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소설부문 응모작
학술문예상 소설부문 응모작
  • 승인 2003.11.23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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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간의 부상

 두 달간의 부상


1.
 엄마가 돌아왔다. 집을 나갈 때 입었던 검은색의 낡은 정장바지와 나무껍질 같은 칙칙한 고동색의 카디건 차림 그대로. 한 손에는 배가 불룩 나온 검은색 가방을 꼭 쥔 채 엄마는 나갈 때보다 조금 파리해진 모습으로, 마치 구겨진 신문지처럼 애처로운 표정으로 현관에 들어섰다. 그것은 2주일만의 귀환이었다.
  엄마가 가방을 들고 집을 나가버린 그 날부터 난 어서 엄마가 돌아오길 기도했지만, 정말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곤 한치도 믿어본 적이 없었던 모양인지, 엄마가 힘겹게 발에 꼭 끼는 구두를 벗는 동안에도 뭐라 말 한마디 엄마에게 던질 수가 없었다. 검은색의 구두 속에서 퉁퉁 부은 발을 겨우 꺼낸 엄마가 저녁의 나팔꽃처럼 입을 꼭 다문 채 나를 스쳐 지나갈 때까지도 난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내 등뒤에서 안방 문이 삐거덕,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고 나서야 나는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엄마는 가방을 안방 귀퉁이에 놓은 채, 힘없이 장롱 문을 열고 이불을 꺼내고 있었다. 나는 자꾸 스위치가 꺼진 텔레비전처럼 머릿속이 캄캄해져 걸음을 늦추었다.
  "좀 자야겠다."
  먼저 입을 연 건 엄마였다. 그건 참 한결같은 습관 같았다. 어색한 침묵의 유리를 먼저 깨어버리는 사람은 늘 엄마였다. 난 엄마에게 다가가 이불을 내리고 봄날의 꽃처럼 환한 분홍빛 이불을 깔고 그 위에 하얀 베개를 놓았다. 그러자 엄마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이불 위에 쓰러졌고, 내게서 등을 돌린 채, 잠시 숨을 고르더니 곧 잠이 들어버렸다. '피곤'이라는 명사처럼 보이는 엄마의 웅크린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오후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들만 한참 바라보았다.
  오랜 시간 동안 엄마는 몸을 조금도 뒤척이지 않았다. 마치 옆으로 누워 자다가 사망해 버린 사람처럼 고요했다. 내게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라곤 푸석한 파마머리와 굵은 주름들이 자리잡은 지친 피부의 목이 전부였다. 그리고 귓불. 열이 오르는지 엄마의 새빨간 귓불에는 몇 가닥의 주름이 엉키어 있었다. 난 엄마의 파마머리와 주름진 목과 귓불이 보기 싫어 고개를 돌렸다. 그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편지봉투의 우표처럼 엄마 손에 꼭 붙어있던 검은색의 가방이었다.

  한 달 전이었다. 엄마에게 오 천 만원 정도의 카드 빚이 있다는 사실이 위급한 전보처럼 우리 모두에게 알려졌다. 며칠 전부터 오 백 만원을 빌려달라는 엄마의 말이 걸렸던 아빠는 엄마의 통장을 부랴부랴 찾아보았고, 식구들 모르게 엄마가 몇 개의 카드사로부터 큰 액수의 현금서비스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엄마에게 신용카드가 있는 줄도 몰랐던 아빠는 그날부터 엄마에게 불같은 화를 냈다. 아니, 엄마에게 분노했다.
  엄마의 통장은 미로 속처럼 어지러운 거래내역을 지니고 있었다. 세 개의 카드사로부터 매달 육 백 만원씩 현금서비스를 받았고 이를 메우기 위해 육 백 만원 짜리 마이너스 통장이 두 개, 다른 은행 대출이 하나, 보험 대출이 하나, 이리저리 사람들한테 빌린 돈이 천 만원을 육박해 있었다. 그것들을 차분하게 표로 정돈시킨 아빠는 어마어마한 총액을 가리키며, "너 오 천 만원이 얼마나 큰돈인 줄 아니?", 총액의 동그라미를 하나하나 세고 있는 나에게 실핏줄이 오른 눈으로 물었다. "니가 어디서 돈을 벌어서 한 달에 백 만원을 저금해도 그게 일년이 되야 겨우 천이 백이야. 그 백이 어떤 백이냐, 먹고싶은 거 안 먹고 입고 싶은 거 안 입고 정말 허망하게 돈만 보고 산 결과란 말이다. 그렇게  4년을 모아야 버는 돈이 오 천이란 말이다.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흘러야 겨우 오 천이 쌓이는 데 이렇게 큰돈을 빚져야 쓰겠니? 그리고 이렇게 큰돈이 우리한테 어디 있니? 어떻게 그 돈을 갚냔 말이다. 니가 갚을 수 있겠냐?"
  그날 이후, 아빠는 잔에 거품이 흘러 넘치도록 맥주를 거칠게 붓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디다 쓴 거냐고. 그 부분에서 한사코 입을 다물고 있던 엄마가 하루는 당당하게 다 생활비였다고 말했다. 아빠는 기가 찬 듯 엄마를 노려보았고 엄마는 그 시선에 더욱 꼿꼿이 맞섰다. 엄마는 통장을 던지며 나도 모르겠다, 라는 식으로 돌아서 버렸고 아빠는 엄마의 적반하장이 어이없었던지 눈을 흘기며 이 집에서 꺼져버리라고 했다. 난 그 사이에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에서는 오 천 만원이라는 돈이 날 향해 비웃는 듯 했고, 나의 분노는 맥주의 거품처럼 일었다가 푸시시 꺼져버렸다. 난 무력해져 버린 것이다. 난 수중에 오 천 만원은커녕 오 십 만원도 없는 그저 백수였다.
  엄마와 아빠는 매일같이 싸웠다. 고등학생인 막내 동생이 나가고 나면 아침부터 서로에게 욕을 퍼부었다. 넌 양심도 없는 년이야! 사고를 쳤으면 어디 가서 단돈 십 만원이라도 벌어봐야지 집에서 이러구 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 당신이 평소에 생활비를 많이 줬으면 이런 일도 없잖아! 애들이 한 달에 얼마를 쓰는 지 알기나 해! 누군 카드를 쓰고 싶어서 쓰냐구!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그리고 마지막엔 늘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났다.
  불면의 밤처럼, 심한 기침처럼 너무나 피곤한 싸움이 계속 이어졌다. 아빠는 나가라고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잘못이 없다며 그릇을 깼다.
  하루는 엄마가 쓴 돈 오 천 만원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서 아빠는 담배와 술로 찌든 몸을 일으켜 세웠고 어느 날 마치 죄수를 취조하는 형사처럼 내게 물었다.
  "너 엄마가 다단계 회사 다녔던 거 알아 몰라?"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화장품 상자를 보따리로 들고 와 안방 장롱에 쌓아 두었다. 그리고 이리저리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어리숭한 사람이었다. 무엇인가 늘 하고 싶어 일을 벌이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안티 링클 크림, 화이트 스크럼, 나이트 커버 크림 등등 영어 일색의 화장품들의 이름을 발음할 때마다 입술을 떨면서 무조건 좋다며 사람들에게 하나만 써보라고 생떼를 썼다. 그리고 그 어리숭함 덕분에 엄마는 남들이 다들 고개 젖는 다단계를 인생역전, 승리의 발판으로 확고히 믿었다.
  엄마에게 남자가 있을 지 모른다는 의심까지 했던 아빠는 오 천 만원의 출처를 우선 다단계로 결론 지었다. 그리고 내게 엄마가 집에서 못나가도록 감시하라고 했다. 아빠의 행동에 엄마는 격분했다. 자기가 사치를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데 이것은 너무 억울하다는 것이다.
  물론, 엄마의 말은 맞았다. 엄마가 비록 돈 오 천 만원을 카드로 긁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오 천 만원 중에서 단 오 만원도 엄마 곁에 있지 않았다. 엄마에게 비싼 악어가죽 핸드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이아반지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엄마를 위로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밍크코트는커녕 흔한 무스탕 하나 없었고 구두도 늘 식구들 중에서 제일 낡은 것을 소유하고 있었다.
  아마 오 천 만원이라는 큰돈은 포도송이에 박힌 탐스러운 보랏빛 포도 알의 운명처럼 사라졌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엄마의 손에 있는 달콤한 포도를 보고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엄마는 선심을 쓰듯 한 알 두 알 정도를 떼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여러 사람들이 한 두 알의 포도를 맛보았고 엄마는 금새 포도 한 송이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때마침 나타난 포도 주인이 엄마에게 포도 값을 달라고 원금에 이자를 더하며 독촉했고 엄마는 부랴부랴 겨우 한 두 알 정도를 따먹은 아빠에게 한 송이 값을 물어 달라고 애원을 하는 것이다. 불행히도 아빠는 겨우 포도 한 알 정도만 먹었기 때문에 한 송이 값을 내야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는 혼자가 되신 어머니가 있었고 외할머니는 아빠가 출근하고 나갔을 시간이면 뉴스시간처럼 정확하게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엄마가 주는 포도 한 알을 먹었을 것이다. 영화를 찍겠다고 돌아다니던 남동생은 메가필름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엄마에게 포도 한 알을 구걸했을 것이고 어쩌면 두 알 정도로 부풀려서 나중에 먹으려고 포도 한 알을 숨겨 뒀을지도 몰랐다. 공인중개업을 하는 아빠는 사람사이의 이미지에 대해 엄마에게 말했겠고, 그것을 들은 엄마는 포도 알을 들고 가서 좋은 넥타이와 양복바지, 그리고 순면의 패션 속옷으로 바꿔왔고, 대학에 다니는 큰딸이 열심히 공부를 할 때마다, 성공한 여성상을 꿈꾸던 엄마는 포도 몇 알을 손에 꼭 쥐어주었다. 한 여인이 달콤한 포도 알을 주기 시작했고 마흔이 넘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여인의 남동생들은 포도 알을 먹으려고 여인의 집을 들락거렸다. 물론 그 여인은 어김없이 한 알 정도의 포도 알을 그들에게 주었을 것이다.
