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수필,꽁트,동화부문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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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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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행복한 터널

 고통 이라는 행복한 터널

  대학이란 곳을 온 이후부터 내게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학창시절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되돌아보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들로 채워져 있음을 본다.
그 시절 고민이라 함은 주로 성적에 관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 외의 고민들도 있었겠지만, 그것들보단 입시를 치르기 위해 겪어야 했던 수많은 전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엔 공부 이외에도 고민할 것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음을...
직장이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분명 또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생각이라는 걸 하게되는 그 순간부터 고민이라는 걸 하게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우리는 기나긴 삶의 전투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쉽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행이 자주 겹쳤던 사람이었다.
한 손을 잃은 사람이 두 손을 잃은 사람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 또 두 손을 잃은 사람은 의식불명의 식물인간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면, 그 식물인간은 누굴 보며 위안을 얻을까 ?
누군가와 비교해서 위안거리를 찾기 시작한다면 마지막 비교대상이 되는 너무나도 운이 없는 그 사람은 과연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는 곧 고통의 서열화 를 시키는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델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고통을 객관화 했을 때, 분명 '부' (富)라는 것은 행복이란 영역과 가까워야하지만, 간혹 신문기사에서 행복지수와 그것은 확실한 상관관계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쯤에서 고통이란 것은 자신의 승인 없이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성질을 갖고있단 생각이 든다.
행복하다는 것 ,즐겁다는 것에 대한 명백한 사용설명서가 없는 셈이다. 그런 설명서가 있었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이미 그 사용설명서를 구입해서 마냥 행복해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살면서 단 한번도 슬프거나 힘든 적이 없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통이 인간의 원죄 때문이건, 인생사 는 모두 고통으로 채워질 수 밖에 없다는 진리 때문이건 고통은 숨이 붙어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까 ?
필자가 나름대로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더더욱 터널 저쪽의 햇빛과 멀어지게 했던 생각은 고통의 원인을 찾아 헤맬 때였다.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 라는 질문에 매달릴 때였다.
머리가 컸다고 나름대로 고통의 원인을 규명하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될 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삶 자체를 내 머릿속으로 이해하려는 오만했던 생각이 사라졌을 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는 자연에 대해 정복욕구를 가졌던 서구의 지나친 합리주의 , 이성주의에 대한 반성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또한 고통 이라고 규정짓는 것 자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에 기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들이 이렇게 하니까,, 남들은 이렇게 살고있는데,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수많은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한 데서 기인하고있음을 본다.
  그렇다면 고통은 우리에게 항상 나쁘기만 할까 ?
고통의 터널을 건넌 듯한 지금 나는 예전의 나와 조금 달라졌다.
풍랑이 일어 어부는 배를 띄울 수 없지만, 그 풍랑은 바다 속 생물들에겐 꼭 필요한 작업이고, 썩은 이를 뽑아내는 것은 치아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며, 따스한 햇살 뿐 아니라, 폭풍우 역시 열매를 얻기 위해 꼭 필요하다.
시련의 아픔을 알기에 친구의 시련에 같이 가슴아파해 줄 수 있고, 또 다른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 사랑에 감사할 수 있다.
또 시련의 상처를 서로 감싸주다가 우정이 돈독해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지금 당장 아프니까 고통이라 생각한다면 너무 조급한 것 아닐까?
지금 당장 아프지만 그것이 훗날의 행복을 위한 통과의례라 조금 멀리 내다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항상 햇빛이 비추는 날만 계속된다면 지루하지 않을까 ?
다양성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은 대단히 크다.
항상 단정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선보인 디자이너 샤넬은 정작 자신의 집을 호화스럽고 화려한 스타일로 꾸몄다.
만일, 자신의 집까지 일관되게 깔끔한 스타일로 꾸몄다며 지루해 미쳤을 지도 모른다.
만일, 내일 죽는다고 한다면 모두들 맘이 조급해 질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해 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많은데 아직 해야할 일이 너무 많은데 라고 말하는 것은 제한된 자신의 경험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여러 경험을 해 보는 것, 우물안 개구리가 되지 않는 것 모두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함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고통이란 것은 다양성 이란 측면에서 우리 인생에 기여하고 있다.
고통이 다가올 때 조금 떨어져서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재점검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
  고통의 원인규명을 포기하는 것이 편하지만, 이는 인생자체를 포기하란 것은 아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감사히 여기며 살기 위해  또 이 세상의 소풍을 좀 더 즐기기 위함이다.
고통은 엄연히 존재해 있다.
죽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 터널을 빗겨갈 수는 없다.
다만, 지루했던 평지를 벗어나게 해준 그 터널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 분명 햇빛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 그간 햇빛에 노출된 얼굴을 식혀 줄 수 있는 시원한 그늘로  느낄 수 있게 되면 더 좋겠다는 것이다.
정신력으로 꿋꿋이 터널을 지날 수도 있겠지만 이왕 지날 터널인데 즐겁게 지나는 것이 남는 장사 아닐까?
이렇게 터널을 지나는 동안 앞서 언급한 뜻밖의 수확도 거둘 수 있음은 물론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터널,, 당신은 어떻게 지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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