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소설부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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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아영 (국문.02)
  • 승인 2003.11.2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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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꿈 꾸는 아이
 

내일을 꿈꾸는 아이..


국어국문학과

02 윤아영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어 가면.. 아기는.. 헉. 혀.. 형.”

“병신!! 뭐하는 거야 여기서!!”

“혀..형.. 자.. 잘못..”

“뭐하는 거냐고 묻잖아 지금!!”

“켁.. 잘못... 나.. 나 목 좀.. 켁..”

나는 멱살을 잡고 있는 형의 손을 붙잡고 쌔빨개진 얼굴로 애원했다.

털썩..

희뿌연 흙먼지를 뿌리며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순간 나는 그 찡한 아픔보다도 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공포에 가득찼다.

“병신새끼! 니가 이러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거야!! 알겠어?!”

“혀엉..”

“시끄러!! 누가 니 형이야!!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이 없어!!”

“내가 잘못..”

“그놈의 잘못 잘못 잘못 했단 소리!! 지겨워 지겹다구!!으아아악!!!!”

공포였다.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싸고 소리를 지르는 형의 모습은 말 그대로 공포였다.

두 눈 가득 주루룩 눈물이 흘렀지만, 우는 모습을 보였다간 형의 화를 돋우게 될 것 같아 얼른 한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혀엉.. 나.. 나는 그게 아니구..”

“시끄러!!”

형은 한 손으로 모자를 벗어들곤 꽉 움켜 쥐며 소리쳤다.

“너.. 한 번만 더 여기 올라오면 그땐!! 그땐..”

꼴깍.. 침이 넘어갔다.

“죽여버릴꺼야.”

나를 노려보고 있는 빨갛게 핏발선 눈은, 그 눈빛만으로도 단숨에 나를 집어 삼켜 버릴 것만 같았다.

“으.. 응..”

이 한마디가 이리도 힘들었던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채, 나는 목구멍에 걸려있던 말을 간신히 꺼내 뱉었다.

그래도.. 이렇게 까지 형이 화낸 적은 없었는데..

또 다시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나는 형의 팔뚝에 꿈틀 꿈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새파란 핏줄들을 보면서 이를 악 물고 눈물을 참았다.

“내가..”

“됐어. 따라와.”

형은 내 말을 가로막고 돌아섰다.

저벅저벅..

형의 뒷 모습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자 돌연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윽.. 윽.. 끅..”

입가로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아내려 이를 악 물었지만, 뱃 속 가득한 떨림까지 참아 낼 수는 없었다.

“시끄러!! 빨리 안 따라와!!”

귓가를 쩌렁쩌렁 울리는 형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일어서려 했지만 천근만근.. 내 다리는 누군가 쇠를 박아 놓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흑.. 끅.. 끅....”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은 채 두 손을 뻗어 땅을 짚고 무릎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형은.. 형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나는 엄마가 없다.

아빠도 없다.

쉽게 말해, 남들이 흔히 말하는.. 고아다.

하지만 처음부터 엄마가, 아빠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가 아주 어렸을 때 집을 나가시고.. 뒤이어 엄마가 3살에 집을 나가셨다 하니 내가 고아가 된지는 올해로.. 하나.. 둘.. 셋.. 넷.. 내 셈이 틀리지 않았다면 4년째 이다.

음. 나에게는 형이 하나있다.

나보다 13살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 나이 7살 보다 13살이 많으면.. 몇 살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뭐.. 그런거 별로 알고 싶지도 않다.

으음.. 남들이 형에 대해 물어오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한다.

우리 형은 마을에 있는 제일 큰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그렇지만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오면 이내 말문이 막혀 버린다.

무슨 실을 감는 일이라고 했는데.. 잘 모르겠다.

뭐.. 이것 역시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음... 우리 형은 참 무섭다.

나한테 소리도 잘 지르고 잘 때리기도 한다.

특히 무언가 이상한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날은 꼭 자고 있는 나를 발길질로 깨워 흠씬 두들겨 팬다.

어떤 때는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세게 때리는 때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다음날이 되면 기억을 하지 못한다.

그리곤 꼭 이렇게 말한다.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고..

그러고 보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

형한테 맞았다고 말도 안했는데 용케들 알아 맞추신다.

