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사랑에도 때론 환상이 필요하다.
레드-사랑에도 때론 환상이 필요하다.
  • 김경희 독서위원
  • 승인 2003.11.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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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읽었다.
“지난날에는 하루만 만나지 않아도 견딜 수 없을 만큼 사랑했던 여자를 지금은 다시 만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야말로 그보다 무서운 비극은 없소. 사랑에 있어 진짜 비극은 무관심입니다.”
 책 장을 막 덮었을 당시에는 아름답긴 하나 허무적 성향이 짙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 목메고 요란 떨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의 부질없음이 그저 슬프게만 다가왔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다른 맛이 나는 소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미남이었던 젊은 날의 레드와 갓 열 여섯 나이의 향기로운 처녀. 그들은 한 쌍의 어린애와 같이 사랑했다. 행복한 연애에는 역사가 없는 것이라는 말처럼 행복에 겹고 사랑에 겨워 짧은 날들을 보냈다.  두 젊은 연인의 이별 후 샐리는 우리네 망부석 설화 속 여인네처럼 한결 같이 레드를 기다린다. 실제 그들의 젊은 날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사람에겐 어느 정도 과거를 미화시키는 경향도 있는 법. 샐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설령 그것이 환상을 쫓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괴로워한 30년을 흘려보낸 뒤 술 냄새 나는 비위거슬리는 뚱보 백인과 토인 노파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 한다.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쉰다.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노파의 환상이 지독한 낭비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설령 그녀가 스스로가 만든 환상에 갇혀 살았다 한들 젊은 날 레드를 그리며 행복해 했을 그녀를 생각하면 때론 환상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오지도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이나 ‘진짜’라는 것들에 대해 환상을 좀 품으면 어떤가? 때론 그러한 환상이 이 각박한 세상의 숨통을 터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훗날의 너무나도 변해 버린 레드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고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온 그녀 자신을 책망하는 것 보다는 설령 환상을 품었다 한들 ‘기다린다는 것’ 그 ‘과정’이 행복을 주고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면 이 역시도 다행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녀의 추억 속의 아름다움이 영원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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