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 속 대한제국, 환구단
고층빌딩 속 대한제국, 환구단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1.03.28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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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서울을 찾아서 3

 환구단? 원구단? 황궁우? 분명 같은 곳인데 이름이 많아 찾아가기가 애매한 곳이다. 어느 지도에는 환구단, 어느 표지판에는 황궁우. 이름도 복잡하지만 이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까닭은 따로 있다. 각종 이름난 호텔들, 백화점, 대기업 건물들이 너도나도 하늘을 찌를 듯이 으스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는 대한제국 당시보다 훨씬 축소되어 고층빌딩들 사이에 파묻힌 진흙 속 진주 같은 환구단이 있다. 

소공동에 앉아있는 팔각정
 서울시 중구 소공동 87-1번지, 번지르르한 외관에 콧대 높은 서양인들이 끌고 가는 가방소리마저 우아한 조선호텔 뒤편에 대한제국 시대의 제단인 환구단이 있다. 높은 건물에 둘러싸인 데다 수많은 창에 햇빛마저 반사돼 번쩍이는 탓에 환구단은 다른 건물들이 서있을 때 앉아있는 것처럼 감춰져 있었다.
 이곳은 이름이 세 개나 있어 참 모호한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환구단 보다는 원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환’이라는 한자가 ‘환’과 ‘원’ 두 가지 음을 가졌기 때문에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종실록>과 1897년 10월 12일자 독립신문에 ‘환구단’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근거로 정식 명칭을 환구단으로 정했다. 그러나 1897년 10월 5일, 7일자 독립신문에는 ‘원구’라고 표기돼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다.
 ‘황궁우(皇穹宇)’는 환구단 터 중 일제의 훼손을 피해 현재 유일하게 남은 3층 팔각정 건축물을 이른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환구단 터 안의 황궁우인 것이다. 일제에 의해 헐린 환구단의 다른 건물은 조선호텔 아래에서 흔적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늘을 향해 스스로 황제에 오르다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하늘에 제를 올릴 때는 둥근 단을 쌓는다고 해서 원단이나 원구단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는 고려 성종 2년에 환구단 제사를 처음 시행하여 그 뒤로 설치와 폐지를 반복했다. 조선 세조 2년(1456)에 잠시 부활했으나 8년 만에 다시 중단됐다. 다시 환구단을 쌓은 것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소공동의 환구단은 고종이 하늘에 제를 지내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곳이다. 지금은 죽은 이의 사진이나 지방을 모시는 곳인 황궁우와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만든 석고(돌북)만이 남아있다. 일제 침략 이전, 환구단 전경을 찍은 옛 사진을 보면 환구단은 현재의 몇 배는 될 듯한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중국의 천단공원에 있다는 환구단과 비등해 보일 정도다.
 조선의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지어진 환구단을 일제는 허물어 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철도호텔과 반도호텔 등을 지었다. 1911년부터는 환구단을 조선총독부에서 관리했는데 일제의 만행이 이곳까지 미친 것이다. 조선철도호텔은 완공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고, 1938년에 지상 8층으로 지어진 반도호텔은 1953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환구단이 자리한 곳이 고종이 살던 덕수궁 앞인 데다 맞은편에는 경성부청사(현 서울시청)와 조선은행(현 한국은행)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제국을 파괴하기에 좋은 곳으로 생각돼 환구단 터에는 당시 최고의 시설이 구비된 호텔들이 들어선 것이다.

 뒷마당으로 전락한 제국의 상징
 환구단은 2009년 초까지 소공동 조선호텔 내에 황궁우와 석고, 그리고 세 개의 아치가 있는 석조 대문만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조선호텔의 뒷마당쯤으로 생각되는지 흑백의 자갈들을 깔아놓고 환구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공폭포를 만들어 놓았다. 한 줄 역사조차 고려하지 않은 괴상한 조합이다. 아직 날이 추워 폭포에 물조차 흐르지 않으니 더욱 환구단과의 조화는 되지 않는데다 주변 쓰레기 때문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석고는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빗물을 다 받아내고 있었다. 
 환구단을 둘러보는 동안 다른 이의 발자국 소리 조차 듣지 못해 환구단 아래로 지나가는 행인을 잡고 물어보니 “환구단이 무엇인지도 어디있는지도 모른다”는 대답만 남길 뿐. 좁은 공간에 혼자 앉은 경비원만이 멍하니 고층건물들에 가려 볕도 받지 못하는 환구단을 홀로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중구구청에서 실시하는 화재방지 소화기 검사를 매달 받은 흔적이 황궁우 곳곳에 설치된 소화기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비록 조선호텔 뒤편에 자리해 고고히 커피를 마시는 호텔 투숙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한번 받을 뿐이지만 더 훼손시키지 않고 보존하려는 의지가 보인다는 점에서는 매우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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