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의무
기억할 의무
  • 이상분(사학 96) 동문
  • 승인 2011.03.21 14: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간의 가장 순수한 양심과 진리란 것은 불편한 것이다. 정의와 평등, 자유, 민주라는 가치는 세상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이상이지만 그것이 사회에 제대로 뿌리내리기위해 지금까지 역사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며 나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걸 알기 때문에 그 가치 앞에 섰을 때 불편해하고 어려워한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7년 덕성의 상황이 꼭 그랬다.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던 시절, 박원국 이사장의 비민주적인 전횡으로 ‘민주’ ‘정의’가 실종되고 없었던 그 때 한상권 교수님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재임용에 탈락했다. 내가 갓 2학년이 되어 한국사 수업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을 때 벌어진 사태였다. 이후 한 교수의 복직투쟁은 사학비리의 원흉 박원국 이사장을 몰아내고 덕성의 민주화뿐 아니라 사학비리로 얼룩진 전국 대학의 교육 민주화에 길을 여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당시 거리선전전, 교육부 항의방문, 구재단 이사진 항의방문 등으로 한 교수님의 복직투쟁을 한 선후배들과의 연대감이 주는 경이로움과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는 정의의 힘을 체험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편으론 사학계가 박원국같은 세력으로 이 사회에 먹이사슬처럼 구조화 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거대한 벽 앞에 마주선 것 같았던 막막함 또한 남아있다. 현실의 모순에 처음으로 마주하며 느꼈던 나의 고민과 감정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기억 위에서 살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대학은 더 이상 사유하고 실천하는 학문의 장이 아닌 취업을 위해 높은 성적을 받고, 학위를 따기 위한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더 이상 사유와 저항과 실천의 학문을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려 하지도 않는다고. 얼마 전 있었던 홍대 미화원 아주머니들이 해고로 인해 기본 생존권으로 투쟁하는 것을 두고 학생들이 “면학분위기를 망친다”고 했던 사건이 바로 그런 일면을 보여준다.
홍대 학생들과 같은 무지와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무지와 무관심은 그 자체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몰상식의 자양분이며 박원국 이사장과 같은 세력이 뻔뻔하게 다시 돌아오게 하는 토양이 된다.
아우슈비츠 사건보다 무서운 것은 아우슈비츠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것은 되풀이하지 말아야할 역사를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 한상권 교수님께서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란 책을 통해 덕성인과 위태로운 이 대한민국에 전하고자 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은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반드시 기억할 의무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