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공해
자막공해
  • 이수현 기자
  • 승인 2012.05.29 1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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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자면 눈이 빠질 지경이다. 현란한 CG와 자막은 1시간이면 1시간, 2시간이면 2시간 방송 내내 화면을 가득 메운다. 어쩔 때는 이들을 보느라 정작 중요한 영상을 놓친다. 필자는 이를 ‘자막공해’라 부르고 싶다.

  자막이 갖는 역할은 크게 ‘오락성’과 ‘정보제공’ 두 가지다. 우리나라 방송의 경우 전자의 성격이 압도적이고 이것이 갖는 역할, 임무가 막중하다. 오죽하면 자막을 두고 ‘제2의 진행자’라고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돌까. 이런 현상은 아시아 국가, 특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두드러진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방송을 뒤엎다시피 한 ‘자막’에 부정적이다. 시청자의 눈길을 계속 잡아둬야 한다는 연출자의 강박관념이 낳은 결과는 아닌지, 프로그램의 질을 자막으로 ‘커버’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 차별화되지 않은 내용을 자막으로 포장하려는 연출자들의 안이함이 느껴진다. 무분별한 자막의 등장이 되려 프로그램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다.

  물론 자막 자체가 갖는 이점을 부정하진 않는다. 자막은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정리해 전달하고 시청자가 지나칠 수 있는 웃음의 포인트를 짚어 준다. 다만 ‘과해서’ 문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자막을 보고 있자니, 이제는 프로그램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자막이 아닌 연출자의 의도대로 이해시키기 위한 장치로서의 자막으로 느껴진다. 자막이 프로그램의 방향성마저 좌우하는 마당에 ‘너무 인공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자막의 사용이 오히려 시청자의 자율적인 티비 시청을 방해한다. 심지어 토크쇼에서는 시종일관 진행자와 출연자의 멘트 전체를 자막으로 처리하는데, 친절이 과하다. 언제부터 시청자를 위한 토크쇼 해설이 존재했나? 우리는 해설없이는 토크쇼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지?

  때로는 ‘침묵’이 주는 감동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자막이 등장한다. 자막이 나오면 우리의 시선은 자막으로 향한다. 이때 자막은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도구를 넘어 ‘주인공’이 되는 반면 영상은 ‘조연’이 된다.
  재치 넘치는 자막 활용은 방송의 한 트렌드다. 훌륭한 자막과 편집은 재미와 감동을 더한다. 하지만 ‘과용’으로 인해 본연의 역할과 의미를 잃는 일이 생겨나서는 안된다. 방송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뒀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쉴새없이 날 밀어붙이는 자막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이제는 나 혼자 생각할 시간도 좀 주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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