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2.09.10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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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속의 향기가 문득 스쳐 지나갈 때, 잊고 있던 사람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그만큼 향기는 사람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은은한 향기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최근 향료를 통한 마케팅의 활용범위도 넓어졌다. 건설업체는 환기·환풍시스템에 향료를 접목해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는가하면, 일부 기업체에서는 공조시스템에 사무능력을 높여주는 향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여러 분야에서 향이 응용되면서 향을 만들어내는 조향사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 최초 조향사로서, <갈리마드 퍼퓸&플래버 스쿨> 대표 정미순 원장이 만들고 싶은 향은 ‘진정성과 혼이 담긴, 그래서 의미가 전달될 수 있는 향’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에도 감정이 있고 그 향과 대화를 나눈다는 정 원장. 향과 그녀와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약력
연세대학교 화학과 졸업, 일본 조향학원(Niffs) 연수,
일본 미야조향스쿨 수료, 프랑스 갈리마드 조향과정 수료,
서울대학교 바이오 엔지니어링 박사과정 수료

 

현) 갈리마드 퍼퓸&플래버 스쿨 원장, 한국 민간자격협회 회원,
강원대 외래교수, 중앙대학교 의약식품대학원 향장학과 외래강사


  조향사가 하는 일과 대표님께서 조향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조향사는 사람이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각종 향기와 냄새를 혼합해서 새롭고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 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를 오감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지요. 각종 요리와 커피 등 향뿐만 아니라 모든 냄새에 예민한 것이 조향사의 직업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향사라는 직업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에스티로더 회장의 전기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향에 대한 그분의 열정과 실험정신에 감명받았어요.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엔 조향사가 되기 위한 향수 전문 교육기관이나 교과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일본 동경에 있는 ‘미야 조향스쿨’에서 3년간 조향 공부를 했습니다. 조향사의 꿈을 키워나가면서 한국에도 체계적인 조향 교육을 실현시키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그렇게 해서 국내 유일무이한 향수 교육기관인 <갈리마드 퍼퓸&플래버 스쿨>이 만들어질 수 있었군요. 죽은 연인의 향을 만들어 달라는 고객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향에 대해 고민하던 중 심리학도 공부하셨다고요?
  향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향을 원하고 있는지를 빨리 파악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볼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의 기억 속  향과, 표현하고자 하는 향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심리학이 사람의 내면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 것 외에 조향사에게 필요한 자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뛰어난 후각과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을 갖춰야 합니다. 냄새만으로 어떤 향인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표현할 수 있어야 해요. 또 조향사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향을 통해 내면 깊숙이 있는 것까지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진실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향기에 혼을 담아야 합니다. 물론 기술적인 지식과 예술적인 감각은 조향사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질입니다.


  어머니 화장대에 있었던 샤넬 No.5를 향수에 대한 ‘첫 느낌’으로 기억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기억 속 샤넬 No.5의 향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연륜이 있는 여성한테서 느껴지는 포근함이요. 샤넬 향은 엄마냄새였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엄마의 냄새를 알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 품에서 느낀 엄마만이 가진 향기를 그리워하죠. 하지만 지금의 샤넬 No.5 향은 제가 기억하고 있는 그 향과는 다릅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향에 대한 사람들의 기호도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 고유의 느낌과 어울리도록 조금씩 수정해 나간 거죠.


  향을 인격화 해 향과 대화를 나누신다고 들었는데 향과 어떻게 교감하시나요?
  향에 감정이 담긴다는 의미인데, 그 감정은 그 사람의 마음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때 만들어지는 향은 냄새도 좋습니다. 하지만 피곤하고 아플 땐 약한 향이 만들어져요. 향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집니다. 향이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키는 거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와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해요.


  향수 선진국으로 프랑스를 꼽으셨는데요, 프랑스에서 향수가 먼저 발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우리나라와 향수를 보는 문화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불쾌한 냄새를 제거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씻는 문화가 발달한 반면, 프랑스는 향을 입히는 문화다 보니 향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우리나라는 빼기 문화, 서양은 더하기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땀냄새 같은 악취도 조향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악취로 여겨지는 향들을 모아 희석의 과정을 여러 번 거치면 그 향에서 에로틱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체취가 가장 관능적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조향사들은 좋은 향만 맡지 않습니다. 다양한 향에 대해서 열린 자세가 필요하지요.


  향수를 만들 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대중성’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향을 원한다는 점에서 ‘독창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님은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를 어떻게 조율해 나가시나요?
  누구나 좋아하는 향수를 만들 것인가, 기존에 없었던 개성적인 향을 만들 것인가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아요. 대중성을 따르면 개성이 줄어들고, 개성적인 향수를 만들면 대중성이 약해지거든요. 일반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향수에서 개성은 찾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서 의류산업에 마케팅의 일환으로 향을 적용했다는 점은 독창적이지만, 향 자체가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향은 오히려 대중성을 띄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이어야 그 매장을 찾는 손님이 많아질테니까요.


  향수를 주로 맥박이 뛰는 곳에 뿌리곤 합니다. 향수의 종류나 상황에 따라 뿌리기에 적합한 신체부위가 있나요?
  아침에는 머리를 맑게 하고 잠에서 빨리 깨기 위해 상체에 많이 뿌리고, 무거운 향의 경우는 하체 쪽에 많이 뿌립니다. 파우더리한 향이나 진한 향을 위쪽에 뿌린다면 오히려 자신의 향에 취해 피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오랫동안 좋은 기분으로 향을 즐기려면 잔향을 잘 살펴야 합니다. 만약 잔향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잔향이 사라질 때까지 컨디션이 좋지 않겠죠. 요즘은 향이 강하진 않지만, 잔향이 풍부하고 나를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의 따뜻한 향이 인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통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받길 원하는 것 같아요.


  전문 조향사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감각을 이용해 나만의 향수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요?
  DIY 향수는 수많은 향료병이 놓여있는 조향 오르간에 앉아 향 원료의 냄새를 맡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향기를 골라 향수를 만드는 독특한 체험입니다. DIY 향수가 자기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 될 수 있어요. 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좀 더 멋스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거든요. DIY 향수를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향을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향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향에 더 관심을 가지고 향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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