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수필.꽁트.동화부문 응모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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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11.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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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몽룡이를 찾습니다.

 (동화)
「몽룡이를 찾습니다」


   

  오늘 역시 예슬이는 대문앞 전봇대 밑에 앉아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슥슥' 낙서를 하고 있습니다.그러다 가끔은 고사리 같은 왼손으로 눈 언저리를 비벼댑니다.
'뚜욱-뚝' 비가 오는 것일까요? 아까부터 작지만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옵니다. 무엇일까요? 칡흑같이 까만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는 아니고. 그게 무엇일까요? 문득 예닐곱 되어보이는 그 계집아이. 예슬이에게 눈이 갑니다.무언가 열심히 작은 손으로 눈밑을 훔치고 있습니다. 어머나! 가엾어라. 예슬이는 무척이나 서럽게 울고 있습니다. 작은 몸체가 흐르는 눈물에 따라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한창 행복해야할 나이에 이 아이는 뭐가 그리도 서글퍼서 우는 것일까요? 무슨 일이길래 이 아이는 캄캄한 밤에 집밖에 혼자 나와 있는 것일까요? 야단이라도 맞은 걸까요? 맞은편에서 발자국 소리가 '뚜벅 뚜벅' 들립니다.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예슬이 앞에서 멈추어 서는게 아니겠어요? 그 남자는 예슬이를 잘 아는 사람인지 커다란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고는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습니다.
쉿! 조용히 해 보세요.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아빠."
"그래, 예슬아. 잘 놀았니? 너 또 하루종일 여기서 앉아 있었던 것은 아니지?" 예슬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예슬이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습니다. 예슬이는 무엇인가 잘못을 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습니다.
"이녀석. 혹시해서 물어보았더니 너 정말로 이렇게 계속 여기에 있던게로구나? 우리 공주님 고집은 아무도 못말린다니까. 하하하."
아빠가 웃고 계시는데 어쩐일인지 예슬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아빠는 웃음을 멈추고 가만히 아이를 바라봅니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걸까요? 아빠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습니다. 그것이 예슬이랑 관계되는 일일까요?
"예슬아, 있지∼강아지는 돌아오지 않는단다. 그러니까 예슬이도 강아지는 잊어버리고 이제부터는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나와있지 말려무나. 아빠가 몽룡이 보다도 더 귀엽고 더 예쁜 강아지 한 마리 사다줄게. 알았지?"
"아니야. 거짓말. 내가 아빠보다 몽룡이를 더 좋아하게 될까봐 그러는 거지? 몽룡이는 반드시 돌아올거야. 세상에 몽룡이 보다도 더 이쁘고 더 귀여운 강아지는 없어. 있다고 해도 나는 다른 강아지는 필요없어. 내가 잠든 사이 사라졌으니까 내가 잠든 척 하고 있으면 돌아올거야. 몽룡이는 돌아와. 꼭! 자기가 말도없이 사라져서 내게 미안하니까 혼날까봐... 그래서, 그래서 못 오는 걸거야. 안오는게 아니야. 돌아온단 말이야.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흑..."
저런! 쯧쯧쯧... 딱하기도 하지. 예슬이의 단호한 말은 더 이상 아빠를 설득하려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슬이는 마치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확고한 말로 자기를 세뇌시키는 듯 보였습니다. 어느새 예슬이의 눈에는 방울이 맺혀있었습니다. 도대체 강아지는 어디로 갔길래 이렇게 예슬이의 눈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요? 아빠는 예슬이가 자신의 말을 납득하도록 부드럽게 말을 이었습니다.
"예슬아, 너도 크면 알겠지만 세상일은 사람 마음대로 자기의 고집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단다. 몽룡이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야만 해. 아빠는 예슬이가 빨리 예전처럼 밝고 명랑한 예슬이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구나. 예슬이 말대로 몽룡이는 반드시 돌아올거야. 그렇지? 아빠도 몽룡이를 무척 좋아한단다. 그렇지만 아빠는 몽룡이보다도 예슬이를 더 많이 사랑한단다. 몽룡이를 미워하는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슬아, 우리 하나만 약속할까? 앞으로는 이렇게 오래도록 나와있지 말고 낮 동안만 나와있기로, 그러면 낮에는 예슬이가 나와있고 밤에는 아빠가 일 마치고 돌아오면서 살펴보기로 하자구나. 이젠 됐지?"
이 말에 예슬이는 귀가 번뜩 뜨였습니다. 움츠렸던 자세를 펴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결국 아빠는 예슬이의 생각에 동의 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못한 것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예슬이는 아빠의 말은 항상 옳았고. 또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빠가 동의한 것은 강아지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어느새 예슬이의 얼굴에는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아빠도 예슬이의 얼굴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아빠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서려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빠는 아까부터 그렇게도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어야만 했던 것일까요? 예슬이는 아빠의 표정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자신이 기쁘니 아빠도 당연히 기쁘리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 일이 있은 후 부터는 예슬이는 절대로 밤늦게 까지 나와있지 않습니다. 언젠가 때가 되면 예슬이도 자연히 그것을 깨닫게 되겠지 라는 생각만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빠도 몽룡이가 돌아와 주기를 바라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찌보면 예슬이 보다도 아빠가 몽룡이를 더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딸이 저렇게 목놓아 기다리기 때문이겠지요. 처음에 아빠는 예슬이가 아무리 고집이 세더라도 한 달만 지나면 이렇게 나와서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또 석 달만 지나면 언젠가는 몽룡이의 존재조차 잊어버릴 줄로만 알았습니다. 아빠는 엄마 없이 자란 예슬이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슬퍼하지 않도록... 순수한 모습 그대로 커주길 바랬기 때문에 몽룡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슬이는 한 달이 지나도 여전히 그곳에 나와 있었고. 석 달이 지나도 몽룡이를 잊지 않았습니다. 항상 몽룡이의 밥그릇도 깨끗이 씻어놓고 돼지 저금통을 달달 털어 사료를 사와 밥그릇을 가득 채워 놨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없던 버릇까지 생겨버렸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시간도 줄어들게 되었고 일주일에 한번은 꼭 친구들을 초대하여 자기 방에서 놀던 아이가 이제는 혼자만이 그 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예슬이랑은 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아빠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몽룡이가 없어진지 딱 넉 달만의 일입니다. 아빠는 예슬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습니다.
