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물학과 지식의 융합
사회생물학과 지식의 융합
  • 박만준 동의대학교 철학윤리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12.06.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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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생물학의 등장
1960년대 초반 일부 생물학자들이 사회를 생물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인간을 진화와 유전이론의 토대 위에서 연구하는 학문이 태동한다. 이들의 목표는 전자보다 훨씬 더 야심차다. 이들은 인간의 삶을 과학적 언어로 바꾸어 번역함으로써 인간을 새롭게 규정하고 인간의 생존과 미래에 대한 우주적 지침을 찾고자 한다.
  이런 배경 속에서 사회성 동물의 사회조직과 그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분석하고 체계적인 이론을 제시하고자 등장한 것이 사회생물학이다. 특히 에드워드 윌슨의 기념비적인 저작 <사회생물학>은 사회생물학의 이론적 핵심을 개념적으로 정립함과 아울러 인간의 진화에 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정보들을 집대성한 매우 인상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생물학이 볼 때 인간에 대한 전통적 정의나 규정은 인간의 사회성과 사회적 삶의 양식을 이해하는 데 뭔가 부족하다. 따라서 인간의 사회성을 원리적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새롭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이 사회생물학의 첫 번째 문제의식이다. 
  사회란 무엇인가? 한 쌍의 생물이 단순한 성적 활동을 넘어서서 상호 협조하는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때, 이것이 사회 혹은 사회성을 규정하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세계에서 이러한 사회성이 드러나게 된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생물학>의 저자 에드워드 윌슨

우리는 왜 모여 사는가
  동물이 사회를 이루고 함께 모여 사는 것은 보다 더 밀접한 협동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함께하기 위한 전조이다. 예컨대 참새는 먹이를 발견하면 자기가 속한 무리의 모든 동료에게 꼭 나눠준다. 참새뿐만이 아니다. 함께 사냥하고 함께 먹는 것은 조류의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습관이다. 한마디로 함께 모여 사는 것은 그들에게 생존을 위한 엄청난 힘이 된다. 
염소나 사슴도 낚아챌 정도의 날카로운 발톱과 억센 다리를 가진 독수리조차도 그에 비해 무력하기 짝이 없는 솔개 떼 앞에서는 먹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솔개 무리들은 독수리가 좋은 노획물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추적하여 탈취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빼앗은 먹이를 둘러싸고 저희들끼리 싸우는 법은 없다.
신장이 8인치도 채 못 되는 유럽 할미새는 솔개 떼보다 더 감동적이다. 말똥가리나 사냥매의 덩치나 힘은 할미새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할미새들은 무리를 지어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뿐만 아니라 때론 이들 맹금류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회적 행동은 동물들에게 그들의 환경에 대한 최상의 대응 시스템이며 자연선택을 위한 가장 중요한 진화적 요인이다. 자연선택은 나쁜 것은 버리고 좋은 것은 모두 보존하고 보충한다. 자연선택은 언제 어디서나 기회만 있으면 각 생물이 생활조건에 대해 잘 개선되도록 조용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일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연선택은 생물의 생존이익을 위해서 작용한다. 그러므로 동물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동물의 사회성)은 자연선택의 산물이다.

 

인간의 미래
  함께 사는 것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면 인간도 인간이기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수백만 년 전 반은 사람이고 반은 유인원인 생물(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이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뻘인 고릴라나 침팬지와 유사하게 집단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화석을 통해 알려졌다. 또 그들은 진정한 의미의 최초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호모 하빌리스, 그리고 우리가 속해 있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돼 가는 중에도 여전히 사회적 존재로 남아 있었다.
  물론 사회적으로 산다는 것은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소름 끼칠 정도의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도, 인간으로부터 인간성(사회성)을 앗아가기 위한 무지막지한 시련들을 견뎌낸 진화의 산물이다. 수없이 많은 인간미 넘치는 행동들을 통해 생존자들은 사회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그것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낙관하기 힘들다. 사회생물학적 입장에서 볼 때, 현대 사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인류가 자신의 존립에 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만큼 그 위험이 절박하다. 
위기에 대한 사회생물학의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생물학적 궤도를 이탈해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바이오그램과 현대사회의 문화적 환경은 서로 위험하리만치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앞으로 인류의 생존 여부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반과 문화적 기반 간의 조화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인간의 본성, 윤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줄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사회생물학과 지식의 융합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변화 가운데 가장 절실하고 우선적인 것이 지식의 통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의 통일과 융합은 사회생물학의 소임이자 목표이다. 사회생물학은 동물행동학적, 사회학적 비교 연구를 통해서 인간과 다른 동물에 함께 적용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의 발견을 주된 목적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윌슨은 생물학적 통일성을 역설하고 과학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과학의 통일성은 생물학적 통일성을 확장시킨 개념이다. 생물학적 통일성이 생물의 통일성을 전제한다면 과학의 통일성은 자연의 통일성을 전제하고 있다. 그가 <사회생물학>에서 ‘흰개미 군집, 칠면조의 형제 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으로부터 인간의 사회 행동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가닥’를 확립하려고 했던 것은 전자를 전제했던 것이고 <통섭>에서 지식의 통일을 이야기할 때는 주로 후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윌슨의 <통섭>은 그의 <사회생물학>의 연장 혹은 확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통섭>은 단순히 학문 영역의 확장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통섭>은 단순히 지식을 종합하거나 계통분류학적으로 집대성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근원적으로, 더 원리적으로 접근하면서 왜 지식이 종합적으로 통일되어야 하는가를 문제 삼고 있다. 그래서 지식 상호간의 인식론적 연관과 그 통일성에 대한 해명이 요긴하고 절실했던 것이다.

  윌슨에 따르면 우리는 생존을 위해 지식을 종합하고 통일해야 하며,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이다. 달리 말한다면 우리에게 통섭은 본성적이고 우리의 본성은 통섭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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