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아닌 어느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학교가 아닌 어느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 김창현 음악 칼럼니스트
  • 승인 2010.11.2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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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어떤 날II] (1989/서울음반)
   이번 주제를 받는 순간 반사적으로 <출발>이 머리 속에서 떠올랐다. 경쾌한 비트에 하모니카 반주로 시작되는 이 곡은 가사 그대로 ‘훌쩍 떠남’을 노래하고 있고 그들의 트레이드마크인 풋풋함과 위트와 재치가 그대로 담긴 곡이다. “하루하루 내가 무얼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거진 엇비슷한 의식주로 나는 만족하더군. 은근히 자라난 나의 손톱을 보니 난 뭔가 달라져가고 여위어가는 너의 모습을 보니 너도 뭔가 음. 꿈을 꾸고 사랑하고 즐거웠던 수많은 날들이 항상 아득하게 기억에 남아 멍한 웃음을 짓게 하네. 그래 멀리 떠나자. 외로움을 지워보자. 그래 멀리 떠나자. 그리움을 만나보자.”
   어떤날의 노래는 <출발>처럼 순박한 소년의 감수성을 담고 있으며 세련된 편곡과 감성적인 멜로디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8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말까지 두 장의 음반만을 발표했다. 활동은 미미했지만 80년대 대중음악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중요한 듀오이며 많은 후배들에게 영감을 줬다. 암울했던 80년대 대중음악신에서 저항과 투쟁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감정들을 담백하게 옮긴 그들의 곡들은 이단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독보적이며 시대를 앞서갔다. 그렇기에 어떤날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아쉽게도 이들의 활동은 90년대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송라이터 조동익은 솔로활동을, 이병우는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이병우는 귀국 후 영화 ‘왕의 남자’ ‘괴물’ 등의 음악을 맡으며 영화음악 제작자로서 활동 중이고 실용음악과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이병우는 어떤날을 들으며 음악을 꿈꿔왔다는 김동률, 이적과 함께 무대에 오르며 어떤날의 노래를 연주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세션의 면면을 떠나 어떤날의 음악이 관객 앞에 연주된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무대체질이 아니었던 그들의 성격과 당시 미미했던 인지도로 무대를 갖지 못했던 것.
   <초생달> <그런날에는> 등 주옥같은 곡들을 수록하고 있는 마지막 정규작인 이 앨범은 데뷔작과 함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1월 그 저녁에>는 지금 들으면 감흥이 배가될 곡이다. 훌쩍 떠나고 싶은데 주머니의 여유도,  시간도 없다면 이 음반의 커버를 가만히 바라보자. 하얀 여백에 꾸밈없이 씌여진 낙서같은 타이포, 로모톤의 하얀 겨울, 탁 트인 길을 보노라면 어느 순간 새하얗게 마음을 비우고 떠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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