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안했다. 그리고 믿을 수가 없었다. '저요? 지금 저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 사람이 무슨 장난을 치나,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왜 이러시는 건가요, 내게.
나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의 심정이었다. 오늘 이상하게 돈이 잘 벌리네, 그런데 왜 이렇게 집에 가기 싫은 걸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자꾸 발길이 다른 데로 가네, 아내가 먹고 싶어하는 설렁탕도 이제 사줄 수가 있는데, 근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걸까, 집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내게 이렇게 좋은 일이 생긴 것은 더 안 좋은 일이 생기려는 무슨 신호 같은 것은 아닐까, 내가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이렇게 집에 가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나는 너무 불안해서 누구에게 당선 소식을 말도 못하고 애꿎은 일기장에 낙서만 했다. 이건 아닌데, 내가 바란 건 이게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기려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말대로 필요이상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직도 나는 당선소식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마치 알아서는 안 되는 국가기밀이라도 알아 버린 것처럼,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고 말하지 못해서 죽을 것 같은 이발사의 심정으로 이렇게 소감문을 쓰고 있다. 소감문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누군가의 몫을 가로챈 것은 아닐까,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꾸 오타를 내고 있다.
처음으로 내가 소설이라는 것을 끝까지 다 써낼 수 있었던 것은 소설 속의 그녀가 현실에서 끝없는 충고와 위로와 약간의 알콜로 내 옆에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내가 소설을 써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며 나는 순간 나의 유일한 후원자였던 그녀가 보고 싶어진다.
어느 소감문에나 늘 나오는 구절처럼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질로 알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연습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다. 어쨌든 내가 소설을 쓸 동기를 마련해 준 소설 속의 그녀와 모 교수님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이 글을 끝마치는 이 순간도 나는 불안해서 손이 떨린다.
저작권자 © 덕성여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