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포기란 없다
인생에서 포기란 없다
  • 남윤신(생활체육) 교수
  • 승인 2011.10.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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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졸업한 후 5년간 교사로 재직하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물론 그때 나의 목적은 남편의 뒷바라지였지 내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남편의 권유로 미국 체육학 석사 공부를 하게 됐다. 유학준비를 하고 떠난 것이 아니어서 유학하는 내내 무척 힘들었다.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어 늘 모든 수업을 녹음했지만 아무리 반복해서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다. 내게 있어 언어를 모르는 것은 너무나 큰 장애였다. 그러나 다행히 내 곁에는 친절한 미국인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수업 노트를 빌려줬고 그 덕분에 힘들지만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또 이해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늘 교수님들께서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많은 사람들의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눠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그 교훈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 중 하나가 됐다.

  이렇게 힘들게 석사학위를 받고 나서 계속 박사학위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남편은 일본으로 건너가 기초학문이 응용된 기술을 배우길 원했다. 마침 일본 철도청 연구소에서 초청이 와 결국 우리는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일본에서 박사공부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새로운 언어의 장벽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나를 움직이게 한 계기가 찾아왔다. 우연히 만난 윗집 아줌마가 나의 대학 후배였던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선배님! 왜 집에서 놀고 계십니까?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노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줬다. 그래서 나는 손을 놓았던 박사 공부를 생각하게 됐다. 내가 박사학위를 위해 대학에 다시 입학한 나이는 44세! 그 나이에 무슨 박사공부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고 그 돈으로 아이들 과외나 더 시키지 쓸데없이 돈을 쓰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말들을 무시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아줌마로서 늦게 시작한 공부였다. ‘여기서 엉터리로 하면 나처럼 늦게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앞길을 막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자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게 됐다.

  우리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많든 적든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고. 다만 그 기회가 왔을 때 어떤 사람은 기회를 잡고, 어떤 사람은 기회를 놓치고, 또 어떤 사람은 기회가 왔는지조차 모른다고. 그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모든 것에 꿈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단지 무서운 것은 꿈이 없다는 것과 꿈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없다는 것이다. 꿈과 열망을 가지고 있으면 무슨 일이든 다 이룰 수 있다. 또 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장점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란다. 주위 모든 사람의 힘이 합해지면 그 능력은 무한대를 이룰 수가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미래를 향한 꿈과 열정을 잃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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