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시부문 가작
학술문예상 시부문 가작
  • 김혜경(사회복지.01)
  • 승인 2003.11.23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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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외에 3편

 (시1)
<땀>

노오란 개나리 옴작옴작
드러나는 초록의 계절에는
내 몸속 깊은 순수의 결정(結晶)을
새싹처럼 내보이고 싶어라

해맑은 미소의
하이얀 치아와 어울리는 너는
배곯은 이의 부유한 보석

초원에 질주하는
길들여지지 않은 갈색마의 마라토너
금메달 향해 달리듯이
파아란 하늘에
높다랗게 솟아오른
바알간 태양을 고지삼아
가슴이 터질 듯 내달리노라면
거친 숨 사이사이로
천진한 그것이 다가온다
설레임을 담뿍 안고서

복숭아빛 두뺨에 맺혀오른
수정을 닮은 너의 촉촉함이
입술에 밀려들어
짭짤함을 맛보노라면
향수보다 그윽한 내음에 취해
머릿속이 아찔하다

가슴 깊숙이 묵은 쾌쾌한
먼지들은 오간데 없이
구름이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선선한 바람이
너를 몰고 가노라면
영혼마저 걸러지고
내 마음은 하이얌
그것이노라.

시2)
<사월의 노래>

구른다 구른다 뱅그르르∼
봄 이슬 머금은 광활한 녹음에..
파릇파릇한 초록의 한가운데
폴싹 업데인 가장자리 그리며
싱그러운 풀꽃이 오뚜기처럼 봉긋봉긋
그대로 이대로 파묻히고 파

하늘거리는 따뜻한 바람에
촉촉한 풀잎들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살갗을 감싼
솜털같은 풀잎사귀가 살랑살랑
머리칼도 바람타고 뉘엿뉘엿
손가락 마디마디 사이사이로
싱싱한 봄의 기운이
빼꼼히 고개를 드리운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 안
두둥실 떠 있는 저기 저 구름아
내 너에게 간절히 하고픈 말이 있구나
들어보련 들어보련...들어주렴
이처럼 맑은 공간은 어디로부터 왔느냐

온종일 종알종알 조잘조잘
지저귀는 저기 저 새야
내 너에게 간절히 하고픈 말이 있구나
들어보련 들어보련...들어주렴
재잘재잘 지저귀는 네 노랫소리처럼
아무도 듣지않는 노래를 목놓아 부르리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어를 풀어 놓으리

서산에 뉘엿뉘엿 지는
바알간 저기 저 해야
시간은 왜 이리 정처없이 흐르느냐
네가 좀 붙잡아 날
기다려 주지 않으련?
내가 바라는건 한가로운 오후에
이토록 투명한 대자연의 내음과
이만치 청정한 봄의 결정(結晶)뿐이니
내게만...내게만...
시간을 내어주지 않으련?
차가운 시멘바닥에 빽빽이 들어앉은
오육십의 새들을 잊고
우리, 너와 나 단 둘이서
이렇듯 넓은 세상에 맘껏 녹아보자

구름이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촉촉해진 교복치마 토옥톡 털고 일어나
늪에 빠진 듯 겨운 발걸음 하나둘 떼어내며
아쉬움 뒤로한 채 돌아서는데
옷깃에 뭍혀온 풀잎사귀 한조각 대롱대롱

누가 볼새라 화들짝 놀라
냉큼 감추어쥐곤
나홀로 배시시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느덧 내 몸안엔 녹색의 피가 스며 흐른다

이것은 너와나의 비밀이야
봄과 나만의 시간이 보낸 선물

<1997년, 그해 아버지>

현란한 네온사인 아래
별 한점 없는 캄캄한 하늘 아래
가로등불 하나를 의지하며
오늘도 어제처럼...
어제도 그제처럼...
한숨섞인 밥한술 뜨며
땀에 젖은 옷한벌 걸치며
눈 따로 귀 따로 입 따로
숨돌릴세 없이 지나간 청춘

며루치 한조각 벗삼아
소주한잔 걸치고
허전한 마음 뒤로한 채
반겨주는 이 하나없이
돌아오는 뒷모습
그림자도 애닯어라
주름진 눈꼬리에 알알히 맺힌 진주
한 많은 인생 푸념이나 하듯
한줄기 빛이되어 정처없이 떠도네
<쇠붙이 인생>

쇠붙이를 쩔거덕 거리며
우유빛 사기를 긁어버리고 말았다
예리하게 다듬어진 숟가락에
내비치는 얼굴이 사뭇 낯설다
하이얀 입김을 내뿜어 닦아보지만
더운 기운이 다할 때
그 안의 것도 영락없는 쇠붙이다
그렇게 닮아가고 있었다, 우린

쇠붙이는 말이 없다
말이 없어 쇠붙이다
침묵이란 금기가 깨어지면
더 이상 그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엔 살을 애는 고통이 있다

어둔 밤이 돼서야 비로소
지르릉 척. 지르릉 척.
인기척을 한다
진종일 살색을 숨기느라
몸 구석구석이 저며온다
아무도 몰랐을걸?
내가 움직인단 사실을...
그 재미가 좋아 죽겄다
그러나...
것도 또한 쇠붙이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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