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뿌레땅뿌르국’이다: 정치적 풍자가 사라진 나라
대한민국은 ‘뿌레땅뿌르국’이다: 정치적 풍자가 사라진 나라
  • 권경우
  • 승인 2011.04.0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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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사실일까? 달라지지 않는 정치를 보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일상적으로 정치적 이슈와 사건을 접하는 현실을 보면 정치야말로 우리의 주관심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작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사람들이 정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를 소재로 하는 풍자 코미디는 그러한 ‘정치적 소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점이다.

 

  정치 풍자 코미디가 부재하는 한국
  현재 한국에서는 본격적인 ‘정치 풍자 코미디’가 없다. 일단 정치적 소재가 큰 인기를 끄는 편이 아니며, 그나마 있던 프로그램들도 폐지된 상태이다. 과거 5공화국의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는 어느 한 탤런트가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만으로도 방송 출연을 못할 정도였으니 방송에서 정치 풍자를 다루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을 코미디의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 정치 소재의 풍자 코미디가 대중적 인기를 큰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정치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일상적으로 정치에 노출되어 있는 환경뿐만 아니라 현대사의 골곡마다 정치는 대중의 일상에 매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대중들은 적어도 코미디에서만이라도 짜증나는 현실과 정치를 잊고 싶어한 것인지도 모른다.

 

  코미디가 사라져가는 이유?
  근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에서 ‘코미디’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MBC 코미디 프로그램들이 폐지되었고, KBS의 <개그콘서트>와 경쟁을 하던 SBS의 <웃찾사>까지도 막을 내렸다. 현재 KBS의 <개그콘서트>만 살아남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코미디가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대중들이 웃음을 잃고 있다는 말이며, 이는 결국 사회적 현상으로 읽어야 할 부분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웃음을 잃어가는 것일까? 삶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은 분노와 증오, 무기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치솟는 등록금과 청년실업, 비정규직 증가와 명예퇴직 등은 사회의 구성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코미디가 사라지는 또 다른 이유는 실제 현실이 코미디의 설정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웃음은 결국 과장되고 황당한 설정을 통해 나오는 것인데,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극적이어서 굳이 코미디 프로를 볼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개그콘서트>의 코너 ‘달인’에 열광하는 이유도 코미디가 전달하는 원초적인 웃음과는 달리, 그가 보여주는 준비과정과 성실함, 노력 등에 대한 감탄 때문이다. 그것은 웃음에 앞서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격려이자 찬사에 가깝다.

 

  한국과 세계의 정치 풍자 코미디
  지금은 막을 내린 <개그콘서트>의 ‘뿌레땅뿌르국’이라는 정치 풍자 코미디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불과 6개월이라는 단명에 그치고 만 이 프로그램은 이명박 정부가 낳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뿌레땅뿌르국’에는 그 나라를 통치하는 세 사람과 한 사람의 이방인이 있다. 이방인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3인에 의해 왜곡되고 만다. 그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결국 언어는 소통의 도구가 되지 못하고, 결국 소통불능의 상태가 된다. 결국 국민들은 이방인이 되고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왜곡하는 집단이 되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를 둘러싼 촛불 시위 등 끊임없는 국민과의 불화를 겪은 이명박 정부를 그대로 닮아 있다. 어쩌면 정치권, 빈부격차, 연예계 시스템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풍자한 것이 단명으로 이끈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다양한 정치풍자 프로그램이 있으며 <콜베어 르포>라는 매우 인기가 높은 정치풍자 프로그램이 있다.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는 주로 정치성향이 강한 방송인들을 풍자 대상으로 삼는데, 특히 보수적인 색깔을 띠는 방송인들의 맹목적인 애국심과 단순한 흑백논리, 무작정 큰 목소리로 우기는 것 등을 비판한다. 그의 대중적 인기는 대통령 출마를 고려할 정도로 대단하다.

  정치적 풍자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을 강조하고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그런 사회에서는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속도와 경쟁의 요소들이 잠시도 쉴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지 않는다. 삶이라는 것이 일종의 전쟁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풍자는 오히려 사치에 가깝다. 

  삶의 여유가 없는 사회에서 정치는 오히려 과잉되어 나타난다. 가장 좋은 사회는 정치가 일상을 침해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그와 정반대다. 정치가 곧 일상이다.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정치적 이슈가 다뤄지고 있으며 그러한 사건과 이슈들은 청소년관람불가 수준이 대부분이다. 가장 유해한 내용들이 정치 관련 뉴스들인 경우가 많다. 결국 사회적 담론의 다양성이 현저히 부족한 상태인 셈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정치 풍자가 설 자리는 없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담론의 다양성은 삶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사회적으로 경쟁에 목매지 않는 여유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도 다양한 표현의 정치적 풍자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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