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 그리고 ‘아무도 꾸지 않는 꿈'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 그리고 ‘아무도 꾸지 않는 꿈'
  • 정선영 인디다큐페스티발 집행위원
  • 승인 2012.04.16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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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여 년간 한국독립다큐멘터리는 때로는 격분하며, 때로는 눈물 흘리며 신자유주의가 일상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노동자가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외침을 선혈이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러나 다른 문제들에 비해 여성노동과 관련한 많은 부분들은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1970년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의 노조투쟁이 한국의 노동운동사를 바꾸는 여성노동운동의 시초로 기록되고 있지만, 30여년이 지난 2006년에서야 이 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 <우리들은 정의파다>가 제작되었고, 이후 KTX여승무원, 이랜드, 기륭전자 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와 관련한 몇 편의 다큐멘터리가 더 제작되며 여성노동자 문제가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식에서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새롭게 드러낸 다큐멘터리 한 편이 상영 되어 눈길을 끌었다.

   영화 <아무도 꾸지 않는 꿈>은 학비를 벌고 싶다, 가족에게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 대학에 가지 않고 싶다 등 여러 이유로 구미의 '공장'에서 만난 19세부터 37세까지의 여성노동자 15명을 인터뷰하고 있다. 16살에 산업체로 구미 태광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 다이와 현정은 공장생활을 시작한지 10년째가 되어 가지만 한 번도 정규직으로 일해 본 경험이 없다. 다른 친구들 또한 처음 공장 일을 시작한 이래 이 공장에서 저 공장으로, 이 하청업체에서 저 하청업체로 옮겨가며 고된 노동과 해고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창문 하나 없는 먼지 가득한 공장안에서 2-3교대, 잔업으로 이어지는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견뎌내고, 기계보다 빠르게 작업물량을 뽑아내길 강요당한다. 무언가 이상하고 잘 못 되었다 생각해보지만 저항하는 방법도, 다른 길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그녀들은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노동에 대한 학습을 받아본 적이 없고(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 일 것이다) 아웃소싱이라는 불공정한 고용형태는 자신들의 부당한 노동을 어느 누구에게도 호소할 수 없게 옭아매고 있다. 영화의 중심에는 어떤 매체와 공간을 통해서도 보여지지 않은 채 나의 경험과 타인의 경험에 의해서만 학습되는 '공장'이라는 또 다른 사회가 있다.

   최근 3~4년간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의 연령이 낮아지고, 감독 주변의 이야기를 작품의 소재로 차용하는 사적다큐멘터리가 많아지면서 88만원세대의 목소리가 스피크아웃 되는 것은 눈여겨 볼만한 경향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20대 모두의 목소리였을까. <아무도 꾸지 않는 꿈>은 지방에 살며, 대학을 가지 않은, 20대 여성의, 노동을 새로운 시선으로 반문한다. 실제로 감독이 구미 공장에서 1년간 일하며 만난 자신의 친구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영화의 인터뷰는 ‘날것’에 가깝다. 다큐멘터리의 실제성을 극대화 시키는 수준을 넘어 영화 전체를 공격하는 형세로 느껴질 정도로 강하고 불안하다. 영화의 주인공들도, 영화를 만드는 감독도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힘은 거기에서 나오기도, 깨지기도 한다.  

 이제 첫 상영을 마친 <아무도 꾸지 않는 꿈>은 기존 여성노동다큐멘터리에서 회자되던 과거여성노동의 현재진행에 대한 증명으로, 88만원 세대로 통용되던 20대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던진 영화로 담론화 되어야 한다. 영화에서 텍스트로 인용된 최승자 시인의 시처럼 누군가 보고 또 보았던 세계를 어쩔 수가 없어서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지, 새로운 바람이 되어 움직이게 할지, 영화의 힘을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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