  일은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결국 앙상한 줄기와 껍질만 남은 엄마는 마지막 포도 알을 가지고 화장품다단계 회사로 가보지만 마지막 포도 알은 다단계라는 계단 어디쯤 얼굴 모르는 이의 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난 애처롭게 그것을 바라보았고, 차마 그 이야기를 아빠에게 할 수는 없었다. 
  난 아빠 말대로 엄마가 집밖으로 못나가도록 감시했다. 나 역시도 가방에 꾸역꾸역 화장품을 채우고 집을 나서는 엄마의 어리숭한 모습이 보기 싫었다.
  파운데이션으로 가려도 사라지지 않은 검은 먼지의 기미를 거울 속으로 한참 들여다 본 엄마는 아빠의 말을 무시한 채, 가방을 손에 쥐고 나가려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엄마의 가방을 뺏었다. 그러자 놀란 엄마는 화가 나 내게 따귀를 때렸고 사납게 날카로운 것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싸가지 없는 년, 이라는 말부터 자, 책의 모서리, 의자까지. 우리는 무슨 돈 가방을 차지하려는 영화 속의 깡패들처럼 가방을 잡은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결국 엄마는 내게 날카로운 것들을 던지며 이내 가방을 되찾았고, 나는 가방을 찾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엄마의 손목을 잡고 늘어졌다. 그 바람에 엄마의 손목에 걸려 있던 싸구려 팔지는 머리카락처럼 툭, 끊어져버렸고 너무 놀란 나머지 내가 손에 그 팔지를 꼭 쥐고 있자 엄마는 그 사이 가방을 들고 휑 재빨리 나가버렸다.
  엄마가 물건을 팔러 나간 그날 저녁, 아빠의 입에서는 공장의 연기 같이 쾨쾨한 회색 담배연기들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밤 8시가 넘어서 엄마가 돌아오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이 동네 창피하게 무슨 짓이냐, 며 버럭 소리를 질렀고,  엄마가 든 가방을 현관으로 던져버렸다. 가방은 둔탁한 비명을 지르며 대문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전화가 왔던 것이다. 엄마가 사람들에게 화장품을 팔고 있더라는 전화가 아빠에게 걸려왔던 것이다. 사람들 사이의 이미지. 그것을 생명처럼 중요시했던 아빠는 자신의 이미지를 손상시켰다는 것에 화가 나 엄마를 다단계에 미친 여자라고 몰아붙였다.
  화가 난 엄마는 "내가 뭘 잘못했어!" 아빠에게 소리치며 다가갔고 너무 가까이 다가간 바람에 생긴 둘 사이에 좁혀진 그 공간이 아빠를 억누르고 있던 끈을 툭 끊어버렸다. 아빠는 엄마의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고 소리를 질렀다. 불에 달군 쇳덩이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던 엄마는 꼭 늙은 짐승의 울음처럼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로 흐느꼈고, 아빠는 엄마를 더러운 바퀴벌레를 밟아 죽이듯이 웅크린 엄마의 몸에 이리저리 발길질을 했다. 나는 달려가서 아빠의 팔에 매달렸다. 제발 그만해요. 난 계속 그 말을 녹음된 테이프처럼 외쳐댔지만 아빠는 나의 말을 조금도 듣고 있지 않았다. 아빠의 눈에는, 실핏줄이 그물처럼 던져진 그 눈에는 오 천 만원을 갚을 수 없는 남자가 느끼는 비애와 자신이 유지한 이미지에 손상을 입힌 아내에 대한 분노와 앞으로 그 오 천 만원에 자신의 노년 몇 년이 소비될지 모른다는 불안이 장작이 되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엄마는 그날 밤, 부랴부랴 가방을 쌌다. "저 놈이 날 죽일지 몰라……", 라는 혼잣말을 하며 성급히 가방을 싸 나가버렸다. 나는 아빠의 팔에 매달린 채로 쾅, 대문 닫히는 소리만을 작별의 인사로 남긴 엄마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봐야 했다. 스물 다섯 살의 봄날, 밤이었다.

  엄마가 잠에서 깰까봐 난 소리를 죽여가며 엄마의 상흔 같은 가방을 열어보았다. 조금씩 입을 벌리는 지퍼 사이로 푸른색 니트 등의 옷가지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지퍼를 다 열자 옷 사이에 묻혀있는 지갑이며 속옷들이 튀어나왔다. 가방에는 대부분 옷가지들이었고 그밖에는 낡은 수첩하나와 핸드폰, 지갑이 있었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가 엄마처럼 잠들어 있었고, 수첩 속에는 오래 전에 적어 놓은 듯한 사람들의 이름과 그 옆에는 번호가 바뀌었는지 두 줄로 선명하게 말소된 전화번호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어디에서 잠을 자고, 이 옷들을 갈아입고 있었던 걸까.
  엄마가 집을 나간 밤부터 나는 가슴속에 물방울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내 몸 속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 고이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 물방울들은 너무나 차가웠고, 방울져 또오똑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난 잠까지 설쳤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난 자주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핸드폰을 꺼 놓았는지 전원이 꺼져있다는 기계음의 메시지만 반복되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 지나갔고 내 속에 고여있던 물방울들은 넘실넘실 차 올라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이는 밤이면, 눈에서 비죽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일주일 동안 엄마의 행방을 찾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찾았고 그들의 목적이 다 같았다. 엄마가 빌린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혹은 엄마에게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였다. 나는 할머니와 삼촌의 전화. 몇몇 카드사들의 친절을 가장한 독촉전화를 하루에 몇 통씩 받아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엄마가 반대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나는 어린아이처럼 반가워했다. 엄마 목소리에 말 그대로 하염없이 기뻐했다.
  "이혼을 하려고 한다. 넌 다 컸으니까 말해도 괜찮을 꺼야. 너희 아빠랑 이젠 못살아. 선을 넘어버린 거야. 그 동안 한순간도 편한 적이 없었다. 이제라도 제발 편히 살고 싶다. 들은 말로는 위자료로 재산의 반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 이제라도 혼자서 편히 살고 싶다."
  어린아이 마냥 기뻐했던 나는 수화기에 흘러나온 엄마의 말에 서리맞은 나뭇잎처럼 안색이 바뀌었다.
  "엄마가…… 정말 엄마야? 그럼, 엄마 혼자 편히 살겠다는 거야? 그럼 우린 뭐야? 엄마가 재산 반 가져가면 그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
  처절하게 따졌다. 정말 그랬으니까. 내 목소리는 두꺼운 성에가 덮인 것처럼 차가웠다.
  "그렇게 혼자 편히 살면 행복해?"
  엄마는 침묵을 대답으로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도 엄마는 내게 두 번 정도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한사코 어디에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아빠에게 이혼하겠다는 뜻을 전하라고만 했다. 엄마는 내 가슴에 고인 차가운 물 속에 뜨거운 유황 덩어리를 던져 주었고, 뜨거운 유황 때문에 끓어오르는 수증기는 날 벌겋게 만들었다. 난 아빠에게 엄마의 말을 전했다. 입안에서 증기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아빠는 나와는 반대로 매우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모든 것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이혼을 한다면 주어야 할 위자료는 얼마인가. 그리고 자신이 갚아야 할지 모르는 엄마의 카드 빚. 엄마랑 이혼을 한다면 겪게 될 불안정한 생활부분들.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욱 유리할지 아빠는 중세시대의 연금술사들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접시저울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나하나 달아보기 시작했다.
  이혼 시 엄마에게 줄 위자료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많다는 결론이 나왔고 엄마가 아빠 모르게 많은 빚을 졌다는 것은 엄마가 받아낼 위자료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그러자 아빠는 이혼을 선택했다. 대신 엄마에게 최소한의 위자료를 주는 것이다. 이혼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아빠는 어느 날 내게 엄마를 잊으라고 말했다.
  아빠의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가벼운 풍선이라도 된 듯 바로 설 수 가 없었다. 우리 가족이 비록 지금 서로를 원망하고 있다고 해도. 비록 다른 가정처럼 오순도순 화목하지 않더라도, 아무리 그렇더라도 돈 오 천 만원 때문에 이렇게 쉽게 깨져버릴 것이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내 가슴속에는 유황에 모두 타버린 물방울들이 마지막 푸시시 하는 소리를 냈다. 모두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온통 텅 비었다.
  "넌 어떻게 생각 하냐?" 아빠는 내게 물었다.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솔직한 내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난 조금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 집이나 혹은 아빠가 일하고 있는 가게, 혹은 내 미래를 버려도 엄마라는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았다. 갓난아이처럼 엄마의 존재를 애타게 갈구했다.
  "같이 갚아갔으면 좋겠어요. 힘들어도요."
  내 대답에 아빠는 담배 한 개피를 꺼내어 입에 물었고, 아빠 주위에는 연기가 자욱하게 어리었다. 나는 재떨이에 떨어지는 힘없는 담뱃재가 꼭 내 얼굴 같아 눈길을 피했다. 아빠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며칠이 흘렀다.
  집을 나간 엄마와 이혼을 결심한 아빠가 결국 헤어지게 될까 노심초사하던 중, 놀랍게도 오늘 엄마가 돌아온 것이다.
  엄마는 바로 이 가방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난 엄마의 가방 속에 있던 검은 가죽 지갑을 열어 보았다. 지갑에는 엄마와 아빠가 신혼여행에서 찍은 낡은 사진이 있었고, 지폐를 넣는 곳에는 단돈 몇 천 원이 창백한 얼굴을 숨기고 있었다. 난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지갑을 얼른 가방 안에 넣어 버렸다. 그리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내가 엄마의 가방을 뒤졌다는 사실을 안 것처럼 그 순간, 갑자기 내게로 몸을 돌렸고 난 이제서야 엄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볼 수 있었다.
  마치 조각도로 판 듯이 내 천(川)가 깊이 자리잡은 미간의 주름. 그 주름은 너무 선명한 나머지 엄마의 눈썹과 콧등까지 다 빨아들일 듯 했다. 그리고 미간의 주름은 미처 잠들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난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한참을 바라본 후에야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도 너무나 힘들었다……, 라는 주름진 그 말을.
