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개를 지키려 자결을 종용하는 칼, 은장도
절개를 지키려 자결을 종용하는 칼, 은장도
  • 이민정 기자
  • 승인 2011.01.0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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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사대부가의 며느리가 늦은 밤길을 걷다 괴한들에 의해 위협당할 때 벽에 몰린 그녀의 품에서 작은 물건이 반짝인다. 손바닥 길이를 넘지 않는 작은 칼. 은으로 만들어져 장신구라고 여겨도 별 무리가 없을 그 칼의 명칭은 바로 ‘은장도’다.  
  은장도는 원래 고려시대에 시작돼 조선시대에 보편화된 칼을 차는 풍습에서 비롯된 수많은 종류의 도(刀)중 한 종류다. 길이부터 용도까지 쓰임새가 다양한 칼들의 종류는 차는 부위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다. 부녀자들이 노리개의 용도로 옷고름에 차는 것은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닌 것은 낭도(囊刀)라고 한다. 패도의 크기는 큰 것이 전장 5치(약 15cm), 도신 3치(약 9cm) 정도이고, 작은 것은 전장 3치, 도신 1.5치 정도다. 낭도의 경우 작은 패도와 크기가 같다. 은장도의 재료는 은으로 되어있고 도신부분은 강철이다. 또한 세종실록에 따르면 “칼집의 조각은 도은(鍍銀)을 하는데, 그 사이는 붉은색·녹색의 채색을 칠한다”고 명시돼있다.
  은장도는 앞에 나열했던 외관에 대한 설명이 없이도 쉽게 모양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다. 이것은 여성의 정절을 뜻하는 상징물이며 그 정절을 잃을 위기에 처했을 경우, 두 눈을 질끈 감고 가슴팍에 칼날을 찔러 넣는 것은 하나의 이미지로 우리 안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핏 당연하다는 듯이 고정된 이 이미지는 자세히 살펴보면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어째서 칼을 ‘상대방’이 아닌 ‘자신’에게 쓰는 것일까? 장식품으로서의 기능이 더 두드러진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칼의 용도는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은장도의 쓰임새는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에 있다.
  또 한 가지, 은장도는 사실 남녀공용의 물품이다. 여성의 전유물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은장도는 선비를 상징하는 다섯 가지 물품 중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남성들이 즐겨 가지고 다닌 물건이다. 또한 ‘정절’은 비단 여성의 정절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임금에게 지켜야 할 정절 역시 포함한다. 하지만 조선 중기에 들어온 성리학으로 인해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여성의 지위는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버려야 할 만큼 하락하고 만다. 여성의 태도 역시 적극적인 것에서 수동적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은장도의 쓰임새도 상대방이 아닌 자신을 파괴하는 ‘수동적’ 도구로 굳어진 것이다. 원래의 은장도가 노리개나 호신용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 물건의 개념을 어떻게 바꿔놓는지를 잘 시사하는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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