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의 치부를 드러낸 월가시위
경제위기의 치부를 드러낸 월가시위
  • 김덕민 고려대 경제학과 강사
  • 승인 2011.11.16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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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상위 1%의 소득 증가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상위 1%의 소득 증가는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 극명하게 나타난  다. 상위 1%의 소득 증가수준은 2007년을 기준으로 미국 총소득의 23.5%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상위 집단의 소득 증가는 조지 W.부시 행정부 하에서 세금 감면(이른바 부자감세)을 통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1980년대부터 진행된 상위 소득계층에게 유리한 각종 금융부문을 중심으로 한 규제완화에서 비롯됐다. 이는 경제적 성과의 대부분이 상위 1% 소득 계층에 집중되어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근 30년 동안의 기간을 신자유주의의 시대라 부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경제의 구조적 위기 이후 새롭게 부과된 노동규율, 민영화, 무역 및 금융의 자유화, 금융부문의 규제완화를 뜻한다.

상위 1%의 하락과 상승

  미국 및 세계는 1929년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타협이라고 알려져 있는 관리주의적 타협을 통해 상위 소득계층 및 그들의 부의 축적을 매개하고 있는 금융부문에 대한 규제를 증대시켜왔다.  실제로 우리가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관리주의적 타협 기간에 상위 1%의 소득은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신자유주의 시대에 나타난 정부의 정책 전환 및 경제의 새로운 구성은 결과적으로 상위 계층 1%의 소득을 급격히 증대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의 위기, 상위 1%의 기회

  동시에 이러한 소득 집중은 결국 2001년부터 2002년까지의 닷컴 버블(dotcom bubble), 그리고 2007년에 시작돼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브프라임 위기라는 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나타났다. 위기에 대응해 정부 및 연방준비은행은 적극적으로 대처했지만 그 효과는 지지부진하다. 실업률은 9% 즈음에 계속 머물고 있고, 기업이나 가계의 지출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특히 가계의 경우 이전에 떠안은 부채를 갚는 데 급급한 지경이다. 정부와 연방준비은행의 대응에 따라 공급된 막대한 양의 달러로 거대 금융기관들, 즉 월스트리트는 회복돼 이전과 똑같은 막대한 봉급을 챙기고 있는 반면 경제는 지지부진해 99%가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결국 가장 중심에서 위기의 원인을 제공한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은 고통은 커녕 공적자금의 그늘 하에서 이전의 부와 권력을 회복해 나가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작금의 월스트리트 행태에 대한 규제를 약속했지만 규제 정도는 미약하다.

월가 시위의 의미

  주코티 공원 한켠에서 조용히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Occupy the Wall Street)’ 운동이 미국 사회운동의 숨통을 트는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들이 외치고 있는 구호도 매우 선명하다. ‘99%의 우리’라는 구호는 금융적 메커니즘에 의해 집단적 또는 추상적 착취를 받고 있는 상황을 잘 묘사하면서 현 위기의 원인과 결과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단순히 몇몇 기업의 횡포 또는 어떤 기업가의 전횡에 대한 일시적 법률적 구조로 현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문제의 근원에 1980년대부터 지속된 사회구조적 전환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굵직한 돈다발이 상위 1% 계층의 수중으로 집중되는 가운데, 99%는 자신의 다양한 삶의 공간 속에서 그러한 구조의 불균형과 모순에 직면한다.

 

 

월가 시위에 대한 시선과 나아가야 할 방향

  시위자들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노동조합 등의 전통적 사회운동 세력이 이러한 흐름에 결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통일된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일관된 지도부의 부재로 인해 행동의 통일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의 근저에는 금융 메커니즘을 통한 추상화되고 집단화된 착취에 대비되는 삶의 다양성 또는 구체성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주거공간 부재 문제가, 어떤 이들에게는 대학 학자금 문제, 또 직장 내의 인종적·성 차별 문제 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운동의 지향점과 공통된 이념이다. 이미 삶의 공간에서 느끼고 있는 집단적·추상적 착취의 문제를 좀 더 구체화하고, 공통의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전통적 사회운동의 실패와 성공이라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가능하다. 이 모든 상호의존 및 상호 교통의 과정 속에서 확실한 것은 아직 어떤 것도 없다. 이 움직임이 상황적으로 고립되어 사라져버릴 수도 있겠지만 사건은 끊임없이 반복해서 재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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