 
2.
  곤히 잠든 엄마를 안방에 두고 건넛방에 누웠던 나는 설핏 잠이 들었던지 오후가 한참 지나 저녁이 캄캄하게 내려앉은 때에 일어났다. 
  부엌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어보니 엄마는 어느새 일어났는지 그릇들을 꺼내 놓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탁실에서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전보다 경쾌한 템포로 들리고 있었다. 가스레인지에서는 찌개 끓는 소리가 들렸고,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미세하지만 밥솥에서는 밥 뜸들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이 소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 소리들을 단순한 소음으로 치부해 버렸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그릇들이 왜 다 이 모양이니?"
  난 엄마가 가리키는 그릇을 보았다.
  그릇들은 모두 한쪽 귀퉁이가 나가 있었다. 엄마가 칼국수나 냉면을 할 때 담아 주시던 하얀 대접 그릇은 이제 온전한 건 하나 뿐이었다. 다섯 개의 그릇들이 모두 이가 빠져 흉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다 모르고 그만……."
 내 대답에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엄마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이가 빠진 다섯 개의 그릇을 버리려는지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쨍, 하는 그릇 깨지는 소리 뒤에 남은 사금파리 조각들을 바라보니 알 수 없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달려가서 이제 마지막 남은 그릇을 내가 깨보고 싶은 욕망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날 두드렸다.
  
  엄마가 집을 나간 후 나는 엄마가 하던 집안 일을 해야했다. 아침에 일어나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히고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를 끓였다. 서투른 솜씨로 대파를 썰거나 호박을 썰었고 반찬은 할 줄 아는 게 없어, 계란을 말거나 감자를 볶아 보았고 콩나물이나 가지나물을 조금 맵게 무쳐보기도 했다.
  아침밥을 먹은 아빠가 출근하고 동생들이 각자의 학교로 흩어지면, 나는 진공청소기를 꺼내어 청소를 시작했다.  그리고 흰옷과 색깔 옷을 분리한 뒤 빨랫감들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를 풀어 빨래를 했다.
  빨래가 다 되면 베란다에 있는 건조대에 빨래를 털어 가지런히 널어놓고, 부엌으로 와 아침밥 설거지를 했다. 그리고 시계를 올려다 볼 쯤, 시간은 훌쩍 멀리 뛰기를 해 11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민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저녁에 먹을 찬거리를 좀 사올까? 조금 싸면서 맛있게 먹을 만한 반찬거리가 없을까? 장을 보러 가려면 어디가 더 쌀까? 하는 따위의 생각들을.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다른 졸업생들처럼 평범히 취직을 고민했고, 결국에는 평생직장을 꿈꾸며 공무원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졸업 후 겨울 동안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 다녔고, 빛나는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책에 헌납했다. 그 때, 나의 하루는 단순했다. 그저 공부였으니까. 변화가 있다면 행정학, 법학, 영어, 국어, 역사를 오가는 과목이 전부였을 것이다. 수험생활이 가끔은 독방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마라톤 경주라고 생각하며 수험생활의 단조로움을 자위하곤 했다. 결국, 난 결승선을 통과하리라, 꿈꾸며 말이다. 하지만 수험생활이 막 세 달째에  접어들었을 때, 엄마의 카드 빚이 독촉장처럼 식구들에게 긴급히 알려졌고 엄마는 집을 나갔고, 나는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집을 자가자 나는 집안살림을 도맡아야 했고, 책을 보는 시간은 반대로 줄어들었다. 머릿속에서는 헌법과 최신 행정학 이론들이, 그리고 까다롭던 시제, 태, 접속사 따위의 영어문법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아빠의 담배연기처럼 메케한 것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건 허무나, 무기력 같은 단어와 비슷한 색깔이었다.
  그리고 나는 날 학대하기 시작했다. 스물 다섯이라는 나이에 비해 넌 너무 나약하다고. 어쩜 이렇게 무기력할 수 있냐고, 나 자신을 내리쳤다. 그런 자학의 시간이 지나 오후가 되면 저녁에 먹을 밥을 앉히고, 찌개를 끓이고 아빠가 입을 와이셔츠와 동생이 입을 교복 등을 다렸다. 와이셔츠에는 자꾸 몇 가닥의 주름이 생겼으나 끈질기게 주름의 흔적을 지워갔다. 난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뎌갔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꾹꾹 참아가며 난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내었다. 식사 준비, 빨래, 청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틈틈이 알아보고 있었다. 더 이상 자신을 학대하고 싶지 않던 나는 내게 닥친 시련을 잘 견디고 있다고 위로했다. '넌 그래도 무엇인가 행동하고 있어', 라고. '비록 내가 꿈꾸었던 미래의 단 한 부분도 그려내지 못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난 가족을 위해 잘 참고 이겨내고 있어' 라고.
  내가 그렇게 하루하루를 애쓰며 사는 나의 모습에 비해 동생들은 그렇지 못했다. 고등학생인 막내는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학원과 독서실비를 달라고 졸랐다.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는 아빠에게서 돈을 타갔다. 그렇게 골치 아픈 집을 떠나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로 피신했다. 우울한 침묵에 가득 찬 집에는 잠 잘 때를 빼고서는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남동생은 군대에서 제대를 한 후, 써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등록금 삼 백 만원을 모았다. 동생은 그 돈을 엄마에게 맡기었고, 자신의 능력으로 등록금을 벌었다는 자부심에 복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의 등록금은 엄마의 카드대금 결제 날에 선명한 잉크자국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고 동생은 그 날부터 집에 쳐 박혀 두 손에 리모콘만 꼭 쥔 채 줄곧 텔레비전만 보았다.
  난 잘 참고 있었다. 금새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했고 엄마의 카드빚을 갚는 다는 명목으로 아빠에게 얼마의 돈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면서도 조금도 자신의 소비를 줄이지 않았고, 남동생은 방에 놓인 오래된 가구처럼 앉아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내게는 그 둘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화가 끓어오르곤 했다.
  그래도 난 다시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넌 잘 참고 있어, 견디고 있어, 라고 속삭이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남동생에게 점심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저녁에 술에 취한 아빠가 집에 들어와 또 술을 찾아도 난 아무 말 없이 견디어 냈다. 자정이 넘어 들어온 여동생이 교복을 벗어 던져 놓으면 그것을 주워서 세탁기에 넣었고 내일 입을 교복남방을 다려서 놓았다. 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설거지를 할 때면 난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하얀 거품이 이는 수세미를 들고 국그릇이나 접시를 닦을 때, 나도 모르게 왼손의 힘이 풀려 그릇이 슬쩍 손에서 떨어졌다. 그러면 그릇은 싱크대로 쿵, 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거나 아니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였다. 한 귀퉁이가 깨어져 나가거나, 아니면 아예 깨져버리거나.
  "괜찮아?" 하루는 그릇 깨지는 소리가 나자, 남동생은 TV에 줄곧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이게 몇 번째야 가만 보면 매일 그러는 거 같아."  동생은 과자라도 먹는 지, 부정확한 발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난 동생이 아니라 자신에게 대답해 주었다. 넌 괜찮은 거야. 참을 수 있다고. 나보다 더 무심하고 무기력한 남동생과 이기적인 여동생을, 그리고 깨질 듯이 약해진 아빠를, 그리고 위자료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엄마를 모두 참을 수 있다고 내 자신에게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이가 빠진 흉한 그릇은 늘어갔고 번쩍이는 유리조각이 마루 구석에서 내 뒤꿈치를 자주 찔렀다. 나는 엎드린 채, 걸레를 들고 유리조각이 어디 있나, 세심하게 구석구석을 닦아내면서 내게 처음으로 솔직히 물어보았다. 넌 괜찮은 거냐고, 정말 참을 수 있냐고. 그리고 다시, 보기 싫은 가족과 답답하기만 한 요즘의 일상을 참는 것이 아니라 용서라는 걸 할 수 는 없는 거냐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러자 대답대신 유리조각만 한 눈물이 툭, 손등을 찔렀다.
 
  엄마는 귀퉁이가 나가거나 금이 가 있는 그릇을 모두 깨서 종이 봉투에 담아 버렸다. 그리고는 식탁에 조용히 앉았다. 가만히 앉아 시선을 식탁 모서리에 둔 채, 엄마는 한쪽 손으로는 턱을 괴고 한쪽 손으로는 무의미한 원을 빙글빙글 그렸다.
  그건 엄마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수백 개의 원이 엄마의 손에서 비누방울처럼 떠오르다 터지며 사라지곤 할 때, 가스레인지의 고등어 조림은 메케한 냄새를 내며 검붉게 타곤 했다. 엄마는 고등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를 무렵, 그제야 벌떡 일어나 뚜껑을 열고 누룽지처럼 냄비 바닥에 달라붙은 고등어를 떼어내며 한숨을 쉬곤 했다. 
  나는 엄마가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은 된장찌개를 태워버릴까 두려워 미리 가스레인지 불을 꺼 두었다. 마지막 가스밸브까지 잠그고 엄마를 돌아봤을 때, 엄마는 식탁에서 일어나 어디를 가려는 지 현관을 향했다. 엄마가 나간다는 것에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를 부르고 싶었지만, 그만 입을 다물었다. 대신, 엄마는 돌아왔으니까, 이렇게 혼잣말을 해 보았다. 
  나는 엄마가 나간 사이,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먼저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돌아왔다는 말에 아빠가 놀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담한 반응이었다.
  "푹 쉬라고 해라. 아무 말 하지 말고."
  나는 엄마의 뺨을 내리치던 아빠의 모습이 갑자기 떠올라 아빠의 물음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오늘 다시 아빠가 엄마에게 분노할 지 몰랐고, 엄마는 다시 이 집을 나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들의 싸움이 멈추길 울면서 기다릴지도 몰랐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고 나는 식탁에 앉아 엄마가 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엄마는 곧 돌아왔다. 손에는 갖가지 생활정보지가 들려 있었다. 엄마는 당장 면접시험이라도 보러 가는 사람처럼 서두르며 볼펜을 찾았고, 무선 전화기를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생활정보지의 구인란을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아마도 엄마는 일할 곳을 찾는 듯 싶었다. 나는 말없이 엄마 곁에 앉았다.