어른들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서.. 뭐.. 눈이 맞아 집을 나갔다는데 그게 무슨 말 인진 잘 모르겠고, 아무튼 그때 그 일 때문에 형이 무서워 진거라고들 하신다.

동네 어른들까지도 우리 형을 겁낼 정도이니, 우리 형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말 안해도 다들 잘 알 꺼라고 믿는다.


우리 형은 싫어 하는게 많다.

방을 어지럽히는 것도 싫어하고.. 형이 들어왔을 때 밥이 차려져있지 않은 것도 싫어한다.

또 내가 고아라고 놀림 받는 것도 싫어하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형이 제일 싫어하는 것은, 내가 동네 어귀 언덕에 올라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처럼 잡혀 오는 날이면 나는 십중팔구 몸에 멍이 들 정도로 맞거나 지금처럼 다락에 갇혀 이틀 정도를 굶게 된다.

뭐.. 형의 기분에 따라서는.. 삼일 정도 굶을 때도 있다,

아무튼 우리 형은 내가 그 언덕에 올라가 있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분명 그럴 것이다.

도대체 거기 왜 올라가냐고. 가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아무것도 없는 거기 무엇하러 올라가서 고생하냐고.

나도 늘 생각한다.

[올라가지 말아야지.. 지난 번 맞을 때.. 굶을 때 얼마나 힘들었던가.. 올라가지 말아야지..]하지만..

그 동네 입구에 있는 언덕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은 언덕이다.

거기 가 있으면 지는 저녁 노을도 볼 수 있고, 우체부 아저씨도 볼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멀리 기차가 지나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여름.. 그러니까 일 년 전 쯤에, 집을 나갔던 민경이 엄마가 돌아 오셨다.

사람들 말로는 품을 팔러 나갔다 왔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말 인 줄은 잘 모르겠고, 내가 아는 것은 민경이가 늘 이 언덕에 올라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얼마나 이 언덕을 올랐냐는 내 물음에 민경이는 자랑스럽게 손가락 두개를 내 보였었다.

그게 두 달 인지 이 년 인지 그때는 잘 몰랐는데, 두 달이 훨씬 넘었는데도 우리 엄마는 안 오시는 걸 보면 아마도 이 년 이었나 보다.

아무튼 내가 이 언덕에 오른지 일 년이 됐으니 이제 일 년만 더 기다리면 엄마가 오실꺼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면.. 그러면 우리 형은 더 이상 화도 내지 않고 다른 형들처럼 내게 웃어주기도 하겠지?

이런 내 깊은 속도 모르는 우리 형은 오늘도 이렇게 나를 벌하고 있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돌아오면 형의 마음도 눈 녹듯이 녹을 꺼란 사실을.. 그리고 언젠가 따뜻하게 내 이름을 불러 줄 꺼란 사실을.. 나는.. 나는 안다.


“으음..”

이게 며칠 만에 보는 빛이란 말인가..

“나와.”

차가운 한 마디 였지만, 그래도 굶겨 죽이지는 않고 나를 꺼내 주는 형이 내심 고마웠다.

오늘도 그냥 공장에 가 버린다면 아마 나는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였기 때문이다.

나는 다락 속에 요강을 조심스레 들고 바닥을 살펴가며 내려왔다.

뭐 딱 한번이었지만, 이렇게 내려오다 요강을 엎어 두들겨 맞고 다시 갇힌 적이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혀엉..”

“밥먹어. 그리고 정말.. 다신 거기 가지마. 알았어?”

가지 않겠다고 먼저 말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형이 선수를 쳤다.

“응. 알았어. 잘못했어 형..”

나는 혹여 떨어뜨릴까 요강을 가슴에 안고 베시시 웃었다.

“풋..”

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싶었을 때 형은 내게서 돌아섰다.

“나 이제 일하러 갈 꺼니까 밥 먹고 치워놔. 나 간다.”

“응..”

한 발.. 두발. 형의 뒤를 따라가면서 나는 고민했다.

말을 할까 말까..

에라 모르겠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꾸벅 허리를 숙이다 말고 나는 살며시 고개를 들어 보았다.

쳇.. 며칠 전 어깨 너머로 본 옆집에서는, 은주가 이렇게 인사를 하면 뽀뽀를 해주시며 백원짜리 하나를 떡하니 꺼내주시던데..

