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기적
종로의 기적
  •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 승인 2011.05.21 1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동성애자는 야오이 문화의 판타지로 대상화되거나 ‘비정상적’ ‘종교적 죄인’이라는 거침없는 명목으로 낙인을 찍히기도 한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물리적, 정신적 폭력 한가운데로 내몰리는 안타까운 사례들은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것은 이렇듯 척박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 <종로의 기적>의 주인공들이 바로 그들이다. 게이 문화, 게이 커뮤니티에서 ‘종로’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다. ‘밤이 되면 활기를 띄는 종로’라는 영화 속 표현처럼 일상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는 동성애자들에게 이곳은 작은 해방구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만난 네 명의 게이들의 삶, <종로의 기적>은 이성애자 시선으로 대상화시킨 그들이 아닌, 민낯 그대로의 동성애자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 속에 담겨진 이들의 삶을 통해 관객은 이성애자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 속 차별과 대면하게 된다. 군대에서 행해지는 일방적 아우팅과 그로 인한 정신적 외상, 이성애자에게는 당연한 듯 여겨지는 결혼을 비롯한 사회제도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는 박탈감, 동성애자에게 덧씌워진 HIV-에이즈 문제. 이러한 주제들은 영화 속 주인공들의 언어와 활동을 통해 묵직하지만 무겁지 않게 사고를 전환케 한다. 더불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또 다른 성소수자들에게 위안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카메라 뒤로 묵묵히 이들을 기록한 감독 또한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기록자, 연출자를 넘어 영화라는 매개체를 통해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에 맞서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종로의 기적>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성적소수문화환경을 위한 모임인 연분홍치마에서 함께 기획, 제작한 영화이다. 특히 연분홍치마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쉼 없이 다큐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번 <종로의 기적> 또한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연분홍치마의 작품들은 한국의 독립다큐멘터리 진영에서 소중한 보고서가 되고 있다.

  제작진의 바람대로 이 영화를 통해 이성애자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자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을, 성소수자들은 자신을 긍정하고 치유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길 진심으로 바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의 멋진 말처럼 타인의 인권이 바로 내 인권이며 우리 모두의 인권이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 그것이 누군가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도록, 이 찬란한 기적을 위해 함께 하자, 당신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