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시부문 우수작
학술문예상 시부문 우수작
  • 홍성희(영문.01)
  • 승인 2003.11.23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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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외 2편
 

아버지

 

 

세상에는 녹슬지 않아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목 터지게 소리 질러야 하는 때가 꼭 한번은 있음인가요.

꽃을 버리는 나무의 격한 향기와 함께 아침마다 벼들은 무참히 쓰러졌습니다.

성성한 새벽 노을을 손에 묻힌 채 땅 깊은 곳에 어둠을 퍼올리던 삽 한 자루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살 없는 죽은 논 그 흙물에 서늘히 젖어 계셨습니다.

왜 논바닥에 머리를 박고서도 그리 섧게 우는지 우리는 촛불처럼 떨리는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일부러 지붕 새는 얘기만 꺼내시고

어찌 제 목숨만 건지려 하시는지요.

죄 없이 약한 저희더러 누굴 용서하라 하시나요.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하지 마세요.

소작인으로 기대 살지라도 더욱 아름다운 갈대처럼 살아 온 당신이었습니다.

어둠 속에서는 오히려 하늘이 보입니다.

구름 밖에도 구름이 있고 하늘 밖에도 하늘이 있습니다.

바위틈에서 솟는 약수처럼 가슴 뚫으며 살아 지켜야 할 이 땅이 있습니다.

다음 올 그 푸른빛 봄을 당신은 또 보지 않나요.

살찬 당신을 믿습니다.

 

 

 

 

 

 

 

 

겨울

 

 

문풍지 찢고 드는 바람소리, 건조한 바람이 며칠씩 머물다 갑니다.

가을 서리 겨울 된 바람에 머리 날리자 쓰리고 아픈 기억들 하나씩 떠오릅니다.

한 평생을 살아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슴 속에 묻어두고 달 그늘에 감춰두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상처가 굳어서 비로소 위로가 됨을 잊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습니까.

비 맞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새로울 수 있습니까.

잃지 않고 얻는 것 없고 마지막에는 그것마저 버리게 됩니다.

구름이 머문 자리처럼 결국엔 깨끗이 비워집니다.

 

우리가 싸우는 동안에도 들에는 눈꽃이 하얗게 피어납니다.

하얀 꽃 핀 것을 혼자 바라보는 동안 밤이 왔습니다.

어둔 구름 너머로 초승달이 들락날락합니다.

어둠 속에서도 길 찾아 흐르는 구름이, 저 달이 있습니다.

난초 잎이 가리키는 남쪽 산 나뭇가지 맨 위쪽 가지들.

내려다 보겠습니다.

나 절망케 한 것을 두려워만 않기로

험한 기슭을 무서워하지 않는 나무처럼

산맥 앞에서도, 찬바람 앞에서도, 끝내 멈추기 않기로 다짐해 봅니다.

 

 

 

 

 

 

지붕 아래

 

 

빨간 감들이 지붕을 누르고 열렸습니다.

그런데 아직 그늘 속에 평생 한 번 피지 못한 꽃도 있습니다.

우리 사는 집 지붕 위에 해 떴지만, 지붕 아래는 아닙니다.

슬픔과 아우성에 오랜 가뭄이 지나도 가을이 오지 않습니다.

거칠고 센 목소리로 말해야만 알아듣는 것은 아닌데

꽃 같은 사람들 이제는 살게 할 일이지

또 한 번 툭 소리없이 지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짐 자전거 바퀴 위에서 굴러가고 있습니다.

허나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거운 흙 아래로 그렇게 걸어 내려가면

그렇게 아래로 깊어져 가는 뿌리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깊어져 가면 꽃 한 송이씩 밀어올릴 수 있는 힘이 생길 겁니다.

이 길에 쓰러진 뒤에라도

마음만은 말을 타고 삼 만리를 갈 수 있는 힘을 얻을 것 같습니다.

 

깊은 물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는 물고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야 말로 가난이 넉넉한 재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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