뭐 그렇다고 내가 형에게 뽀뽀를 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형이 한 번은 돌아보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운 좋으면 오십원 정도는 주지 않을까 싶어 한 말이었는데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니 그렇게 크게 말했으니 들었을테지만 형은 못 들은 척 신발을 신고 있었다.

피이..

“그리고..”

끼익.. 문을 열며 형이 돌아섰다.

혹시..혹시~!

“으응?”

“그리고.. 이거.”

형이 꽉 다문 오른 손을 내밀었다.

씨익..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이거 버려.”

나는 어느새 내 손 위에 올려진 돌돌말린 먼지 덩어리를 보면서, 꽉 다문 주억 속에 얼마가 들어있을까 생각하던 내 어리석음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구야~노올자~”

나는 마당.. 사실 마당이라고 해 봐야 일곱 발자국 어치 밖에 안되지만, 그 마당으로 걸어나가며 소리쳤다.

내 제일 친한 친구들을 부르면서.

형은 내가 이러고 있는걸 보면 또 내게 발길질을 해대겠지만, 그건 형이 내 친구들을 잘 몰라서 하는 행동이다.

녀석들은 참 착하다.

내가 놀고 싶을 때면 언제나 나와 놀아준다.

동네 아이들과 놀라손 치면, 엄마들이 뛰어나와 후레자식이라니 뭐라더니 하면서 못 놀게 하는데, 녀석들의 엄마들은 착하게도 늘 나와 놀게 허락을 해 준다.

그것도 아주 여러 시간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그들이 놀자는대로 놀아준다.

내 마음 같아선 <숨박꼭질> 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하고 싶지만, 나는 꾹 참고 녀석들이 놀자는 대로 놀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주로 <무거운 짐 옮기기 놀이>나, <대장 따라가기 놀이>를 한다.

오늘은.. 가만보자..

며칠을 굶어 아침을 많이 먹고 나왔더니, 녀석들이 벌써 <무거운 짐 옮기기 놀이>를 시작했다.

나 없이 치사하게..

에잇~ 오히려 잘 됐다.

그렇잖아도 매일 하는 1등이 미안해 졌었는데, 오늘은 늦은 김에 심판이나 봐 줘야 겠다.

“준비~ 땅~!”

뒤늦은 구호 였지만 심판답게 나는 우렁차게 소리쳤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오늘도 나의 친구~ 개미들은 무거운 짐 옮기기 놀이에 한창이다.


“휴우~”

맑은 공기.. 우리 마을에서 제일 맑은 공기..(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언덕에 올라왔다.

슬금슬금 형 눈치 보느라, 한 밤.. 두 밤.. 으음.. 한 열 밤만에 올라와 보는 것 같다.

털썩.

나는 팔베개를 하고 늘 하던대로 언덕에 비스듬히 누웠다.

“킥킥킥..”

열 밤 새 자란 풀잎들이 내 코끝을~ 귓 속을 간지럽혔다.

“이렇게 좋은데 말야.. 형은 바보야..”

형을 생각하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정말이지 나는 형을 알 수 없다.

왜 못 올라오게 하는 걸까?

이렇게 공기도 맑고.. 풀 냄새도 나고.. 멀리 울리는 기차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동네 아이들도 없고..

난 이곳이 너무나도 좋은데 형은 다 싫은가 보다.

“우리 형은 심술쟁이야!”

쿡쿡.. 버릇 됐나? 나는 슬그머니 반쯤 일어나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럼 그렇지. 일에 바쁜 동네 사라들이~ 여길 제일 싫어하는 우리 형이~ 그 누구도 여기 올라올 리가 없지~!

“우리 형은.. 으음..”

나는 벌떡 일어나 목을 가다듬고 흐읍 숨을 들이켰다.

“우리 형은 심술쟁이다!!”

왠지 마음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었다.

신이 난 나는 두 손을 모아 입에다 동그랗게 말아대고 크게 소리쳤다.

“심술쟁이다아아아아!!”

귀가 터질 듯이 울려 오는 내 목소리에 나는 소리를 지르다 말고 귀를 틀어 막아야 했지만, 왠지모르게 신이 나서 두 세 차례 계속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심!술!쟁!이! 아아아악~!”

