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아퀴
똑똑한 아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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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0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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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이다. 가고 또 오는 계절이다. 지겨움을 온몸에 퍼뜨리던 지난 여름비도 어느새 기억의 갈피 어딘가로 스며들어 가물가물해지려 한다. 더구나 개강. 방학 사이 면모를 몰라보게 일신한 정신(精神)들과 만나는 일 또한 지난 것에는 마음 쓰지 않게 만들기 십상이다. 망각이 있기에 인간이라고 한다던가. 그러나 잊음이 헐한 사람을 두고 총기 있거나 똑똑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훤한 이마를 갖고 싶듯이 똑똑하고픈 것이 인지상정.

  ‘아퀴’라는 말이 있다. ‘일을 마무르는 끝매듭’이라는 뜻으로 ‘짓다’나 ‘내다’라는 동사와 함께 쓰여 ‘아퀴를 짓다’라고 하면 ‘일이나 말을 끝마무리하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고 보면 이래저래 9월에는 아퀴를 잘 지어야 할 일이 많을 법하다. 아무리 비가 잦았어도 여름은 움직임의 철. 몸이든 맘이든 움직임은 때나 장소에 많은 흔적을 남긴다. 벌여둔 일이 그만큼 많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저것 마무리를 짓기에 맘이 동동거릴 것은 정해진 이치. 더구나 자기가 벌인 일은 자기가 거두는 것이 옳다. 내 헤픈 뒷모습을 남들 앞에 드러내는 것을 두고 아름답다고 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내가 시작한 일들에 정신을 가다듬고 똑똑하게 아퀴를 지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에 몸과 맘이 고달플 일이 반드시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일에 따라서는 비록 자기가 만든 것이라 하더라도 스스로 아퀴를 짓지 않는 것이 오히려 많은 이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일인 경우도 있다. 남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깜냥을 재어 보지도 않고 덥석 시작한 일일수록 더 그렇다. 이런 일들은 대개 자기 주제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한다. 능력이나 상황에 대해 면밀히 돌아보지도 않고 무리하게 일을 아퀴 지으려 하면 일은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아 결국 뒤틀리게 되고 말기 때문이다.

  가령 이 정부는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2008년부터 시작된, 중등학교 교과서 개편 작업을 이어받아 2011년 초까지 진행해 왔다. 누구나 알다시피 2007년 개정 교육과정에는 흠결이 많다. 무능하고 성급한 관계자들이 얼기설기 만든 졸작일시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난 3년간의 교과서 개편 작업 전부를 한순간에 무로 돌려버리고, 2011년 한 해 만에 교육과정 개정 작업과 중학교 3개년 전체 교과서 개편 작업을 한꺼번에 진행한다고 나서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무리수다.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 지나친 느낌이다.

  애초 자기들이 시작한 일도 아니지 않았는가. 따라서 이 정권의 교육 정책 결정권자들은 교육과정 개편 문제를 보다 신중히 보다 투명하게 보다 근본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함으로써 국민들의 마음과 지혜를 하나로 모을 필요가 있었다. 비록 백년은 힘들다 하더라도 10년 20년 지속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자는 취지의 의제를 제기하는 역할에 충실했어도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년까지 불과 2년 만에 이 중차대한 일 전부를 매조지려고 서둘고 있는 관계자들을 지켜보노라면 지난 장마 때처럼 불안한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이 바뀌는 관행 생기기 전에, 좀 늦더라도 아주 멀리 가겠다는 생각 챙길 일이다. 만용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른다. 똑똑한 아퀴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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