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무는 곳, 헌책방과 중고레코드점을 찾아서.
시간이 머무는 곳, 헌책방과 중고레코드점을 찾아서.
  • 김민정 기자
  • 승인 2004.02.2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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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 전에 산 핸드폰도 구형이 되어 버리는 요즘이다. 시대는 하루하루 빨리 변해 가고 그 변화에,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는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도 구형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모든 최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에 디지털 카메라의 높아져만 가는 화소를, 업그레이드되는 컴퓨터를 뒤 쫓아 가기란 여간 버겁고도 이제는 지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것만을 쫓는 일에 신물이 난다면, 정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원한다면 시간을 한 번 거슬러 올라가 보자. 헐고 낡았지만 그 가치만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빛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말이다.
 지하철 회현역 1번 출구로 나가 5분 정도 직진하여 걷다 보면 온갖 상점이 모여있는 '회현 지하상가'가  나온다. 신축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대문 시장과는 달리 깨끗하고도 현대적인 이 곳에는 중고 CD, LP만 파는 곳이 약 5군데에 이른다. 신축 전에는 모두 1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13개의 가게가 오밀조밀 밀집하였던 곳이나 리모델링 후 1월부터 입점하였기에 전에 있던 모든 가게가 들어오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정도 규모의 상점 수와 음반 량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세계에서 독일의 벼룩시장과 이곳 밖에 없다고 하니 그 자부심 또한 대단할 수밖에 없다. 클래식 음반은 10,000대, 팝송, 락, 재즈 레코드의 경우는 5000원대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 고객은 30대~50대 이지만 대학생 손님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책 역시 레고드판과 같이 오래되고 낡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 빠르고 편하기 때문에 온라인 서점을 선호하는 요즘이지만 책만큼 여러 사람의 손을 탈수록 좋은 것이 있을까? 여러 번 읽고 많은 사람에게 읽힐수록 그 책은 가치를 더해 간다. 이런 의미에서 헌책방은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닌 여러 사람을 쳐간 과거의 지식이 오늘날로 이어져 차곡차곡 쌓여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 대는 신촌 역, 유흥가로 메어진 길 반대편으로 홍대 쪽 방향을 따라 작은 골목을 들어가면 마치 다른 지역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로등도 없는 한산한 거리에 낡은 주택 집들 사이, <숨어 있는 책방>은 그렇게 꼭꼭 숨어 있다. 이미 헌 책방 매니아들 사이에서 입 소문이 나 있는 이곳은 4년 전 처음 문을 열었다. 언뜻 보기에는 일층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만 가게 옆 비밀의 계단을 내려가면 지하에도 책이 한 가득 꽂혀 있어 책을 찾는 재미가 더해진다. 대학가 부근인 만큼 다른 어떤 곳보다 수업에 관련된 인문 과학 서적을 찾는 학생 손님이 많지만 역시 제일 잘 나가는 책의 종류는 소설이라고 한다. 소설의 경우 대개 2000원~3000원 정도이고 가게 앞에 진열된 1000원 문고부터 몇 만원대의 화집
까지 그 종류는 다양하다.
 흔히 사람들은 가치를 값으로 매기지만 여기에 시간이 더해 질 경우 그 값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범주에 속하게 된다. 작고 가벼운 MP3 대신 투박하고 지기도 쉬운 레코드판에서 시대를 초월한 음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빳빳하고 얀 종이 대신 누렇고 낡은 헌 책에서 그 책을 읽은 사람들과의 교감을 나누어 자. 그 어떤 새로운 것보다 가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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