  "너도 찾아봐, 엄마가 일할 만한 곳."
  나는 한 묶음의 생활정보지를 펼치며 엄마가 일할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잉크 냄새가 훅, 코를 찔렀을 뿐 아무리 찾아보아도 나이 쉰이 넘은 여자가 할 일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굳이 고른다면, 건물의 청소부나, 파출부, 혹은 식당 설거지 아줌마 정도가 고작이었다.
  "엄마, 중앙병원 청소 아줌마 구한 다는 데, 어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깨진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 보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백화점이나 제과점 같은 곳은 모두 젊은 아줌마를 구한다구. 엄마가 일할 만한 곳은 이런 곳 뿐이야."
  "나도 알아."
  엄마는 까만 볼펜으로 생활 정보지 위에 무수히 많은 동그라미를 그려 넣으며 대답했다. 엄마의 오래된 습관. 엄마는 사슬처럼 이어지는 동그라미를 그리다 갑자기 생활정보지의 쌀알만 한 글씨에 집중했다. 그리고는 드디어 적당한 자리를 찾아냈는지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저기……, 일할 사람 구한다구요. 예, 나이요? 지금 마흔아홉이예요. 힘든 일도 잘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편하게만 있던 사람 아니예요. 잘 해요. 한번 와보라구요? 예. 어딘데요? 엄마는 생활정보지 위에 또박또박 주소를 적어 넣었다. 예, 그럼 내일 들릴께요."
  엄마는 마치 처음 면접을 보고 나온 취업 준비생처럼 긴장이 풀린 한숨을 막 내쉬었다. 나는 "뭐 하는 덴데?", 라고 물었다.
  "공장. 근데 나이가 많아서 걱정이다. 사십대라고 속이긴 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눈 밑에 내려앉은 검은 색의 기미처럼 칙칙하게 들렸다. 나는 순간, 엄마가 완전히 돌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엄마는 이혼을 포기하고 위자료도 포기하고 이 집으로 돌아와 자신이 진 빚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싶어했다. 정말 엄마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엄마를 쳐다보며 안심했고, 한 편으로는 나를 증오했다.
  "나, 아르바이트 자리 구했어. 학원에서 애들 가르치는 거야. 하루에 5시간 정도 일해. 팔십만원 받고. 일하는 시간이 얼마 안되니까 시험공부도 할 수 있을 꺼야."
  내 말을 듣자 엄마는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띄웠다.
  "잘 생각했다. 우리는 지금 돈이 필요하잖니."
  엄마는 그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밤이 깊어지자, 남동생이 들어왔다. 동생은 대문을 열어준 엄마를 분명히 봤지만 아무 말 없이 신발을 벗었다. 왔냐는 말도 잘 왔다는 인사도 없었다. 동생은 고장난 알람시계처럼 소리를 내야 할 때를 놓친 채, 침묵만 일관했다. 늘 그랬듯이 그저 방으로 가서 텔레비전을 켜고 그 앞에 앉았다.
  남동생은 그렇게 하루의 대부분을 텔레비전 앞에서 보냈다. 그리고 동생이 보는 프로그램은 한심할 정도였다. 종일 케이블 방송에서 해주는 프로레슬링 게임을 골라 보고 있었다. 세 개의 스포츠 채널에서 해주는 프로레슬링과 AFN 방송에서 해주는 것까지 동생은 하루종일 거대한 사람들이 서로를 밀뜨리며 싸우는 장면을 골라보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동생 옆에 앉았다. 그리고 동생의 눈동자가 빠져 있는 프로레슬링 게임을 같이 바라보았다.
  링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붉은색 레슬링복을 입고, 얼굴에는 붉은색 가면을 쓴 사람이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분노를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자 링을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관중들이 폭포소리와 같은 거대한 환호성을 질렀고 반짝이는 불꽃이 가면을 쓴 선수의 옆에서 연속적으로 피어올랐다. 가면을 쓴 사람의 맞은 편에는 초록색의 레슬링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있었다. 그는 마치 복싱 선수처럼 가벼운 스텝으로 몸을 풀었고, 시종일관 상대를 노려보았다. 마치 말벌처럼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면 바로 쏘아버릴 수 있는 날카로움이 그의 눈에서 번득이고 있었다.
  땡땡, 경기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이 둘은 곧장 상대에게 달려갔다. 가면을 쓴 남자는 주먹으로 상대의 얼굴을 연속적으로 강타했고, 사람들은 환호했다. 말벌 같은 눈빛의 남자는 얼굴을 맞으면서 상대의 허리를 감싸더니 재빨리 상대의 다리 사이로 빠져 나와 상대를 넘어뜨렸다. 그러자 화가 난 빨간 가면은 벌떡 일어났고, 아직 몸을 일으키지 못한 초록색의 남자의 배를 향해 어깨를 세운 채 점프를 하며 떨어졌다.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났고 초록색 유니폼의 남자는 배를 움켜쥐고 신음소리를 냈다. 빨간색 가면 속의 남자는 두 팔을 벌리고 큰 고함을 지르더니 상대의 다리를 꺾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눈부신 조명처럼 강렬한 함성을 질렀다. 나는 짐승들처럼 싸우는 잔인함에 질려 고개를 돌려 동생을 쳐다보았다.
  두 주먹을 꼭 쥔 채 눈을 커다랗게 홉뜬 모습이 마치 실제상황을 보는 관객처럼 동생은 맹렬히 흥분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이 한심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동생의 어깨를 툭, 쳐보았다. "왜?" 동생은 내게 일각의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물었다. "그렇게 재밌니?" 나는 동생의 옆얼굴을 보며 물었다. 동생은 대답대신 "그렇지!", 화면 속 선수에게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만 줄곧 외쳐댔다. 괜히 무안해진 나는 일어나서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런데 동생의 방 한쪽 벽면에 붙여진 프로레스링 선수인 듯한 한 남자의 커다란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남자는 굵은 땀방울을 온몸에 휘감은 채, 챔피언 벨트인 듯한 금빛의 벨트를 어깨에 두르고 고된 전투에서 승리한 투사처럼 피곤한 육신을 견디며 두 팔을 하늘 위로 뻗은 채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스톤콜드야." 동생은 포스터를 주시하는 내 모습을 보았던지 그 선수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수지. 조금 있으면 나올 거 같은 데, 같이 볼래?" 동생은 방금 전과는 달리 밝은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글쎄, 별로." 나는 다소 쌀쌀맞은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고 동화될 수 없는 함성만이 난무한 동생의 방에서 빠져 나왔다. 그러자 순식간 차가운 정적이 온몸에 닥쳐 왔다.
  엄마는 조용히 안방에서 빨래를 개고 있을 뿐, 아무런 소리도 만들지 않고 있었다. 내게 아무런 말도 걸지 않았고, 나 역시 아무런 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마치, 아주 작은 소리에도 금이 가버리는 얇고 투명한 유리로 만든 집에 있는 것처럼 나는 입을 꼭 다물었다.
  무수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걸어가는 초침 소리만이 집안에 울려 퍼질 때,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 밖을 비춰주는 모니터를 통해 아빠의 얼굴을 확인했고, 얼른 달려가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 아빠는 술을 마셨는지 발그레한 얼굴로 말없이 현관에 들어섰다. 구두를 벗고 마루에 들어설 때, 안방에서 삐거덕, 하는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고, 엄마의 얼굴이 비죽 튀어 나왔다. 아빠는 엄마를 보고서도 못 본 채 고개를 돌렸고, 거실로 가서 옷을 벗었다. 엄마와 아빠가 다시 싸우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둘 사이에는 싸움이 아니라 고요한 침묵만이 맹렬히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
 아빠는 늘 그랬듯이 편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고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고, 엄마는 저녁상을 보았다. 탁, 하는 가스레인지 점화소리가 들렸고 곧 보글보글 찌개 끓어오르는 소리가 커져갔다. 나는 식탁에 어제 먹던 김치를 새로운 그릇에 담고 물김치를 대접에 떠서 놓았다. 김, 고사리 나물, 오징어 젓갈을 식탁에 놓았고 성급히 숟갈과 젓가락을 각자의 자리에 놓았다. 
  구수한 된장찌개가 올려진 저녁상에 막내 동생만 빼고 둘러앉았다. 아빠가 숟가락을 들고 된장국물을 한 입 넣더니 하얀 쌀밥을 한 덩이 푹 퍼서 대접에 덜어내었고 동생은 잘 떨어지지 않는 깻잎을 젓가락으로 힘겹게 들어내고 있었다. 엄마는 밥 생각이 없는지 젓가락으로 밥을 조금 떼어내서 입에 넣었고 나는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만 들리는 이 밥상에 앉아 그저 이 집에 아무도 살지 않는다,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씹지 않아도 넘어가는 찌개의 두부만을 자꾸 입에 넣었다.

3.
  엄마는 몇 번의 퇴짜 끝에 곧 어느 식품 공장에 취직했다. 나이에 비해 더 많아 보이는 엄마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사장은 "잘 할 수 있겠어요? 보기보다 힘든데……", 라고 물었다고 한다. 아침에 활짝 피어난 나팔꽃처럼 생기 있게 웃으며 "물론이죠.", 라고 대답한 엄마는 남들보다 30분 더 일찍 출근했고 어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자청했기에 앞으로 계속 일해보라는 사장의 오케이 사인을 간신히 얻어낼 수 있었다.
 엄마는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대충 립스틱만 칠하는 화장을 한 채 아침을 혼자서 해결했다. 그리고 7시가 좀 덜 되었을 무렵 작게 대문 닫히는 소리를 내곤 나가 버렸다. 그렇게 7시가 지나갈 때면 여동생이 일어나 서둘러 머리를 감고 교복을 입고 아침밥을 거른 채 바쁘게 학교를 향해 나갔고 시간이 흘러 아침 9시가 넘어 아침햇살이 거실과 안방의 절반 정도를 삼키며 들어올 때 나와 아빠가 차례로 일어났다. 아빠가 욕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나와 오래된 습관대로 텔레비전을 켜면 나는 하품을 하며 어제 먹던 찌개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펄펄 끓였다. 그리고 대충 어제 먹던 반찬들을 꺼내어 식탁에 놓고 아침을 차렸다.
