패러디 작품. 춘향전의 인물들은 모구 중세의 이데올로기와 정권의 희생자로 묘사. 현실세계에서의 환상적 결말을 거부하고 비현실세계에서의 환상적 결말을 제시함.

1990

임철우

『옥중가』

사리사욕․출세․명예를 위해 변절하고, 권력에 기생하는 부패한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

1994

김주영

『외설춘향전』

표면적으로 열과 민중의 항거를 주제로 삼고 있으나 확장적 의도의 패러디 작품으로 이면적으로 원전의 주인공들을 비하하고 희화시킴으로 조롱적 의도가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림 6) 임권택 <춘향뎐> (1999)

            

 

 

 

 

 

 

 

 

 

그림7) 드라마 No춘향 vs 안몽룡(2003, MBC)

 

 

             

그림 8) 드라마 쾌걸춘향

                     (2005, kbs)

 

 

 앞에 보이는 바와 같이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자 캐릭터 중 한명인 ‘춘향’은 그동안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른 서사적 장르에서 등장해왔다.

 임권택 감독의 판소리 삼부작 중 하나인 <춘향뎐>은 ‘춘향’ 모습을 비교적 기존의 이미지에 부합하게 형상화한다. 사실, <춘향뎐>은 서사적인 면에서의 재창조라고 할 만큼의 성과는 보이지 않는데, 이는 이 영화가 <춘향가>의 서사부분을 따옴과 동시에 판소리의 제시형식을 살린, 판소리적 연출을 그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임권택 감독은 이전의 춘향을 다룬 영화들이 판소리의 특징을 살린 영화가 아니라 단시 조설 <춘향전>을 영화화한 것뿐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판소리의 특징을 살린 영화를 만들고자 하였다. 실제 영화도 조상현의 창에 영상을 입힌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취하나가 나중에는 뮤지컬의 형식을 취한다. 철저하게 판소리의 창이 우선이고 영상은 이를 뒷받침하는 경향을 띠는 것이다. 임권택의 이전 작품인 <서편제>는 판소리와 소리꾼을 담은 판소리 영화이지만, 영화를 전개하는 원리는 판소리적 미학을 구현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판소리의 미학을 구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자 하였고 그것은 <춘향뎐>에 와서 실현되었다. 판소리의 그림들을 영화적으로 살린 것이다.

 임권택은 판소리의 리듬을 카메라의 이동에 맞추었다. 판소리 리듬이라는 청각적인 속도와 카메라의 이동이라는 시각적인 속도가 함께 결합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청각적인 리듬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춘향과 몽룡의 정사 신, 변 사또의 명을 듣고 포졸들이 춘향을 잡으러 가는 장면, 춘향을 매질할 향리가 춤추듯 곤장을 고르는 장면 등은 이러한 효과가 잘 나타난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겠다. 밝은 장면에서는 조상현의 경쾌하면서도 상쾌한 소리를 배경으로 카메라 워킹 역시 최대한 리듬이 있도록 한다. 그리고 반대로 <십장가>를 부르며 춘향이 매를 맞는 장면에서는 늦은 가락과 인물들의 서글픈 움직임을 느릿느릿한 카메라 워킹으로 천천히 그려내는 것이다.

 임권택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서는 기존의 어떤 <춘향전> 보다도 판소리인 <춘향가>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이야기를 새롭게 해석하는 영화가 아니라 판소리의 리듬만 살린 영화라는 부정적인 평가가 공존한다. 임권택의 시도는 그 리듬과 흥을 중시함으로써 오히려 원전의 분방한 감정표현과는 거리가 먼 양식화한 <춘향뎐>으로 옮겨갔다고 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판소리의 리듬마저 영화 속에 담아내려 한 획기적인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방송극을 통해 ‘춘향’을 그리고자 한 가장 최근의 시도는 한국방송공사(KBS)에서 2005년에 방영한 <쾌걸춘향>이 있다. 이 드라마는 <춘향가>의 기존 캐릭터의 이름과 성격을 따왔다. 또한 드라마 말미에 매회 전통 한복을 입은 꽁트를 삽입함으로써 드라마의 발랄한 성격과 고전을 차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재인식시켰다. 또한 ‘변학도의 학정’에 대응되는 ‘변학도의 집착’ ‘춘향의 수절’에 대응되는 ‘지고지순한 춘향의 사랑’ ‘몽룡의 과거급제’에 대응되는 ‘몽룡의 사시패스’등 <춘향가>의 모티프들은 드라마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현대적 변용임에도 불구하고 21세기형 춘향, 혹은 몽룡이라고 하는 새로운 대안적 캐릭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춘향가>의 무대만 현대로 옮겼을 뿐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부재한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방영당시 고시청률을 기록했다는 점, 또한 주 시청층이 청소년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어린 세대들에게 우리 고전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는 점에서는 큰 성과라 할 만하겠다.

