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적 관점에서 본 성(性) 차이와 불균형
예술사적 관점에서 본 성(性) 차이와 불균형
  • 홍경한 미술평론가, 월간 <퍼블릭아트> 편집장
  • 승인 2011.03.0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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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보여줄 장이 없었다
 위대한 고대 철학자들 중에 여성의 이름은 없다. 당시만 해도 철학하는 여성은 조롱의 대상이었고 그나마 낙타구멍 같은 길도 원천적으로 봉쇄됐다. 물론 어쩌다 한 명, 예를 들어 4세기경 ‘히파티아’라는 신(新)플라톤파의 대표적 여성 철학자 같은 이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결과는 대개 불행했다. 히파티아 역시 이교도로 누명 씌워져 그리스도교들에게 참살 당했다. 근대 여성 또한 당당히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내세울 수 있는 길이 매우 협소했다. “남성은 넓고 큰 가슴과 작은 엉덩이를 가졌기에 여성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여성은 작고 좁은 가슴, 넓은 엉덩이를 가졌으므로 얌전히 집을 지키고 아이들을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극단적 발언이 수용되던 16~17세기 와 마찬가지로 18~19세기 여성들 또한 사회적, 문화적 입지를 용납 받지 못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습적 성별 이데올로기로 인해 그들은 제 이름 석자조차 기록할 장이 없었으며, 이는 가장 창의적이고 전위적이라는 문학, 예술에서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시대적 편견으로 지워낸 여성의 기록
 한 사례로 ‘샬롯 브론테’와 같은 여성 작가들은 남성 필명을 사용했다. 심지어 <오만과 편견>,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의 주옥같은 저서를 남긴 ‘제인 오스틴’은 살아생전 자신의 책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가 이름을 되찾은 건 그가 사망하고 난 다음의 일이다. 미술에서도 여성은 꽤 긴 시간 열등자로 분류되었다. 실제로 1962년 발행된 잰슨(H. W. Janson)의 <서양미술사>에는 당시까지 여성 작가가 단 한 명도 등재되지 않았다. 미술계 현실에서도 여성들은 찬밥이곤 했다. 그들은 누드모델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누드모델을 보며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인상파 화가 ‘로트렉’과 ‘르느와르’의 연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수잔 발라동’이나 ‘모딜리아니’의 부인인 ‘잔느 에뷔테른느’ 등이 적절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들 역시 화가였지만 지금까지도 남성의 ‘장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래도 열외는 있었다. ‘에드가 드가’는 여성을 싫어했음에도 여성 작가들을 동등하게 제도권에 입성시키려 했고 18세기 화가 ‘엘리자베스 루이즈 비제 르브룅’ ‘베리트 모리조’ ‘메사케사트’ ‘프리다 칼로’ ‘까미유 끌로델’ 등은 여성들의 사상이나 미학보다 사생활에 더욱 호기심을 갖던 당시 남성적 제도와 인식, 성차별의 장벽을 실력으로 깨부수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여성들의 지식이란 책을 읽어서라기보다는 주로 보고 듣는 것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라 했던 사상가 ‘장자크 루소’의 발언이 말해주듯, 여성에 대한 편견과 폄하가 다분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처럼 20세기 초까지도 여성은 동서고금, 사회, 정치, 문화, 예술, 교육 등의 장르와 분야를 막론하고 상당한 부분에서 배척되었다. 허나 생각해보면 성(性) 차이와 이 차이를 근거로 한 사회 속에서의 폭 넓은 구조적 성적 불평등이 사실은 여성의 실제 능력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여성이 지닌 신체적 차이와 교육에서의 배척 등을 철학, 인문, 예술, 사회로 확대해석한 남성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인식과, 그 인식을 토대로 형성된 시대적 편견이 궁극적으로는 여성을 ‘기록’에서 지워내도록 한 원인이 되었다는 게 옳다.

‘여성성’에 저항하라
 오늘날에 이르러 더 이상 남성, 여성의 성적 이데올로기적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1990년대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샀던 페미니즘 열기가 더해지면서 오늘날의 여성은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으며 동시대엔 ‘알파걸’과 같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사회 각계각층을 포함해 문화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만큼 신장을 이뤘다. 여성문학과 여성문학론은 21세기 초반 이후 창작과 비평에서 두루 인기 있는 화두로 자리 잡았고, 미술에서 역시 ‘신디 셔먼’, ‘트레이시 에민’과 같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 작가들이 대범하고 이지적인 작품으로 주목 받는 등 갈수록 그 입지는 탄탄해지고 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여성들의 공이 컸다. 지난 몇 백 년 동안 그들은 ‘인간적 권리 주체’로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제도와 관념적 편견에 부단히 맞섰다. 현재의 여성들이 당당히 자신들의 자아를 내보이고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이들의 노력에 기인한다 해도 그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차이를 기반으로 한 불평등의 잔재는 완전히 전소되지 않았다. 예술의 경우 아직도 작품 제작에는 여성의 영역과 남성의 영역이 나눠져 있으며, ‘여성의 섬세함’, ‘여성 특유의’, ‘마초적인’ 등과 같은 표현 등을 통해 곧잘 분류되곤 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편견 인식의 근본이 되는 ‘여성성’에 대해 정작 여성들조차 무저항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여성성이라는 것은 다분히 인습적인 개념이며 앞서 설명한 역사 속에서 잉태된 가부장적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정의이지만 여성들마저 이에 관한 이의 제기나 담론 형성에 주저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을 생태적 관점으로 구분 짓는 일부 ‘찌질한’ 남성 중심, 제도 중심으로부터의 독립에 앞서 그들 스스로 심각한 고찰을 요하고 있음을 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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