  아침 식사 후 아빠가 담배 몇 개피를 피우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출근을 하면 남동생은 그제야 일어났다. 마치 온 집안 식구들을 피할 속셈인 것처럼 동생은 철저히 혼자일 순간에만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식탁에 앉아 식은 찌개를 떠먹으며 아침밥을 비웠다.
  그렇게 식구들이 나가고 나면 나는 설거지와 청소를 하며 오전 시간을 소비했다. 투명한 아침 햇살에 부유하는 먼지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 먼지들이 우리 집 바닥에 온통 쌓일 것만 같아 오래도록 청소기의 멈춤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이미 청소한 방을 구석구석 다시 문질러 댔다. 그리고 물걸레질을 했고 빨래를 하려고 엄마가 벗어둔 속옷과 아빠가 벗어둔 와이셔츠들 동생의 바지와 티셔츠들을 세탁기에 넣었다. 그러면 시간은 훌쩍 뛰어넘어 정오를 지나 오후가 되었고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며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집 근처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갈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선택했던 아르바이트 자리였다. 솔직히 요즘 차비마저도 아껴야 했다. 평소 엄마에게서 타던 용돈은 이제 단돈 천 원도 탈 수 없었다. 그래서 과외자리라도 구해보려고 전단을 붙이고 수소문도 해보고 그랬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이고 도무지 자리가 나질 않았다.
  용돈을 벌어야겠다는 급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일 엄마의 카드 빚을 갚으려고 이리저리 전화하며 애쓰는 아빠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던 게 학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한 제일 큰 이유였다.
  요즘 돈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엄마 대신 아빠의 핸드폰에 울리기 시작했고 아빠는 아무런 말없이 담배를 피우는 날이 많아졌다. 보이지 않는 쇳덩이 같은 것이 아빠의 어깨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져 아빠를 짓누르는 거 같았고 아빠는 이내 무릎이 꺾여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나는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메이크업베이스를 엷게 펴 바른 다음 파우더로 얼굴을 톡톡 문지르며 화장을 마쳤다. 그리고 평소에 잘 신지 않던 구두를 꺼내어 닦았다. 가방에 오늘 수업할 교재와 어제 만들어 놓은 사자성어 프린트, 평가 시험지가 들어 있는 파일을 넣고 현관으로 갔다. 그리고 구두에 발을 구겨 넣고 현관문을 열려다 말고 뒤돌아보았는데, 식구들 대부분이 나가버리고 방문을 닫아버린 우리 집이 마치 버려진 애완견처럼 내 눈에 애처로워 보였다.

  학원으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간혹 자유를 느끼곤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수업이 매우 즐겁거나, 이 학원에서 받는 보수가 그렇게 넉넉한 것도 아닌데, 학원으로 가는 발걸음은 늘 가볍고 설레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집을 떠나서 어디론가 가고 있다는 것. 나는 집 밖에 있다는 것만으로 야릇한 해방감에 휩싸였다.     무겁게 내려앉는 침묵과 먼지처럼 쌓여있는 빨래와 설거지 따위의 일들. 그리고 은행과 카드사에서 걸려오는 피곤한 전화들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났다는 것은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날 설레게 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와 다르게 강의 내내 웃는 얼굴로 분필을 쥐고서 학생들을 쳐다 볼 수 있었다. 간혹 가벼운 농담도 하면서 말이다. 학원에 있는 어느 누구도 결핍투성이의 내 일상을 눈치챌 수 없을 것이다.
  5시간동안 연속적으로 수업을 하고 집으로 올 때에는 밤하늘에 별들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동네 슈퍼마켓이나 치킨가게, 비디오가게의 간판에도 불이 켜졌고, 나는 골목길에 우두커니 서있는 가로등 불빛 아래 길고 지친 그림자를 드리우며 집으로 타박타박 걸어왔다. 학원에 갈 때와는 반대로 집으로 갈 때의 나는 무거운 피로에 지쳐갔다. 저녁식사와 설거지, 그리고 술 냄새가 몸에 밴 아빠가 또 술을 드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골목길의 도둑고양이처럼 불쑥 고개를 쳐들곤 했다.
  밤하늘의 별빛이나 은은한 달빛대신에 어두컴컴한 불안과 걱정들만 눈앞에 두고 바라보며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텔레비전 떠드는 소리가 날 맞이했다. 방문을 살짝 열고 날짜 지난 신문처럼 생기 없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동생은 "왔어?" 짧게 묻고는 이내 방문을 닫아버린다. 나는 가래처럼 목 위로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분노를 꿀꺽 삼키고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애호박, 어제 먹다 남겨둔 반 모의 두부, 감자 등을 꺼내어 된장찌개를 끓이고 밥솥에 밥이 얼마나 있나, 확인했다. 그러면 엄마가 도착했고 좀 늦게 아빠가 들어왔다.
  온 식구가 들어앉아도 불치병 환자들이 모여있는 병원처럼 침묵이 흘렀고 모두들 입을 열어 말하길 주저했다. 단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재미없지만 쉬지 않고 딱따구리처럼 쪼아대는 개그우먼의 일방적인 수다가 정적을 깰 뿐이었다.
  일상은 그렇게 좀처럼 표정을 바꾸지 않았고 늘 같은 곳만 맴돌았다.
  너무나 똑같은 하루하루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상 경계를 무너뜨렸고 시간은 그저 뭉텅이로 덩어리 채 내 곁을 지나가 버렸다. 두 달이라는 시간. 봄날 5월에서 6월이 가고 7월이라는 새로운 달력을 넘겼을 때, 내 손은 작게 떨렸다. 내 젊음, 스물 다섯의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급작스런 더위 때문인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혔다.

  한 달이라는 노동 끝에 엄마와 나는 똑같이 80만원이라는 월급을 받는다. 나는 월급에서 50만원을 아빠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내 놓았고 나머지 30만원으로 통신요금과 대학 등록금으로 빌린 학자금 대출금 이자를 냈다. 그러고 남은 10만원 정도의 얄팍한 돈을 용돈으로 쓰기 위해 지갑에 구겨 넣었다. 엄마는 차비와 얼마의 용돈을 제외하고 모두 카드 빚을 갚는데 내 놓았고 아빠에게 돈을 줄 때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 순간, 엄마와 나는 우리는 노력했고 생활은 점점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핑크빛 상상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와 엄마의 돈을 받아드는 아빠의 표정은 늘 어두운 불만족을 드러냈고 이 정도는 카드 빚의 이자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며 아빠는 노골적인 핀잔을 늘어놓았다.
  적금을 깨고 내 이름과 동생 이름으로 된 보험이며, 청약 통장까지 모조리 해약했지만, 오 천 만원이라는 돈은 쉽사리 줄어들 지 않았다. 아직도 삼 천 만원이라는 빚이 남아 있고 카드 대금 이자만 해도 80만원이 깨진다는 아빠의 말에, 나는 '깨진 독에 물 붓기' 라는 말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분양권을 사서 가격이 뛰어오르면 되파는 식으로 적잖은 돈을 벌었다. 호기롭게 식구들을 이끌고 외식을 다니기도 했고 옷을 사 입으라며 십 만원 짜리 수표를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얼마의 이익도 보지 못한 채 부랴부랴 분양권을 처분하느라 아빠는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고 소액의 소개비라도 놓칠까봐 부동산 일에 노심초사였다. 늘 말끔하던 양복과 와이셔츠에는 굵은 선의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고 주량과 재떨이에 비벼 끈 담배꽁초와 욕설이 늘어갔다.  엄마의 카드 빚이 내 생활을 변화시켰듯 아빠의 삶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엄마와 내가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원금의 이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답답한 요즘의 일상을 더욱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 난 듯 했다.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우리는 매달 몇십 만원의 이자를 내야했고 대학생인 남동생과 고3인 여동생의 교육비만 해도 상당한 요즘의 가계 형편을 고려한다면 집을 팔거나 아빠의 가게를 내 놓지 않는 이상 빠른 시일 내에 그 빚을 청산하기란 불가능했다. 아빠, 엄마, 나, 동생들,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은 모두 앞으로 긴 시간을 바로 어제와 오늘처럼 빚에 쪼들려 팍팍하게 살아야 했다.
  이런 결론을 두고 나는 돈이라는 것에 새삼스레 놀랐다. 과연 돈이라는 것이 인간의 삶을 장밋빛에서 회색빛으로 이렇게 재빨리 탈색시킬 수 있는 것일까? 엄마와 아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부동반으로 설악산에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고 대학생인 남동생은 프랑스의 예술 영화를 보며 부산이나 부천으로 영화제를 찾아다니기도 했고 나는 졸업 전만 해도 미술관에를 다니며 그림 보는 것을 즐겼고 배낭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동생은 우스운 가면을 쓴 사람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프로레슬링 앞에만 앉아 있고 나는 금욕주의자처럼 모든 소비를 참아내고 있었다. 나는 이제서야 내가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과거의 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가 만끽하는 즐거움의 순간순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돈이 가지고 있던 교환가치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4.
  학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핸드폰이 울렸다. 친구였다. 친구는 얼굴본지 너무 오래됐다며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였다. 나는 텅 빈 주머니 사정 때문에 다소 망설였으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졸업과 동시에 무역회사에 취직한 친구는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약속장소에 앉아 있었다. 거리의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은 친구와 반대로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고 대충 입은 옷차림새가 부스스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친구에게 가는 발걸음이 다소 떨렸다.
  날 발견한 친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 어깨를 치며 잘 지냈냐, 고 물었다. 예전처럼 밝은 성격은 친구는 자기가 저녁을 사겠다며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날 끌고 갔다. 그리고는 크림소스 파스타와 치킨 샐러드를 주문했다.
  70년대 풍의 재즈 음악이 흐르고 테이블에는 살구빛 조명이 은은히 내려앉고 있었다.
  "집은 괜찮니?"
