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베이 비치
봄베이 비치
  • 문정현 다큐멘터리 감독
  • 승인 2011.12.1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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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값싼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위 1세계 출신 감독들 혹은 프로덕션의 다큐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의 다큐는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담지 못할 뿐더러 진정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태생 자체가 방송을 기반으로 하기에 시청자들의 취향과 구미에 맞는 소재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감독의 문제의식은 함몰되고 만다.

  이 문제는 나 역시 직면하고 있다. 다큐를 통해 뉴타운 개발에 희생되고 있는 세입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이들의 고통을 단지 관심을 끌 수 있는 하나의 소재로 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을 하게 됐다. <2011 DMZ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 출품된 알마 하렐 감독의 <봄베이 비치>는 이런 나에게 큰 자극을 줬다.

  영화는 한 때 최고의 휴양지였던 캘리포니아 남부 봄베이 비치의 현재를 기록한다. 감독은 이 황량한 사막도시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화면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삶이 얼마나 주류사회에서 이탈됐는지 알 수 있다. 영화는 그들의 열악한 삶을 극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우리는 마치 꿈을 꾸듯 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들을 대하는 카메라는 따뜻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들 안에 산적한 문제와 갈등, 고립에도 불구하고 이들 역시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노래를 하고 서로를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카메라는 증언한다. 값싼 동정이 아닌,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제작자의 태도 때문인지 피사체가 되는 대상들은 감독과 함께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는 것처럼 때로는 연기를 하고 때로는 자신들의 거칠고 열악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절망적인 현실을 분석하지 말고 나와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삶의 숨소리가 그리고 그 연속함이 바로 희망의 단초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이것이 삶의 진정한 순간이 아니겠냐고 감독과 봄베이 비치 사람들은 입을 모아 노래한다. 그래서인지 너무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 노래가 부조리한 현실을 재인식시키고 함께 실천 할 수 있는 영역을 고민하게 해준다.

  <봄베이 비치>는 주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따뜻한 시선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영화를 통해 세상과 충돌하고 대상과 교감하며 이를 아우를 수 있는 나만의 화법 혹은 재현의 방법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내가 편협하게만 바라봤던 소위 1세계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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