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아멜리 노통의 오후 네시
<세미나> 아멜리 노통의 오후 네시
  • 김민정 기자
  • 승인 2004.02.16 0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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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잘 알지 못한다.
 

 당신은 살인을 할 만한 사람인가? 그정도 배짱을 가진, 악을 가진 사람인가? 잘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살인을 할 동기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꽤 많은 편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원수 하나 없는 사람 없을 테고 나를 항상 곤경에 빠뜨리는 얄미운 친구, 배신한 연인, 그리고 길에서 어깨를 부딪히는 소소한 일들로 시비가 붙은 낯선 이, 하루종일 쿵쿵 뛰어 다니는 윗집 사람등등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몇백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을 설득할 수 있다. 그냥 죽여 버려... 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충동을 느낄 때 우리를 적절히 통제해 주는 이성이 있기에 살인이란 좀처럼 잘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배움의 경지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매너와 예의를 아는 사람들일수록 이성은 더욱 효과적으로 작용하여 그들을 온순하고 안전한 사회인으로 정착시켜 버린다. 그렇다면 살인은 인생의 낙오자들이나 범죄를 일삼는 악의 꽃들, 정신병자의 전유물일까? 

 여기 한 남자가 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가르쳐 온 교사였던 예순 다섯의 그는 평범하고 다정한 사람으로 그에게 살인은 자신과는 거리가 먼 극악의 범죄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오후 네시만 되면 찾아오는 이웃, 베르나르댕을 만나게 된 후로 그는 그 자신의 또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오후 네시부터 여섯시까지 자신의 집을 방문하여 언제나 똑같은 쇼파에 앉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웃을 다루는 법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역시 이러한 상황은 난감한 것으로 한 바탕 주먹싸움을 벌이기엔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면 좋다’라는 자신의 이성이 허락하지 않았고 집에 찾아오는 의도를 묻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언제나 오후 네시만 되면 자신의 집에 방문하여 쇼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침묵하는 이웃의 존재를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상대하게엔 자신의 박식한 지식도, 이웃에 대한 매너도 소용없는 것들이었다. 이렇게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웃과의 대결에 지쳐갈 무렵 그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베르나르댕씨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 그의 내면에 또 다른 존재가 그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웃이 매일 오후 네시에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자기를 죽여 달라는 하나의 암시라고 말이다.

 이렇게 살인은 이루어진다. 자신을 괴롭히는 이웃을 죽일 수 있는 명분을 스스로 만들어내니 간단한 일이었다. 이러한 결말은 살인을 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살인을 당하는 그가 원하는 것인지는 모호한 채로 남아있지만 어쨌든 목적을 이루었다. 사실 이러한 일은 그 자신에게도 놀라운 일이다. 분명 그는 배움과 가르침을 천직으로 한 교양 있고 예의바른 신사였기에 충동적인 살인이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로 이젠 더 이상 그도 자신의 존재를  규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자신의 마음 속 두 가지 존재에 따라 이웃을 죽인 극악무도한 살인자가 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죽여 달라 애원하던 이웃의 청을 들어준 고마운 이가 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으로 혼란스럽기만 하다.

무섭게도 또 불행하게도 사람은 스스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지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지만 이는 어쩌면 변질의 의미 보다도 또 다른 나의 모습의 발견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특정한 시간이나 공간, 상황에서 그동안의 내가 알고 있던 나의 모습과는 다른 낯선이의 모습을 한 자신을 내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당신에게도 매일 오후 네시에 문을 두드리는 이웃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이웃의 의도는 불행한 자신과 친구가 되어 달라는 것일 수도 있고 불행한 자신을 죽여 달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선택은 당신의 내면의 몫으로 어쩌면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자아가 불쑥 나타나 의외로 일을 쉽게 해결해 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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