 반면, 그 내용적인 부분은 <쾌걸춘향>과 큰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예로 문화방송(MBC)에서 방영되었던 <No춘향 vs 안몽룡>이 있다. 이 작품은 70분 방영의 짧은 단만극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춘향’과 ‘몽룡’의 캐릭터를 ‘정절과 수절’ 의 이미지가 아닌, 성적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내어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의 대안적 사랑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시도였다 할 수 있다.


 

그림 9)

 

시무라 조지 감독, <신 암행어사> (2004)


 

한편, ‘춘향’을 모티프로 하여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사례도 있는데, <신 암행어사>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2004년 애니메이션 영화로 개봉된 시무라 조지 감독의 <신 암행서사>는 유인완이 쓰고 양경일이 그린 만화를 한국과 일본이 최초로 공동제작 한 것이다. 윤인완과 양결일은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만화가이다. 일본이 활동무대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린 만화에는 일본만화의 흥행 요소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요괴, 병기화된 인간의 몸 등은 일본 만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재이다.

 이러한 연유로 <신 암행어사>를 일본만화라고 이야기하는 독자들도 있으나, 내용 속에 살고 있는 인물과 스토리는 분명 한국의 것이다. 춘향, 몽룡, 박문수라는 인물의 이름을 비롯해, 암행어사라는 직함과 마패, 무엇보다 팬텀솔져가 한국의 하회탈을 쓴 병사들이라는 점이 한국적인 요소들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특히 팬턴솔져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의 효과는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하고, 하회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하였다.

 애니메이션 <신 암행어사> 중 <춘향가>의 내용을 수용하고 있는 부분은 전체 작품의 1/2 정도로 해당한다. <신 암행서사>는 인물과 줄거리만 보아도 원전의 내용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암행어사 박문수는 총을 들고, 청바지와 청자켓을 걸친 매우 현대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외모상으로 이미 갖추어진 영웅의 형상이지만, 그의 영혼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암행어사가 지녀야 할 약한 자를 위한 배려, 인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몽룡이라는 인물을 만남으로 인해 완벽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몽룡은 과거에 계속 낙방하고 춘향이나 암행어사를 의지하려고 하는 나양한 인물이지만, 암행어사를 기다리는 민중을 대표하기도 한다. 몽룡은 죽음을 통해 문수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춘향의 모습 역시 엄청난 변화를 보인다. 요조숙녀이자 정숙한 여인이었던 춘향의 모습은 간데없고 가릴 곳만 가린 보일 듯 말 듯한 옷차림에 거대한 기계 팔을 엄청난 속도로 붕붕 날아다니는 강한 여전사만 있을 뿐이다.

 '몽룡과 춘향의 사랑, 암행어사가 되기 위한 시험, 포악한 지배층의 학정, 춘향의 수난, 암행어사 출도‘ 등 원전의 중요한 에피소드는 전부 삽입되어 있다. 하지만 <신암행어사>의 전체를 아울러 볼 때 원전의 내용은 전반부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커다란 이야기에 삽입된 <춘향가>의 내용은 박문수와 춘향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이렇게 인물과 일부 에피소드만으로 전혀 다른 공간 세계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Ⅲ 결론을 대신하여: 판소리의 문학사적 의의와 나아갈 방향


 지금까지 판소리의 전반적인 특징과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았다. 판소리는 우리 문학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판소리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국적 특수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장르라 할 수 있다. 판소리가 그 장르를 가름하는데 있어서 논란과 명쾌하지 못한 점이 있는 것 또한 서구문학의 극 장르나 다른 장르에 대응시킬 수 없는, 한국의 판소리만이 가진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소리는 우리 문학사를 논의 하는 데 있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장르라 할 수 있겠다.

