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부문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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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3.11.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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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사는 법(진추리 사회 95)

쿨하게 사는 법

 '멍청한 놈' 아직도 인터넷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김부장을 보며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저런 자식이 아직도 회사에 남아있다는 건 여러모로 화가 나는 일이다. 회사에 왔다갔다한 수가 나보다 많다해서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까지 생각하면 울화가 치민다. 김부장 같은 인물 때문에 우리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다. 월급 받아먹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일할 사람은 없는 상황 말이다.
 나는 내 자신을 신세대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다. 개성 없이 소비에 물든 내 또래의 사람들과 같은 부류가 되긴 싫다. 나를 어떤 단어로 정의한다면 난, 아웃사이더이다. 주류에 섞여 세속화되기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안빈낙도를 외칠 만큼 세상을 모르진 않는다.
 줏대 있는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룹에 속해 사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다수에 속하지 않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시간과 돈의 투자가 보통 사람보다 배는 든다. 예를 들어 음악을 들어도 유행음악은 물론이고 언더그라운드 음악과 제 3세계 음악의 경향과 이론까지 꿰뚫고 있어야한다. 그러니 남들보다 두, 세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능력있고 스타일있는 아웃사이더의 삶의 방식은 컴퓨터의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 확실한 입력(input)과 출력(output)이 필요하다. 멍청한 김부장이 속해있는 세상은 인간적 감정 따위가 행동의 요소가 될지 모르지만, 난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이 메마른 인간은 아니다. 쿨한 인간답게 난 비싼 밥을 먹느니 공연을 관람한다.
 감정이란 것에 있어 김부장과 나의 차이는 감정에 대한 이름짓기에 달렸다. 김부장의 경우 감정은 명확하지 않은 어떤 느낌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명확한 이름을 붙이고 이것을 이성적으로 처리한다.
 감정에 명확한 이름을 지정하는 것은 컴퓨터에서 작성한 자료에 찾기 쉬운 파일명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감정에 정확한 이름을 붙이는 일은 사건의 저장과 처리 면에서 아주 유용하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해당 폴더에 저장하면 필요한 경우 다시 찾아보고, 뇌에 과부하가 걸렸을 경우 가장 불필요한 것을 재빨리 삭제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난다. 뇌라는 시스템은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괜한 일을 보관해 놓고 있다보면 용량이 꽉 찼지만 어떤 자료를 지워야 할지 모르는 하드디스크가 되어버린다.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파일 하나로 컴퓨터 시스템이 망가지듯 쓸 때 없는 기억과 감정으로 내 자신을 날려 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몇 달 전 헤어진 그녀에 대한 내 감정은 '권태'였다. 그녀에 대한 감정은 처음에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며 관계가 끈적해지기 시작하자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그녀는 나에게 지겨운 존재였다. 확실하게 이름 붙여진 이 관계는 더 이상 저장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휴지통 속으로 들어갔다. 아직 휴지통에 존재하지만 휴지통이 꽉 차게되면 휴지통을 비우고 그녀에 관한 모든 기억은 내 머리 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김부장이라면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 채, 애를 태웠을 것이다. 관계를 끊어 버리는 것이 여자를 배신하는 것인 양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녀를 만나는 것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어떻게 해서든 정당한 핑계를 만들어내 그녀와 헤어졌을 것이다. 가정을 지켜야한다든지, 너무 사랑해서 헤어진다든지 둘러댈 수 있는 이유는 많다. 그리고선 술 취한 날 가슴에 품은 사랑이라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거나, 잠자리에서 마누라가 싫증날 때 그녀를 상상하며 마누라와 관계를 가질 것이다.
 김부장식의 사고는 사람을 무겁게만 만들뿐이다. 여자한테 차이기라도 하면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결국 사랑을 혐오하게 된다. 그리고선 사랑은 할게 아니라는 둥 헛소리만 지껄일 것이다. 흐릿한 감정의 정체성이 명확해진다면 이름을 짓고 해당 폴더에 저장하거나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이렇게만 한다면 세상을 사는 것은 아주 명확해 지고 삶은 가벼워진다. 몇 번의 실연을 거듭한다해도 그것은 인물과 상황이라는 조건 탓이지 결코 사랑 자체를 버려야 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내 사고방식이 지나치게 기계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은 생존을 위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한낱 귀뚜라미의 경우도 자극을 정확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자극 받아들이는 뇌의 부분만을 남기고 다른 기능은 정지시켜버린다. 인간은 신체나 정신의 일부를 제거 할 수 없기 때문에 작동을 멈추는 대신 축적된 정보를 간결화 시키는 것이다.
 동네 구멍가게와 편의점의 차이도 김부장과 나의 차이이다. 분류가 제대로 되지 않은 구멍가게와 분류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찾기 편하게 만들어진 편의점. 막대한 상품과 한없는 정보라는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하느냐에 효율성이 달렸고 생존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김부장 같은 막가파가 회사에 남아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이다.
 김부장은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 들어와 자리에 앉더니 이제는 책상에 대고 연신 인사를 해대며 졸고 있다. 저러다 제대로 책상에다 이마를 부딪히면 무안한 듯 일어나 죄 없는 사원을 한명 골라 서류에 낙서를 해대고선 다시 해오라고 호통을 칠 것이 분명하다. 재수 없이 걸리지 않으려면 사무실을 잠시 비워야한다. 한 30분 저러고 졸고있으니 이제 일어날 때가 된 것 같다. 옆 사원에게 잠시 은행에 갔다온다며 일어나야겠다.
 "박 대리, 어디가나?" 이런, 정말 운이 업게 사무실 문고리를 잡은 순간 언제 일어났는지 김부장이 나를 발견했나보다. "네, 은행에 볼일이 잠깐 있어서. 잠시 다녀오려고 합니다."  "그런건 점심시간에 해둬야지. 근무시간에 이렇게 이탈해도 되는 건가?" 김부장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싫은 소리를 해댄다. "죄송합니다. 점심시간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이렇게 된거 사무실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변명을 해댔다. "자네는 신세대라는 사람이 인터넷 뱅킹도 이용할 줄 모르나?" 김부장이 인터넷 뱅킹은 어떻게 알았을까?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어디서 주어 들었나보다.
 "그리고 자네 잠시 이리로 와보게" 이런, 드디어 서류를 가지고 설교를 할 참인가보다. "네" 나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짧게 대답을 했다. "은행에 갈 때 가더라도, 그 바지 자크는 잠그고 가야하지 않겠나?" 김부장의 말에 순간 사무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 웃음소리가 하도 커서 파티션 넘어 있는 옆 부서까지 들렸는지 사람들은 파티션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고 옆 사람에게 상황을 묻는다.
 어찌 이런 일이. 내 머리 속은 회전 속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온통 파란 색이 된다. 마치 컴퓨터가 부팅 되지 않고 블루 스크린이 되듯이.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는 이 사건으로 생긴 내 감정에 이름을 붙여야겠다. 이번 것은 좀 어려운 일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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