목에 가시가 돋았나..? 목이 컬컬했지만 왜지 기분만은 너무 좋았다.

발 밑에 내려다 보이는 우리 동네가 모두 내 것이 된 기분이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면 [야호~] 하고 소리치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한수네 집에도 철호네 집에도 외쳤다.

“알고 있니이~!? 우리 형은~ 심!술!쟁!이! 다아아아!! 심술쟁이라구~!”

오~ 하느님! 오늘 밤 동네가 떠나간다면 그건 순전히 제 책임 입니다.

어떤 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렇게 마음은 하느님을 외치고 있었지만, 내 입은 귀에 걸려 내려 오질 않았다.

“아하하하~ 야호오~!!”

나는 신이난 아이처럼 두 발을 동동 구르며 힘차게 소리쳤다.

“심술쟁이 바보야!! 아아아아!!”

오늘만은 이동네가 내것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이 동네도, 이 언덕도, 이 외침도! 모두 내것이었다.


“야! 일어나!!”

형의 발길질이 느껴졌다.

“으음.. 더 잘..”

확! 눈이 번쩍 뜨였다.

코 끝을 찔러오는 강한 이 냄새..

아침이 아니었다.

“안 일어나 이 새끼야?!”

반 쯤 풀린 멍한 눈.. 새빨개진 얼굴..

“혀..혀엉..”

나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며 앉은 채로 주춤주춤 뒤로 서너발 물러났다.

“자고 있어? 이 형님이!! 뼈 빠지게 벌어온 돈으로! 쳐 먹고 자고 있어?? 어??”

“자.. 잘못 했어.”

나는 더듬더듬 잘 못 했다 말하며 벽으로 붙어섰다.

사방에서 맞는 것보다는 벽을 등지는 것이 낫다는 것.. 형에게 맞을 때마다 내가 터득한 방법 하나였다.

“집어쳐!! 으아아악!!”

형은 내가 자고 있던 이불에 미친 듯 발길질을 해댔다.

이불은 몇 번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더니 형의 발에 휘감겨 떨어질 줄을 몰랐다.

“놔! 안 놔! 이거 놔!!”

형은 거세게 발길질을 해댔고, 그럴 때 마다 얇은 이불은 형의 발을 더욱 휘감아 왔다.

쿵!!

수십차례 발길질을 해대다가 어느새 반대쪽 발까지 감긴 이불을 이기지 못 한 채, 형은 바닥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넘어졌다.

나는 겁에 질린 채 벽의 모퉁이로 향했다.

모퉁이에 몸을 묻고 있으면 적어도 맞을 때 넘어져 밟히지는 않는 다는 것.. 형에게 맞을 때마다 터득한 두 번째 방법이었다.

“놔!! 노란 말야!!”

형은 허공에 대고 수십차례 발길질을 해댔지만 이미 여러차례 감긴 이불은 풀어질 줄을 모랐다.

“놔! 놔! 놔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그리곤 두 눈을 꼭 감은 채 터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냈다.

“제발.. 제발 날.. 노란말이야!! 놔아아아!!”

형의 절규어린 목소리가 보이지 않게 내 숨통을 조여왔다.

이대로 간다면 나는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으흐흐흑...”

참았던 울음이 잇 사이로 새어나오는 ㅅ리가 들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건.. 내 울음 소리가 아니었다.

난 내가 무언가를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지금 이것이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로 울지 않을 것 같던 우리 형이..

우리 형이 지금.. 울고 있었다.

“노란 말야.. 제발.. 나를 좀.. 흐흐흑.. 놔아..”

형은 노란 말을 되풀이 해가며 흐느끼고 있었다.

내게서 들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지 볼 수 는 없었지만, 그 목소리는 충분히.. 울고 있다는 것을 느낄 만큼 충분히 흐느끼고 있었다.

“놔아.. 날 .. 날 좀..”

형의 발에 감긴 이불이 힘겨운 듯 조금씩 꿈틀거리고 있었다.

“혀.. 혀엉.”

나는 솔직히 좀 무서웠지만, 나도 모르게.. 그냥 반사적으로 앞으로 기어나갔다.

그리곤 발에 감긴 이불을 조심스레 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발길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몸을 뒤로 쭉 빼고 팔만 앞으로 뻗은 채 주섬주섬 이불을 풀었다.