 둘째, 판소리는 조선 후기의 서민의식을 대변하는 장르이다. 한국 역사에서 17세기에서 19세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이행기로, 판소리는 이 이행기 시대에 해체되어 가는 중세의 질서 속에서 서민들의 주장과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연행물로서 판소리는 사회적 조절과 통합 기능을 수행했다. 판소리는 소리판에서 연행자와 관객(청자, 구경꾼)의 동참을 통한 혼연일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판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이 점이 무대 중심인 서양의 공연문화와 크게 다른 우리 연행물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양반집에서 판소리 연행을 하면 서민들이 몰려와 함께 그 연행을 즐겼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신분 의식을 뛰어넘는 상 ․ 하층 문화의 만남을 가능케 했다.

 한편,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이들 장르들의 서사적인 부분만을 가지고 다른 영상 ․ 공연 양식에 접목시켜 젊은 층의 관심을 이끌어내려고 했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고전 문학 컨텐츠의 개발에 대한 평가와 보안도 지속적인 논의119)가 필요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

 본고는 판소리와 민속극의 서사적 내용보다는 복합적 ․ 다층적인 그 양식에 무게를 둬 그 양식적 특징, 제시형식을 잃는다면 그 본질 또한 흐려지는 것으로 보고 판소리의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판소리가 제대로 계승되어지고 있지 않는 가장 큰 세 가지 원인을 ① 신재효와 같은 귀명창, 혹은 재능 있는 전승자의 부재, ② 오늘날의 청중 ․ 관객들의 취향에 맞지 않은 미적 감수성,  ③ 판소리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이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이들 문제는 따로 개별적으로 다루기보다는 통합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해결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고전 문학의 현대적 활용에 있어서 서사를 원형으로 하여 컨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을 변형시켜 시대의 미적 감수성에 맞는 판소리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한 시도로 임진택 등의 소리꾼이 창작 판소리를 만들어서 호응을 얻는 바도 있으며, 이른바 ‘또랑광대 콘테스트’라는 아마추어 창작 판소리 대회를 통해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사례에서 이러한 방식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사설을 짜서 제공해 줄 사람, 전통극작가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판소리의 경우 과거에 흥했던 이유에 있어서 광대의 몫도 크지만 광대들에게 사설을 짜서 제공하는 귀명창들의 몫도 무시할 수 없었다. 더늠형 사설을 짜서 광대들에게 제공하고, 기존의 사설들을 변형시켜서 광대들로 하여금 자신의 더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귀명창들이 존재했기에 판소리는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전통 판소리 경연대회 일색으로 되어 있는 판소리 대회 형태를 창작 판소리를 아우르는 판소리 대회로 확대하고, 소리 대회 뿐 아니라 창작 판소리 사설 공모대회 등이 활성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판소리가 다음세대, 또 그 다음세대에 남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들 대부터의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국정 교과서는 판소리의 비중을 너무 적게 다루고 있다. 또한 교육과정에 있어도 입시위주의 교육 아래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구비 문학, 판소리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대전제 아래에서 교육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런 전통 문학 ․  예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교육기관도 절실히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우리 고유의 민간 예술인 판소리는 역사적으로 높은 예술성과 상 · 하의 계층을 폭넓게 포용하는 성과를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그 명맥조차 간간히 이어갈 정도로 그 존속의 위기에 처해있다. 문화는 지키고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롭게 창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꺼져가는 판소리의 생명력에 다시 불을 지피고 그 명맥을 이어가는 데 있어, 과거의 판소리 문화를 지켜가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판소리문화를 창달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21세기 판소리가 짊어져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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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가작 수상소감>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겠습니다.

제가 덕성에서 울고 웃은 지도 어느덧 사년이라는 세월조차 훌쩍 뛰어넘어 오년이 다 되어갑니다. 판소리를 제대로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학 일학년 때였습니다. 전공과목에서 선생님께서 마련해주신 기회를 통해서 보게 된 판소리 공연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서양의 공연예술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형태의 ‘교감’이 판소리에는 있었습니다. 창자와 고수, 청중의 구분 없이 판에 참여하는 이들이 공동의 공간에서 소리를 공유하며 즐긴다는 점이 저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그 동안 판소리에 대해 선생님들께 배워 온 것들을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리하고 싶다는 명분으로 쓴 부족한 글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기쁨보다는 저 자신이 알고 있는 원고의 부족함 때문에 부끄러움이 앞섭니다. 이 아쉬움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욱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해 나가자고 저 자신에게 되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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