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리사 선생님, 사랑합니다!존경합니다!
차미리사 선생님, 사랑합니다!존경합니다!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1.04.09 18: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미리사 선생님, 털뭉치로 하늘을 막아놓은 듯 탁한 상공에서 모래 섞인 비가 내리는 날입니다. 비에 방사능 물질과 황사까지 섞여 덕성인들 모두 우산에 모자에 꽁꽁 싸매고 길을 가는데 선생께서는 참하게 쪽진 머리로 늘 같은 자리에 서서 비를 받아내고 계시네요.
오는 19일은 우리대학 창학기념일, 선생께서 우리대학의 모태가 되는 근화학원을 세운지 91년 주년을 맞이하는 날입니다.
창학기념일을 맞아, 항상 민주동산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는 선생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아 덕성의 두 딸이 선생께 편지를 보냅니다.  

차미리사 선생님을 추모하며

우리는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1955년에 선종하신 당신을 추모하기 위해, 56년이라는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는 지금 당신 앞에 서 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몸바쳐 사랑하셨던 근화라는 이름으로는 서 있지 못하지만, 무궁화의 꽃잎이 만개하듯 활짝 열린 가슴으로 당신을 뜨겁게 그리고자 합니다.
차미리사 선생님, 당신께서 행하신 일은 단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신 것뿐만은 아닙니다. 당신이 우리 시대에 회자 될 수 있는 이유는, 당신께서 그 당시 아무도 실천하고 있지 않았던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의 성 차별과 여성 억압은 매우 심각한 사회적 문제였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조선의 여성들이 해방되었으면 좋겠다” “해방되기를 바란다” 또는 “해방시켜야 한다”고 수도 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조선의 여성들이여, 모두 내게로 오라”는 한마디만을 남긴 채 조선여자교육회를 창립하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 스스로가 그것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위기를 바꾸어줄 구세주, 혹은 기적만을 기다릴 뿐 자신이 위기를 극복할 주인공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주체적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지금 이것을 지적하고 있는 저에게도, 그리고 민주화의식과 주권 등을 잃고 타성에 젖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다르셨습니다. 당신은 비참했던 조선 여성들을 구해줄 구세주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를 구세주라고 일컫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조선 여성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일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셨고,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당신은 옳지 않은 것에 항거하셨고, 옳다고 생각하시는 일에 그대로 따르셨습니다. 누구나 말로는 할 수 있지만, 행하기는 어려운 일. 그것을 하신 분이 당신이시고, 당신은 그러한 옳은 가슴으로 우리 근화를, 덕성을 낳으셨습니다.
그러한 옳은 가슴으로 당신의 자식과도 같은 우리를 품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에게 당신의 그 옳은 가슴을 닮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옳지 않은 것에 반대하고, 옳은 것을 위해 행동하는 것. 당신이 평생에 걸쳐 행하신 그 신념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우리를 내려 봐 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께서 사랑하신 덕성의 자녀들이, 당신의 가치를 이 사회 전체의 가치로 바꿔가는 모습을 지켜 봐 주십시오.
차미리사 선생님.
살되 주체성을 버리고 세상의 흔하디 흔한 부속품으로 살지는 않겠습니다. 생각하되 남의 가치와 사상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기계가 되지는 않겠습니다. 알되 누군가가 주입해준 생각만으로 제 머리와 가슴을 채우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을 추모하되, 이미 소멸한 허상이라 생각하여 당신의 가치를 가슴속에서 지우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2011년, 당신의 자녀들 올림.
현미지(사회복지 2) 학우

참 지식인 차미리사, 그를 그려봅니다

4월의 교정에는 따스한 햇살과 청량한 녹음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학문을 나누고 사랑을 나눕니다. 한 가정의 딸로 태어나 자랑스러운 리더(leader)가 되고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우리는 자랑스러운 덕성의 딸입니다. 그러나 우리 덕성의 뿌리는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뿌리는 때론 여느 남성보다 강인하고, 그 어느 곳보다 어둡고 거친 모습이 있습니다. 이제 91년 덕성의 거친 뿌리의 역사를 바라보려 합니다.
우리 덕성의 뿌리, 차미리사 선생님. 덕성의 창립자이며, 여성 교육의 선구자입니다. 일제하의 어두운 시대를 사셨습니다. 19세 어린나이에 남편을 잃으셨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부드러워야 할 이 소녀의 내면은 강했습니다. 1912년 그는 학업을 마치고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지식을 나눠주었습니다. 당시 교사의 자리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7년 뒤, 여성야학을 설치해 자신의 꿈을 키워갔습니다. 작은 규모로 시작했던 야학에는 우리 덕성인처럼 학문에 열의를 가지고 글을 배우고자 하는 부인들이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우리 어머니들의 학문에 대한 열의는 대단했습니다. 차미리사 선생은 이를 알고 전국을 다니며 여성들을 깨워 주셨습니다. 드디어 1925년 그는 ‘근화여학교’를 설립합니다. 이는 단순한 학교 설립에 목적을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성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여성도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하려는 차미리사 선생의 정신이 담긴 근대적 운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참된 정신을 끝까지 지켜내기에는 너무나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차미리사 선생은 자신이 설립한 학교의 이름을 일제에 의해 근화에서 덕성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이름과 동시에 자신을 포함한 학교가 일제 통치권 아래에 놓여질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일본을 말하고, 일본을 배우고, 일본의 정신을 따르는 배움…. 차미리사 선생은 우리 민족의 지식이 일제 통치권 하에 놓인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권력가가 아닌 교육자였습니다. 교육의 정신으로 덕성은 지키되 자신의 권력은 아낌없이 희생하였습니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성 차미리사 선생님, 그는 왜 거칠어야만 했을까요? 그는 왜 투쟁해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오늘날 덕성에 있습니다. 오늘의 덕성인들이 학문에 힘쓰고 사회일원으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그는 그렇게 거칠게 덕성을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덕성인들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지켜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또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덕성의 현재 주인인 5,000인 학우들을 위해, 지금껏 우리를 위해 덕성을 지켜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앞으로 우리가 사회에 나간 후에도 덕성에 남아 그 이름을 빛내줄 많은 이들을 위해 덕성을 지켜야합니다. 이는 희생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여성들을 생각한 차미리사 선생의 정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금 덕성은 작은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차미리사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많은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덕성을 덕성인들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주연(문헌정보 2) 학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8
  • 청소년보호책임자 : 나재연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한상권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나재연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