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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3.11.26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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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필요하니? (조영희 중문 95)

남자가 필요하니?

 "너 어디 가니?"
"어, 대학로. 친구 만나러."
"여자야?"
"응."
"남자나 만나고 다니지. 그 친구도 남자친구 없니?"
"응."
'남자나 만나라.'라는 엄마의 이야기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내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대학로로 가는 버스 창 밖으로, 다정하게 걸어가는 연인들이 스쳐지나간다. 남자 없다고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건 남자가 없는 것보다 더 불행한 일이다.

 추워서 그런지 카페로 들어서는 친구는 두손을 후후 불면서 들어온다. 자리에 앉자마자 겨울인데 옆에 낄 남자가 없어서 더 춥다는 신세타령부터 시작한다. 남자! 남자! 남자! 남자가 없으면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하는 친구의 모습이 엄마와 오버랩 되면서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제를 바꾸어 보려고 일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때 평가 회의 어땠어? 거의 인민재판 수준이었다며."
"응... 뭐..."
친구는 별관심 없다는 듯 건너 테이블의 사람들을 쳐다본다.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녀들이 즐겁게 떠들어 대고 있었다. 친구에게 눈을 한번 흘겨주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하는데 생일축하 노래가 들려온다. 건너 테이블 사람들은 폭죽을 터트리고, 그 중 생일파티의 주인공인 듯한 여자가 촛불을 끈다. 웃음을 가득 담은 빨간 입술로.

 친구는 갑자기 울상이다. 몇 일전이었던 제 생일 파티가 생각나나보다. 대학때는 잘나갔지만 이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친구들이 모여 생일 파티를 해주었다. 친구는 기뻐하는 척 했지만 마음속은 그렇지 않았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 친구가 없으니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과 빠질 것 없는 외모를 가진 그녀이지만, 단지 결혼 할 남자가 없다는 것이 모든 것을 무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있자나. 난 겁나."
"왜?"
"이렇게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도 끝내 내 남자를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러다 영영 혼자이면 어떡하지?

 사실 나도 그렇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부터 나이와 남자 문제는 내 곁을 쫓아다니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안겨준다. 도대체 뭐가 그리 불안한 걸까? 꼭 남자를 만나야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대학때 배운 '여성의 독립'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비록 음양이 조화를 이루듯 남과 여가 만나야 완벽해 진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음양의 조화라는 이론에 따르면 세상에는 독신이 없어야 하지만, 남편과 사별한 후 혼자 사는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주위에서는 그런 여성들을 안타까워하지만, 그건 주위 사람 생각이고 혼자 잘만 산다.

 친구의 물음에 적당한 대답을 할 수 없는 나는 마음과는 다른 말을 해댔다.
"결혼해 봐라. 너 나랑 놀 수나 있을 것 같아? 시부모한테 잔소리 듣고, 남편 밥이나 챙겨줘야해."
"하긴 그렇지. 혼자가 자유롭고 편하긴 하지."
"그래 그리고 아직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해외여행도 못가 봤자나. 첫 번째 해외여행을 신혼 여행으로 간다면 그것처럼 시시한 인생이 어디 있냐?"
"그래도 결혼 안하고 살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바보야. 그런 세상의 편견과 싸워 이겨야 하는 거야."
"그런가? 지난번 추석때 친척들 때문에 아주 죽는 줄 알았어. 이제 노처녀인데 얼른 결혼하라고 난리더라고."
"웃기지 않아? 결혼은 무지 중요한 거라면서 스물 다섯 살 때부터 서른 이전까지, 5년 동안만 상대를 찾으라는 건? 무슨 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말을 하다보니 답답함에 목이 탄다. 음료수를 쪽쪽 빨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결혼 한 후에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땐 어떡하지? 엄연히 불륜인 거니깐 헤어져야하나?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쓸때없는 생각이다. 남자친구도 없으면서. 

 이렇든 저렇든 언젠가 딱 맞는 짝을 찾을 거라며 친구를 위로하고는, 잘 살자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 잘 살자. 누가 뭐래도 난 화려한 싱글로서 화려한 나날을 보낼 꺼다. 쌈박한 남자들이 있는 동호회라도 가입할까?

 나이는 많고 남자는 없지만, 당당하게 살아가는 현대 여성인 나는 씩씩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역을 향했다. 쓸쓸한 마음은 자신감으로 억누르면서. 버스보다 밝고, 맞은 편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봐야 하는 민망함 때문에 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씩씩하게 살자고 다짐한 터라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지하철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서서 읽을 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는데 내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완벽했다. 하얀 피부, 예쁜 이목구비, 깨끗한 옷차림, 거기다 손에 들려진 영어원서. 완벽한 스타일. 바로 내 스타일의 남자였다. 어떡해야할까? 가방이 무거운 척 하면 들어줄까? 그리고 고맙다고 말을 하고 차나 한잔하자고 할까? 이건 너무 구식이다. 그리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선 나의 존재를 알려야한다. 목소리를 귀엽게 내면서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통화 소리에 나를 쳐다볼까? 아니면 쓰러지는 척 해볼까? 이게 아니면 가방을 선반 위에 놓는 척하면서 몸을 약간 부딪쳐 볼까? 가방을 올려다 놓으면 혹시 이 남자가 내 가방을 가지고 내리고 난 그 남자를 쫓아가고. 결국 남자는 내게 손을 내밀고, 우린 손을 잡고 뛴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인데, 생각해보니 어느 의류 광고 장면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보니 내가 내릴 정거장이 다가왔다. 지하철이 서고 문이 열리고 내려야 할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남자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나는 문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 지하철에서 내렸다. 뒤에서 그 남자가 나를 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잘못 건드렸다는 후회를 하면서 속도를 내봤지만, 내 몸에 달린 살들 때문에 이내 숨이 찼다. 이건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정반대로 가는 시나리오였다. 난 누군가를 쫓아가야 하는데 내가 쫓기다니. 계단 난간을 잡고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그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왜 얼굴을 찔렀냐며 불같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내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지 시작했다.
"저기요. 너무 잘생기셔서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못 먹는 감 찔러나 보고 싶어서."
"뭐라고요?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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