“죽었어야지.. 아무도 없었으면 죽었어야지... 흐흐흑..”

형은 알 수 없는 말을 뱉어가며 들썩들썩.. 흐느꼈다.

“미안.. 해.. 정말.. 하지만.. 죽었어야지.. 그랬어야지.. 내가 모르게.. 그랬어야지..흐흑...”

무어라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형의 발이 꿈틀거릴 때 마다 적지 않게 놀라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조심스럽게 이불을 풀고는 후다닥 구석으로 기어갔다.

형은 계속 무어라 중얼거렸지만, 내가 앉아있는 곳까지 그 소리가 들려오진 않았다.

나는 형이 울다 지쳐 잠들기 만을 바라며.. 그렇게 오랜 시간을.. 숨소리 조차 죽인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지긋지긋한 이 어둠이 사라지기를.. 제발 숨통을 조여오는 이 어둠이.. 한시라도 빨리 사라지기를..

뜨거운 태양이 모든 것을 녹여줄 아침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나는 그렇게 어두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야, 일어나아~!”

툭툭.. 나를 건드리는 형의 발길질에 나는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눈을 떴다.

“으음... 어, 형.”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내 몸은 무언가에 막힌 듯 뒤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다.

나는 벽 모퉁이에 그렇게 기댄 채 꾸벅꾸벅 잠이 들었던 것이다.

“좋은 바닥 놔두고..”

오늘도 역시 형은 전 날 일이 생각나지 않는지 내게 눈을 흘기며 중얼거렸다.

“나 간다. 밥 먹고 치워놔.”

“으응.. 잘 갔다와..”

그렇게 울어놓고.. 생각이 안나나?

“저, 형!”

나는 묻고 싶어 형을 불렀지만, 날 쳐다보는 그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아.. 괜히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애?”

“아.. 아니.. 잘다녀 오라고..”

형은 나를 한 번 흘겨보고는 집을 나섰다.

“간다.”

끼이익.. 쾅.

형이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면서 힘겹게 참았던 눈꺼풀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좀 자고.. 아침 먹어야지..”

말이나 다 뱉고 잠들었나 몰라~

나는 쓰러지듯 다시 잠이 들었고, 힘겨웠던 지난 밤은 그렇게 또 흘러가고 있었다.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삘릴리 개굴개굴 삘릴릴리.. 무우지개 여언 못에 비가 온단   다~!”

흥얼흥얼.. 노래가 말해주듯 오늘 나의 기분은 최고로 좋았다.

음.. 왜냐면, 형이 글쓰기 책을 한권 사다 줬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그것보다도,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즘들어 때리지 않는 것 만해도 어딘데..

오늘 아침 형은 일을 나가다 말고 문 앞에서 돌아서서는 [학교 들어갈라면.. 열심히 해라.]하며 책을 한 권 던져주고 갔다.

나는 사실 학교에 들어갈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형도 늘 그렇게 말했고 나도 보내 줄 꺼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아마도 형은 내년에 내 나이가 여덟 살이 되면 나를 학교에 입학 시킬 생각인가 보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도 사귈 수 있겠고, 올해 학교에 간 민경이처럼 폼나게 신발가방이다, 책가방이다~ 이런거 가지고 다닐 수 있겠지?

정말이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내가.. 학교에 간다..

기다란 책상에 앉아서 예쁘게 깎은 연필을 들고 또랑또랑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을 내 생각만 하면~!

“쿡쿡쿡..”

웃음이 절로 난다.

“아~ 얼른 다녀와서 형이 주고 간 책.. 그.. 한.. 한글?한국? 아무튼 그거 해야지~”

언덕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폴짝 폴짝~ 너무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엇..”

나는 황급히 입을 막았다.

언덕 꼭대기에 거의 다 올라 왔을 무렵. 나는 반대쪽에 보이는 누군가의 까만 머리에 그만 소리를 질르 뻔 한 것이다.

‘누구지.. 지금까지 나 말고 누가 여기 있는거 본 적이 없는데..’

나는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눕혀 언덕에 누운 채 살포시 고개를 들어 상대방의 동정을 살폈다.

그 사람은 팔베개를 하고, 입에 기다란 풀잎 하나를 문 채 언덕 반대쪽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 누군지 그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명탐정 가제트처럼~! 킥킥킥..


