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당선작> 그 이름
<제36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당선작> 그 이름
  • 위나윤(회계 07)
  • 승인 2010.11.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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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친구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한 책에서 말하기를, sex and the city를 보고 가장 놀라웠던 것은 한낱 칼럼작가가 어떻게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다니는지가 아니라 사회에 나온 성인여성들이 어떻게 매주 토요일마다 브런치를 먹기 위해 모일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그 책을 읽었던 갓 스무살을 넘긴 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점이었다. 그 무렵은 밤을 새면서 시험공부를 하고 오늘 야식으론 무엇을 시켜먹을까를 고민할 때였다. 시험이 끝나면 어느 패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할까, 어떻게 화장을 하고 어떤 구두를 신을까하고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그 남자는 어때, 이 남자는 어때 서로의 연애를 지도해주고 그러한 것이 일상이어서 매주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며 원하던 원치 않았던 항상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을 보면서 같이 웃고 함께 하면 즐겁고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을 가졌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유로 다투고 화해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신기하게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보다도 내 일상 하나하나를 알고 있는 매일 보는 사람에게 할 이야기가 더 많기에 그들에게 내 사소한 일상을 전하는 게 편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기에, 그렇게 서로를 낱낱이 알았기에 친구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았다. 가족만이 세상의 전부였던 내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 곳에는 친구가 전부였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휴학하고 회사를 다녀보니 참 많이도 다르다. 기다리던 약속이 깨어지고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의도하지 않았던 만남들이 우정의 거품을 만들어 버린 것일까. 굳이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지 않으면 만날 수 없게 되자 많은 친구들이 사라져갔다. 그 순간에 혼란이 찾아왔다. 같은 반, 같은 학교라는 울타리가 사라지고 사회에 내던져지자 오롯이 나 혼자만 서있었다. 경계선이 사라지자 헷갈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누구부터 누구까지 내 친구일까. 마음속의 경계선은 철저히 장소로 인해 규정되어 있었던 것인지 허허벌판이 되자 모든 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제야 친구관계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와 친구를 지켜주던 담장이 사라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매주 같은 인원이 만남을 갖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도.
각자의 삶이 바빠서, 남자친구가 생겨서, 언제까지 놀 수는 없는 것이라서. 다양한 이유가 생기고 자기 자신을 돌 볼 시간이 필요하고 늘어날수록 친구와 교류하는 시간은 없어지는 걸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준비하려면 친구와 보내던 시간을 줄여야하는 거니까. 줄곧 함께하였으니까 더 많이 보고 싶은 남자친구를 만나야 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우리는 이제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 인생을 스스로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세상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친구가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아니면 친구란 오랜만에 만나도 한결같을 수 있는 관계일까. 지금 당장 보지 않아도, 급한 일을 모두 정리하고 난 후에도 만날 수 있으니까. 만나지 않는 시간이 예전보다 훨씬 길어졌지만 여태까지 함께 보낸 시간을 기억하고 있으니까. 바쁜 삶 속에서 잊고 살다가도 문득 힘든 일에 마주하였을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친구라 모든 것을 이해하고 기다려야 하는 걸까.
어떤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어떤 것이 옳은 건지 모르겠다. 힘들 때면 생각나는, 힘들 때만 생각나는, 그리고 일상 앞에 또 다시 지워지는 존재일까. 기쁨은 함께 나누지 못하고 슬픔만 함께 나눠도 충분한 건지. 그마저도 점점 어려워져 서로가 여유 있을 때만 만나게 되고 소소한 일상을 나누기보단 한숨 돌리고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만 찾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친구' 라는 이름 앞에 다시 사르륵 녹는다. 술에 취해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공부할 때 내 음료수까지 챙겨주는 사람이, 사소한 버릇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내 친구이기에. 당연하게도 뜸한 연락이 서운한 이유는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이었던 그들을 그리며 기다리고 있기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상처 입힐 수 없으니까, 여전히 그들은 내 소중한 친구이니까. 그리고 서운하다고 칭얼거리는 나 또한 다른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내 세상도 그들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아니라서, 나도 그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가끔 친구라는 이름하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라게 된다. best friend를 찾으며 누가 나의 최고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했다. 모든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그리고는 기대했다. 내 노력의 정도를 내가 너무도 잘 알아서 그들에게 최고가 되면 그들 또한 내게 최고가 되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것은 공부밖에 없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주었는데, 그들은 내게 그러지 않았다. 내게 돌아온 일부를 보고 실망하기 시작했고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최고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주었던 나의 전부는 그들에겐 일부일지도 몰랐다. 나조차도 그들에게 전부를 내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내 멋대로 나의 마음을 주고, 그것을 최고라고 생각하고 똑같은 것을 돌려받기를 기대하였다.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던 것은 나였다. 그리고 이제는 잊기로 했다. 내 노력의 크기를 재어서 그대로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는다. 굳이 최고가 아니어도 그들은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수필 가작 당선작 수상소감> 자라는 나를 위한 상

잠을 자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알람이 귀찮아서 눈을 떴다, 감았다. 핸드폰을 만지고 내려놓고를 반복하고 있는데 다른 벨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이 확 깼다. 덕성여대 신문사라는 말을 듣고, 기대해온 것을 바라며 정신이 들었다. ‘감사합니다’를 연달아 말하고는 신나서 뛰어다녔다. 두 손을 모아서 주님 짱을 외쳤다.
가족과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고 축하를 받고. 상을 받는다는 것이, 글이 실린다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조금 창피하지만 좋아죽겠다. 욕심났지만 아쉽기만 한 글이기에, 그렇기에 자라고 있는 지금의 나와 내 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받을 상들과 앞날을 기대하고 그릴 수 있는 시작을 주셔서 감사하다. 또 한창 땅을 파고 있던 시기를 글로 쓴 것이라 모든 게 다 고맙다. 미치도록 힘들었던 그 때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수없이 많은 소중한 사람들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지나왔기에 말할 수 있다. 고마워요,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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