"예슬이는 왜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 않지? 아이들과 막 뛰어놀면 참 재미있을 텐데."
아빠는 조심스럽게 예슬이의 표정을 살핍니다. 그러나 예슬이에게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심지어 남의 말을 들을 때면 항상 초롱초롱하던 눈빛마저 빛을 발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흑...흑흑..."
아빠는 흐느끼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흑흑흑...흑흑흑...아빠∼ 친구들이... 친구들이 그러는데..몽룡이는 돌아오지 않는데... 흑... 몽룡이가 죽었대... 몽룡이가 없어진 날 아침 내 친구 미나가 봤대..하얀 봉지에 쌓여서 아빠가 안고 나가는 것을 봤대. 거짓말이지, 아빠? 그렇지? 응?"
아빠는 예슬이를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는 것일까요? 아빠는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무척 난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사실을 말하기엔 예슬이는 너무나 어렸습니다. 이제 겨우 여덟살인 딸아이에게 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예슬아...혹시 미나가 잘못 본 것은 아닐까? 다시 한번 물어보지 그랬니? 미나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겠지?"
아빠는 예슬이의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아빠의 말은 뭐든지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던 아이였던 예슬이... 그러나 이제는 아니란 것을 아빠는 예슬이의 흔들리는 표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예슬이는 이제 더 이상은 아빠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예슬이도 이번같은 경우는 정말이지 아빠가 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습니다. 세상일이 항상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정말이지 세상일은 자기 뜻대로만 되지 않는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예슬이는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떼를 쓰면 항상 아빠가 사주셨었고 몽룡이 역시 아빠를 졸라서 산 것이었습니다. 여지껏 예슬이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은 일이 없었습니다. 시금치나 당근이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됐습니다. 예슬이는 떼를 써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지껏처럼 아빠를 졸라서 몽룡이를 다시 살아나게 해 달라고...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슬이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아무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르쳐 주지 않았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예슬이는 물끄러미 아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빠는 예슬이가 미나가 잘못 본 모양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눈치였습니다. 몽룡이가 없어진지 넉 달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아빠가 예슬이를 감쪽같이 속였다는 생각에 화가 났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예슬이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느낀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예슬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혹시나 상처입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랬던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아빠가 야속하게 느껴지지 않았을뿐더러 아빠에게 걱정거리를 안겨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빠, 맞아. 분명히 미나가 잘못 본 걸거야. 그렇지?"
이 말을 마친 후 예슬이는 미소를 지으며 아빠의 다리를 더욱 세게 껴안았습니다. 아빠는 예슬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소짓고 말했습니다.
"그래, 맞아. 예쓸아, 우리 저기 저 뒷산에 한번 올라가 볼까? 예전에 우리 예슬이랑 아빠랑 자주 갔었잖아. 기억나지?"
"응."
아빠는 예슬이의 손을 이끌고 뒷산에 갔습니다. 기분이 한결 나아 보입니다.
"아빠, 우리 몽룡이는 지금쯤 잘 뛰어놀고 있겠지? 내가 없어도 귀엽고 예쁘니까 누군가 잘 보살펴 주고 있을거야. 그렇지?"
"물론이지, 아마 예슬이 만큼은 아니어도 몽룡이를 무척 사랑할거야."
예슬이는 기분좋게 웃으면서 하늘나라에서 뛰어놀고 있을 몽룡이를 떠올려 봅니다. 그러다 문득 아빠를 쳐다봅니다. 아빠는 아까부터 무언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을까요? 잠시후, 예슬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불룩 튀어나온 땅위에 작은 십자가가 꽂혀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예슬이는 느꼈습니다. 비록 어디에 몽룡이가 묻힌 곳이라고는 써있지 않았지만 직감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두 사람뿐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두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곳에 몽룡이는 한줌의 흙이되어 우리곁에 항상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아빠, 우리 앞으로 여기에 자주 오자. 알았지?"
예슬이는 앞으로도 이곳에만 오면 몽룡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습니다.다시 한번 미소를 띄웁니다. 예슬이의 미소는 더 이상 천진스런 어린아이의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슬이는 그 사이 몽룡이의 죽음으로 인해 벌써 어른이 되는 길의 문턱에 발을 내딛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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