‘자나..? 십분은 흘렀겠다..’

꿈틀 꿈틀.. 내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신호음을 보내왔다.

그냥 내려갈까보다..

그때 였다.

“으음..”

그 사람은 정말로 잠을 잤던 모양인지 기지개를 펴며 느릿느릿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까만 머리.. 낡은 파란 셔츠.. 그리고 오른쪽 팔뚝 뒤에 길게 베인 상처 자국..

“엇.”

나는 입가로 새어 나오는 말을 손으로 막아냈다.

형이었다.

이 언덕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형이.. 그런 형이 지금껏 언덕에 올라와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거.. 걸리면..’

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뒷다리를 슬금슬금 언덕 아래로 끌어당겼다.

혹여 형이 돌아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숨을 죽인 채, 송글송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낼 정신도 없이 몸을 풀잎에 밀착시켜나갔다.

‘일어나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지..’

형은 분명 내가 오나, 오지 않나 날 감시하려고 여기 올라온 것이 틀림없었다.

만약.. 여기서 걸린다면..

학교고 책이고 아무것도 없을 것임이 너무도 분명했다.

일 초가 십 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스윽스윽..

얼굴에 닿는 풀잎의 감촉이 써늘한 것이 어딘가 한 구석 베인 느낌이었지만, 지금 나에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미끄러져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던 순간이었다.

털썩.

“아.. 여기 올라오니까.. 그래도 탁 트여서 좋네.. 녀석..쳇..”

갑자기 형이 돌아서면 어쩌나 싶어 겁에 질려있던 나는 형이 다시 바닥에 앉는 소리가 들리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나는 흐르는 땀을 식히며 풀잎 바닥에 그대로 붙은 채, 다시 소리없이 내려가기 위해 흐읍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엄마..”

형의 입에서 엄마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무의식 중에 치켜든 고개를 재빨리 숙이며,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기울였다.

“엄마.. 보고 있나요?”

분명 형은 엄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형의 입에서 불려지는 그 어마라는 말.. 내게 소리칠 때 화낼때 빼고 처음 듣는 그말.. 엄마라는 말..

“쳇.. 이러려고 그런거 였지..?쳇.. 처음부터.. 날 이리로 불렀을 때부터.. 이러려고 그랬던   거였지?”

조심스레 살짝 고개를 들어보자 멀리 기찻길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난 또.. 난 또 엄마가 재혼해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지.. 그런 줄 알았지..”

형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들고는 또다시 피식 웃었다.

그런데 저 종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글을 읽지 못해서 보고도 뭔지 몰랐지만, 예전에 무심결에 바닥에 떨어진 저걸 보고 있다가 형한테 죽도록 맞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틀림없이 그때 그 종이었다.

“그런데 말야.. 내 기분.. 생각해 봤어..? 자신이 없으면 낳지를 말지.. 적힌 주소 찾다왔   더니만.. 빈집에.. 울고있던 아이라.. 쳇.. 내 기분.. 생각해 봤어 엄마?”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지만 형은 계속 허공을 향해 때론 웃어가며.. 때론 한 숨을 쉬어가며, 계속 무어라 이야기 하고 있었다.

“죽도록 미워했지.. 날 부른 엄마를.. 내 발목을 잡아버린 엄마의.. 그 아이를.. 헤.. 그러   고 보니.. 좀 미안하네.. 내가 좀.. 많이 때렸거든 그 녀석..”

많이 때렸다..? 그건 난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형이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졌다.

적어도 오늘 여기서 걸린다 하여도, 예전에 했던 말처럼 죽여버린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버리고 갈까... 고민 정말 많이 했지만.. 확 그냥.. 죽여버릴까 고민 정말 많이 했지만..    그래도.. 그 핏줄이란게..”

싸악..

나는 등줄기가 서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지난번에 형이 했던 그 죽여버린단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그렇다면 오늘 여기서 걸린다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는 일..

나는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것을 느끼며 마른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고개를 돌려 등 너머로 보이는 언덕 잔딧길이 오늘따라 이렇게 길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스물스물 팔 다리를 움직여, 엎드린 채 비스듬한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앞길을 탁 막아버리는.. 스무살에.. 일곱 살 짜리 아들이라.. 킥킥.. 엄마가 바랬던게    이거지? 그렇지? 하하하하..”

