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평가 유감
상대평가 유감
  • -
  • 승인 2012.03.20 1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기가 지나가며 소소한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는 수강생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마음 한편으로는 ‘반갑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강좌에서 C이하의 학점을 주어도 되는 수강생들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일종의 안도감이다. 이런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은 동시에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비교육적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선생으로서 불성실한 학생의 출현을 반가워하다니! 이런 복합감정은 강좌가 성공적일수록, 또 그런 만큼이나 수강생들도 몸을 실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할수록 점점 더 커진다. 현재의 학점 상대평가제도 하에서는 다들 열심히 하고, 기대수준을 충족시키는 과제물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그 중 상당수 학생들은 C학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비교육적’ 평가가 강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자신이 받은 학점을 수긍할 수 없어 성적에 관해 문의하는 학생들이 많은 강좌는 역설적으로 학생이나 선생 입장에서 다 만족스러운 강의인 경우가 많다.
 

  물론 절대평가라고 해서 교육적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드물긴 하지만 수강자의 학업성취에 대한 평가라는 강의자에게 고유하게 주어진 권한을 비교육적으로 남용해 무조건 수강자 전원에게 A학점을 주는 경우들도 접하게 된다. 이런 일이 생기면 부실한 강좌도 A학점을 미끼로 수강생을 확보해 ‘인기강좌’의 가면을 쓰고 교육의 부실화를 부추긴다. 또 각 대학에 대한 평가와 이에 기초한 대학 외부의 재정적 지원이 상대평가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런 외부적 평가의 잣대들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운 환경도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관건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간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일일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대학들은 실습과목과 같이 전형적 상대평가 비율에 묶이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강좌에 대한 규정들을 만들고 이를 실행하고 있다. 제안하고 싶은 것은 기존의 예외조항에 더해 특정 강좌의 강의자가 절대평가가 교육적으로 긴요하다고 판단해 절대평가의 적용을 요청하는 경우, 요청의 근거로 제출된 관련 자료들을 심사해 그 요청의 적절성과 수락여부를 심사하는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것이다. 각 강좌의 절대평가의 승인 여부의 판단에는 수강생의 수, 학생들의 참여정도, 과제의 양, 교육적 성취도 등 다양한 평가의 잣대가 종합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제도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까지는 시행착오도 있을 것이며 논란거리나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부작용이 교육자가 “수업이 너무 잘 돼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 높은 교육적 효과를 이루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 부작용에 견줄 수 있을까? 또 어떤 부작용이 선생이 ‘불성실한 학생의 발견’을 반가워하는 현상보다 더 비교육적일까? 덕성여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매 학기말 성적입력기간이 되면 진지한 눈으로 수업에 임하고 몸과 마음을 실어 선생을 감동시키는 과제를 제출한 학생들에게 선생 스스로도 동의할 수 없는 학점을 주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잠을 설친다. 대학교육은 무엇에 최우선적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