  친한 친구이기에 얼마 전 전화로 친구에게 우리 집 상황을 말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그렇지." 내 시원찮은 대답이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숨겨진 의도라고 생각했는지 친구는 곧 바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
  "요즘 덕수궁에서 렘브란트 그림 전시하던데, 보러 안 갈래?"
  대학 다닐 때부터 둘 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관을 종종 같이 다니곤 했다. 친구는 그 때 생각이 나서 건 낸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을 들을 순간 내 마음이 오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나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것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는 말이 없는 나를 보며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따분한 회사 업무와 그것을 위로하는 것은 월급날뿐이고 가끔 떠나는 여행과 전시회가 요즘 유일의 낙이라는 것. 그리고 가끔 소개팅을 하는 데, 마음이 맞는 남자는 왜 그렇게 없는지 푸념 섞인 한숨도 쉬었다.
  나는 친구의 말을 재밌게 들으면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저런 말을 하곤 했었지, 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에게도 저렇게 평범한 일상이 있었지. 소설책을 읽고 친구들과 소설의 결말을 두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같이 뮤지컬을 보러 가고 날이 좋으면 남도의 어느 섬으로 여행도 가는 그런 일상이. 여행을 떠나며 스스로 자유롭다고 속삭이기도 했고 뮤지컬을 보고 음악회를 다니며 그리고 시집을 읽으며 스스로를 교양 있는 여대생이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난 늘 이렇게 살 거라는 위대한 착각을 일삼았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너 크림소스 좋아하잖아. 많이 먹어." 친구는 날 살피며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방금 한 생각을 말하려다 관두었다. 그런 이야기는 오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커피 한잔하고 헤어지자고 친구는 날 붙잡았지만, 커피까지 얻어먹고 싶지 않아 집에 일이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내 앞에서 웃고 있던 친구의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1년 후 혹은 2년 후, 친구의 모습은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친구는 착실하게 회사를 다닐 테고 그 동안 돈도 꽤 모을 것이다. 그리고 연애를 하게 될지도 모르고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결혼발표를 할 수도 있다. 나는 나의 1년 후와 2년 후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지금 상태로는 학원 아르바이트 비가 수입의 전부이고 그것을 쪼개어 쓰는 형편이니 지금도 앞으로도 저금은 불가능해 보였다. 공부도 예전 같지 않고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해야 하니 내년 공무원시험도 합격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내년도 아마 올해와 다르지 않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면 그 후, 27살이 되어 있을 그때는 어떨까? 나는 순간 어지럼증이 일었다.
  결정 나 버렸다. 모든 것이. 친구는 모아둔 돈으로 결혼을 하든 독립을 하든 자신의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반면에 나는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가능해 보였다. 어렵사리 취직을 하거나 시험에 붙어 말단 공무원이 된다 하여도 식구들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돈을 내 놓으면 앞으로 남들처럼 독립을 하거나 혹은 차를 살만한 목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싶었다. 보나마나 불가능했다.
  모든 것이 이미 결정 나 버렸다. 아마, 긴 시간을 난 돈에 시름할 것이다. 돈이 그런 것이구나.
  나는 새삼스레 다시 놀랬다. 돈은 사람의 인생을 순식간에 암흑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 요즘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카드 빚 자살 사건이 떠올랐다. 스무 살 먹은 여대생이 수 천 만원의 카드 빚 때문에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기사. 혹은 억대의 카드 빚을 돌려 막다가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자살했다는 삼십대 사업가의 이야기. 혹은 온 가족은 같이 비관하여 자살하거나, 이혼하여 자식들이 거리에 내몰리고 있다는 기사들이 머리 속을 가득 메웠다. 그 틈에 나도 끼어 있는 듯 했다.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난 쉽게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들을 조소하곤 했다. 아직 젊은 데 그 돈을 못 갚나 싶었고 주위에 도와 줄 사람이 그렇게 없나, 라며 혀를 차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남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쉽게 내 뱉을 수 있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돈은 그렇게 한 사람의 목숨마저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스무 살의 여대생은 돈을 못 갚아서가 아니라 평생을 돈에 얽매여 살아야 하는 현실을 더 못 견뎠을 것이다. 아무리 고된 노동을 견디며 한달 벌어도 이자 갚기에도 급급할 테고, 자기 손으로 다 갚겠다고 다부지게 마음먹어도 도무지 깎이지 않은 원금과 오직 '돈'이 중심이 되어버린 자신의 일상, 그리고 무엇보다 그 끝이 언제 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 여대생을 절망에 빠뜨렸을 것이다. 그런 캄캄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차라리 시원할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려는지 검은 먹구름이 밤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내 자신이 오랜 피로에 젖어 있음을 느꼈고 소화가 잘 안되었는지 신트림이 자꾸 끓어올랐다.
  집에 도착해보니 엄마와 아빠는 없었고, 남동생 혼자 있었다. 나는 동생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왔어?" 동생은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선수가 두 팔을 벌리고 있는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고 물었다. "누나, 좀 있으면 스톤콜드 나오는데, 같이 봐" 나는 한심한 동생의 모습에 끓어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으며 오늘은 꼭 한마디 해 주어야 할 듯 싶어 동생의 곁에 앉았다.
  난 동생의 시선을 쫓아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는 곧 새로운 경기가 시작될 모양인지 텅 빈 링이 보였다. 사각의 링 위에는 붉은 색의 로프가 세 줄씩 연결되어 있었고 강렬한 조명이 링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쨍그랑 하는 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요란한 메탈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동생도 관중들처럼 흥분하며 말했다.
  "누나, 스톤콜드야." 360도 회전을 하며 관중들을 비추던 카메라는 키가 2미터는 될 듯하고 머리는 다 밀어버린 강렬한 눈매의 사내를 비추었다. 온 몸의 근육이 위압적으로 보였고 무엇보다 링 위로 훌쩍 뛰어올라 사람들에게 두 팔을 들어올려 인사하는 모습이 동생 방에 붙어 있는 포스터의 남자와 흡사해 나는 그 사진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저 사람이 바로 이 선수야." 동생은 프로레슬링에 무지한 나에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스톤콜드는 지금 세계 챔피언이야. 어깨에 두른 저 벨트 보이지? 저게 세계 챔피언 벨트라구. WWE에 데뷔한지는 한 10년 됐는데, 요즘이 가장 전성기야. 특히, 이 선수가 매력적인 건 자신의 마음 내키는 대로 모든 것을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거지. WWE 사장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욕보이거나, 스터너를 건다니까. 아, 스터너는 스톤콜드의 끝내기 기술인데 좀 있다가 나오면 알려줄게. 아주 멋있어" 동생은 마치 해설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친절하게 하나하나를 꼭꼭 짚어가며 설명해 주었다.
  "오늘 이 시합에서 스톤콜드와 커트 앵글이 싸울 거야. 빨간색과 흰색 스트라이프에 별까지, 영락없는 미국국기를 연상시키는 저 레슬링 복을 입은 선수 보이지? 저 선수가 커트 앵글이야. 목에 메달을 걸구 있지? 실제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레슬링 선수거든. 미국에서는 아주 유명하다구. 부상 때문에 시합에 나갈 상태도 아니었는데 결승전까지 올라 기적적으로 금메달을 따냈지. 미국을 사랑하고 자신이 미국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지 늘 저런 유니폼을 입고 나와. 그리고 커트 앵글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발목을 비트는 끝내기 기술을 가지고 있어. 걸리면 정말 죽는다구. 스톤콜드가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번 시합에서 발목 조심하면서 커트앵글을 꼭 이겨야 해"
  땡땡, 하는 종이 울리고 시합이 시작되자 동생의 절대적인 응원을 받는 스톤콜드는 커트앵글에게 몸을 날렸다. 초반부터 거칠게 공격하는 스톤콜드에 비해 요리조리 몸을 빼는 커트앵글은 올림픽 레슬링 선수답게 단번에 상대를 무너뜨릴 허점을 찾는 듯 싶었다.
  탐색전이 이어지던 순간 커트앵글이 재빨리 스톤콜드의 허리를 잡고 그를 링 바닥으로 넘어뜨렸고 순식간에 스톤콜드의 발목을 잡고 비틀기 시작했다. "저게 앵클 락이라는 기술이야. 정말 빠져 나오기 힘들지." 동생의 말 그대로 챔피언 스톤콜드는 상대에게 한 쪽 다리를 잡힌 채 엎드려 이를 악물고 거친 신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환호하는 관중들과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 그리고 사각의 링을 둘러싼 붉은 로프와 강렬한 조명 때문에 시합은 더욱 흥분되었다. 그에 비해 차갑게 마음이 굳어지는 나는 동생에게 못되게 굴고 싶어졌다.
  "듣기로는 시합이 다 조작이라던데."
  "조작?"
  "승패가 이미 결정 나 있다구"
  "아, 그거 맞아."
  "그런데 저게 재밌어? 저 둘은 올림픽 경기나 마라톤 경주처럼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는 게 아니라구. 이미 결판 난 결과를 두고 연기하는 거잖아. 봐봐. 지금 커트앵글이 스톤콜드의 발목을 비틀고 있지? 마치 발목 관절이 다 나가버릴 거 같지만, 저건 그저 스톤콜드의 표정연기라구. 넌 시합을 보고 있다고 생각되겠지만 실은 훌륭한 연기를 보고 있는 거야."
  내 말에 동생은 그저 날 슬쩍 바라보았을 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갑자기 약이 올랐다.
  "보는 사람이야 누가 이길지 모르니까 속는 셈치고 보면 되지만 도대체 싸우는 선수들은 뭐냐구. 마치 목숨이라도 걸고 싸우는 것처럼 굴지만 사실 다 연기잖아. 세상에 맞는 연기 때리는 연기를 그럴싸하게 해야 하다니. 꽤 힘들 꺼야. 그럼 챔피언이라는 건 가장 연기를 잘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건가?"
  냉소적인 내 혼잣말에 동생은 화가 났는지 갑자기 차가운 눈이 되어 날 쳐다보았다.