호방하게 웃어대는 형의 목소리는 내게 오히려 공포스럽게 들려 왔다.

그리고 혼자 웃어댄 자기가 민망해서 그새 자리를 털고 일어날 지도 모른단 생각에 더욱 속력을 내 언덕길을 미끄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잘 사고 있어?? 응?? 쳇.. 그 바보 같은 자식은.. 지 버린 엄만 줄도 모르고 틈만나면     여기 올라오고 그러는데.. 내 가슴에 못 박고, 어린 것 가슴에 못 박고.. 잘 살고 있냐      고~”

내겐 형이 하는 말이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얼만큼 들리느냐. 그것이 중요했다.

아직 목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뛰어 내려가기엔 이른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 살아요~! 아마.. 나한테 욕 많이 먹어서.. 잘 살꺼다.. 이제 태준이는.. 태준이는 엄마     가 바라는 대로 내 아들이 됐으니까, 나 박정훈이의 호적에 올렸으니까.. 그러니까 잘 살    아요~!”

아직도 형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나는 일어서서 뛰어내려 가려다 다시 바닥에 붙은 채 스물스물 조금 더 내려갔다.

“읏짜!”

이크. 갑자기 형이 몸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없었다.

걸리면...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튕겨 일어나 가파른 언덕길을 달음질 치기 시작했다.

출렁출렁 볼살이 떨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내 일생에 이렇게 빨리 달려본 기억이 또 있을까?

아마 지금껏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젖먹던 힘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헉헉헉...”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형에게서 꽤나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언덕길을 완전히 내려와 동네로 들어갈 때까지 쉬지 않고 달렸다.

“헉헉.. 주.. 죽을뻔.. 했네.. 헉헉..”

“박 태준이는~!”

한바터면 비명을 지를 뻔 했다.

갑자기 형이 소리를 질러댄 것이다.

“박 정훈이의 아들이 됐습니다! 건강하고! 잘 사십쇼! 아아아악!!!”

세상에.. 형이 들었을지도 몰랐다.

내가 심술쟁이라고 했던 그 말을.

이렇게 크게 들릴 줄 모르고 소리 질렀던 건데, 형의 언덕에서의 외침은 막 동네로 들어선 내 귓가에 또렷히 들려왔다.

아니 뭐.. 사실 또렷하진 않아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마지막에 [아아악] 소리 지른 것은 참으로 잘 들려왔다.

‘두 번 다신 저기서 소리 지르지 말아야지.. 세상에..’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 느티나무 뒤에 숨어서 언덕길을 올려다 보았다.

내가 저 길을 그 빠른 속도로 달려 내려 왔단 말인가?!

나는 두어번 고개를 휘젓고는 언덕 꼭대기를 유심히 살폈다.

“반대 쪽으로 갔나..? 앗~!”

형의 모습이 보였다.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언덕길을 막 내려오려 하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휴우.. 들키진 않았겠구나..”

나는 십 년 감수했다는 느낌으로 얼른 뒤로 돌아섰다.

앞으론 저기 올라가지 말아야지.

이렇게 형이 감시가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리고 형한테도 잘 보여야지..

내년에 학교도 가야 하는데 형한테 찍히면.. 휴우.. 잘 보여야지..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되뇌이며 길게 숨을 가다듬었다.

아차차!! 그리고 두 번 다신 저기 올라가서 소리지르지 말아야지..

나는 형에게 소리쳤던게 미안해져 두 번 다신 저기서 소리지르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더욱이 형이 심술쟁이란 말은 절대로~!

휴우.. 얼른 집에가서 방 청소도 해 놓고, 정리도 해놔야 겠다.

그리고 오늘은 형이 좋아하는 계란도 하나 얻어다 놔야 겠다.

그러고 보니, 공부도 해야하고, 민경이한테, 개미들한테 학교 간다고 자랑도 해야하고~

“야호오~! 개구리 소년~빰빠밤! 개구리 소년~ 빰빠밤! 삘릴리 ...”

폴짝폴짝~!

집으로 뛰어가는 내 발걸음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신나고 밝았다.

오늘 하루는.. 정말이지 빨리 지나가 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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