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출한 시는 ‘사월의 노래’, ‘땀’, ‘쇠붙이 인생’, ‘1997년, 그 해 아버지’인데 ‘사월의 노래’는 고3 봄에 덕성여자대학교에 처음 발을 내딛었을 때 쓴 시이다. 그때 인근의 도봉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도서관은 꽉 막히고 사람의 숨을 죄이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과연 내가 이런 곳에서 무엇을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인지 답답했다. 하고 싶은 것은 많기만 한데 왜 이런 곳에서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말이다. 대학이란 것을 반드시 가야만 하는가? 그 질문이 자꾸 내 머릿속에서 메아리쳤다. 그러던 와중 임용고시를 준비중이었던 큰언니가 나의 손을 이끌고 바람을 쐬자고 했다. 그러다가 좀 탁 트인 독서실을 찾아보기로 했고, 덕성여자대학교 독서실에 우리도 들어갈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발길을 향했다. 물론 외부인의 독서실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내겐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보았던 것이다.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선선한 바람을 즐기며 초록의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향해 누워있던 여대생들을... 그 뒤로 나는 대학을 꼭 가야겠다는 결심을 먹었다. 내가 대학이 가기 싫은 것이 아니라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핑계를 댄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어 많은 것을 뉘우쳤다. 그 마음을 오랫동안 새기고 싶어서 독서실로 돌아가자마자 써 내려간 것이 저렇게 장문의 ‘사월의 노래’라는 시가 되었다.
내가 이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1997년, 그 해 아버지’ 이다. IMF때문에 갑작스런 실직을 당하고 식구들의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 날 벌어 그 날 먹는 ‘하루살이 인생’에 지친 가장들의 무거운 어깨를 표현한 것이다. 어딘가에 제출하기 위해 써 내려간 시들과는 달리 내가 뉴스를 보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 쓴 것이다.
‘쇠붙이 인생’은 현대 사회중 도시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인데 획일화된 인간들이 상사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혹은 사회에서 매장 당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깊이 깊이 눌러버린 것을 말한다. 그러다가는 결국 익숙해져서 전혀 표현해야 할 필요성조차 망각해 버리는 인간에게 회의를 느끼며 정의에 나서지 않는, 불의를 참는 인간은 기계에 -쇠붙이에 불가하지 않다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마지막에 어둔 밤이 돼서야 비로소 인기척을 한다는 부분에서 그 재미가 좋아 죽겄다. 그러나 것도 또한 쇠붙이의 소리였다는 것은 혼자 있을 때나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인간을 의미한 것이고, 결국에는 혼자만의 외침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쇠붙이의 소리라는 것이다. '땀'은 주제를 정하고 썼던 거라 그리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이렇게 하나하나 내가 쓴 시에 직접 해설을 달면서 평가를 해보니 대회에 참가를 한 것 자체가 부끄럽다. 아무리 사심 없이 낸 것이라 하지만 이번 대회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적어 내려간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내가 어딘가에 제출하지 않은 시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집어서 냈다는 점이 너무 부끄럽고, 다른 참가자 분들에게 성의 있게 임하지 않은 듯 하여 죄송스럽다. 그렇지만 내가 이 상을 탈 목적으로 무엇인가를 적었더라면 과연 이 상을 탈 수 있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든다. 나란 인간은...정말 작은 인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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