  "보기 싫으면 관두면 되잖아." 동생은 다시 시합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시합은 엎치락뒤치락하며 누가 이길지 예측불허였다. 싸운 지 20분이 넘어갔고, 두 선수들 모두 가뭄에 시든 푸성귀처럼 맥없이 지쳐갔다.
  스톤콜드가 몇 번이나 커트앵글의 옆구리를 강타하고 허벅지를 짓밟으며 쓰러진 커트앵글의 몸 위에 엎드려 카운트에 들어가 보지만 카트앵글은 원, 투, 가 지나고 쓰리가 될 순간에 몸을 일으켰다. 부상의 몸으로도 상대를 쓰러뜨리고 금메달을 따 온 선수가 아니던가. 쉽게 쓰러질 상대가 아니었다. 싸움은 길어졌고 선수들은 지쳐갔다. 하지만 보는 관중들은 더욱 흥분했다.
  스톤콜드의 계속된 공격으로 쓰러져 있던 커트앵글이 갑자기 링 밖으로 나가 의자를 가져왔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스톤콜드의 머리를 의자로 강타했다. 스톤콜드는 멍한 눈으로 바닥으로 쓰러졌고 그 순간 커트앵글은 스톤콜드를 머리를 아래로 다리를 위로하여 거꾸로 세운 채 스톤콜드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사이에 끼우고 무릎을 굽혔다. 그러자 쿵, 하는 소리가 났고 스톤콜드의 머리는 강하게 링을 찍었다. 마치 스톤콜드의 머리로 망치질을 하는 듯 했다.
  아무리 연기여도 당한 선수에게는 상당한 고통을 줄 듯한 기술이었다. 나는 눈을 찡그렸고 화면 속에는 머리를 감싸고 몸을 떨고 있는 스톤콜드가 보였다. 커트앵글은 비겁했지만 자신의 승리를 예감하고 즐거운 듯 링 위를 왔다갔다하며 관중을 처다 보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카운트에 들어가지 않았다. 스톤콜드가 쓰러져 있을 때 재빨리 카운트에 들어가야 할 텐데, 커트 앵글은 쓰러져 있는 스톤콜드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뭐가 잘못된 듯 싶었다.
  스톤콜드는 힘겹게 머리에서 손을 떼더니 관중들만 쳐다보고 있는 커트앵글의 발목을 한 손으로 끌어 당겼다. 그러자 커트앵글은 갑작스레 엎어졌고 링 위에 뻗었다. 한 눈에도 말도 안 되는 연기임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스톤콜드는 팔꿈치로 엉금엉금 기어가 커트앵글의 배 위에 손을 올려놓았고 심판은 재빨리 원, 투, 쓰리 카운트를 샜다. 결국 스톤콜드가 승리했다.
  승리의 축포가 터지고, 스톤콜드의 메탈음악이 깔리고 관중들이 환호했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도저히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스톤콜드가 너무 쉽게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참동안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부상이야." 동생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중얼거렸다.
  "아까, 커트앵글이 스톤콜드를 거꾸로 내리찍을 때, 목을 다쳤나봐!"
  동생의 말이 그럴 듯해서 나는 화면을 다시 쳐다보았다. 부상이라면 어서 빨리, 선수를 옮기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스톤콜드는 도와주는 응급요원 하나 없이 홀로 로프를 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챔피온 벨트를 두 손에 힘겹게 쥐고는 입을 맞추고 관중에게 두 팔을 벌리는 특유의 인사를 했다. 심하게 발이 꼬이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모습이 동생의 말대로 부상인 듯 싶었다. 하지만 그는 홀로 끝까지 각본대로 행동했다. 
  "대단한 연기네. 마지막까지. 돈을 많이 주나보지?" 평소 매사에 무표정하던 동생이 프로레슬링 선수의 부상에 근심의 표정을 짙게 드리우는 자, 나는 그게 심사에 뒤틀렸는지 계속 나쁘게 말했다. 하지만 동생은 내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세상이 저런 거구 사는 게 저런 거야. 다 돈 때문이라구. 돈을 많이 주니까 저렇게 목숨 건 연기도 하는 거라구. 챔피언? 정말 그게 되고 싶어서 일까? 아닐걸. 그리고 어차피 정해진 결말인데, 정말 승리에 기뻐서 부상당한 몸을 겨우겨우 일으켜 관중에게 인사를 했을까? 그게 아니야. 아마 각본에 명시된 마지막 연기 부분이었을 거고, 계약 때문일 거야. 각본에 쓰여진 대로 충실하게 이행해야 돈을 받지. 넌 저 사람이 영웅으로 보일 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모두 똑같다구. 모든 사람들의 모습은 돈이 결정한다구. 우린 아닐 거 같니? 제발 너도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이렇게 방구석에 앉아서 시답지 않은 레슬링이나 보고 있을 꺼야. 우리에게 필요한 게 뭔지 몰라? 우리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어? 가르쳐 줄까? 돈, 돈이라구! 알겠어?" 그 동안 목구멍으로 삼켰던 말들이 토악질처럼 뱉어지자 나는 말 할 수 없는 시원함을 느꼈다. 반면에 동생은 온몸에 나의 구토를 뒤집어 쓴 듯, 구겨진 표정으로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는 조용히 나가라고 방문을 가리켰다.
   밤이 깊어지고 밖에서는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산 없이 나갔을 엄마가 걱정되어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와 어깨에 잔뜩 빗방울을 달고 엄마가 현관에 들어섰다. 비를 맞아서 그런지 몸을 움츠린 엄마는 안방으로 가서 옷을 벗고 욕실로 가 샤워를 했다.
  올려 보니,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침 7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들어오는 엄마가 받는 월급은 고작 80만원이고 이 돈은 엄마에게 변변한 옷 한 벌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엄마는 어떻게 요즘을 견디고 있을까? 나는 벗어놓은 엄마의 젖은 옷을 집어들고 세탁실로 갔다. 빨래를 하려고 옷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데, 한 움큼 모래가 손에 가득 잡혔다. 난 놀래서 주먹을 쥔 채로 손을 빼 보아 봤는데 손은 이상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엄마. 사막의 낙타처럼 불타는 태양과 갈증, 그리고 무릎이 꺾이는 짐의 무게를 온 몸으로 견디고 있는 엄마. 나는 엄마가 늘 낙타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모래 한 줌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엄마의 옷을 세탁기에 넣고 바구니에 구겨져 있는 빨랫감들을 하나하나 살펴본 뒤 세탁기에 넣었다. 평소 아빠가 즐겨 입는 운동복 바지가 있어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얄팍한 종이가 잡혔다. 호기심에 얼른 꺼내어 펴보았다.  '인생역전을 꿈꾸십니까?' 라고 속삭이던 광고의 복권이었다. 여러 숫자가 찍혀 있는 종이가 구겨진 모양을 보아하니, 꽝인 듯 싶었고 나는 쓸쓸한 심정이 되어 그것을 휴지통에 넣었다. 그러자 또 한 마리의 낙타가 힘겹게 사막 위로 발자국을 찍으며 걸어가는 모습이 가득 눈에 차 올랐다.
  샤워를 마친 엄마는 피곤했는지 이불을 펴고 잠을 청했다. 바로 눕지 못하고 늘 옆으로 자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가 집을 나갔다가 2주일만에 들어왔던 그 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 너무 좋았던 나머지 엄마가 집으로 돌아온 이유를 미처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것도 떠올랐다. 위자료로 장밋빛 미래를 꿈꾸던 엄마, 이제는 편히 혼자 살고 싶다는 엄마가 그날 왜 갑작스레 돌아왔을까? 그러고 보니 아빠도 역시 이혼을 선택했었는데 왜 다시 마음을 바꾸었던 걸까, 나는 신기하게도 이제서야 그것들이 궁금해졌다.
  뒤늦은 질문인 만큼 매우 궁금했지만 자는 엄마를 깨워서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저 예전 일을 떠올려 추측해 볼뿐이었다.
  깊이 생각해보니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포기한 이유가 나와 동생들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엄마와 전화했을 때, 엄마 혼자 행복하면 되냐고, 우린 뭐냐고 따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서 던진 거였지만 그 말이 엄마에게 어떤 비수를 던졌을지 짐작이 갔다. 그리고 엄마를 잊으라던 아빠에게 같이 갚아 가면 안되냐고 울먹였던 내 말이 결국 아빠의 결심을 돌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사막 위를 타박타박 걸어가는 엄마와 아빠의 등뒤에 내가 올라타고 있다는 생각이 그리고 동생들이 주렁주렁 같이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엄마와 아빠에게 달려가 이혼하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자식이라는 나의 처지가 끔찍했지만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그 짐을 들고 어디라고 걸어가는 게 가족이 아닐까, 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렇게 슬퍼할 건 없다고. 가족이란 그렇게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며 얽어져 사는 거라고 괜찮다고 애써보았다.

   똑같은 얼굴의 하루가 또 지나갔다. 나는 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정육점에 들려 삼겹살을 두 근 샀다. 그 동안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고기반찬은 식탁에 올라오질 못했었다. 고 3인 막내 동생이 얼굴을 찌푸리기 시작했고 나도 고기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안되겠다 싶어 얄팍한 지갑을 털어 삼겹살과 상추, 깻잎, 오이를 샀다.
  집으로 돌아와 싱크대에 서서 싱싱한 상추 깻잎을 씻는데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고작 삼겹살 하나 먹는 것에 이렇게 들떠 있다니, 이렇게 작은 일에도 기뻐할 만큼 그 동안 정말 힘들었구나, 라는 자조가 뒤따랐다.
  버너와 불판을 꺼내 놓고 오랜만에 온 식구가 둘러앉을 만한 커다란 상을 폈다. 시계를 보아하니 곧 엄마와 아빠가 들어올 듯 했고 남동생은 이미 방에 있었다. 여동생만 오면 되겠다 싶어 오늘은 좀 일찍 들어오라고 문자를 보냈다.
  널따란 상위에 상추와 깻잎이 수북히 담긴 소쿠리를 놓고 물김치와 새로 썬 배추김치를 올렸다. 오이도 먹기 좋게 썰어 놓았고 옆에 풋고추와 마늘도 작게 잘라 접시에 담아 놓았다. 쌈장과 고추장을 덜어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놓고 소금과 후춧가루, 참기름으로 장을 만들어 그 옆에 나란히 놓았다. 이제 고기만 구우면 될 듯 싶었다.
