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모순,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다
우리 사회의 모순,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다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2.03.20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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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와는 다른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낀다. 영화를 통해 이런 문제를 건드리며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탈피해 잔혹스릴러라는 파격적인 장르 시도로 주목받은 사람이 있다. 바로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의 연상호 감독이다. 새로움에 대한 그의 도전정신과 열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연 감독이 갈망하는 현대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봤다.

 

<돼지의 왕>이 어떤 점에서 많은 이들의 공감과 관심을 얻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돼지의 왕>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체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들은 체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재미없어 합니다. 동적이고 감정적인 걸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전반적인 체계의 이야기를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영화인 것처럼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사회체계에 대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영화가 꽤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영화가 더 재밌고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잠시라도 약자들의 느낌을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말하는 약자들의 느낌이란 무엇인가요
  늘 무기력하고 탈출하고자 하지만 어마어마한 뭔가가 가로막고 있는 듯한 기분이요. 거대한 답답함 같은 걸 느끼길 바랐어요. 이런 기분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지요.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절망을 드러내는 것을 제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절망을 느끼고 있지만 표현하면 안되는 상황, 쑥스럽게 만드는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화두가 ‘학교폭력’인데 영화에서도 중학교 교실을 무대로 폭력이 행해집니다. 이 같은 사회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국은 조폭문화를 모방해서 조직체계를 쌓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사회가 조폭형태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조폭문화가 조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들이 사회 전체에 포진해 있어요.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90도로 인사를 시킨다던가, 술잔이 비었는데 후배가 술을 따르지 않으면 버릇이 없다고 여기는 것들이 있지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불필요한 모든 것들이 조폭문화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은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존재인데, 감독님은 개인성과 사회성 중 어떤 것이 더 발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자신의 개별성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는 스타일입니다. 대학생 시절 이상한 아이로 유명했어요. 신입생 환영회 때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를 불렀는데 노래가사 중에 ‘닥쳐!’가 있잖아요. 선배들이 깜짝놀라는 거에요. 지금은 국민노래로 여겨질 만큼 인기가 많지만 당시엔 유명하지 않았거든요. 단지 제가 좋다고 생각한 노래를 부른 것뿐인데 이상한 아이라고 평가를 받은 것에 대해 부당하게 느꼈습니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 다양성들을 지켜가는데 큰 무리가 없고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은 20대에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오히려 대학생 때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아요. 그땐 욕망도 컸고 슬픔도 쉽게 느끼고 조금만 건드려도 뭔가가 발산될 것만 같은 상태였죠.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공허와 싸우는 과정인 것 같아요. 또 20대는 서른이 되기 전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막연한 공포 같은 게 있죠. 고민보다도 행동을 더 많이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자기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무엇이 됐든 다 좋은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 “‘세상이 바뀔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바꾸려는 움직임 자체가 가치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에 대해 좀 더 듣고싶습니다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하고야 말겠다는 독한 마음을 갖고 살았던 것 같아요.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바뀌지 않는 것에 대해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잘못된 점을 찾으려다보니 결과에 너무 집착하게 되더군요. 바뀔 수도 있고 안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회는 그 자체가 매우 느리게 변화하기 때문에 일개 한 사람이 한평생 동안 볼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변화되려고 하는 경향성까지는 지켜볼 수 있겠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영화가 가지고 있는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화라고 하는 매체는 드라마와 달리 한 편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관객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감독이 만들어낸 것을 끝까지 보고 나가야 하니까 감독의 생각을 더 잘 드러낼 수도 있고요. 물론 중간에 나갈수도 있겠지만요. 영화관이 관객들에게 일방적인 공간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환경이 영화의 장점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대중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하셨는데 다음에는 어떤 작품을 구상 중이신지요
  대중들은 다음 작품도 <돼지의 왕>처럼 내용이 무거운, 즉 사회체계를 다루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다음에는 개인이 느끼는 단순한 감정과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랜 염원 중에 하나가 애니메이션 포르노를 만드는 겁니다. 사람들은 제가 연애물을 하는 것 자체를 파격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애니메이션으로 스릴러를 한다고 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언젠가 한번은 전환점을 가지고 변신을 해야 합니다.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자신의 영역이 점점 좁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요.

  연상호 감독은 20대 때 품었던 커다란 꿈과 감성적 성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에 담아내고 있었다. 대중의 평가가 엇갈릴지언정 매 작품마다 다양한 시도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영역을 넓혀가려고 한다. 미야쟈키 하야오의 작품처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연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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