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聖潔)의 땅 티벳, 봄은 오는가
성결(聖潔)의 땅 티벳, 봄은 오는가
  • 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승인 2012.03.20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히말라야 산맥 북서쪽 드넓은 초원과 산맥으로 자리한 아름다운 자연의 땅, 티벳. 푸른 초원에 양떼와 야크들이 살아 숨쉬는 평화의 땅 티벳. 그러나 이 평화의 숨결 속에는 티벳과 티벳인들의 아프고 시린 굴곡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이 질곡의 시간은 언제쯤 그 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까?

  중국과 티벳, 갈등의 시작
1949년 10월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통일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하고, 그 여세를 몰아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을 동원하여 티벳을 강제 점령 했다. 1951년 양국은 ‘티벳 평화 해방 협정’을 체결했지만 진정한 티벳의 자치, 티벳인들의 신앙의 자유, 달라이 라마의 지위 인정 등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1959년 3월 10일 중국의 티벳 점령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이듬해인 1960년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여 현재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1966년 중국 문화대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중국은 티벳 불교사원을 다수 파괴하고, 티벳어의 사용을 금했다. 한편, 한족을 대규모로 티벳에 강제이주시켜 티벳의 중국화를 가속했다.

현 중국 주석인 후진타오는 이 시기 티벳 총서기를 맡아 중국과 티벳의 관계 개선을 위해 동화(同化)정책과 강온(强穩)정책을 펴면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1989년 3월 티벳은 독립운동 30주년을 맞아 대규모 독립 시위를 전개했는데, 중국은 이에 맞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면서 갈등의 최고조를 맞이하게 된다. 결국 1999년 달라이 라마는 티벳의 독립 대신 티벳의 문화 전통 유지를 전제로 하는 진정한 자치를 요구했다. 이는 강경 독립 요구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티벳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이중적인 소수민족 정책
티벳의 독립적인 움직임은 위구르족 등 다른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와도 연결된다. 이처럼 다양한 민족들로 구성된 국가의 안정된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국은 모든 민족의 평등이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하여 잘 짜여진 소수민족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정책은 무엇보다 소수민족의 지역자치를 시행토록 하며 민족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또한 소수민족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해주고 그들의 사회적 환경과 삶의 질의 개선과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수많은 소수민족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보장에도 불구하고 소수민족 지역은 단지 명목상의 자치 지역일 뿐이다. 한족이 최종적으로 통제를 하는 체제에서 소수민족이 중앙정계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인정해 준다는 중국 정부의 외형적인 배려는 하나의 중국을 위한 한족의 의도적인 측면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티벳을 대하는 중국정부의 이중적인 면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중국과 티벳, 두 갈래의 시선
중국과 티벳의 관계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되는 시점은 2006년 7월 1일이다. 베이징을 출발해 티벳 라싸까지 48시간을 달려 도착하는 청장철도는 84%가 해발 4,000m 이상의 고원을 통과하고 열차 안에 산소가 제공되는 등의 대형 공사를 진행해 오랜 공사 기간을 거쳐 개통됐다. 이 철도의 개통으로 티벳 사람들의 삶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인도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티벳인들은 이 철도의 개통을 반대했다. 철도의 개통으로 티벳의 중국화가 가속화되고, 교류와 왕래가 늘어감에 따라 티벳의 전통문화도 급속히 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혹시 생길 수 있는 대규모 시위 사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군 병력 투입이 용이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장철도를 바라보는 두 갈래의 시선이다.

  우리역사와 닮은 티벳의 현실
중국의 티벳 점령 역사는 우리가 일본에게 당한 강제합병과 식민통치의 역사와 닮아 있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일제의 강제병합, 1919년 전국적인 대규모 독립만세운동, 3·1운동 이후의 1919년 상해 임시정부 수립, 일제의 강제 탄압, 한글 사용 금지, 그리고 1945년 주권 회복. 과거 우리 선조들이 겪었던 굴절의 삶을 반추해 본다면 티벳에 대해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티벳족은 ‘장족(藏族)’이라고 불리는데, 장(藏)은 ‘성결(聖潔)’의 의미다. ‘서쪽의 신성하고 성결한 지역’인 ‘서장(西藏)’에서 연이어 생겨나는 티벳 승려들의 분신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중국 정부가 답을 주어야 할 때다. 티벳인의 투쟁 대상은 중국 국가와 중국 국민이 아니라, 중국의 대(對)티벳 정책이라는 점을 중국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또한 티벳의 요구는 독립 국가 실현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진정한 자치권의 확보라는 사실을 중국은 직시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