  10시가 좀 안되어 엄마가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 아빠와 여동생이 들어왔다. 아빠는 내가 차려놓은 저녁상을 보고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접 고기를 구웠다. 엄마도 얼른 씻고 나와 아빠 옆에 앉아 거들었다.
  아빠와 엄마가 상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나란히 앉는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믿어지지 않아 나는 두 사람을 계속 쳐다보았다. 
  어느새 지글지글 고기 굽는 소리가 나고 삼겹살 고기냄새가 코를 간지럼 태웠다. 우리는 상추와 깻잎을 톡톡 털며 고기가 익기를 기다렸다.
  고기 한 점 먹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예전과 달리 입을 열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뱃속이 따뜻해졌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게 내 마음속에서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아빠는 오랜만에 구겨진 얼굴을 펴고 말했다.
  "말 안 했는데, 어제 집 내 놓았다."
  이 말에 엄마와 나, 동생들은 놀라 다 같이 고개를 들어 아빠를 쳐다보았다.
  "종일 빚더미에 올라, 이자 갚으며 살 수는 없잖니. 엄마도 아빠도 나이라는 게 있고. 너희들도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돈에 꺾여서야 되겠니? 차라리 집을 팔자. 이 아파트 팔면 빚 갚고 조그만 한 집 전세금은 나올 거다." 아빠의 말에 좀 놀라긴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어서 나는 고기 한 점을 무심히 상추 위에 올렸다.
  "다시 시작하자. 좀 힘들어도 금방 다시 아파트로 올 수 있을 거야."
  아빠의 말에 모두들 침묵을 지켰지만, 난 고기를 씹으며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침묵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처럼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고 싶어서 외면했던 침묵이 아니라 그 말에 동의한다는 의미의 말없음이라는 걸. 나는 유치하게도 다시 시작하자는 아빠의 말이 놀라워 슬쩍 눈물을 질금거렸다.
  마지막 고기 한 점까지 깔끔하게 저녁상을 비우고 엄마와 내가 상을 치우려고 행주를 들었는데 남동생이 옆구리를 찔렀다.
  "다 끝나면 잠깐 내 방으로 와."
  저번에 내가 쏘아붙인 잔소리 때문에 동생은 자존심이 상했던지 요새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내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밖으로 휑 나가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방으로 와 보라니 난 놀란 눈으로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알겠다는 눈짓을 보냈다.
  설거지를 마치고 그릇들을 건조기에 포개어 놓은 후 젖은 손을 닦으며 동생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컴퓨터에 앉아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보더니 모니터를 가리키며 "누나, 이것 좀 봐봐"라고 말했다.
  나는 또 뭘 보라는 건가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모니터를 주시했다. 동생은 마우스로 딸깍, 어떤 파일을 클릭 했고 모니터에는 동영상을 재생시키는 미디어 플레이어 프로그램이 열렸다. 동생이 실행시킨 프로그램의 화면 안에는 한 남자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흰 침대에 머리에서 목까지 이르는 깁스를 하고, 힘겹게 누워 있었다. 나는 한 눈에 그가 프로레슬러 스톤콜드임을 알아차렸다.
  저번 부상에서 목을 다쳤는지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목을 고정해 놓아 턱도 움직이지 못하는 스톤콜드는 부산스럽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한 눈에도 얼마나 부상이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이 동영상은 스톤콜드의 부상을 취재한 짧은 인터뷰를 보여주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스톤콜드의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고 그가 더듬거리며 한 말을 자막으로 보여주었다. 스톤콜드는 이렇게 말했다.
  "부상은 좀, 심각한 거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진 마세요. 전 다시, 금방 일 어 날 테니까요."
  턱을 편하게 움직일 수 없어 옹알이를 하듯 천천히 중얼거리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좀 애처로워 보여 동생이 나에게 왜 이런 걸 보여주나, 라는 의문마저 막 사라지고 있었다.
  "전, 링 위로 다시 돌아갈 겁니다. 왜냐구요? 비록 부상이 두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전, 저 링 위의 삶에 중독 되었거든요. 상대를 힘껏 패주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욕을 보이고 때론 맞기도 할 때, 관중들은 환호하며 제 이름을 외치죠. 저 스톤콜드는 그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비록, 남들에게는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부상의 위험이 있더라도 말이죠. 이 부상에서 나으면 전 곧장 링 위로 달려갈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전 이 부상을 꼭 이겨내야겠지요."
  레슬러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스톤콜드의 모습을 보여주며 짧은 인터뷰는 끝났고 동영상은 곧 화면이 까맣게 닫혔다.
  동생은 프로그림을 종료하며 날 쳐다보았고 나 역시 동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스톤콜드의 말을 듣고 동생의 눈동자를 바라본 이제야, 왜 동생이 저렇게 스톤콜드라는 사람과 프로레슬링에 집착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링 위의 삶에 중독 되었다는 말처럼, 스톤콜드를 비롯한 여러 프로레슬러들이 벌이는 혹독한 경기에서 동생은 다름이 아니라 삶에 대한 그들의 열정을 보았던 것이다. 정해진 승패이고 그저 맞고 때리는 연기일지 모르지만 승패를 떠나서 링 위에 몸을 던지며 최선을 다해 싸우는 그들의 열의를 보았고 내가 경기를 보면서 우스운 연기만을 읽어내며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동생은 무릎이 꺾이거나 목이 부러지는 부상에도 최선을 다하며 고통을 이겨내는 사람의 의지를 보았던 것이다.
   내가 오직 돈에 대해 고민하고 힘겨워하고 집착하고 있을 때, 동생은 스톤콜드를 힘겨움과 싸우는 존재의 상징으로 보았고 프로레슬링을 보며 무기력한 자신의 삶을 위로했으며, 깊은 절망과 고통을 이겨낼 인간 내면의 힘을 찾고 있었다.
  "나, 아르바이트 자리 구했어. 누나 말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돈이잖아." 동생은 컴퓨터 의자에서 일어난 채, 계속 날 쳐다보며 말했다.
  '우 리 에 게 필 요 한 건 돈 이 잖 아', 라고 차갑게 내뱉는 이 말이 내 귓속에 윙윙 소리를 내며 울려 퍼졌다. 할 말이 없어 동생의 얼굴만을 쳐다보았는데 날 보는 동생의 눈은 날 경멸하는 듯 했고 한편으로 동정하는 듯도 했다.
  그 눈앞에서 너무나 부끄러워진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멍한 머릿속에서 나는 내 가슴이 쾅쾅 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두 달이 넘는 시간동안 나는 내게 닥친 시련과 고통만을 줄곧 되새김질하며 곱씹어댔다. 그 쓴맛에 하루하루를 증오하면서 세상의 하늘을 새카맣게 칠하곤 했고 난 도무지 시련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내게 최선의 방법은 그저 생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뿐이었다. 사막 위를 걸어가는 아빠와 엄마처럼 나 역시도 이 현실을 사막으로 여기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타박타박 걸어갔다. 뜨거운 태양열과 갈증, 그리고 등을 휘게 할만큼의 고통의 무게. 그것을 견디게 하는 것은 참고 걸어가야 한다는 일방적인 채찍질이었다.
  난 단 한번도 삶에 대한 열정을 꿈꿔보지 못했다.
  부상 속에서도 사각의 링 위로 뛰어들 열정을 꿈꾸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 나이를 읊조려보았다. 스물 다섯. 아직 번듯한 직장하나 구하지 못하였고 지갑은 텅텅 비어있고 내일이라는 것은 구름 낀 장마철처럼 답답하지만 아직 너는 열정이라는 걸 꿈꿀 수 있는 나이라고 나는 내 자신에게 말해 주었다. 그 열정이라는 것은 너의 부상을 이기리라. 나는 빈주먹을 애써 쥐어 보았다. 그리고 지난 날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라고 새겨 놓았던 검은 비석을 힘겹게 쓰러뜨리고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 있다', 라는 기도를 잊지 않기 위해 살아있는 내 심장의 가장 붉은 부분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겨 놓았다.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비가 내리는 검은 밤이었다.
 
5.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엄마와 여동생이 이부자리만 남겨 놓은 채 나가버렸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와 이불을 차곡차곡 개었다. 그리고 곧 아빠가 일어났다.
  나는 가스레인지에 국을 올려 끓이고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하나하나 식탁에 놓는다. 그리고 아빠와 마주앉아 아침을 먹는다. 아빠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부동산으로 출근하면 나는 늘 그랬듯이 설거지를 했고,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할 때에는 예전보다 더 공을 들여 청소기로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밀었고, 물걸레질을 두 번씩 했다. 집이 지저분해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마르면 부랴부랴 걷어내어 하나하나 차곡차곡 개어서 옷장에 넣었다. 그렇게 집 보러 오는 사람들의 예리한 시선이 닿을 만한 곳을 찾아 말끔히 정리를 했다.
  이 집을 팔면, 어느 집으로 가게 될까? 다소 우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이제 그것들이 더 이상 슬프지 않다.
  나와 우리 가족에게 이 집을 떠나는 것이 새로운 시작인 것처럼, 이 집에 들어올 누군가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있겠구나, 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오전의 햇살이 밀고 들어와 생기가 도는 집을 바라보다가 베란다로 나가 어제 내린 비 때문에 닫아 놓았던 창문을 하나하나 열어 보았다. 시원한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마를 스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파트 화단에서는 간밤에 내린 비에 더욱 싱그러워진 풍성한 나무의 이파리들이 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렸고 나무보다 더 여린 줄기와 잎을 지닌 들꽃과 이름 모를 풀들의 싱그러운 연둣빛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간밤에 비를 맞고 나무도 풀들도 푸른 빛깔이 더 진해진 듯 했다.
  7월의 어느 날, 그렇게 햇살에 밀려드는 베란다에 앉아 나는 고요히 오늘 하루를 바람을 쐬듯 햇볕을 쬐듯 가슴으로 느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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